현재 불교는 여러 종파로 나누어져 있지만 삼국시대에 불교를 받아들이고 그중에 신라는 고구려를 통해
불교를 받아 들인 것으로 인식되어 이어져 오고 있다.
중국이나 한반도도 마찬가지로 불교가 들어 오면서 고대민간 신앙과 충돌로 인하 신앙적 마찰을
불교의 특유의 포용적인 수용성으로 인해 이를 잘 극복 하였다.
그 중에 불교의 종파와 관려하여서는 일부 학계는 신라통일초기 5교종의 성립을 주장하고 있으나 이것은
사적근거의 미약성이 있다는 근거로 김영태 학자는 고려시대에 종파들이 들어 온 것으로 주장하는데
그중에 제일먼저가 구선선파 이다. '그리고 그 다음이 화엄업과 유가업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당시 삼국와 통일신라는 중국과 달리 불교를 인도의 학파적 모습과 유사한 학종 으로 이해 하였다고 생각되며, 종파로서
받앋들인 흔적이 없다고 본다.
원효는 그의 열반경종요에서 파사종 오시 라는 내용을 논하면서 남토와 북방의 이러한 주장들은
어느 것이 맞고 어느것이 맞지 않는 가 하는 자문에 자답 하기를
만일 일변만 고집해서 한결같이 그렇다고 말하면 두 주장들이 모두 잘못되었다고 하겠다.....
라고 하고결론적으로 말하기를
만일 결정코 일변만을 고집하면 모두 과실 이 있 다 하몄다.
한국은 중국을 통해불교를 받아 들였으나 처음부터 중국의 정착화 과정에서 일어난 가장 대표적인
오해인 종파불교를 극복하고 통불교라는 통시적 불교 이해법을 창안 하였다.
한국의 불교의 종파는 고려말에 와서 종명의 표현이 나타나고 정착되는것으로 보인다.
그 대표적인것이 천태종 화엄종 자은종 남산종 등이며 조선초기에 와서비로소
11종의 완전한 종파가 기록되었다.
그러나 조선 초기 태종 때11종에서 7종으로 가시 5종으로축소되고세종 6년에 와서
선교양종으로 탄생되는데 이것은 불교교리에 맞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선교양종조 중종때 없어졌다가 명종시기에 잠시 부활 하다가
대비가 별세하자 종명도 영원히사라지고 종도 없고 파도없는 산중교단의 비운을 맞게되는 것이
불교이다.
이렇듯 불교가 산중에서 무종 무파으로 역사속에서 보이지 않다가 불교계는 광무6년 정책적으로
전국의 사찰과승려들의 관한 일체사무를 관장하는 관리서 설치되면서 새로운 흐름을 타는 듯 하다가
2년뒤에 관리서마저 폐쇄되었다/
유희2년 1908년 3월에 전국 승려 대표자 들이 우너흥사 모여 원조이라는 새로운 종명을 책책하고 종무원을 설립하였다.
종무파가 없는 시대가 왔으나 원종의 종정이었던 이회광의 친일적 행위로 인해 승려들이 분개하여 만든 것이
임제종이다.
그러나 이 시기는 일제 강점기라 불교계가 2개의 종단이 있었으나 힘이 약했으며, 일제에 의해
종명도 함부로 쓰지 못 하였다.
이후 불교계는 약간의변화를 거쳐 여러가지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성을 절감하여 1941년 태고사를
세워 불가능에 가까웠던 상황을 이끌어 오늘날 까지 이어져 오는 조계종을 설립 한 것이다.
불교종파와 역사에서 일부 발췌 하였다.
권 기현 교수의 논문 일부 밀교학보 제 4집
옥산 이희득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