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서울시는 “같은 성받이가 10가구 이상 몰려 사는 집성촌이 서울에 적어도 7곳이 있다.”고 밝혔다. 망우1동 양원리(동래 정씨), 방학4동 원당마을(파평 윤씨), 외발산동 광명마을(경주 최씨), 신내1동 능말(경주 임씨), 강일동 벌말(청송 심씨)과 가래여울마을(남평 문씨), 염곡동 염통골(창녕 조씨) 등이다. 가만 살펴보니 개발제한구역이나 서울의 외곽이라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마을의 전통을 유지해온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지난 5년간 서울은 재개발 및 뉴타운 건설을 유행처럼 퍼뜨려갔다. 서울 집성촌 7곳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거긴 이제 없어졌죠. 작년에 아파트단지로 바뀌었거든요.” 7곳의 집성촌 중 3곳에서 비슷한 답변이 돌아왔다. 외발산동 광명마을, 신내동 능말, 강일동 벌말은 재개발이 진행 중이거나 완료된 뒤였다. 5년 동안 서울 집성촌 절반가량의 거취가 흐리마리해진 셈이다. 원주민 대부분이 새로 들어선 아파트로 이주했지만 만 명 이상 이주민이 유입돼 ‘집성촌’으로 남기에는 한계가 있어보였다.
‘가래여울마을’은 서울의 동쪽 끝 한강변 기스락에 위치해있다. 강동대교 남단과 올림픽대로 안짝 강 둔치에 들어선 마을은 서울의 시간을 비켜난 듯 보였다. 30여 채 오래된 한옥과 휘뚤휘뚤한 골목, 아직 농사를 짓는 밭과 비닐하우스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마을 제방 위에 올라서면 강 너머 북쪽으로 경기도 구리시와 남양주시가 보인다. 가래여울마을 동쪽은 하남시와 맞닿아 있다. 원래 강일동 너른 벌판에는 청송 심씨 집성촌 ‘벌말’이, 강 기스락에는 남평 문씨 집성촌 ‘가래여울마을’이 있었다. 그러나 ‘벌말’ 너른 들판에는 아파트단지가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벌말의 옛모습은 역사의 뒤안길에 묻히고 가래여울만이 강일동 집성촌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린벨트+상수원보호구역+군사시설보호구역
“88올림픽 전만 해도 마을 앞 한강에 배가 다녔죠. 강변에는 은빛 모래가 빛났고요. 대학생들이 MT하러도 많이 왔어요.” 마을 어귀에서 41년째 추탄상회를 운영하는 안옥재(75)할머니가 마을의 옛 모습을 회상한다. 여울은 ‘강이나 바다의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세게 흐르는 곳’을 뜻하는데 마을 역사를 가만 들어보면 저절로 이름에 수긍이 간다. 강일동 1통(가래여울마을) 문종철 통장은 “올림픽대로가 놓이기 전만 해도 가래여울마을 앞 한강은 강폭이 좁고 물살이 셌어요. 어렸을 적에는 동네 아이들과 강을 건너다니기도 했으니까요”라고 설명한다. 올림픽대로를 만들면서 강을 파고 제방을 쌓아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는 것이다. 문통장은 “옛날에는 마을 앞에 나루터가 있었다고 해요. 정선에서 뗏목을 타고 와서 마포에 물건을 팔러 가기 전에 잠깐 머무르는 ‘계류장’이었죠”라고 덧붙인다.
‘가래여울마을’에는 예부터 ‘가래나무’가 많았는데 인조 때 이곳에 머무른 영의정 오윤겸은 호를 따 마을을 추탄(가래 추楸, 여울 탄灘)이라 부르기도 했다. 남평 문씨가 가래여울마을에 정착한 것은 어림잡아 250년 전이다. 1925년 을축년 대홍수 때는 마을이 모두 물에 잠겨 집을 모두 새로 지었다. 풍납동에서 왕십리까지 배로 다녀야할 만큼 피해가 컸는데 강변 마을이었던 가래여울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정도였다. 그러나 그 뒤로 마을의 변화는 크지 않았다. 마을이 그린벨트, 상수원보호구역,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주민 30가구 중 4~5집은 매운탕 식당을 운영하고 나머지는 농사를 짓고 있다. 삶의 방식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앞집은 형님, 뒷집은 사돈, 남이 없는 마을이죠
마을 주민과 함께 마을길을 걷는다. 최근 들어서야 시멘트로 포장된 길은 좁은 골목으로 이어진다. 집은 대부분 황토로 지은 초가집의 흔적을 안고 있다. 초가집 위에 기와지붕이 얹히고 흙벽에는 시멘트를 덧발랐다. 16살에 마을로 시집온 이재옥(81)할머니는 “정신대 끌려간다고 아버지가 여기로 시집보냈지. 그땐 다 초가집에 싸리문이고. 홍수 나서 몇 번이고 마을을 비웠다 들어왔어”라고 말한다. 가래여울마을에는 이제 남평 문씨가 6가구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가족만큼이나 가깝다. 남평 문씨와 사돈 간인 김해 김씨 집안도 마을에 터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여기가 남이 없는 마을이에요. 형제고 친척이고 사돈이고”라고 말할 정도다.
가래여울마을은 최근 그린벨트 내 취락지구로 지정돼 집을 다시 지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주민들은 오래된 집을 고치고 덧대 살고 있다. 한 번지에 여러 채의 집이 있는데다 마을 안에 30가구 이상 집을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는 집도 많아 불편한 점이 많다. 마을 주민들은 “올해가 지나기 전에 마을을 정비해야죠. 오래된 한옥을 잘 살릴 수 있으면 좋고요. 아마 지금 찍어가는 사진이 마지막 자료 사진이 되지 않을까요”라고 말한다.
첫댓글 가래여울마을 이름도 정답네요. 저도 어릴 때 집성촌이 아니어도 학교에 가면 친척이 많았기에 재미있는 일도 많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