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
최미경
올 겨울은 유난히 춥기도 하고 눈이 많이 내린다. 기상 전문가는 올겨울 추위를 30년 만의 추위라며 지구 온난화로 북극 빙하가 녹으면서 차가워진 대륙 공기가 남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골목길은 지난번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고 그대로 얼어 있어서 길을 지날 때마다 살금살금 발을 조심스레 옮겨 놓는다.
길이 미끄러워 내심 반갑지 않은 데도 눈이 오면 나도 모르게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대문 밖 골목길을 쓸러 나갔다가 이웃집 아이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눈싸움을 하는 모습이 천진스럽다.
함박눈이 내려 온 대지를 하얀 세상으로 만들어 버린 내 어린 시절은 동네 친구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골목으로 나와 한바탕 눈싸움을 벌인다. 마치 회오리 바람같이 아래위 골목을 우르르 뛰어다니는 우리를 향해 할머니는 고뿔 걸린다고 고함을 치시지만, 눈빛은 곱다. 아버지는 마당의 눈을 온 종일 리어카에 담아서 동네 앞 논으로 갖다 버리시고 오시곤 했다. 나는 아버지께 아까운 눈을 왜 다 버리냐고 못 버리게 했지만, 아버지는 눈이 녹으면 마당이 질척여서 다니기 힘들다 시며 그예 눈을 다 쓸어다가 버리고 말았다.
주먹만 한 눈을 뭉쳐서 눈 위에다 놓고 굴리기 시작을 한다. 정구 공 만 하던 것 이 축구공만 하게 커졌다. 점점 살이 붙어나서 혼자 힘으로 눈덩이를 굴리다 힘에 겨우면 친구들과 힘을 합해 굴리기 시작을 한다, 그렇게 하나는 크고 다른 하나는 조금 작게 만든다. 어린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눈덩이를 포갤 수 없어서 아버지를 다시 부른다. 아버지는 그렇게 큰 눈덩이를 번쩍 들어서 올려 주셨다.
눈사람을 만들어 나무 막대기로 눈 코 입을 붙여주고 솔가지를 양쪽에 세워서 손을 만들어주니 아주 근사하다 .
눈이 내린 들판을 동네 꼬마들도 뛰고 동네 강아지들도 모두 나와 설국을 만끽하고는 모두 뒷동산으로 올라간다. 청솔가지에 피어있는 눈꽃은 장관이다. 햇살이 퍼지면 나뭇가지 위에 쌓였던 눈이 밑으로 철퍼덕 소리를 내면서 떨어지기도 하고 남은 눈이 녹느라 모락모락 김이 하늘로 올라간다.
홍조 뛴 볼은 얼음장같이 차갑고 끼고 온 장갑은 눈에 젖어서 축축해진 지 오래지만 우리는 자연이 만들어준 천연의 눈썰매를 타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비료 부대에 볏짚을 넣어 썰매를 타면 얼마나 잘 미끄러져 내려오는지 우리들의 입에서는 환호성이 절로 나온다. 야호~~
종일 그렇게 놀고는 해가 어둑어둑 져서 집으로 들어가면 할머니는 꽁꽁 언 손을 잡아서 아랫목에 갖다 대시며 동상 걸리겠다며 야단을 치 시 면서도 그 음성에서는 사랑이 묻어나는 듯하다. 하루도 빠짐없이 친구들과 날이 밝기 무섭게 만나서 산으로 들로 온 세상이 우리의 놀이터인 듯이 놀았다.
제법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었을까 옥순 이가 어느 동화책에서 보았다며 우정을 바위에 새긴 이야기를 해주었다.
두 사람이 사막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여행 중에 문제가 생겨 서로 다투게 되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뺨을 때렸습니다. 뺨을 맞은 사람은 기분이 나빴지만 아무 말을 하지 않고모래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친구가 나의 뺨을 때렸다. 두 사람은 오아시스가 나올 때까지 말없이 걸었습니다.
마침내 오아시스에 도착한 두 친구 는 그 곳에서 목욕을 하기로 했습니다.
뺨을 맞았던 사람이 목욕 하러 들어가다 늪에 빠지게 되었는데
그때 뺨을 때렸던 친구가 그를 구해 주었습니다. 늪에서 빠져 나왔을 때 이번에는 돌에 이렇게 썼습니다.
" 오늘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나의 생명을 구해 주었다."
그를 때렸고 또한 구해준 친구가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내가 너를 때렸을 때는 모래에다 적었는데 왜 너를 구해준 후에는 돌에다 적었지? 친구는 대답 했습니다.누군가가 우리를 괴롭혔을 때 는 모래에 그 사실을 적어야 용서의 바람이 불어와 그것을 지워 버릴 수 있도록.
그러나 누군가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하였을 때는 그 사실을 돌에 기록해야 해. 그래야 바람이 불어와도 영원히 지워 지지 않을 테니까.
이렇게 감동적인 이야기를 듣고 옥순 이와 나도 우정 바위를 만들어서 영원히 우리의 우정 변치 말자고 굳게 약속을 했다.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아지트가 될 만 한곳을 찾았다. 삼국지의 도원결의를 다지던 관우 장비 유비 와 같이 우리도 우정 바위에서 우리만의 결의를 맹세했다. 학교에 갔다 와서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정 바위에서 우리는 만났다. 다소 감성적이고 순수했던 우리는 그 곳에서 시험 때가 되면 공부도하고 노래도 하고 시를 쓰기도 하며 우리만의 엄밀한 비밀을 키워가고 있었다.
세월이 흘러 친구가 타지로 학교를 진학하는 바람에 우리의 우정도 시들해져 갔다.
일 년에 한두 번 방학이 되면 친구를 만나 그 곳을 찾다가 마치 퇴색되어 가는 그림처럼 우리의 우정 바위도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오늘아침 자연이 만들어준 순백의 세상 가운데서 기억 속에 가라앉아있는 옛 기억을 끄집어내어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보물 마냥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먼지를 닦아내고 기름칠을 해본다.
첫댓글 눈 오는 날 잊을수 없는 추억 같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 감동적인 이야기를 듣고 옥순 이와 나도 우정 바위를 만들어서 영원히 우리의 우정 변치 말자고 굳게 약속을 했다. "
"늪에서 빠져 나왔을 때 이번에는 돌에 이렇게 썼습니다....*^^* 좋은글 쓰셨습니다.. 잘 읽었어요...*^^*
좋지 않은 기억은 바닷가 모래에 새기고 좋은 추억은 돌에 새깁시다~^^ 잘 읽고 갑니다.
오늘아침 자연이 만들어준 순백의 세상 가운데서 기억 속에 가라앉아있는 옛 기억을 끄집어내어 오랫동안 돌보지 않은 보물 마냥 입김을 호호 불어가며 먼지를 닦아내고 기름칠을 해본다.
하얀 눈에 파묻혀서 강아지처럼 뛰노는선생님의 모습을 상상 하며 어린시절 고향동네 설경을 그렸습니다.
더욱 건필히십시오. 하늘소리 선생님 핫팅!
선생님 좋은 글 잘 감상을 하고 갑니다. 더욱 건필 하십시요.
눈사람 만들던 어린시절이 생각 납니다. 오늘 눈이 제법 쌓겼군요. 감상 잘했습니다.
선생님 아지트에서 우정바위에 우정을 새기는 선생님의 모습이 보이는듯 합니다.
그렇군요 좋지 않은 기억은 바닷가 모래에 새기고 좋은 추억은 돌에 새기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정의 글 감사합니다.
바위에 새겨야 할 일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눈 밭에서 건진 귀한 교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