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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대가 아닌 빛이 되기 위해서 태워야 할 몸이 무겁기만 합니다.
불을 가진 사람
완산동 용머리고개 육교옆 할 말하는 이발소 아저씨
한바탕 하셨는지 머리 염색과 관련한 불만고객에 대하여 말씀을 건네시네요
염색해달라고 해서 정성껏 염색해 줬더니 그 때는 암 말도 않다가
며칠 있다가 와서 하는 말이 염색이 잘못됐다고 따지는 분이 있다고 합니다.
그 분들의 불만사항은 염색이 잘 안됐다는 것
이발사 아저씨 하시는 말씀, 염색이 잘 못된 게 아니라 며칠 새 흰머리가 자라서
그런건데 그 분들은 자신의 머리가 원래 흰머리인 걸 잊어버리신 것 같다고..
흰머리를 염색한다고 해서 뿌리까지 검은 머리 되는 건 아니지요
하루에 남자는 0.37mm씩 머리카락이 자라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덧붙이시는 말씀, 사람들은 5~60이 되어도 자신의 몸 나이가
언제나 2,30대 나이로 착각하고 사는 분이 많다고 하네요.
사람마다 다르지만 눈이 희미해지고 검은 머리가 흰머리 되는 건 자연스러운 건데
그걸 인정하는 걸 거부한다는 겁니다.
늘 그렇게 잘 보였고, 늘 그렇게 잘 들렸고 늘 그렇게 검은 머리였기 때문에
흰머리를 인정하지 않고 계속 그런 상태로 있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누구나 나이 들고 감각기관이 퇴화되고
흰머리가 생겨나는 게 정상인데 영원히 젊음을 유지하려고 하고 있지요.
사람들 중에는 인생의 철을 모르는 철부지 인생이 꽤 많은 가 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한 계절 아름답지 않은 계절이 없는 데
봄에는 봄처럼 보고 여름에는 여름처럼 열매 맺고
가을에는 가을처럼 익고 겨울에는 겨울처럼 잘 떠날 줄 아는 사람이
철들고 잘 산 사람이 아닐까요? 먼저 낮과 밤이 또 한서가 교체 되는 것은
생사生死도 교대되는 것이라는 걸 알려주는 것이 아닌지요?
자신도 모르게 철따라 자연스럽게 숨지는 삶이되시기를 바라면서
물 속의 봉인을 풀고 불붙은 물님의 말씀을 전해드립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인간에게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라고 했다.
두뇌에서 가슴에 이르는 길이 멀다는 뜻일 게다.
뇌에 관한 글을 보면 순전한 의식에 이른 사람의 뇌는 황금빛이다.
그런데 분석해보니까 뇌가 회색으로 변색된 사람이 많다고 한다.
차지도 덥지도 않은 사람, 니코틴으로 찌든 뇌, 잘못된 식생활 등으로 인하여
자기 자신 본래의 뇌의 빛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현대인 가운데 많다.
결국 두뇌가 두뇌로서 가진 특성 즉 제 빛을 잃어버리고
회색으로 변색된 사람들의 의식도 회색의식인 것이다.
그 사람의 마음상태에 따라 두뇌가 영향 받는 거다.
의식이 두뇌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의식의 색깔에 따라서 뇌 색깔이 달라진다.
인간의 몸은 60조개의 세포로 구성되었으며, 1초에 50여 만 개의 세포가 재생된다.
그러고 보면 우리 몸 안에서 대단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세포 하나하나가 다 나를 이루는 정보로 이뤄져 있다.
인간의 몸은 엄청난 세포 덩어리요 세포 마다 다양한 정보로 채워져 있으며,
그 세포가 나라고 볼 수 있다.
세포가 증식되면서 세포뿐만 아니라 기억과 의식이 함께 전달받는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의식을 반영하고 전달하는 게 뇌다.
그러므로 긍정의 마음으로 뇌파를 낮추고 평정심을 갖는 것이 나를 살리는 일이다.
설령 내 세포가 부정적이라고 하더라도 누구나 재생될 수 있는 작동시스템을 주셨다.
피부는 2주, 간은 3달 만에 새로운 장기로 재생되는 것이다.
건강의 비결은 의식을 정화시키고 건강의식을 내 몸에 부여하는 데서 출발한다.
3년 10개월이 경과되면 내 몸의 모든 장기가 싹 바꿔진다.
7년 만에 누군가를 만났다면 내가 만난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다.
우리가 내 자신의 삶을 어떻게 관리해야 될지는 의식의 문제에 달려 있다.
‘회색의 뇌’를 가진 사람은 차지도 덥지도 않다.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잃어버려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매사에 저울질하기 때문에 ‘예스’ 또는 ‘아니오’ 할 수 없다.
삶 속에서 차지도 뜨겁지도 않으며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사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성경은 수많은 사람이 하느님을 만나고 역사 속에 이름 한자를
남긴 사람은 열정이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적고 있다.
뜨거움이 식어 얼어붙으면 삶이 건조해지고 지루해진다.
우리가 이 자리에 온 이유도 식어버린 삶에서 열정을 되살려내고
뜨거운 가슴을 허락해달라고 기도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성경의 상징은 불이다. 육신은 촛대와 같다.
영혼에 불이 안 붙으면 우리 몸은 촛대다.
활활 타는 불을 가진 사람이 되라
경전에서 바로 성령의 상징이 불이다.
예수님은 “나는 이 세상에 불 지르러 왔다.” 고 선언한다.
예수님의 가슴에 불이 붙었다. 이 세상이 이렇게 가면 안 된다는 생각
불은 예수님의 가슴을 대변하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가슴을 만난 사람들은 이 세상을 불 지르는 사람이 되었다.
역사는 그런 사람들에 의하여 AD와 BC로 나눠졌다.
하느님을 만난 사람들은 반드시 죽는다.
하느님을 만나기 전과 만난 후가 같을 수 없다.
믿음은 열정을 회복하는 것이다. 나한테 시는 절실함이요 간절함이다.
나는 잠 잘 때 주머니에 볼펜을 넣고 잘 때가 있다.
꿈속에서 오는 시를 옮기기 위해서다.
한 번은 꿈속에서 디오게네스가 찾아와 조언하기를
“우주적으로 생각하고 지구적으로 살라” 고 말씀하신다.
나는 이 말씀을 듣고 깨어나 얼른 볼펜을 꺼내 적었다.
뭔가 꿈속에서라도 떠오르면 적어야지 하는 생각에 자다 깨게 된다.
요한계시록의 7 숫자는 완전 숫자다. 소아시아의 7교회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7은 지상 교회의 여러 특징을 가진 모습을 보여준다.
‘라오디게아교회’ 돈 많은 부자 교회다. 다 부자들이기 때문에 원하는 게 없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인 문제에서도 간절함, 절실함이 사라져 버렸다.
이런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 성경은 말씀하신다.
“나는 너를 잘 알고 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다.
나는 네가 차든지 덥든지 어느 한쪽이면 좋겠다.
그러나 너는 미지근하기만 하기 때문에 나는 너를 내 입에서 토해 내겠다.”
이처럼 삶 속에서 내 가슴이 냉냉해졌을 때 바로 그 상태가 위기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고 무기력에 빠질 때 위기가 온다.
그걸 알아차려야 나한테 기회가 오는 것이다.
열정이 살아있을 때 기회가 오고 붙잡을 수 있다.
기회는 회색빛 두뇌 인간을 빗겨간다.
무엇이든 열정이 있을 때 희망이 있고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회색의 사람은 도박, 마약 등 열정을 쏟지 않아야 할 때 열정을 쏟는다.
우리는 삶의 열정을 어디다 쏟고 사는 지 생각을 집중해야 한다.
하느님은 사랑의 열정에 의하여 우리에게 특별한 선물을 보내 주셨다.
아름답게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이 사람들을 보내주셔서
무감각한 영성을 살려주셨다는 게 복음이라는 거다.
16세기 걸출한 신부요 모든 지식에 통달했다고 하는 ‘아타나시우스 키르헤’
이 분은 한 시간 배우면 어떤 언어도 통할 수 있는 대단한 분이라고 전해진다.
키르헤의 도형은 “천사들의 빛이 이 지구에 내리쬐고 있다.
이 지구는 이미 천국이다. 내가 지옥을 만들어 지옥을 사는 것이다”는
통찰을 그의 도형에 직접 그려 넣는다.
도형 가운데 눈, 저 눈은 하느님의 눈이고 모든 걸 볼 수 있는 하느님 세계다.
우리는 천국을 볼 수 있는 눈을 떠서 천국 안에서 천국을 누리고 살아야 한다.
하느님은 이 세상을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시고 보내주셨다.
하느님의 목적은 두뇌에서 나온 게 아니라 가슴에서 나왔다.
예수님이 이를 전수해 주셨다.
예수님이 전한 진리의 핵심은 하느님께서 사람 안에서 계신다는 거다.
예수님을 통해서 나타난 하느님의 지혜는 하느님께서는 사람 안에 계신다는 거다.
우리들과 함께 계시고 동행하시고 저 하늘이 우리 가슴 속에 보이는 세계
영적인 세계까지 이르는 ‘바로 여기가 천국이로구나’ 깨닫고
지금 여기서 천국을 누리고 살아야 하며
지금 여기 와 있는 천국을 못보고 누리지 못하는 삶이 죄다.
우리 삶 속에 오신 하느님의 목적을 모르게 되면 불행하게도
저 분이 내 안에 뜨지 못하고 미지근하고 설익은 상태로 살 수 있다.
진리는 궁극적 승리를 보장한다.
진리를 통해서 자유인이 되는 것이며 그러지 못하면 신념의 노예로 살아야한다.
우리는 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 눈치 안보고 내 노래를 부르고 내 춤을 추고 살아야 한다.
늘 하는 일 반복적인 일에 중독되면 삶이 무기력해진다.
새로운 의식 세계가 열려야 새로운 세계를 산다.
늘 그런이 늘근이로 사는 사람은 그 뇌가 회색빛이다.
가마솥에서 든 개구리처럼 천천히 삶아지는 줄 모르고 죽어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 죽음의 가마솥에서 팔짝 뛰쳐나와야 산다.
미지근하게 사는 것은 내 인생의 자살골을 스스로 먹는 거다.
하느님께서는 내 안에 계신다.
임마누엘의 하느님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차지도 뜨겁지도 않게 살래야 살 수 없는 존재다.
불타고 있는 초의 심지 그 빛 속의 아픔을 누가 알겠습니까?
하물며 초 하나도 빛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제 몸을 태워야 하는데
촛대가 아닌 빛이 되기 위해서 태워야 할 몸이 무겁기만 합니다.
주역의 염상누수炎上漏水 영혼을 꼿꼿이 세워 빛을 내지 못하고
심지를 육신을 물에 빠뜨리면 죽고 말 것이라는 말씀...
“시간이 없다.”
물님의 말씀이 이 순간 전선의 군호軍號처럼 울려 퍼집니다.
si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