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10월15일
청주 나들이
새벽 다섯에 알람을 맞춰놓고 잠을 청했다. 경산역에서 오송역까지 직통으로 가는 기차가 오전 7시22분에 있다. 동대구역에서 환승하는 절차가 번거롭기 때문도 있지만 선배님과 시간을 좀 더 많이 갖기 위해서 조금 부지런히 움직였다. 새벽부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사별하고 20년 가까이 홀로 계시는 선배님이다. 젊어서는 미대를 꿈꾸던 청년이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싫어했던 아내 때문만도 아닌, 가장으로 가족을 건사하려는 쉽지 않은 결단을 내리고 아빠로, 남편으로 회사를 오가며 60년을 살았다. 중간에 아내와 사별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한동안 그림을 그리는 일조차 어려워했다. 어느 날 선배님은 용기를 내서 붓을 다시 잡고 부단히 그림 그리는 작업을 했다.
고희를 넘기면서 첫 개인전을 연다. 개인전 소식을 들었을 때 울컥하는 마음에 눈물이 났다. 하늘나라에서도 선배님의 전시회를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축하를 해주고 있을까?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보내고 그 힘든 시간을 그림을 그리면서 견뎌냈을 선배님 마음이 읽혀진다. 심장이 아프다는 말이 이럴 때 쓰는 게 아닐까?
오픈 식에 참석하고 싶었는데 그날은 손님도 많고 선배님도 바쁠 것 같았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한가롭게 다녀오려고 가고 싶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기다렸다. 오픈 식에서 가족 인사로 큰아들이 감사 인사하면서 ‘어머님이 계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라는 인사를 했다고 한다. 또 심장이 아팠다. 젊어서부터 붓을 들지는 않았지만, 전시회를 많이 다녔다. 선배님과 그림 전시회를 참으로 많이 다녔다. 천경자 미켈란젤로, 박수근 등등 경주로 제주도로 미술관 투어를 다녔다.
오송역에서 7년 만에 선배님과 만났다. 기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주려고 전화했다는데 열차 소리에 듣지 못했다. 선배님 만날 마음에 세상 소리가 사라졌는지 모른다. 기차에서 내려 나가는 곳으로 부지런히 나가는데,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내 이름을 다정하게 부르는 너무도 친숙한 목소리에 그때는 심장이 멎었다. ‘사진 찍어주려고 몇 번을 전화했는데’ 하면서 아쉬워했다. 언제나 선배님은 내가 내리는 기차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성모병원 갤러리에서 선배님 그림을 보는데 살아온 시간이 그대로 묻어있었다. 온 마음을 다해서 그림을 그린 시간이 그대로 그림에서 보였다. 생각보다 그 이상의 작품이었다. 병원을 오가는 사람들이 휠체어 앉아서 그림 앞에서 한동안 머무는 모습이 가슴에 들어왔다. 선배님은 누구보다 아픈 사람 심정을 안다. 대장암으로 병원에서 지낸 시간이 있기에 어쩌면 첫 개인전을 병원 갤러리에서 하는 것도 뜻깊은 일이 아닌가 싶다.
가족 중에 누군가 전시회를 하면 이런 기분이 들 것 같았다. 지인의 전시회를 둘러보는 기분하고는 달랐다. 시집을 낼 때도 선배님은 오빠처럼 모든 일을 직접 나서서 해주었다. 시화전을 할 때도 액자 옮기는 일부터 디스플레이 작업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내 일처럼 해주셨다. 이제는 멀리 청주로 이사를 가서 전화로 안부를 물으면서 지내고 있다,
커피를 마시고 싶은 사람이 있고 술을 마시고 싶은 사람이 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커피를 가장 맛있게 멋있게 먹는 사람이 선배님이다. 선배님을 만나면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