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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전체로
이 범 선
“쳐 마구 쳐 와. 그렇지 또, 또, 또 한 번.”
나는 오늘 아침에도 그 소리에 잠이 깨었다. 자리 속에 누워서도 귀가 시리다. 영하 10도는 더 될 것 같았다. 그런데도 주인네 부자는 권투 연습을 하고 있다.
나는 일어나 유리창 안에 달린 미닫이를 열었다.
밤사이에 눈이 꽤 많이 내렸다. 주인네 부자는 눈을 쓸어다 저쪽 널바자 밑에 무둑이 모아놓고 흡사 권투장처럼 사각형으로 땅바닥이 드러난 마당 한복판에 마주 섰다. 시내 모고등학교의 영어 교사인 이 하숙집 주인은 살집이라곤 한 점도 없이 키만 훌씬 크다. 다섯 자 아홉 치란다. 그는 꺼먼 줄이 죽죽 내려 쳐진 잠옷바지에 어깨만 달린 러닝셔츠를 입었고 올해 열두 살,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은 밤색 코르덴 바지에 반소매 메리야스를 입었다. 보기에만도 으르르 몸이 떨린다. 그런데 정작 그들은 그리 춥지도 않은 모양이다. 둘이 다 자기의 머리통만씩 한 가죽 주머니를 씌운 두 주먹을 가슴 앞에서 불끈거리며 상대방을 노리고들 있다. 아버지는 약간 허리를 구부린 자세로 윗도리를 좌우로 기울거리고 아들은 요게 겨우 아버지의 허리께를 넘을락 말락 한 놈이 제법 비스듬히 모로 서서 왼편 주먹은 딱 얼굴 앞에 가져다 막고 오른편 주먹은 어깨 앞에서 내밀었다 거둬들였다 하며 깡충 한 걸음 나섰다 깡충 한 걸음 물러섰다 아버지의 틈새를 찾고 있다.
“쳐 와야지.”
아버지가 오른주먹으로 퍽 하고 아들의 왼쪽 어깨를 갈겼다. 아들은 오른편으로 배칠 했다.
“쳐 와!”
이번엔 오른쪽 어깨를 갈겼다. 아들은 또 왼편으로 배칠했다.
“다리에 힘을 꽉 줘!”
아들은 날쌔게 한 걸음 물러서며 다리를 딱 벌려 디디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몸을 좌우로 흔들며 주먹 을 달막거린다.
“자, 어서 쳐 와!”
아버지가 두 팔을 번쩍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어린놈은 똑바로 아버지의 눈을 쏘아본다.
“응!”
틈을 노리던 아들이 오른쪽 주먹으로 아버지의 배를 딱 내질렀다.
“옳지. 또.”
“응!”
이번 엔 옆구리를 후려쳤다.
“또.”
“응!”
이번엔 왼쪽 주먹으로.
“또.”
“응!”
“또 한 번.”
“응!”
“또 한 번. 세게.”
“응!”
아들은 주먹을 번갈아가며 마구 아버지의 배를 쥐어박았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한 걸음씩 물러섰다. 아들은 점점 더 빨리 주먹을 썼다.
“응. 응. 응.”
입은 꼭 다물고 한 번 칠 때마다 꽁꽁 숨을 몰아쉰다. 아들은 한번 다시 아버지의 눈을 쏘아보았다. 그러고는 받으려는 송아지처럼 머리를 수그리더니 정말 마구 주먹을 내질렀다. 아버지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 아들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섰다. 아버지는 이제 거의 울타리 밑에 눈 무더기 앞에까지 밀려갔다. 아들은 여전히 머리를 수그린 채 주먹 만 자꾸 머리 위로 내질렀다.
“더 세게.”
아버지가 큰 소리를 질렀다. 아들은 한번 머리를 쳐들었다. 숨이 찬 모양이다. 어깨를 들먹거리며 무엇을 겨냥이나 하듯이 아버지의 눈과 가슴께를 살펐다. 그런가 하자 또 머리를 싹 수그리더니 별안간 아버지의 가슴팍을 향해 탁 부딪쳐갔다. 그러자 아버지는 날쌔게 옆으로 빗섰다. 아들은 자기 힘에 밀려 앞으로 쏠려나가다 거기 모아놓은 눈 무더기에 콱 머리를 처박고 언 땅에 딱 소리가 나게 두 무릎을 끓었다.
“항상 상대방을 똑바로 보랬지 않아!”
아버지가 등 뒤에서 소리를 질렀다. 아들은 권투 장갑을 낀 둔한 손을 땅에 짚고 꿇어앉은 채 눈 속에서 빼낸 머리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간신히 일어나 돌아섰다. 머리와 얼굴에 눈이 잔뜩 묻었다. 아들은 얼굴을 찌푸렸다. 콧잔등에 묻었던 눈이 푸슥 떨어졌다. 아들은 울상인 채 다시 허리를 구부려 권투 장갑을 낀 두 주먹으로 무릎을 눌렀다. 언 땅에 사정없이 내리쳤으니 아플 수밖에. 나는 눈 범벅이 된 아들의 찌푸린 얼굴을 보자 웃음이 터져나오려 했다.
“자 자, 또 쳐 와!”
그러자 다음 순간, 등을 이쪽으로 돌리고 선 아버지가 이렇게 소리를 지르자 절룩 다리를 절면서도 그래도 주먹만은 제자리에 가져다 대고 아버지와 마주 겨누어 서는 아들의 매서운 눈빛에 나는 다시 정색을 하고 말았다. 아들은 똑바로 아버지의 눈을 쏘아보는 채 오른주먹으로 얼른 이마를 한번 비볐다. 눈 녹은 물이 땀처럼 이마에서 번들거렸다.
“눈은 똑바로 뜨고. 보초선(步哨線)에 선 병정 모양 항상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싸늘하게 상대방의 심장을 겨누고 있어야 자기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세상.”
나는 문득, 언젠가 하숙집 주인이 하던 말을 생각했다.
그는 저녁을 먹고 난 뒤 곧잘 나와 함께 산보를 나가곤 했다. 그럴 때면 그는 여러 가지 세상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는 언제나 싸늘한 표정이었다. 지난가을 이 집으로 하숙을 옮겨 지금 12월, 거의 반년 간에 나는 한 번도 그의 웃는 얼굴을 본 기억이 없다. 그러기 학생애들은 그를 ‘석고상’ 이라 부른다고 했다. 그런 그의 입에서는 언제나 침울한 이야기만이 흘러나왔다.
“뭐, 그저 운동이지요.”
내가 어린 아들에게 권투를 가르치는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몇 걸음 묵묵히 걷다 말고 발을 멈추더니 나를 돌아보았다.
“왜, 좀 이상하슈.”
“아니오, 이상할 건 없지만 참 열심이시더군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닌 게 아니라 그들 부자의 권투 연습은 참 맹렬했다.
지난가을에는 비가 자주 왔다. 그래도 그들은 연습을 쉬지 않았다. 억수로 퍼붓는 빗속에서도 홈빡 젖어가며 연습을 계속했다. 그러기를 요즈음 지독히 추운 아침에도 하루도 거르는 법 없이 여름 셔츠만을 입혀 어린것을 끌어내 세우는 것 이었다. 주인아주머니도 그의 고집에 이젠 말리기를 단념하고 말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렇지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심장이 뛰고 있는 한.”
“그렇지만 하루쯤 운동을 안 한대서 뭐.”
“운동이오! 아 네. 운동도 운동이지만…….”
“…….”
“말하자면 정신 무장이랄까요. 끝까지 꺾이지 않는.”
기름이라고는 바르는 법이 없는 긴 머리가 고개를 떨구고 천천히 걷는 그의 이마에서 흠씰거렸다.
“저는 어려서 어른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 밤길을 가다가 제일 무서운 것은 사람을 만났을 때라고요…….”
한참 만에 그는 뚱딴지같은 말을 했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그의 여윈 얼굴만 한번 쳐다보았다. 그는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 말이 이해가 되지 않더군요. 도깨비, 호랑이, 여우, 뭐 그런 것들 무서운 것이 얼마든지 있는데 왜 그런 무서운 것들을 만났을 때에 사람의 편이 되어줄 사람을 도리어 무섭다고 하는지. 어른들이란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저는 그대루 그 수수께끼를 풀지 못한 채 어른이 되어버렸지요. 그런데 이번 6·25 사변에 비로소 그 말뜻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또 한 번 그의 옆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는 여전히 조용한 얼굴로 앞을 보며 걷고 있었다.
“자, 어서 쳐 와.”
아버지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아들은 쩔룩하고 다리를 절며 따라나섰다.
“이놈아, 그까짓 게 뭐가 아파. 자!”
아버지는 아들의 눈 묻은 머리를 가죽 주먹으로 툭 쳐 밀었다. 아들은 아버지의 주먹을 오른쪽 주먹으로 홱 갈겼다.
“옳지.”
그는 또 언젠가 이런 말도 했다.
“한강 백사장. 요즈음 소위 전후의 청년들은 이 백사장이란 걸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
내가 미처 대답을 못 하니까 그는 자기 말을 이었다.
“백사장. 그건 꼭 ‘우리’라는 말과 같은 것이 아닐까요. 그저 수없이 많은 모래알. 그것이 어쩌다 한곳에 모였을 뿐. 아무런 유기적 관계도 없이. 안 그렇습니까? ‘우리,’ 참 좋아하고 또 많이 쓰던 말입니다. 우리! 그런데 피난 중에 저는 그만 그 말을 잃어버렸습니다. 폭탄의 힘은 참 위대하더군요. 저는 돌아온 이 서울 거리에서 ‘우리’ 대신 폐허 위에 수많은 ‘나’를 발견했습니다. 나, 나, 나, 나, 나, 나. 정말 한강의 모래알만치나 많은 ‘나.’”
아들은 암만해도 아파 못 견디겠는 모양으로 한번 허리를 꾸부려 가죽 주먹으로 무릎을 눌렀다.
“일어나? 그럼 내가 쳐 갈 테다. 좋아? 자.”
아버지는 절하듯이 꾸부리고 무릎을 주무르고 있는 아들의 어깨를 툭 갈겼다. 다리의 힘을 빼고 서 있던 아들은 펄썩 모로쓰러졌다.
“일어서!”
아버지의 소리는 컸다. 아들은 한 손을 땅에 짚고 한 손은 얼굴 앞에다 가져다 대어 본능적으로 아버지의 주먹을 막으며 일어섰다.
“똑바로 서!”
채 일어서기도 전에 아버지의 주먹이 아들의 어깨를 또 갈겼다. 아들은 다시 땅바닥에 나가쓰러졌다.
“일어서! 정신을 똑바로 차려!”
소리를 지르는 아버지는 여전히 쓰러진 아들의 머리 위에서 커다란 가죽 주먹을 불끈거리고 있었다.
지난가을 어떤 일요일, 나는 거리에서 주인을 만났다.
“차나 한잔 하고 같이 들어가실까요.”
나는 앞서 옆에 다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아무 말도 없이 따라 들어왔다.
찻잔을 물릴 때까지 그는 말이 없었다. 그저 유리창 밖의 파란 하늘만 멍히 바라보고 있었다.
“한 푼 보태주 시오.”
옆에 거지가 서 있었다. 어린애를 담요에 싸 업은 여자 거지였다. 배가 고파 못 견디겠다는 표정으로 여윈 손을 그에게로 내밀고 서 있었다. 그는 힐끔 그 거지를 쳐다보았다. 오른손을 양복저고리 호주머니에 넣었다. 손을 꺼냈다. 그런데 빈손이었다.
“없습니다.”
“한 푼만 보태주십시오.”
거지는 등의 어린애를 한번 추어올리며 여전히 그의 가슴을 향해 새까만 손을 펴 내밀고 있었다. 등에 업힌 어린애는 단발머리 계집애였다. 세 살쯤 나 보이는 그 애는 어디서 주운 것인지, 반 깨어진 조그마한 손거울 조각을 무심 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옜습니다.”
나는 10환짜리 한 장을 거지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아주부었다. 거지는 돈을 쥐자 싹 돌아섰다. 우리 앞자리에 앉은 젊은 남녀를 향해 지금 우리에게와 꼭 같은 표정으로 또 손을 펴 내밀었다. 다방 레지가 와서 거지의 등을 밀었다. 밖으로 밀려나가는 거지의 뒷모습을 유심히 쳐다보고 있던 그는 이윽고 내게로 눈을 돌렸다.
“미안합니다.”
“아니올시다. 없을 땐 한 푼도 없는 수도 있지요 뭐.”
“아니오, 돈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 그럼 제가 실렐 했군요.”
“천만에요.”
그는 또 한동안 말이 없었다. 다시 시선은 창문 밖을 향했다. 담배 연기가 그의 긴 손가락 끝을 노랗게 그슬리며 가물가물 피어 오르고 있었다.
“너무 가깝습니 다.”
“……네?”
하늘로부터 재떨이로 시선을 떨구며 그는 조용히 말했다.
“지금 그 거지와 나의 거리가 말입니다. 지고 물러나 앉으면 그 순간부터 그대로 거지니까요.”
아들은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오른주먹으로 얼굴을 가리고 왼손으로 땅을 짚으며 앉은뱅이처럼 뒷걸음을 쳤다.
“이놈아, 일어서지 못하구 그냥 물러앉을 테야. 응.”
아버지는 머리 위로 올린 아들의 주먹을 탁 하고 이번에는 정말 세게 옆으로 쳐 갈겼다.
“일어나!”
그러자 아들은 그대로 땅바닥에 이마를 대고 엎드렸다. 아니 실은 엎드린 것이 아니었다. 어느새에 아들은 아버지의 두 다리를 바로 발목께서 움켜 안고 있었다. 아버지는 불의의 습격에 비칠했다. 그러나 넘어지지는 않았다. 재빨리 한 발을 빼 뒤로 옮겨 디디었을 땐 아들도 일어서 있었다.
“옳지 !”
미처 아버지가 자세를 취하기도 전에 일어선 아들은 정말 악을 써 아버지에게 달려들었다. 아버지의 아랫배를 마구 두 주먹으로 쳤다. 머리로 들이받기도 했다. 그건 이미 권투 연습이 아니었다. 싸움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허리를 부둥켜안고 빙글빙글 돌았다. 지금까지 아프다고 주무르던 무릎으로 아버지의 다리를 막 쥐어 박기도 했다. 머리는 도끼처럼 탕탕 아버지의 배에 옆구리에 부딪쳤다.
“옳지. 옳지. 더 세게. 더 더.”
아버지는 두 주먹을 아들의 잔등 위에 가만히 올려놓고 아들이 하는 대로 따라서 이리 끌리고 저리 밀리며 마당을 돌았다.
전에도 언젠가 비 오는 날 아침에 이런 연습을 한 일이 있었다. 산보 나간 길에서 내가 그건 권투 룰에서 벗어난다고 했더니 그는 뻔히 나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룰이요? 룰…… 벗어나지요. 그런 엉터리 권투는 없으니까요.”
그는 한참 동안 말없이 걸었다.
“학생은 육이오 때 어디 있었소?”
뚱딴지 같은 질문을 했다. 그는 이야기하는데 이렇게 껑충껑충 뛰는 버릇이 있었다.
“서울에 숨어 있었습니다.”
“네, 왜 피난을 못 나갔지요?”
“방송을 듣고 믿었지요. 나가자니까 벌써 늦었더군요.”
“저처럼 됐군요. 룰. 룰…….”
그는 말끝을 흐려버리고 자기의 흰 고무신코를 내려다보며 천천히 걸었다.
“학생은 베이비골프를 쳐본 일이 있습니까?”
“네, 한두 번.”
그의 이야기는 또 껑충 뛰었다.
“골프. 참 이상하더군요. 유희에서는 그 까다로운 룰을 곧잘 지키면서 정작 사회생활에서는 룰을 안 지키거든요. 슬쩍슬쩍 남이 보지 않을 때 손으로 공을 집어다 구멍에 밀어 넣는단 말입니다.”
“……”
“하기야 인생은 분명 베이비골프는 아니니까.”
한참 두들겨 맞던 아버지는 아들의 겨드랑 밑으로 팔을 넣었다. 쓱 들어 올렸다. 아들은 땅에서 둥둥 떴다. 두 다리를 허공에서 후들거렸다. 팔은 자연 아버지의 허리를 끌어안아야 했고 이젠 때릴 수도 없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들어 올린 채 그 자리에서 휙 맴을 돌기 시작하였다. 아들의 몸은 공중에 떠서 머리를 중심으로 하고 팽그라미처럼 돌았다. 빙빙빙빙, 열여덟 바퀴 돌고 나더니 아버지는 아들을 땅에 내려놓았다. 아들은 비칠비칠 모로 쓰러지려 했다. 두 주먹을 머리 좌우에 뿔처럼 가져다 대었다.
“꼭 눈을 감고 정신을 가다듬어.”
그러는 아버지도 어지러운 모양이다. 눈은 감고 윗도리를 기울기울하고 있다.
“사흘을 굶으니까 정신은 아찔아찔한데 코는 백 미터도 더 먼데 있는 설렁 탕 냄새를 정확히 분간하더군요.”
피난 중에 부산 거리에서 애들에게 두부비지도 못 사 먹이고 꼬박 사흘을 굶은 일이 있노라고 하며 이야기했다.
그는 부두 노동을 했다. 종일 궤짝을 메어 나르는 일이었다.
그날은 삯전을 받아 밀가루 두 근을 사 들고 들어왔다. 창고 바닥에 수제비를 떠다 놓았다. 그런데 일곱 살짜리 딸애가 거적자리로 들어서다가 수제비 깡통을 걷어찼다. 몽땅 쏟아버렸다.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딸애의 뺨을 후려갈기고 있었다. 애는 미처 울지도 못했다. 그저 몸을 파르르 떨고 있었다. 아내는 쏟아진 수제비를 모아 담아 물에 씻어 왔다. 어린것은 그제야 클쩍쿨쩍 울면서 그래도 수제비를 연방 퍼 넣고 있었다.
다음 날 저녁부터 어린것은 거적자리에 들어앉으면 멀리서부터 조심조심 깡통을 더듬는 것이었다. 어슬어슬하긴 하지만 아직 그릇이 안 보일 정도는 아닌데 장님 모양 손으로 어루쓰는 그 모양이 또 거슬렸다. 그는 이번엔 또 뭘 그리 어릿어릿하느냐고 야단을 쳤다. 그랬더니 어린것은 숟가락을 한 손에 쥔 채 멍히 앉아 있기만 하고 통 수제비를 뜨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데 그게 영양부족으로 저녁때면 아주 눈을 못 본다는 것을 안 것은 퍽 후였습니다.”
언제나 거기까지 왔다는 돌아서곤 하는 산보길 끝에 놓인 시멘트 다리 난간에 걸터앉으며 그는 자꾸만 고개를 뒤로 젖혀 저녁 하늘의 별을 찾고 있었다.
이야기를 켐 속하였다.
그 후 두 주일이 채 못 되어서였다. 그 애는 심한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백일해였다. 창고 안에 같이 들어 있는 사람들이 야단을 쳤다. 딴 애들한테 옮기 전에 어서 어디 딴 데로 나가라는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바로 옆자리의 가는 금테 안경을 쓰고 나비 수염을 키운 의사라는 자가 더 야단이었다.
“저는 아무 대꾸도 못 했습니다. 불행히도, 정말 불행히도, 백일해가 전염병 이란 걸 나 자신이 알고 있었던 까닭에.”
앓는 애를 업고 창고를 나온 그들은 갈 곳이 없었다. 부산이라곤 하지만 대한(大寒)날 밤바람은 살을 도려내는 것처럼 매웠다. 그들은 하는 수 없이 거기 창고 마당에 쌓아놓은 가마니 더미 밑에 네 식구가 쭈그리고 앉았다. 서로 몸을 꼭 대고 앉아 그 위를 다 떨어진 담요로 덮었다. 세 살짜리를 꼭 껴안고 얼굴을 맞비비고 있는 아내의 어깨가 흐득흐득 울었다. 그의 무릎 위에 꼬부리고 있는 일곱 살짜리 딸애는 내장을 전부 토해내는 것처럼 기침을 깆다가는 꺽꺽 까무러치며 그의 가슴을 할퀴는 것이었다.
“그날 밤에도 하늘엔 저렇게 별이 떠 있었습니다. 시인들이 좋아하는 별들이.”
그러나 그것으로 그들의 불행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날 밤 그 창고에 불이 났다. 순식간에 홈싹 타버렸다.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어린애가 둘 타 죽었다고 했다. 다행이랄까 밖에 있었던 그들은 피해가 없었다.
가마니 더미 밑에서마저 쫓겨난 그들은 소방대 펌프가 펴부은 물이 번질번질 언 행길가에서 밤을 새워야 했다.
“해가 뜨기를 그날 밤처럼 간절히 기다려본 일은 없습니다.”
해만 뜨면 그래도 얼어 죽기는 면하려니 하는. 마침내 긴 겨울밤은 새기 시작했다. 훤히 동녘이 밝아왔다. 이제는 또 어디고 의지할 곳을 찾아야 했다.
그가 막 골목을 빠져나가렬 때였다. 간밤에 아들을 태워 죽여버렸다는 의사가 안경을 벗은 눈을 찌푸리고 마주 섰다.
“이 사람입니다.”
의사는 뒤에 선 청년을 돌아보았다. 아내에게 연락을 할 겨를도 없었다. 그는 수갑을 채운 두 팔을 앞에 읍하고 경찰서로 끌려갔다. 눈앞에서 빤짝빤짝 불꽃이 튀었다.
쫓겨난 분풀이로 창고에 불을 질렀다는 것이었다.
사흘 만에야 놓여났다. 분했다. 그러나 그 분보다 식구들 걱정이 더 앞섰다. 단숨에 달렸다. 아내는 사흘 전 고 자리에 고대로 앉아 있었다. 세 살짜리는 등에 업고 일곱 살짜리는 담요에 싸안고. 그를 보자 아내는 그대로 폭삭 쓰러졌다. 울지도 묵敖다.
“딸애는 죽어 있었습니다.”
그는 딸애를 담요에 싸안고 산으로 갔다. 구덩이를 대강 판 그는 옆에 눕혀놓았던 애의 담요를 다시 챙겼다. 죽은 애의 옷자락을 여며주던 그는 애의 스웨터 호주머니 속에 무슨 종잇조각이 들어 있는 것을 보았다. 집어내었다. 차곡차곡 접은 초콜릿 빈 껍데기였다. 콱 가슴이 메었다. 목구멍은 답답한데 코가 싸했다. 쓸어보는 딸애의 싸늘한 이마에 자꾸 눈물이 굴렀다.
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어느 은행에 있는 동창생 생각이 났다. 언젠가 길에서 만났을 때 알아 두었던 은행 합숙소로 찾아갔다.
“꾸어준다기보다…….”
밀가루 한 근 값이었다. 애가 죽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사실 또 그는 당장 식구에게 물이라도 끓여 먹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디 있어야지. 그러니 이런 판국에 누가 꾸어줄 리도 만무하고.”
참 딱하다는 표정인 친구는 입맛을 쩝 하고 다시며 호주머니에서 낙타 담배를 꺼냈다.
“그때 담배를 권하던 친구의 팔목에 금시계가 유난히 번쩍 눈에 띄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자기 자신이 무서워집니다.”
“이제 그만 괜찮지. 크게 숨을 한번 들이켜고. 자, 시작.”
아들은 얼른 자세를 취했다. 왼주먹은 얼굴 앞에, 오른주먹은 까부려 오른쪽 어깨 앞에, 두 무릎은 약간 까부려 탄력을 준비하고.
“언제나 똑바로 앞을 봐. 입은 꼭 다물고.”
아버지도 자세를 잡았다.
“자, 그럼 이제부터 본격적이다!”
“응―.”
아들은 머리를 까딱하며 웃음을 띠다 말고 다시 입을 한일자로 악물었다.
둘이는 서로 노리며 빙글빙글 마당을 돌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아들의 조그마한 주먹이 아버지의 틈을 질렀다. 그러나 이번엔 아버지도 일부러 맞아주지는 않았다. 번번이 아들의 주먹을 옆으로 쳐 갈겼다. 아들은 점점 눈을 똑바로 뜨고 아버지의 눈을 쏘았다.
그 딸애가 죽은 다음 날 저녁이었다고 했다. 그는 부두에서 같이 일하던 노인 박씨를 따라 어느 대폿집으로 갔다.
“생각해보슈. 그래 잘난 놈이 어디 있소. 돈이 젤이지.”
“……”
“아 그 존 공불 가지고 부두 노동을 하다니 원 내 참.”
“……”
“더두 말고 한 달만 합시다. 자본은 내가 댈 테니. 집 한 챈 문제없다니 까.”
“……”
덤덤히 앉아 막걸리 보시기만 들여다보고 있는 그를 답답하게 쳐다보며 박씨는 자꾸 다졌다.
북지에 오래 가 있었다는 박씨는 그와 함께 장사를 해보자는 것이었다.
꼭 그의 영어가 필요하다는 그 장사란 흑인 상대의 아편 밀매였다.
“가부간에 말을 좀 해보슈 거.”
대폿집을 나와 갈림길에서 박씨는 또 한 번 마지막으로 따져 묻는 것이었다.
멍하니 선 채 거기 길가에 담배장수 목판을 바라보고 있던 그는,
“좋습니다!”
하고 칵 무엇을 토하듯이 대답했다. 눈은 여전히 담배장수 목판을 굽어보는 채였다. 목판 위에는 양담배를 타일 모양 깔아놓은 앞으로 꼭 실패 같은 초콜릿이 쪽 꽂혀 있었다.
“그렇지 않아 그럼. 하하하하. 잘난 놈이 어디 있어. 돈이 잘났지.”
박씨는 그의 어깨를 툭툭 치며 웃었다.
박씨의 말은 사실이었다.
한 달이 채 못 되어 그는 어느 이층 방을 얻어 들 수 있었다.
“대학을 나오고 교사질 10년을 한 것보다 그 한 달에 번 것이 훨씬 더 많았습니다. 네, 분명히.”
그러던 어느 눈 내리는 날이었다.
그는 감기가 들어 누워 있었다. 박씨는 하루 같이 쉬자는 그의 말을 물리치고 혼자 장사를 나갔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날 박씨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음 날도 안 돌아왔다. 그리고 나흘째 되던 날 신문에, 박씨는 동래(東萊) 흑인 부대 뒷산에서 총에 맞아 죽어 있었다.
“그날로 제 돈은 약 삼 배가 되었지요. 내 방에서 기식을 하던 박씨의 미제 자물쇠가 두 개나 달린 궤짝은 열쇠 대신 망치로 쉽사리 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꼭 반씩 나눈 돈인데 어찌 된 셈인지 박씨 궤짝에는 제 돈의 거의 배나 되는 돈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아편 장사를 그만두었다. 아니 더 계속하고 싶었다고 해도 할 수가 없었다. 파는 것만은 같이 했지만 물건을 사들이는 것은 기어이 박씨 혼자만이 아는 길이었으니까.
그는 우선 혼자 서울로 올라왔다. 아직 정식으로 환도가 허락되지 않은 때였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 벌써 그런 것쯤은 문제가 아니었다.
“학교 동료들은 지금 이 집을 거저 얻은 거라고 합니다. 환도하기 전에 먼저 올라와 샀으니까 아주 헐값에, 현 시가 천만 환짜리를 단돈 수십만 환에 살 수 있었다는 거지요. 다시 말하면 환도령이 내리기 전에 숨어 올라와 샀으니 반불법 소유란 거지요. 재미있습니다. 남으로 도강(渡江)해서 생명을 불법 소유한 사람. 북으로 도강해서 집을 불법 소유한 사람, 사기. 도박.”
한참 동안이나 둘이는 상대방의 눈을 끌고 빙 빙 돌았다. 주먹은 공연히 흔들흔들했다.
“음.”
무슨 틈을 보았던지 아들이 오른쪽 주먹을 내질렀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의 주먹이 몸에 와 닿기 전에 옆으로 갈겼다. 그 힘에 휙 한옆우로 도는 듯하던 아들의 왼쪽 주먹이 아버지의 배를 향해 또 내질러졌다. 아버지는 또 그 주먹을 탁 밖으로 쳤다. 아들은 재빨리 또 오른쪽 주먹을 내질렀다. 아버지는 다시 또 그 주먹을 쳤다. 그러자 아들은 쓰러지듯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았다. 두 주먹을 얼굴로 가져 갔다.
“일어서!”
아버지는 이마에 흩어져내린 머리카락을 오른팔뚝으로 밀어 올리며 소리를 질렀다.
아들은 엉거주춤 일어섰다. 그러나 아버지와 다시 마주 서는 것이 아니라 허리를 꾸부린 채 저쪽 울타리 밑으로 달려갔다. 눈 위에서 목을 빼고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새빨간 피가 뚝뚝 흰 눈 위로 떨어졌다. 코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버지가 친 아들의 주먹이 어쩌다 아들 자신의 콧잔둥을 때린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뒤로 걸어갔다. 물끄러미 아들의 등을 굽어보고 있다.
“자, 그만 일어서.”
뒷머리라도 쳐주려는가 했던 아버지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바로 그때였다. 주인아주머니가 뒷마당으로 돌아나왔다. 장을 뜨러 나오는 것인지 손에는 사발을 들었다.
“왜 그러우?”
저만치 꾸부리고 서 있는 아들을 보자 그녀는 멈칫 섰다.
“……”
아버지는 한번 힐끔 아내를 돌아보았을 뿐 다시 아들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저런!”
주인아주머니는 놀라 아들에게로 달려갔다.
“가만 둬!”
아버지는 아내 앞에 팔을 벌려 막았다.
“아니 저렇게 피를 쏟는데 원.”
“건드리지 말어 !”
“아니 원 정신이 있소 없소. 옛날부터 맞은 놈은 다릴 펴고 자도 때린 놈은 오그리고 잔다는 말이 있는데, 하필 왜 때리는 연습을 시키며 애를 저 꼴을 만드는 거요 글쎄.”
“맞은 놈이 다리를 펴? 못난 소리. 그래 아주 펴고 뻗는 거야.”
아내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자기 옆에 교통순경 모양 올리고 있는 남편의 팔을 밀었다.
“건드리지 말어!”
얼굴은 여전히 아들에게로 향한 채 아버지는 또 한 번 크게 소리를 질렀다.
“애 죽겠어요.”
“지금 건드리면 애는 죽는 거야. 죽어버린단 말이야!”
아내를 쏘아보는 그의 눈은 무서웠다.
“……?”
“일어서. 코피쯤이 뭐야. 자, 어서 돌아서 쳐 와. 한 돌아서면 또 칠 게다. 자, 기운 차려…… 어서 일어서 쳐 와. 막 쳐 와!”
아버지는 아들의 등 뒤에서 발을 탕탕 굴렀다.
아들은 허리를 폈다. 한번 고개를 뒤로 젖혀 하늘을 쳐다보았다. 다시 고개를 숙였다. 또 붉은 피가 흰 눈 위에 주르르 쏟아졌다.
“정말 안 돌아서니!”
또 한 번 아버지가 큰 소리를 질렀다. 아들은 장갑을 낀 채인 오른쪽 주먹으로 코를 닦았다. 그리고 돌아섰다. 코밑은 피로 범벅이 되었다. 까만 두 눈에는 눈물이 글썽 괴었다.
“옳지 !”
아들은 아버지 뒤에 서 있는 어머니를 한번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오른팔로 아내를 옆으로 밀어 세우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아들은 이번엔 왼쪽 가죽 주먹으로 코피를 닦았다. 한 걸음 다가섰다.
“자.”
“에잇.”
아버지가 미처 자세를 취하기도 전에 아들은 성난 표범처럼 달려들었다. 팡 팡 팡. 아버지의 가슴을 연달아 올려쳤다.
“옳지.”
아버지는 두 주먹으로 아들의 가슴을 콱 떠다밀었다. 둘이는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는 데를 중심으로 하고 빙그르르 돌아 위치가 바뀌었다. 이번에는, 심판관이기나 한 것처럼 긴장한 얼굴로 빈 사발을 움켜쥐고 서 있는 주인아주머니 앞에 아들이 등을 이쪽으로 하고 돌아섰고, 아버지가 저쪽에서 이리로 마주 섰다. 아버지는 두 팔을 W자로 올리고 가슴을 벌려 아들에게 내맡겼다. 아버지의 흰 셔츠 가슴에는 아들의 주먹에서 묻은 핏자국이 주먹만치 크게 퍽퍽퍽 세 개나 벌겋게 인 찍혀 있었다.
“자, 쳐. 세게. ‘몸 전체로’ 막 부딪쳐 와!”
아들은 오른쪽 주먹을 어깨로 거둬들이며 다리에 탄력을 준비했다. 획. 아버지의 피 묻은 가슴을 향해 폭탄처럼 부딪쳐 갔다. 고무공처럼 튀어났다.
“옳지! 또 한 번.”
아버지는 크게 소리 질렀다. 아들은 또 오른쪽 주먹을 뒤로 당기며 다리를 약간 꺼부렸다. 또 획 부딪쳐 갔다. 아버지는 얼른 아들의 어깨를 두 팔로 끌어안았다.
“그만!”
그는 입가에 만족한 웃음을 띠었다.
나는 반년 만에 처음 본 그의 소리 없는 웃음과 함께 또 분명의 두 눈에 서린 눈물을 보았다.
-끝-
2016년 6월 10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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