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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 | 전라남도 여수시 남면에 딸린 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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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도 | 북위 34°30′ |
▷ 경도 | 동경 127°46′ |
▷ 면적 | 26.999km2 |
▷해안선 길이 | 64.5km , |
▷ 인구 | 831가구 1,648명 |
섬의 생김새가 큰 자라와 같이 생겼다 하여 자라 오(鰲) 자를 써 ‘금오도(金鰲島)’라 하였다.
또한 숲이 우거져 섬이 검게 보인다고 하여 ‘거무섬’이라고도 한다.
기암괴석들이 섬 주위에 흩어져 있고, 그 모습들이 천태만상으로 다양해 신선들이 노니는 곳
이라 불린다.
옹기종기 섬들이 무리 지은 다도해 가운데 형님뻘쯤 되는 어깨 널따란 섬이 있다. 여수에서 뱃길로 한 시간 남짓, 그러나 서울에서는 꼬박 하루를 투자해야 닿을 수 있는 먼 곳. 그 모양새가 자라와 비슷하다 해서 ‘금오도(金鰲島)’라 불린다. 돌산도에서는 빤히 건너다보이는 가까운 거리지만, 바람이 거세어지고 물결이 헝클어지면 머물던 길손은 물론 주민들까지도 발이 묶이고 마는 섬이다.
돌산도 아래로 쭉 뻗어 있는 여러 섬들을 ‘금오열도’라 일컫는다. 행정 구역으로는 여수시 남면으로 금오도와 화태도·대두라도·나발도·안도·연도 등이 여기에 속한다. 여수에서 서남쪽으로 약 25km 떨어져 있다. 북으로는 돌산읍과 남면에 인접하고, 동으로는 경상남도 남해군과 서로는 고흥군과 인접하고 있으며, 남으로는 망망대해의 태평양과 맞닿아 있다.
금오도(金鼇島)란 명칭은 ‘황금 거북(자라)의 섬’이라는 뜻이란다. 또 숲이 우거져 섬이 검게 보인다고 하여 ‘거무섬’이라고도 한단다. 금오도란 한자의 뜻을 풀이한 이야기로 보인다. 1861년 만들어졌다는 『대동여지도』에는 금오도가 거마도(巨磨島)로 표기되었는데 이 또한 ‘거무섬’을 음차한 이름임을 알 수 있다.
금오도는 여수에서 돌산도 다음으로 큰 섬으로, 주변 섬에 비해 넓은 면적과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소유하고 있지만, 사람이 들어와 산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다. 지금으로부터 120년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말이다. 봉산(封山)이란 나라에서 나무 벌채를 금한 산을 말하는데, 황장봉산이었던 금오도는 사슴 목장으로 이용되었고, 산에 무성한 아름드리나무는 육지로 실려 나가 목재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조선 말엽 대원군(1865, 고종 2년)이 경복궁을 중건할 당시에는 금오도의 나무를 베어 가 궁궐의 건축재로 이용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1884년 고종 21년 태풍으로 금오도의 소나무들이 쓰러져 버리자 봉산이 해제되었다. 이후 1885년 일반인의 개간을 허가하자 당시 관의 포수였던 박씨가 아들 삼형제를 데리고 섬에 들어와 두포(초포)에 정착하였고 이어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살게 되었다. 금오도에 처음 사람이 살게 된 후 100년이 되던 지난 1985년에 이를 기념하는 ‘금오도 개척 100주년 기념비’도 처음 사람이 살았다는 이유로 두포 마을에 세워져 있다.
과거나 지금이나 금오도의 가치는 알아주는가 보다. 금오도는 선녀가 내려와 놀던, 하늘에서도 그 아름다움을 인정했던 환상의 섬으로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그래서 주민들은 집을 짓는 데에도 까다로운 허가 절차를 밟아야 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섬의 지형은 북쪽에 최고봉인 매봉산(대부산, 382m)이 있고, 남쪽에 망산(344m), 동쪽의 옥녀봉(261m), 서쪽에 신랑봉 등이 있다. 망산 정상에는 경주의 첨성대를 연상시키는 봉화대가 있다. 최근에 복원된 것으로, 이곳에서는 태평양으로 이어지는 남쪽 망망대해의 경관이 시원스럽게 펼쳐진 장관을 볼 수 있다. 또한 신랑봉과 옥녀봉에는 인간과 선녀의 애절한 사랑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하늘나라의 선녀가 금오도에 놀러왔다가 인간을 사랑하게 되어 이곳에 숨어 살았다는데, 그것을 안 옥황상제가 알고 분노하여 그들을 신랑봉과 옥녀봉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해안은 대부분이 암석 해안이며, 소규모의 갑과 만이 발달해 해안선의 드나듦이 심한 편이다. 기암괴석들이 섬 주위에 흩어져 있고, 특히 남서쪽 일대의 해안 경관이 아름답다.
면적 870만 평의 금오도. 1970년대만 해도 2만여 명의 주민들이 반농반어로 생계를 유지하였으나 마땅한 소득이 없어 1990년대 들어 인구가 감소하여 2010년 현재 1천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금오도는 물 사정이 좋지 않아 우물을 파면 짠 바닷물이 나왔다. 그래서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섬 내륙에 상수도 수원지를 건설했다.
주민들은 농업과 어업을 겸하고 있으며, 전복·해삼·톳·멸치 등 자연산 수산물이 많이 난다. 특히 우리나라 최대의 감성돔 산란지이기도 하다. 유적으로는 고인돌과 조개더미가 있으며, 설화와 전설, 민요와 민속놀이 등이 다양하게 전해 오고 있다.
섬에는 노랑때까치, 제주휘파람새 등 조류 35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그 수가 2,000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금오도의 면소재지인 우학리 선착장에 내리면 이국적인 풍경을 볼 수 있다. U자형으로 움푹 들어간 천혜의 양항인 우학리는 마을로 안성맞춤이다. 좌측에 있는 여남초·중·고등학교를 지나자 몇 그루의 해송이 우리를 반긴다. 둥치가 수직으로 뻗어 올라 어른 키로 두 길쯤 위에 줄기가 용트림하듯 뻗어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나뭇잎은 굵고 검푸르게 보이는데 척박한 땅에 살아남기 위해 수분을 축적해 놓은 탓이리라.
우학리에는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우학리 교회가 있다. 이 교회는 이 지역 유지들의 힘으로 설립되었다. 또한 한국 최초로 목사 안수를 받은 이기풍 목사가 10년간의 제주 선교를 마치고 전라도 여수 일대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선교를 하다가 마지막으로 우학리 교회의 5대 교역자로 부임하여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일제에 의해 투옥되고 고문당해 여생을 마감한 곳이기도 하다. 그의 선교의 노력으로 금오도에는 12개의 교회가 있다고 하니 놀라울 뿐이다.
금오도에는 14개의 행정리와 33개의 마을이 있다. 그중 우학리와 함께 요즈음 주목받고 있는 마을은 심장리 장지 마을과 유송리 여천 마을이다.
우리나라에서 스물한 번째 큰 섬에 속하며 우학·심장·송고·함구미·유송 선착장이 있는 금오도는 교통이 매우 좋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섬에 있어 교통은 큰 애로 사항이다. 교육 또한 마찬가지이다. 당장 먹고 살기도 빠듯한 판에 아이들 교육을 위해 투자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과외를 하지 않으면 학교 수업도 따라가기 힘들다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 형편이 나은 사람들은 일찌감치 정든 터전을 등지고 말았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 섬에 남아 있는 주민들도 어쩔 수 없이 중학교나 고등학교 시절부터 육지로 학교를 보낼 수밖에 없다. 이로 인해 여수 도심권에는 학교가 계속 신설되는 추세이지만 섬 지역은 인구 감소 등으로 인해 남면에서만 4개교가 폐교됐다. 학생들은 점점 더 멀리 떨어진 학교로 다녀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수시는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유치를 대비하여 다도해해상 관광 개발에 따른 관광 산업 발전과 관광 소득 증대, 섬 지역 개발 잠재력의 극대화, 교통 여건 개선 등을 위해 2012년 완공을 목표로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19개의 ‘다리 박물관’ 사업이 완료되었거나 진행 중에 있다. 이런 가운데 금오도는 달콤한 연륙교의 유혹을 마다하고 섬으로 남는 쪽을 선택했다. 그 대신 남쪽의 안도와 연도가 되었다. 이 같은 선택은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육지와 연결해야 한다는 게 금오도 주민 대다수의 의견이었으나, 예산상의 어려움과 쓰레기만 남고 인심까지 사나워지는 타지의 예를 참조해 섬으로 남는 게 효과적이라고 판단, 위아래 섬을 잇는 연도교 건설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덕분에 마을 전체가 남쪽을 바라보는 금오도 장지 마을에 2010년 봄 연장 360m의 복합엑스트라도즈교 형식의 안도 대교가 완공되어 마을의 명물이 되었다.
우학리에서 4km 떨어진 장지 마을을 떠나 하루 여섯 차례 돌산의 신기항과 정기선이 오가는 북쪽 여천 마을로 향한다.
여천 마을에 가는 도로는 섬치고는 제대로 된 2차선 해안 도로이다. 이 길이 863번 도로인 ‘유송로’이다. 오른쪽은 산이고 왼쪽은 금오열도를 바라보는 일주 도로로 이 드라이브 코스는 금오도 여행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이 유송리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유송’이란 유포(대유 마을과 소유 마을)와 송고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유송리에는 소유·대유·여천·송고·함구미 마을이 있는데 이름마다 마을의 특징들이 잘 담겨 있다. 도로 양쪽에는 승용차들이 주차되어 있고 마을버스 정류소도 있다. 우학리에서 고개를 넘어 함구미까지 가는 12km 정도의 이 도로는 함구미가 종점이다. 원래 이 도로는 더 이어지도록 계획되어 있었으나 중단된 것은 환경단체의 반대 때문이다.
이 길을 걷다 보면 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가까이에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여러 섬들이 보인다. 오른쪽은 바다, 왼쪽은 산. 부드러운 곡선을 그린 해안길이 멋지다. 산에 기대고 바다를 마당삼아 그 앞에 떠 있는 작은 섬들과 두라도, 월호도, 화태도, 돌산도 같은 섬들이 다도해를 이루며 바다와 어울린다. 이런 수려한 풍경이 모아져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이 되었다.
유송리의 유포(柳浦) 마을은 ‘큰 버들개’ 대유(大柳) 마을과 ‘작은 버들개’ 소유(小柳) 마을로 나뉜다. 유포 마을의 본래 이름은 ‘버들개’로 불리던 지역이다. 땅 이름에서 흔히 보이는 버들개란 이름은 버드나무가 많아서 지어진 이름으로 알려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길고 곧게 뻗어 있는 지형인 ‘버든개’란 옛말이 버들개로 변한 경우이다. 이렇게 변한 말 버들개는 한자로 표기하면서 버드나무 유(류) 자의 훈을 빌려 유포로 불리며 버들 유로 표기되는 대부분의 땅 이름은 이렇게 평평하고 곧게 뻗은 지형에서 유래됨을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송로를 따라 소유 마을을 지날 때 오른쪽으로 금오도에서 약간 떨어진 작은 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멀리서 보니 밭도 일구어져 있고 빨래가 널려 있는 등 삶의 흔적이 엿보이는 집 두 채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바로 단 두 가구가 산다는 금오도에 딸린 수항도다. 바닷물이 빠지면 목이 드러난다는 뜻의 ‘물목섬’이 한자 이름으로 옷을 갈아입은 것이다.
소유 마을과 대유 마을을 지나 여천 마을로 들어선다. 여천 마을은 뒤편으로 매봉산의 줄기를 타고 대목산이 자리 잡고 있는데, 그 산이 뻗어 내리면서 만든 봉우리 두 개가 여성의 젖가슴처럼 생겼으며 그 산줄기를 따라 흐르는 계곡물이 맑고 깨끗해 ‘여천(女泉)’으로 불리다가 ‘여천(汝泉)’이라 하였다는 유래가 전해 온다. 또한 여천 마을 동쪽 해안 구릉지에선 신석기 시대 이후로 사람이 살았던 증거들을 보여 주는 돌도끼 등이 출토된 조개더미가 발견되어 금오도의 오랜 역사를 짐작케 한다.
마을은 경사진 형태이다. 유송로 아래부터 해안까지 좁은 마을이 형성되어, 계단식이라고 해야 좋을 것 같다. 마을 골목길로 들어서면 보이는 이끼 낀 돌담이 정겹다. 그 사이로 핀 붉은 동백꽃이 한 폭의 그림처럼 어울린다.
여천리사무소는 골목길에 들어서 있다. 근래까지도 사람이 살았을 마을 터에는 아직도 높은 돌담과 허물지 않은 집들이 눈에 띈다. 나무에 가려 보일 듯 말 듯한 교회가 있는 곳 근처에는 당집이 있다. 이곳 당집 옥상에 올라가 보면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그 옆으로 골목길이 있는데 또 다른 여천 마을 입구 도로인 ‘여천금이길’이다. 계속 나아가면 집이 몇 채 보인다.
여기서 왼쪽으로 난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선착장이 나타난다. 오른쪽은 포구. 포구가 있는 곳은 뭉툭하게 튀어나온 돌출부인데 선착장에 비해 그다지 크지 않은 편이다. 이곳 선착장은 주차장이 크게 조성되어 있다. 돌산도와 금오도를 잇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마을 표지석도 새롭고 관광 안내도와 함께 대합실도 크다. 공용 수도도 있다. 포구 뒤쪽으로도 마을이 형성되어 있지만 집은 별로 없는 편이다.
여천 마을에서 나와 다시 도로에 오른다. 이 도로에서 바라본 여천 마을은 바닷가 쪽으로 툭 튀어나와 있다. 그리고 주변이 온통 밭이다. 조금 더 걸어가면 왼쪽으로 여천 마을로 이어지는 시멘트 길이 나타나고 바다 건너 한가운데에 자리한 섬이 보이는데 바로 ‘소횡간도’이다.
여기서 해안 도로를 따라 작게 늘어선 섬들을 지나면 송고 마을이 나타난다. 지금은 폐교된 유송분교장이 보이고 조금 더 걸어가면 송고 버스 정류소가 있고 그 옆 내리막길로 가면 송고 마을로 들어선다. 좁은 골목길로 해서 내려가면 중간 지점에 송고 교회가 반긴다. 이어 나타나는 포구는 송고 선착장. 양쪽에 방파제가 사각형으로 되어 있다. 물양장 앞쪽에 조그마한 새끼 선양장이 있고 송고리사무소와 어촌계 등의 공공 기관이 들어서 있다. 2층짜리 건물에는 이 외에도 경로당과 선박 입출항 신고소도 입주해 있다. 그리고 그 왼쪽으로 톡 튀어나온 건물은 청년회관.
포구 왼쪽에 언덕이 있는데 소나무가 제법 큰 것들이 있고 길도 있다. 산책로로 소나무숲길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방파제가 있다. 이 부분이 바다로 톡 튀어나온 곳으로 지명과 연관이 있는 듯싶다. 송고(松高) 마을은 ‘솔고지’라 부르던 마을로, 가늘고 길게 바다로 머리를 내밀은 곶(솔진 곶)이란 뜻이지만 소나무가 우거진 곳으로 이해되기 쉬운 지명이다. 산에서 바라보는 마을 지형을 바라보면 솔고지의 지형을 쉬이 살펴볼 수 있다.
송고 마을에서 걸어서 20분쯤 지나면 함구미(한구미) 마을이 나타난다. 함구미 마을은 마을 앞 해변이 크게 만(灣)을 이루고 있어 ‘한구미’라고 부르던 지명으로 한자로 바꿔 적으면서 ‘함구미(含九味)’가 되었다.
금오도 서북쪽의 작은 함구미 마을을 알리는 마을 표지석이 눈이 띈다. 함구미 표지석 왼쪽에는 ‘범죄 없는 마을’ 표지석이, 바로 왼쪽에는 여수시 남면 관광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이곳은 함구미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전망 좋은 지점이기도 하다. 뒤로 대부산 능선이 이어지고 그 아래 포장도로가 보인다. 도로 아래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그다지 큰 편은 아니다.
여기서 조금 더 걸어가면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왼쪽으로는 경사진 차도가 있고 오른쪽에 산으로 오르는 포장길이 있다. 이 길이 바로 함구미에서 시작되는 매봉산 산행 들머리다. 등산로 안내 표시와 등산 안내도 그리고 나무에는 수많은 리본이 걸려 있어 산행 기점임을 쉽게 알 수 있다.
함구미 아랫길로 해서 들어가면 입구에는 ‘함구미 마을’이라는 마을 표지석 뒤에 쉼터가 있다. 아랫길 역시 경사진 길이다. 크고 작은 돌담이 정겨운 전형적인 지그재그형 시골길을 올라가면 슈퍼도 보인다. 마을 위쪽으로 보이는 큰 건물은 바로 분교이다. 그러나 지금은 폐교된 채로 방치되고 있다. 마을을 지나면서 보면 도로 오른쪽에는 동네가 형성되지 않고 집이 외로이 한 집, 두 집 떨어져 있다. 물론 빈집들이다. 산자락에 을씨년스럽게 흉가처럼 남아 있는 빈집들, 저기에 살던 사람들은 고향을 등지고 어디로 떠나야만 했을까.
포구 끝에 대기실이 있는데 오래된 건물이다. 방파제 외항에는 삼발이가 심어져 있다. 제법 덩치가 큰 비자나무도 보이고, 동백나무도 점점 많아진다. 그리고는 울창한 상록활엽수길이 이어진다. 포구는 바다 건너 개도와 가깝다. 갯바람을 막으려고 쌓아 놓은 산비탈 마을의 2m가 넘는 돌담이 이색적이다. 평지가 거의 없는 섬이라 산비탈을 개간하여 밭으로 이용하는 모습에서는 옹골찬 섬사람들의 삶의 양식이 스며 나온다.
포구의 선착장에서 나오면 바로 대합실이 자리하고 있고, 물양장은 그다지 넓지 않은데 중간에 함구미 노인 회관이 있다. 포구에 서서 마을을 바라보면 마을 뒤편에 통신 탑이 보인다. 그 통신 탑 앞의 자그마한 안부에서 남쪽 해안선을 따라 연결된 소로가 있다. 이 소로가 용머리길인데 절터로 이어진다. 예전에 보조국사가 지었다는 송광사가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실제로 절이 있었을 것이라 믿고 있다.
함구미에서 용머리길로, 신선대를 지나면 두모리이다. 두모리에는 직포(織浦, 보대) 해송림이 있는데, 전해 오는 이야기로는 옥녀봉에서 선녀들이 달밤에 베를 짜다가 무더위를 식히기 위하여 바닷가로 내려와서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목욕을 하다가 승천하지 못하고 소나무로 변하였다고 한다.
두모리 직포 마을 앞에는 모래사장이 좋은 해수욕장이 있다. 높은 봉우리들이 솟구쳐 있는 섬의 내륙은 전혀 섬 같은 분위기가 아니다. 오히려 강원도 산악 지대를 연상하게 한다. 100여 년 전만 해도 호랑이가 살면서 사람들을 해쳐서 정월이면 호환을 막기 위해서 당제를 올렸을 정도로 산세가 험하다. 평지가 거의 없는 섬이라 산비탈을 개간하여 밭으로 이용하고 있다. 또 갯바람을 막으려고 쌓아 놓은 산비탈 마을의 2m가 넘는 돌담도 이색적이다.
비교적 큰 섬인데다 볼거리가 많아 인상적인 섬 금오도를 떠나며, 육지와 연결되는 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닐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 여수풍경사진
안내도 보시면 다 구경하고싶지요 다리가 건강하시면 비렁길 다 구경할수 있습니다
주변에 피어있는 꽃과 바다가 어우러져 멋있습니다.
여수의야경 입니다 너무나 멋있습니다
돌산대교의 야경 입니다. 낭만적인야경을 마음것 즐겨보시지요
비렁길입니다. 운치있는길 걸어보시면서 마음의 여유를 가져 보시지요.
◈ 17. 4월 정기산행 일정 ◈
일자 : 2017년4월 24일(월요일)
장소 : 전남 여수 금오도 /돌산,보리암
출발시간:
수원 종로 행궁앞 06:00분→매교역06시05분→시청 06시10→ K/T 06시20분→홈플러스06시25 → 영통입구 06시30→신갈톨게이트 06시 35분
주의사항:
"수원산오름산악회"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산악회가 아니므로 산행도중 일어날 수 있는 사고에 대해서는 본 산악회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으며 본인의 책임임을 밝혀두고자 합니다.
참고로 정기산행 전에 총무 또는 회장님께 미리 연락주시면 1일 여행자 보험을 가입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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