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브로브니크5 - 두브로브니크의 예쁜 거리를 걸어 고색창연한 도시풍경을 즐기다!
5월 28일 크로아티아의 진주 두브로브니크 의 명물이라 불리는 성벽 걷기 를 마치고 성벽 중에
구항구 스베티 이반 요새 부근의 브라타 오드 플로차 에서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옵니다.
육중하고 견고한 성벽 바깥은 부두로 구항구 인데 보트며 요트와
범선 들이 정박해 있어....... 보는 것만으로 눈이 즐겁습니다!
구항구 를 구경하고는 브라타 오드 플로차 Vrata od Ploca 문에서 다시 성벽
위로 올라가서는 미처 걷지 못한 동쪽 플로체문(동문) 으로 걸으며 보니....
이 도시 두브로브니크의 붉은 지붕 은 푸른 하늘 과 에메랄드 빛
바다 와 대비되어...... 그 조화 가 참으로 환상적이네요?
거진 한바퀴를 돌아 처음 출발한 곳인 필레문(서문) 에 이르러 성가퀴 사이로
성벽 밖을 보노라니.... 바다가 들어온 작은 만에 요새가 위풍당당 합니다!
아름다운 바다 경치와 붉은 지붕의 조화 를 바라보다가 이윽고 성벽을 내려
와서는 중앙대로 플라차 스트라둔 Placa ~ Stradun 거리로 내려섭니다.
여기 두브로브니크성의 서문인 필레문 근처의 오노프리오 분수 Velika Onofrijeve
Fontana 는 1448 년에 20km 떨어진 스러지 산에서 수로 설치 에 성공한 후에....
나폴리인 오노프리오 가 제작한 16면 분수대 인 데..... 수도꼭지는
꽃봉오리 가운데 동물과 사람 모양을 하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그러고는 그 앞쪽에 성 사비오르 성당 St. Saviour Church 을 보는 데,
1520년 지진 후에 생존자들이 감사의 마음 으로 건축하였다고 합니다.
당시에 성당을 얼마나 튼튼하게 지었는지 더 큰 지진인 1667년 대지진 에도
다른 건축물들과는 달리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해서 유명하다는데
그 바로 옆에는 프란체스코 수도원 Franjevacki Samostan 이 서 있습니다.
1667년 대지진 으로 화려한 장식들은 훼손 되었고 단지 수도원 입구 문위에 있는
피에타상 만이 1498년에 만들어진 예전의 모습 을 간직하고 있다고 합니다.
14세기에 무역으로 부 를 이루어 세계 최초로 검역 병원 을 설치하고 양로원 을 운영한.... 이 도시
라구사(두브로브니크) 의 수도원 내에는 1317년에 문을 열어 지금도 운영중인 약국 이 있습니다.
약방은 유럽에서 3번째로 오래된 약국 이라고 하는데, 그 외에도 수도원 내에는 중세 유럽 최고, 최대
의 걸작 무훈시 로 프랑스 봉건 제도의 이상 인 기사의 영웅적인 행위 를 예찬하기 위해 씌어진
서사시인 “롤랑의 노래” 의 주인공인 기사 롤랑의 동상 이 있다지만....... 문이 닫혀 보지는 못하네요?
여기 플라카 거리 Placa ~ Stradun 는 V 자 협곡 모양으로 남북
으로 계단식으로 높아지며 도시가 형성이 된 것은
남쪽은 원래 바닷물이 흐르던 습지를 매립 한 때문이라고 합니다.
맞은편에 오를란도브 게양대 Orlandov Stup 는 프랑스 서사시 에 나오는 이교도 이슬람군대 를 몰아낸
카를 대제의 조카 롤랑의 동상 이 명검 뒤랑달을 들고 서 있네요? 하지만 실제로는 이슬람이 아니라?
기독교 팜프로나성이 문을 닫자 노한 카롤루스가 성을 공격해 함락시키고 약탈을 한후 철수 하자
격분한 기독교 바스크족 이 론세스바예스 고개에서 후미인 롤랑의 군대를 습격해 전멸 시킨 것입니다?
작은 오노프리예바 샘과 시계탑을 지나 스폰자궁전 Sponza Palace 을 보는데 1516년 에
무역상인들로 부터 세금 을 걷기위해 르네상스와 고딕양식으로 지은 세관 입니다.
한때는 조폐국과 무기고 로 사용되다가 16세기에는 예술과 문화센터 로 이용되었으며
지금 은 고문서 보관고 로 1층에는 유고내전 위로 기념관 도 있다지만 문이 닫혔네요?
여기 라코스떼 매장으로 해서 골목길로 북문 Buza Gate 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80쿠나 짜리 케이블카 로 5분이면 스러지 산 Srd 산에 오를수 있습니다.
산에 오르면 구시가의 성벽 서쪽편으로 보이는 것이 노브리예나체
요새 이고 구시가지와 항구, 바다 풍경 이 멋지다고 하네요?
산에 흰색의 십자가 는 1808년에 나폴레옹 이 이 도시 두브로브니크를 정복 한후
신앙심 으로 시민들의 마음을 얻고자 세웠다지만 시간이 없어 상상만 합니다.
그러고보니 나폴레옹이 신성로마 제국을 멸망 시키는등 큰 나라도 많이 정복했지만...
베네치아 에 이어 점령한 소국도 몰타 에 이어 여기 두브로브니크 라!!!
그러고는 발길을 돌려 찾은 성 블라시오 성당 St. Blaise's Church 은........
아르메니아 출신으로 베네치아군 침입 을 경고 하여 이에
대비를 하게되어 두브로브니크의 수호성인 이 된 브라이세 를 모시다고 합니다.
1667년 지진 으로 파괴된후 바로크 양식으로 복구했으며 시가지 모형 을 들고
있는 조각상은 대지진에서도 살아 남았다고 해서 유명하다고 하네요?
그 옆에 시계탑 Clock Tower 이 있는 렉터 궁전 Recter's Palace 은
지진을 견딘 고딕식 건물 로 1개월 짜리 통령 은
“사적인 일은 잊고 공무에 충실하자” 표어를 붙이고 집무했답니다?
이 도시 라구사 는 왕 을 세우지 않고 귀족 + 시민 + 기술자 가 동방
무역 을 통해 부 를 이룩하여 14세기에 고전적 "복지국가" 를
이룩하고 베네치아와 경쟁했으나 대지진으로 쇠락 했던 것이지요!
대성당 Katedrala-riznica 은 7세기에 최초로 비잔틴 양식 으로 지은후
지진과 화재 로 12세기에는 로마네스크 양식 으로 그리고
대지진 후인 18세기에 바로크식 으로 새로 지은게 현재의 모습 입니다.
제3차 십자군 때인 1192년 9월 영국 사자왕 리차드 가 프랑스군을 피해 바다를 통해 영국
으로 귀국하다가 풍랑 을 만났으나..... 이 도시 두브로브니크 근처 섬에 무사히 상륙
하게 되자 감사의 표시로 여기에 대성당 을 지어주었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고 합니다.
십자군 이전에 영국과 프랑스는 전쟁 상태였는데 프랑스에 영국왕의 소유지 가 있었던 이유는 노르망디
공이 영국을 침입해 왕 이 되었고 후손인 헨리 1세는 아들이 없자 딸을 프랑스 앙주 공작에게 시집
보내 태어난 아들이 헨리 2세로 프랑스 왕비 엘레오노르 와 눈이 맞으니 프랑스왕과 이혼한 왕비는
총각 헨리 2세와 재혼하면서 프랑스 남부 와인산지 가스코뉴등을 결혼 지참금 으로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3차십자군 전쟁에서 휴전 을 하고 귀국하던 영국 리차드 왕 은 먼저 귀국한 프랑스왕의
군대를 피해서 우회하다가 또 풍랑으로 베네치아 인근 해변에 상륙해 변장 을
하고는 독일로 향하다가....... 정체가 탄로나 오스트리아공 레오폴드 에게 체포 됩니다.
리차드왕은 뒤른슈타인 성에 감금 되었다가 결국에는 오스트리아공의 상전인 독일왕
하인리히 6세 에게 넘겨지는데..... 이에 영국에서 왕위를 찬탈한 동생 존 과
결탁한 프랑스왕 필립 2세 가 리차드 왕의 신병을 넘겨주기를 독일에 요구 하나.......
신성로마제국(독일) 황제 하인리히 는 천문학적인 거금 15만 마르크 와 영국의 귀부를 요구 하니
영국에서는 존왕의 훼방 에도 불구하고 거국적인 모금을 하여 1194년에야 석방 됩니다.
어렵게 풀려난 리차드는 왕위를 되찾은후 프랑스에서 배신한 영주의 성을 공격하다가 전사 합니다.
이런 수모를 당한 연유를 보자면 이슬람의왕 살라딘 이 예루살렘성을 함락 하면서
충격으로 일어난 제3차 십자군에 참가한 3국 중에 리차드 영국왕 은
프랑스왕 필립 2세의 여동생인 아델과의 약혼을 일방적으로 파기 하기에 이릅니다?
어머니인 엘레오노르 (전 프랑스 왕비) 가 시칠리아섬 메시나까지 데려온 나바라의 베렝가리아
와 원정 도중에 키프로스섬에서 결혼식 을 올렸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 왕 선출 을 두고도
코라도 1세를 미는 프랑스왕 에 대해 부하 뤼지냥을 추천해 대립 하여 서로 원한을 키운 것이라!
전무후무한 대군으로 무려 10만 대군 을 거느린 독일왕(신성로마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는 터키를 지나다가 말이 발을 헛디뎌 강물에 빠져 죽고 독일 군대는 해산 되었으나
영주 오스트리아공 레오폴드 만은 계속 행군해서 마침내 팔레스타인에 도착 하게 됩니다.
영국군과 프랑스군에 오스트리아군과 현지에 남았던 십자군등이 힘을 합쳐 이스라엘
북쪽 아크레성(아코) 을 이슬람 군과의 전투에서 뺏은후...... 영국왕과
프랑스왕에 독일왕 깃발 옆에 오스트리아공 레오폴드의 깃발 이 성루 에 내걸립니다.
노한 영국왕 리차드 는 "왕도 아닌 주제에..." 라고 욕설을 하면서 오스트리아
레오폴드공의 깃발을 뽑아 던져버린 묵은 원한 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때 수모를 당하고 밤잠을 이루지 못했던 레오폴드공 영지에 영국왕 이 지나가다니?
성벽에 올라서 보면 두브로브니크의 모든 지붕은 주황색 인데 이 대성당만은 회색 으로....
주 제단에 르네상스 화가 티치아노 의 “성모 마리아의 승천” 이 그려져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는 예루살렘에서 죽었나, 아님 터키 에페소스? 혹은 프랑스 마르세유 인가요?
성당에는 수호성인 블라이세의 유품 과 라파엘의 마돈나 및 금은 세공품 이 있으며
그리고 롤랑의 기둥에 크로아티아 국기 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는.......
보스니아의 모스타르 로 가는 버스 를 타기 위해 두브로브니크 시외버스
정류장인 Autobusni Kolodvor 으로 가야 하니 그만 돌아섭니다.
두브로브니크는 2번을 보았는데..... 언제 3번째 찾을 날 이 있을른지......
첫댓글 두브로브니크의 명물인 성벽걷기를 하시고 내려오셔서 시내 구석구석을 둘러보시는군요.
두브로브니크의 붉은지붕과 푸른하늘,그리고 에메랄드 바다의 이 3개의 조화는
아름답지가 그지없군요.1317년에 문을 연 유럽에서 3번째로 오래된 약방을
못 보셔서 아쉬웟겟습니다.
곧 다시 두브로브니크를 여행가실것니다.
너무 서운해하시지마십시요.
붉은 지붕과 푸른 바다를 보고는....
오래된 도시의 골목길을 걷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