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니2로
귀빈들을1달간 모시다가
엑셀이 맨처음나왔다
군에선 검열이많다
국방부 ORI 공군본부등
그런 검열을 할때면 검열단들이
5명 이상 오시는데
해운대에 공군휴양소(일종의 여관)가있어서 거기서 자고 부대가서 검열을 하고 저녁엔
요정 집으로 식사를하고 기다리라고
만원씩 주곤했습니다
그당시 병장 월급이 4000원이었으니
많이 받은거죠
술은 부대있는거 가지고 가서 안주와
여자만 있으면되니까^^
육군 원스타가 포항해병대 가신다고
김해공항에 내리신다고하셔서
그 분을 모시고 포항에 내려드리고
혼자 돌아오려니 무료해서 차는 엑셀이고 번호판은 공1234 였으니
민간인들은 잘 모르는 것을알고
터미널에가서 부산가는 2명을 태워드리고 2만원을 받았다
검열단들을 해운대모셔다드리고
잠이오질않아 해운대 바닷가에서 쇠주한잔하고있자니 해병대친구대여섰명이 지나가길래
한잔하자고 하였더니 합석을 하면서
얘기를 나누다가 젤 선임과 친구의 친구였던것이다
우리는 마음이 맞아 송정으로가서 한잔더하고 곧바로 서면에 룸살롱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놀다보니 새벽이되어 계산을
하게되었지만 돈이 모자라 사정해서
깍아도 모자랐다
하는 수없이 해병친구가 누나가 가까운데 사는데 돈 좀빌려오겠다고해서 나와함께 밖으로 나왔다
로타리에서 진시장방향으로 겁없이
차를 몰았는데 1차선에 H빔이놓여
있는걸 발견하지 못하고
사고를 내고야말았다
그때가32개월째
해병은 30개월제대
아~~ 술이 확깬다
부대에 거짓으로 고하고 영창대기하면서 반성문100장을
써야했다
영창가기전 심사가 있었는데
다행히도 그동안의 노고
때문에 기합으로 끝을 내었다
그때가 87년추석 전이었으리라
짚차부터 트럭까지 차 밑을 기고
다시 연병장 완전군장을하고10바퀴돌고
퇴근까지 방공호를 만들기위한
곡괭이질을 해야만했다
그렇게 내무반 들어오면 만신창이가
되어 뻗고있으면 저~밑에있는 후임20명가까이가 걸리버여행처럼
달라붙어서 안마를 해주었다
사실 내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기를 일주일째 추석전날에
해제 되었다
내밑으로 출장 정비병 포함하면
거의 150명가까이된다
내무반에만 100명가까이되었으니말이다
그 사고로 현금20만원 가까이
물어줘야했다
지금은 보험이되지만서도
정확히 87년 12월 31일
전역신고를 하고 만 35개월 만기
전역을 하게 되었다
참으로
파란만장했던 군생활이 아니었나싶다
군인이라고 총은 훈련소에서만
쏴 봤으니......
사실 공군은 이동을 할 수
없다
활주로를 벗어 날 수가없기때문이다
그로부터
3개월뒤
동원훈련으로 또다시 그 부대를 들어 갔는데 앞에 있던 선임들이
다 있는것아니가
또 빗자루를 들어야했다.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졸필을 이해 해주십시요^^♡♡♡
첫댓글 역쉬 최고십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멋져요~~!!
감사합니다 ~꾸벅
군생활평생못잊을추억만들었군요 재미있게잘보고갑니다 좋은한주되세요
감사합니다 ~꾸벅
멋집니다
군 이야기는 언제나 즐겁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림보친구님 최고다
구보하고 사격하고흐, 아이 슬퍼 입니다.
진짜로 멋진 추억록. 영원히 잊지 못할 역사입니다.
저네겐 아련한 추억록 한 페이지 조차 없네요.
아마 그런 그림도 우리 세대엔 전혀 없었으니 약산 서글퍼 집니다.
전투력 측정 한답시고 머고 자고나면 또 뛰고 뛰고....으
음악동아 책이 그 때도 발행되고 있었군요.
멋진 추억 영원히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람보님
감사합니다~꾸벅
이젠 정겨운 추억으로 ...군 생활 잼 나게 하셨네요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