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합 왕의 궁내 대신인 오바댜는 엘리야의 요청으로 아합에게 가서 엘리야를 만났다고 전하였고, 아합은 곧바로 엘리야를 만나러 오바댜와 엘리야가 있는 곳으로 떠났습니다(16절). 그리고 아합은 엘리야에게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라고 말합니다. 아합은 엘리야가 저주하여 3년 6개월 동안이나 비가 내리지 않아 가뭄이 들었고,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게 했다는 말입니다. 비를 주관하는 신이라고 믿고 있는 바알을 섬기고 있으면서도 비가 내리지 않고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는 것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엘리야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참 재밌습니다. 그러자 엘리야는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장본인은 자기가 아니라, 아합과 아합의 아버지인 오므리가 하나님을 거역하고 바알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것 때문에 이스라엘에 이런 극심한 가뭄과 괴로움이 찾아온 것이라고 대꾸합니다(18절). 문제의 원인을 명확하게 짚어준 것입니다.
그러면서 엘리야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든 이스라엘 백성과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을 갈멜 산으로 모으라고 요청합니다(19절).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선지자들을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자들이라고 표현하면서, 아합과 이세벨이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고, 이스라엘 백성까지 오게 하여 누가 진짜 하나님인지 증인이 되도록 요청합니다. 그리고 아합은 엘리야의 요청대로 행합니다(20절). 갈멜 산은 “하나님의 포도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갈멜 산맥 중 지중해 쪽으로 돌출된 부분에 위치한 산입니다. 갈멜 산에 오르면 지중해가 하늘과 맞닿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산입니다.
이렇게 모인 자리에서 엘리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도대체 우상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21절)라며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서 누가 하나님이신지 선택하여 따르라고 촉구합니다. 그러나 백성은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엘리야는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22절)라고 말합니다. 물론 궁내 대신인 오바댜가 굴에 숨겨두고 보호한 선지자 100명이 있었지만(4절), 지금 갈멜 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는 이들과 맞서서 싸우는 자가 자기 혼자라는 외로운 사투(死鬪)를 벌이고 있음을 호소합니다. 그러나 백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 아마 이스라엘 백성은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팔백오십 명의 선지자들의 위용(威容)과 아합 왕과 이세벨의 서슬 퍼런 모습 앞에서 감히 나서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엘리야는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송아지 두 마리를 가져와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선지자들이 먼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게 하고, 남은 송아지를 엘리야가 가져 그 송자리를 각을 떠서 번제로 드리되, 불을 붙이지 않고 각자가 섬기는 신에게 부르짖어 불이 내리게 하여, 불을 내리는 신이 진짜 하나님인 것이라는 것은 인정하자는 제안입니다(23절, 24절). 그러자 백성은 그 말이 옳다고 동의합니다(24절). 그 말이 옳다고 말하는 것은 “그거 참 좋은 아이디어다”라는 말입니다. 눈앞에서 실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먼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송아지 한 마리를 선택하여 제사를 드리면서 그들의 신을 부르라고 합니다(25절).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먼저 하게 한 것은 바알이 그러한 능력을 보일 수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먼저 송아지도 선택하게 하여 두 송아지 중에 자기들이 보기에 더 좋은 송아지로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배려도 했지만, 아무리 애써도 살아있는 신이 아닌 바알이 응답할 수 없음을 엘리야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아세라의 선지자들은 언급없이 바알의 선지자들이라고만 기록한 것은 아세라 신을 섬기는 것은 넓은 의미로 바알을 섬기는 것에 포함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아무튼 그들은 송아지를 잡아 제단 위에 올려놓고 바알에게 부르짖어 기도하기 시작합니다(26절). 그러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기에 이젠 제단 주위를 돌며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제의적 의식이었을 것입니다. 아침부터 시작하여 낮까지(26절) 그들이 기도하였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27절을 보면 정오까지 이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략 5시간에서 6시간 동안 그들의 신에게 부르짖었지만, 아무런 응답이나 반응이 없자 엘리야는 그들을 비웃습니다. 너희들의 신이 도대체 어디 간 것이냐며 더 큰 소리로 부르짖으라고 비아냥거립니다(27절). 그러자 그들은 더 큰 소리로 부르짖으면서 칼과 창으로 자기들의 몸을 상하게 하면서 기도합니다(28절). 자기들의 몸을 상하게 하는 것도 그들의 제의적(祭儀的) 의식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28절에 “그들의 규례를 따라”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신명기 14:1에서 “자기 몸을 베지 말며”라고 말씀하셨지만, 이들은 우상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29절은 “그들이 미친 듯이 떠들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말 그대로 광란(狂亂)의 모습으로 저녁이 될 때까지 그들의 신들에게 부르짖었지만 아무 소리도 없고, 응답하는 자나 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었습니다(29절). 헛된 우상에게는 아무리 미친 듯이 부르짖어도 응답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살아있는 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알과 아세라는 아무런 능력이 없는 우상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엉뚱한 우상에게 부르짖으며 그 우상들이 그들에게 복과 평강과 행복을 줄 것이라고 착각하면서, 온 힘을 다해 우상을 숭배하고 있는 허탄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상은 허상(虛像)에 불과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우상은 바알이나 아세라와 같은 것이 아닐지라도 물질, 성공, 명예, 무엇인가의 소유, 건강, 자녀들이나 가족, 우리집 마련, 대학입학, 좋은 직장 등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뭔가 행복한 삶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미친 듯이 그것을 추구하며 매진(邁進)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애씀은 부질없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참된 행복을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머뭇거리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의 삶이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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