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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The Great Escape (영화 "대탈주" 1963) 02. The Longest Day (영화 "사상최대의 작전" 1962) 03. She Wore A Yellow Ribonne (영화 "황색 리본" 1949) 04. March From The River Kwai (영화 "콰이강의 다리" 1957) 05. My Darling Clementine (영화 "황야의 결투" 1946) 06. Do Re Mi Song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 1965) 07. You Are My Sunshine (당신은 나의 태양 1940) 08. When The Saints Go Marching In (성자들의 행진) 09. Happy Days Are Here Again (행복한 날들이여 다시오라) 10. Loch Lomond March (로몬드 호수,스코틀랜드) 11. When Johnny comes marching home (쟈니가 집으로 돌아올때의 행진곡) 12. Tunes of Glory (영화 "영광의 노래" 1960) 13. When You And I Were Young Maggie (매기의 추억) |
Mitch Miller (1911 - 2010)
미치 밀러(Mitch Miller)는 1911년 7월 4일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에서 출생하였다.
어릴 때부터 음악에 대한 관심을 보인 그는 6세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하였고 12세 때는 오보에를 연주했다.
1932년 이스트먼 음악학교를 졸업한 뒤 아름답고 고전적인 오보에 연주자로 이스트먼 교향악단에서 활동하였고
1936년 CBS(Columbia Broadcasting System) 오케스트라에 입단했다.
CBS에서 미치 밀러는 오보에 연주자로 두각을 나타내는 한편 경음악과 팝을 연주하는
Andre Kostelanetz의 지휘자로 레코딩 작업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940년대 말에 CBS를 떠난 그는 신생 레코드 회사인
Mercury Records에서 일하게 되어 음악 감독으로 클래식 파트를 담당하게 된다.
1948년 팝쪽으로 분야를 옮겨 [Mule Train], [That Lucky Old Sun], [Cry of the Wild Goose] 같은 큰 히트를 기록한 시리즈 음반들의 제작을 비롯하여 "Tennessee Waltz"로 커다란 히트를 한 Patti Page의 앨범도 제작하였다.
1950년 다시 Columbia 레코드사로 돌아온 그는 팝 부분의 음악감독 겸 지휘자가 되었다. 당시 Columbia 레코드사는 미국의 3대 주요 레코드사의 하나로 매우 성공한 레코드사였다. 미치 밀러는 이곳에서 Guy Mitchell, Tony Bennet, Rosemary Clooney, Jo Stafford, Mahalia Jackson, Johnny Ray 등의 아티스트들을 양성하고 음반을 기획 제작하는 등 지휘와 편곡은 물론 프로듀서로서 수많은 음반 제작에 참여하여 음반 제작자로써의 재능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마치 밀러는 Easy Rider trio를 양성하며 50년대 중 후반 포크 뮤직의 부활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Easy Rider trio는 1957년 "Marianne" 단 한 곡을 히트시켰지만 많은 곡들을 작곡하고 레코딩하였다.
이 곡들은 후에 Kingston Trio와 New Christy Minstrels의 주요 레퍼토리가 되었다.
1950년에 그는 남성으로만 조직된 미치밀러 합창단(Mitch Miller & His Gang)을 창단하고
이를 지휘하여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이 합창단의 첫 히트곡은 이스라엘 포크송인 "Tzena, Tzena, Tzena"였는데
당시 이 곡은 포크 그룹인 Weavers에 의해서도 레코딩되었던 곡이었다.
미치 밀러 합창단은 "The Yellow Rose of Texas"로 6주 동안 빌보드 챠트 넘버원에 오르며 큰 히트를 기록했고
영화 '콰이강의 다리(The Bridge On the River Kwai)'에서 들을 수 있었던
"Colonel Bogey March" 등이 인기를 끌었다.
1958년부터 그는 [Sing Along With Mitch]라는 시리즈 앨범을 내기 시작하였는데, "Carolina In the Morning", "Be Kind To Our Web-Footed Friends", 그리고 "By the Light of the Silvery Moon" 등의 곡들이 그의 재치가 빛나는 남성 합창단의 힘차고 경쾌한 합창으로 만들어져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다. 이들은 1958년에서 1961년까지 19곡의 탑 40 히트곡들을 만들어 내었고, 이로 인해 미치 밀러는 "Sing Along With Mitch"라는 TV 프로그램까지 맡게 되었다.
분명 1950년대 초반부터 거의 15년동안 미치 밀러는 레코드 업계의 주류들을 이끄는 인물이었다. 그 후에도 밀러의 TV 프로그램은 여전히 인기가 있었고 그는 미디어 슈퍼스타가 되었지만, 1960년대 초반 Columbia 레코드사의 중요한 아티스트는 그가 양성한 가수가 아닌 재즈-가스펠-블루스 프로듀서 John Hammond에 의해 양성된 Bob Dylan이었다. John Hammond는 당시 음악계에서 상당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지만 만약 미치 밀러가 키워낸 Easy Riders나 New Christy Minstrels 같은 성공한 포크 아티스트들의 커다란 레코드 판매고가 없었더라면 Columbia 레코드사는 Bob Dylan의 존재를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어 대중들의 관심은 Rock 'n Roll로 바뀌어 갔고
Columbia 레코드사 역시 흐름에 맞춰 1964년 Paul Revere & the Raiders와 계약하게 된다.
여전히 미치 밀러는 Columbia 레코드사에 남아있었지만 그의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의 TV 쇼 역시 1966년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후 그는 때때로 경음악 앨범 제작자로 나타났으나 이미 음악계에서 잊혀져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도 그의 베스트 음반들과 50년대 제작했던
Tony Bennett, Rosemary Clooney, Johnny Mathis, Easy Riders
그리고 Mahalia Jackson 등 아티스트들의 음반들은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