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쓰고 있는 음력이라는 말은 잘못된 것이다. 엄격히 말한다면 ‘태양태음력(太陽太陰曆)’이 맞다. 양력은 태양력을 줄인 말이므로 문제가 없지만, 음력은 오직 달의 운행을 기준으로 삼는 역법을 뜻하므로, 달의 운행과 해의 운행을 결합시켜 사용하고 있는 태양태음력은 굳이 줄인다면 ‘음양력’이라 해야 맞을 것이다.
양력, 곧 태양력은 지구가 해의 둘레를 1회전하는 동안을 1년으로 하는 달력으로, 달과는 무관하다. 1태양년(太陽年: 回歸年)의 길이는 365.2422일이므로 1년을 365일 또는 366일로 한다. 그리고 365일의 해를 평년, 366일의 해를 윤년이라고 한다. 1태양년의 일수(日數)에서 소수점 이하 우수리는 4분의 1, 29분의 7, 33분의 8, 128분의 31, 400분의 97에 가깝다. 이 뜻은 분모에 해당되는 연수 동안 분자에 해당되는 윤일(閏日)의 수를 두어야 절후에 맞게 된다는 뜻이다. 율리우스력(Julian calendar)에서는 4년에 1윤일을 두는 방법이 채택되었고, 현행력인 그레고리력(Gregorian calendar, 1582년)에서는 400분의 97, 즉 400년에 97일의 윤일을 두도록 만들어져 있다. 우리나라는 1896년 1월 1일부터 태양력을 쓰기 시작했다.
음력, 곧 달이 차고 기울어지는 현상을 기초로 하여 만든 달력은 1일과 1삭망월(朔望月)을 취하는 달력인 태음력 또는 순태음력(純太陰曆)과, 삭망월과 회귀년을 같이 취하여 적당히 조정해서 엮은 달력인 태양태음력이 있다. 순태음력의 대표 격은 마호메트가 창설한 회회력(回回曆)이다. 순태음력은 계절 변화와는 관계없으며 달의 위상(位相) 변화에만 의존한다. 달의 삭망주기(朔望週期)는 29.53059일이고, 12평균 삭망월은 354.367058일이다. 그러므로 큰달을 30일, 작은달을 29일로 하고, 이것들을 각각 6회 반복해서 12개월을 1년으로 하면 그동안의 일수는 354일이 된다. 이것을 평년이라 한다. 나머지 우수리 0.367058일을 처리하는 방법이 고안되어야 한다. 즉, 8년에는 3일, 11년에는 4일, 19년에는 7일, 30년에는 11일의 윤일을 두어야 달의 위상과 잘 맞게 된다.
태양태음력은 달의 위상을 주로 하면서 태양의 운행에도 맞춘 것으로 매우 복잡하다. 달력의 기본 단위로는 주야인 1태양일(太陽日), 달의 위상 변화인 1삭망월, 계절의 변화인 1회귀년(回歸年)이 있다. 1태양년(회귀년)은 12.36827삭망월이므로 평년에는 1년을 12삭망월로 해도 좋지만, 소수 이하의 우수리 0.36827삭망월을 처리해야 대략 계절에 맞출 수 있다. 그 방법으로 가끔 윤달을 넣어서 13개월로 된 윤년을 만들어 써야 한다. 즉, 8년에는 3개월, 19년에는 7개월, 27년에는 10개월의 윤달을 넣도록 한다. 이 가운데에서 19년7윤법은 중국에서는 춘추시대 중엽(기원전 600년경)에, 그리스에서는 기원전 433년경에 발견되었는데, 이 6,940일이라는 주기를 중국에서는 장(章), 그리스에서는 메톤주기(Metonic cycle)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896년 이전에는 줄곧 이 태양태음력을 사용했다.
현행 태양력은 158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 때 정한 그레고리력을 따르고 있다. 이전에 쓰던 로마의 율리우스력이 오랜 시간이 흘러 치윤법(置閏法)이 적당하지 않게 되어 역일이 계절에 대하여 점차 어긋나게 되었다.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가 개최된 해는 춘분이 3월 21일로 되고, 1582년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 때는 3월 11일로 되었다. 기독교에서는 율리우스력이 적당하지 않다고 개력을 주장하는데 그 이유는 부활절날을 정하기에 불편하다는 데 있었다.
부활절은 기독교에서 크리스마스 다음가는 큰 축제일이다. 따라서 춘분날 자체가 변하면 매우 불편하다. 그러므로 1582년 10월에 그레고리우스 13세의 명령으로, 역면(曆面)에서 10일을 끊어내 버릴 목적으로 10월 4일(목요일) 다음 날을 10월 15일(금요일)로 정하고, 다음과 같은 치윤법을 두어 계절에 잘 맞는 역년을 만들었다. 그 치윤법은 서기 연수가 4로 나누어떨어지는 해는 윤년으로 하고, 그중 100으로 나누어떨어지는 해는 평년으로 하되, 다만 400으로 나누어떨어지는 해는 윤년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1년의 길이가 365.2425일로 되었다. 이 값은 실제의 평균 태양년 365.2422일보다 약 26초 길다.
그레고리력은 종교적인 대립과도 관련되어 아주 서서히 전 세계에 퍼져 나갔다. 이탈리아 프랑스 및 그 남쪽의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개혁 직후부터 실시되었고, 이후 헝가리, 스위스 등으로 퍼져갔다. 18세기에 들어서자 독일과 네덜란드의 프로테스탄트교국 전반과 덴마크, 영국, 스웨덴으로 옮겨갔다. 동양에서는 19세기 후반부터 사용되었는데 일본(1873), 샴(1889), 한국(1896)의 순으로 실시되고, 중화민국은 20세기 초(1912)에 실시되었다. 이어 소비에트 러시아(1918), 그리스(1924)와 루마니아(1924), 터키(1927) 등의 순으로 퍼져 나갔다.
1896년 조선이 기존의 태양태음력을 태양력으로 바꾼 것의 의미는 매우 크다. 미시적으로는 시간과 관련된 모든 일상생활과 근무일, 공휴일 등 절일의 변화를 들 수 있다. 거시적으로는 중국을 기준으로 한 표준시간을 서양을 기준으로 한 표준시간으로 바꿨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좋게 말하면 국제질서에 맞춘 것이며, 나쁘게 말한다면 제국주의 열강이 정한 코드에 맞물려 들어가게 된 것이다. 기존의 달력인 태양태음력과 새 태양력 사이에 과학적 이론의 우열이 존재했던 것은 아니며, 오직 힘의 관계에 따른 강요의 성격을 띠었다. 달력 자체의 논리만 놓고 따진다면, 실제 달과 해의 운행을 엄밀히 맞추려고 노력했던 전통적인 태양태음력이 임의 시간을 정해놓고 기계적으로 오차를 맞추는 방식보다 더 과학적인 방식이라고도 볼 수 있다.
대한제국 정부는 1896년 태양력을 공식 달력으로 채택했지만 사실상 양력과 음력을 같이 병용했다. 정부의 공식 활동은 양력을 썼지만, 탄일과 제사 등 문화생활에서는 황실에서도 음력을 썼다. 일제의 지배가 시작되면서 일제는 당국의 공식적인 달력으로 양력만을 인정했다. 또한 그들은 음력을 쓰는 것이 미신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음력이 주로 제사나 사주팔자, 이삿날 등 날짜의 길흉을 따지는 것과 관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여기서 제사는 더욱 중요하다. 강한 유교 규범이 남아 있는 현실에서 제사가 ‘효’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기일은 음력으로 결정되는데, 그것은 간지에 따라 음양과 오행이 배속되며 음양오행의 기운은 돌아가신 분의 귀신과 관련을 맺는다. 태어날 때 보는 사주팔자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생사관은 매우 오랜 기간 형성되어온 것으로 조선 문화의 핵심 중의 핵심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음력을 양력으로 바꾸는 것은 단지 날짜 계산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전통문화 전체의 부정을 뜻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