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 고립된 현대 가족 사회에서 오컬트 미학의 공포를 구현한 뛰어난 수작
(* 더운 여름 오싹한 공포영화 추천, 주의 스포 있음)
"선택권이 있었다면 더 비극적일까? 덜 비극적일까?"
- 영화 '유전' 대사 중
<<공포 영화>>는 아주 가끔 보는 편이지만, 거의 대부분은 잘 안보게 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지나친 초자연적 존재(대표적으론 귀신)의 개입 이야기 또는 과도한 고어 슬래셔로 인해 결과적으로는 현대적 서사의 흐름을 깨트리거나 방향을 잃는 점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귀신이나 잔혹한 고어 호러를 표현하는 것 자체는 별로 문제가 안된다고 본다. 영화 예술은 그러한 이미지들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단지 그 뿐인 경우, 즉 개연성 없는 나열이나 별 설득력 없는 서사만 늘어놓거나, 그저 놀이공원처럼 갑툭튀로 놀래켜주기만 하는식의 공포들에 그친다면 분명 식상해지기 쉽다.
그러나 간혹 게 중에는 꽤 잘 만든 수작들이 나오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파스칼 로지에 감독의 <<마터스>>(Martyrs순교자) 같은 작품은 정말 끔찍한 장면들이 많지만 지금도 내게는 꽤 인상적인 공포 영화의 명작으로 남아 있다. 국내 영화로는 <<불신 지옥>>이나 최근의 <<곡성>>도 꽤 괜찮게 본 공포 영화로 기억한다.
지금 소개하는 아리 애스터(Ari Aster) 감독의 <유전>Hereditary은 특히 서양문화의 오컬트 주술을 다룬 것이어서 국내 영화 <<곡성>>과도 서로 비교해볼 만한 수작에 속한다고 보는데, 곡성에서 보는 토속적 오컬트보다도 그 표현의 강도는 훨씬 더 참혹하고 센 편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혹시라도 평소 무서운 공포 영화를 잘 못보시는 분들이라면 이 영화를 굳이 권해드리고 싶진 않다.
그럼에도 <<유전>>이라는 이 영화는 <오컬트 공포>라는 장르를 빌어 상당한 깨달음을 얻도록 해주는 그러한 수작으로선 볼 만한 공포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제목이 <<유전>>이라는 점부터 매우 궁금증을 불러 일으킨다. 과연 무엇이 <유전>되고 있다는 것일까?
영화의 무대는 어느 한 가족이 사는 공간(이 공간은 첫 시퀀스에서 보여주듯이 감독이 창조한 무대로서의 가족 공간)이며, 이들이 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면서 이야기가 서서히 전개된다.
이미 돌아가신 그 할머니는 살아 생전 비밀이 많았었고 남아 있는 가족에게 어떤 무언가를 물려주었다. 그게 무엇일까? 바로 이 상속받은 유전(hereditary)의 내용이 이 영화에 대한 핵심 이해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서부턴 스포일러가 포함될 수 있음)
장례를 치룬 그 할머니는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애니의 엄마였었다. 애니는 슬하에 딸 찰리와 아들 피터를 각각 두면서 남편 스티브와도 함께 살고 있다. 따라서 딸 찰리와 아들 피터는 할머니의 손자가 되며, 결국 할머니-엄마-딸, 아들로 이어지는 계보가 되는 셈이다.
찰리와 피터의 엄마로 나오는 애니는 미술적 재능이 있는데 어린 딸 찰리도 그리고 만드는 재능을 지닌 아이로 보이지만 지극히 정서가 불안하고 특정음식에 대한 아나필락틱 쇼크가 있다.
찰리의 오빠 피터는 마리화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십대 청소년 학생이다. 애니의 남편이자 집안의 가장인 스티브는 이들 가족 구성원들을 걱정스런 눈으로 보면서 그래도 가족들을 챙기려하나 역부족인 듯 보인다.
영화의 전개는 할머니를 잃은 슬픔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저마다의 불안와 각자의 해소 방법들을 드러내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애니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유족들의 슬픔을 나누는 모임에 참여하고, 딸 찰리는 여전히 계속 이상 증세를 보이며, 아들 피터는 친구들과의 마리화나 파티를 찾는다. 아빠인 스티브는 그나마 가족 중에선 가장 차분한 이성적 성격을 보이지만 한편으로 이를 해소활 방법도 제대로 찾지도 못하고 있다.
이 영화는 언뜻 매우 느리게 전개되는 것 같지만 그 진행은 마치 엄청난 해일을 그 밑에 감춘 거대한 파도처럼 깊숙하게 장악해들어간다. 이들 가족은 거대한 살얼음판을 밟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예측하기 힘들며 매우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의 진행으로, 후반부에선 거의 쓰나미급 재앙으로 치닫는다.
영화는 죽은 영혼을 불러들이는 의식 뿐만 아니라 어떤 비정상(paranormal) 현상과 환각을 갖는 등장인물의 시선에서 보여주고 있는 공포스런 오컬트 영화로서 표현되고 있지만, 단순히 어떤 신화적 주술적 악령을 드러내기 위한 오컬트 영화가 아니다.
단순히게만 보면, 이 영화는 지옥의 8대 천왕에 속하는 파이몬(King Paimon)이 머물만한 어떤 숙주를 찾는 영화로 보일 지도 모른다. 이 대마왕 악령은 자신의 거처할 숙주로는 인간 남자를 선호하며, 페이몬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한테는 지식, 재물, 친한 벗들을 내려주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
<<유전>>은 이 같은 오컬트적인 장르적 재미도 충분히 선사하는 영화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오컬트 장르를 빌어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의 거대한 공포는 다름 아닌 가족의 해체와 퇴행에 있었다.
(* 물론 영화 <<유전>>은 겉보기엔 악령을 믿는 종교에 대한 유전적 상속을 가족들이 겪는 영화로서 볼 수 있다. 아마 거의 대부분의 이 영화 해설도 그렇게 보는 것 같다. 그러나 여기서 필자는 이 영화를 조금 달리 보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볼 때 이 영화는 결국 공포라는 장르를 빌고 있는 가족에 대한 영화로 보이며, 실질적인 공포는 진정한 대화 소통을 나누지 않는, 가족 간의 불통 사태라는 점이 가장 큰 핵심으로 다가왔었다.
가족간의 대화 소통이 단절된 고립된 관계라는 점은, 이 영화 처음 부분에서 애니가 들려준 추도사 내용에서부터도 잘 드러나고 있다. 이미 돌아가신 할머니부터가 비밀이 많았었고 가족과 제대로 된 소통 관계를 갖지 못한 채로 심지어 해리 증상까지 보일 만큼 병리적 삶을 살아왔었다.
엄마 애니는 몽유병 증상이 있는데다 딸인 찰리와 아들 피터에게 대하는 방식들도 강압적이다. 실제로 엄마의 이 강압은 돌이킬 수 없는 참혹한 비극을 촉발시켰다.
게다가 엄마인 애니는 자신의 아들 피터를 낳기 싫었다고 말할 정도로 그 속내를 말하지 않고 살아왔었다. 마찬가지로 아들 피터는 엄마를 무서워하거나 눈치를 볼 만큼 그 역시 속내를 억누르며 살아왔었다.
딸 찰리는 평소 틱tic 장애와 유사한 증상을 보일 만큼 심히 불안하고 심각한 땅콩 알레르기 쇼크 증상을 갖고 있다. 비밀이 많았던 할머니의 양육으로부터 받은 영향으로 보인다. 창문에 부딪혀 죽은 새의 머리를 가위로 싹둑 잘라서 아무렇지 않게 호주머니에 집어넣는 어린 딸 찰리의 모습은 분명 일반적인 행동으로 보긴 힘들다.
그럼에도 엄마 애니는 할머니가 딸 찰리를 이뻐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딸 찰리는 할머니는 손녀가 아닌 손자를 원했다는 말을 들려주는 대목에서도 이들 가족들 간의 심각한 불통성을 잘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가족들 중 유일하게 차분한 이성적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비춰진 아빠 스티브도 그 나름 가족들을 걱정하고 챙기는 노력들은 하지만 이들 간의 그 심각한 정도에 대해선 둔해보이거나 우유부단하게 그려지면서(식탁에서의 엄마와 아들의 싸움도 뒤늦게 말린다) 결국은 비극을 맞게 된다. 정신 심리치유 상담도 진작부터 했어야 했지만 때늦은 처사가 되었을 뿐이다.
진짜 유전된 공포는 악령이 아니며 실은 선대의 가족들에서부터도 보여줬었던 심각한 대화 소통의 단절에 있었다!
그렇기에 돌아가신 그 할머니도 어쩌면 선대의 불통스런 가족 속에서는 고립된 외로움을 죽은 가족들의 영혼을 불러내는 오컬트적인 주술로 채우려 했던 게 아니었나 생각된다.
모든 탄생은 나의 의사와 무관하게 태어나는 것이기에 폭력적이다. 엄마 아빠를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영화 포스터의 "가족은 선택할 수가 없다"는 문구가 잘 말해주듯이, 따라서 우리는 좋은 가족, 나쁜 가족을 임의로 선택할 수가 없다.
그나마 주어진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게끔 적절하게 조화로운 상호 관계로 나아가도록 하는 것이 어쩌면 최선일 지도 모른다.
몸학 입장에서 보면 가족은 집단 유형이냐 자율 공동체 유형이냐에 따라 제4단계 일 수도 있고 제5단계의 발달일 수도 있다. 제4단계로 퇴행된 집단 유형의 가족은 거의 광기어린 근본주의 종교 집단과도 유사한 모습을 띨 수 있다.
몸학에서 자율적 개인의 터전으로서의 공동체적 가족 모습은 주로 몸성 5단계로 상정되지만, 집단적 광기나 그릇된 종교 믿음들은 몸성 4단계 이하로 상정되는데, 이 <<유전>> 영화는 가족이 건강한 관계가 아닌 퇴행으로 떨어지며 붕괴되는 과정들을 여실히 드러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대화 소통이 단절되는 가족 관계에선 일방적 훈계와 억압, 강요와 희생이 강조된다. 할머니는 유품으로 남긴 편지에서 볼 수 있듯이, 어떤 이유나 맥락도 알려주지도 않은 채 나중에 큰 보상이 있을 거라면서 남은 가족들에게 희생하기를 강조하고 있다.
영화 <<유전>>에서 보여주고 있는 가족의 모습은 더 이상 <안전한 의미로서의 가족>이 아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가족에 대한 그러한 신화를 철저히 해체시킨다. 즉, 우리의 가족이 안전한 곳이라는 관념도 결국 신화적 믿음에 불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지면, 이 영화 <<유전>>>은 실제로는 현대 사회 가족이 갖는 대화 소통 단절로 인한 <이상 증상들>과 <불안증들>을 오컬트 공포 영화의 장르를 빌어서 그와 같은 가족 신화를 폭로 해체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로 이 <<유전>>은 3대를 거쳐서 상속되는 정도가 아닌 오늘날 현대 사회의 많은 가족들이 겪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상속시키는 유전 질환이며, 거대한 우리 사회가 이전 사회로부터도 계속 물려받고 있는 가장 실질적인 공포와 비극을 불러일으키는 <<유전>인 것이다.
서로의 대화가 겉돌고 이미 고립된 구성원들 간의 집합에만 불과하다면 그것은 생물학적 혈연으로서만 가족일 뿐, 그것은 더 이상 가족이 아닐 것이다. 맹목적인 애착 관계만 남아 있는 가족의 경우는 훨씬 더 힘들어질 수 있다.
사실 가족 간의 대화 소통은 언뜻 쉬운 것 같지만 그것은 정말 힘들고 어려운 협력과 신뢰의 시간을 요하며, 그 과정에서도 감정의 예민함과 섬세함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종종 실패를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대화 소통의 단절, 그것은 결코 개인사적인 비극이 아니며 아주 오랜 습행처럼 함께 있어왔던 인류사적 비극이며, 지금까지도 우리를 종종 비극적 파국으로 이끌었던 악령과 유전의 실체인 것이다.
바로 이 유전을 끊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는 이 <유전>을 또 계속해서 물려주고 있진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