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개시 3주년을 맞은 24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러시아 지지 집회가 열렸다.
주한러시아대사관 앞에서 열린 러시아 지지 집회/사진출처:페이스북
주한러시아대사관 페이스북에 따르면 이날 서울 중구 주한러시아대사관 앞에서 열린 집회에는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대사를 비롯해 니콜라이 마르첸코 국방무관, 알렉세이 사페트코 무역대표, 드미트리 쿨킨 공사참사관 등 주한 러시아 대사관과 주한 러시아연방 무역대표부 직원, 러시아 교민들이 참여했다. 대사관 앞은 그동안 러시아와 푸틴 대통령을 규탄하는 반전 시위가 꾸준히 열리던 곳이다. 그러나 이날에는 반전 시위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3주년이라는 특별한 날에 과거와 달리 반전 시위 대신 지지 집회가 개최된 것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푸틴 대통렁의 전화 통화, 미-러 장관급 회의 등이 잇따라 열리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국제정세의 판이 바뀐 탓으로 보인다. 이날 유엔 안보리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신속한 종식을 촉구하는 미국의 결의안이 채택(찬성 10, 기권 5)됐는데, 그동안 각급 결의안에서 빠짐없이 등장했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표현이 제외됐다. 우리나라도 이 결의안에 찬성했다.
주한러시아대사관 측도 이같은 흐름을 놓치지 않고 종전 분위기 확산을 위해 대사관 바깥으로 나온 것으로 여겨진다.
러시아 지지 시위를 이끌고(위) 연설하는 지노비예프 대사/사진출처:페이스북
이날 집회를 이끈 지노비예프 대사는 "전쟁의 책임이 (2014년 우크라이나 동부지역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민스크 협정 이후 우크라이나를 대대적으로 무장시킨 서방에 있다"면서 "3년 전 오늘(2022년 2월 24일)은 (냉전 이후 미국 주도의) 단극 세계 질서 시대가 끝나고, 공정하고 민주적인 다극 국제 질서로의 전환을 상징하는 날로서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나폴레옹과 히틀러 침공(1, 2차 애국전쟁), 소련 붕괴이후 역사를 언급하며 "이날은 우리에게 전략적 패배를 안기려 했던 적들로부터 우리를 지키고, 안보 보장에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며, 억압받는 국민을 보호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날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연단에 오른 마르첸코 국방무관은 “트럼프 대통령발(發) 종전 움직임과 평화적 해결 과정은 이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며 "이른 시일 내에 평화가 달성되리라는 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고 섣부른 기대를 일축했다. 나아가 “우리는 러시아의 국익을 지키고 영구적인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아직도 멀고 험한 길을 함께 갈 것"을 촉구했다.
사페트코 무역대표는 "우리는 지금 모스크바로부터, 전선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만, 어느 곳에 있든 조국을 수호하는 용감한 군인들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지금도 최전선에 싸우고 있는 군인들에게 감사를 표시하며, 하루 빨리 승리하고 귀국하기를 기원했다.
집회 소식을 전한 페이스북 주한러시아대사관 계정에는 '미리 공지했다면 참석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표시하는 댓글들이 여럿 달렸다.
앞서 지노비예프 대사는 지난 7일 타스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지만, 양국은 항상 중요한 이웃 국가였다"면서 "러시아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고 신뢰를 구축하면서 관련 당사자들이 상호 수용할 수 있는 해결책을 모색하는 대화에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또 "푸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언급한 '유라시아 안보 체계' 구축을 위한 전략적인 구상이 실행 중"이라고도 했다.
'유라시아 안보 체계'는 푸틴 대통령이 미국 주도의 기존 안보 체제에서 벗어나 새로운 다자 집단 안보 체계를 창설하자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