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이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가 좀처럼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고 치료제도 개발된다는 소식이 그나마 반갑고 조그만 위안이다. 곧 1년 중 달이 가장 밝은 대보름이다.
밤하늘을 환하게 밝히는 보름달을 보며 하루빨리 코로나19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길 기원해보자.
한양도성길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풍경
서울은 야경이 아름다운 도시다. 도심 가득한 마천루와 한강을 따라 성냥갑처럼 들어선 아파트 단지가 밤이면
형형색색 불빛을 내뿜으며 화려한 풍경을 연출한다. 서울에 야경 명소가 많지만, 큰 발품 들이지 않고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뜻깊은 장소를 꼽으라면 청운공원 윤동주시인의언덕이 떠오른다. 서울 도심에서 부암동
으로 넘어가는 자하문고개 정상에 자리하는데, 언덕에 오르면 경복궁과 시청, 종로 일대와 N서울타워까지 보인다.
자하문고개 정상에 자리한 윤동주시인의언덕
윤동주는 김소월과 더불어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로 시작하는 ‘서시’는 학창 시절 누구나 한번쯤 외웠을 법하다.
1917년 만주 북간도의 명동촌에서 태어난 윤동주는 1941년에 서울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東京) 릿쿄(立敎)대학 영문과에 입학한다.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로 옮긴 그는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경에 체포되어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복역하다 1945년 2월에 생을 마감한다.
윤동주시인의언덕에서 내려다본 부암동
윤동주의 첫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유고 시집으로 발간됐다. 생전에 이 시집을 펴내고자 한 그는 서문
으로 ‘서시’를 쓰고, 3부를 필사해 이양하와 정병욱에게 증정했다. 윤동주 사후 정병욱이 보관하던 필사본을 공개
하면서 그의 시가 세상에 알려졌다. 초판 서문에는 윤동주가 늘 동경하던 시인 정지용이 쓴 “무시무시한 고독
에서 죽었고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이 없이!”라는 구절이 있다.
윤동주시인의언덕 표석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에 다니던 1941년, 종로구 누상동에 있는 후배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했다. 그는 이때
청운동과 누상동 일대를 산책하며 시상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청운동에 윤동주시인의언덕이 들어선 것도 이 때문이다. 김송의 집에 머문 약 4개월은 윤동주의 짧은 생에 가장 행복한 시기로 여겨진다. 깊은 속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후배와 함께 차 마시며 음악을 즐기고, 문학 이야기를 나눴기 때문이다. 성악가인 김송 부인의 아름다운 노래를 감상하기도 했다. 저녁 무렵 하숙집 근처로 나온 그는 언덕에서 해 지는 서울 풍경을 보며 조국의 어두운 현실에
가슴 아파하고, 시상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저녁 무렵에 만난 윤동주소나무
윤동주시인의언덕에 특별한 것은 없다. 잔디가 깔린 마당에 소나무가 있고, 짤막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언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