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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교회] 미사 중에 행렬은 어떤 종류가 있으며, 입당행렬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미사에는, 입당 행렬, 복음집 행렬, 예물봉헌 행렬, 영성체 행렬 등이 있습니다. 이 행렬들은 각각 알맞은 노래를 부르는 동안 우아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44항) 입당 행렬 때에는 입당송 또는 입당 성가를, 복음집 행렬에는 알렐루야를, 예물봉헌 행렬에는 예물 준비 성가를, 영성체 행렬에는 영성체송 또는 영성체 성가를 부릅니다.
행렬과 함께 노래하는 성가는 행렬의 길이에 맞게 시작하고 마쳐야 합니다. 행렬이 끝난 후에는 행렬 노래를 지나치게 연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편, 행렬이 끝났다 하여 즉각 성가를 ‘중단’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행렬 노래는 엄연한 전례문이며 공동체의 기도이므로 정성을 다해 노래하며 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마치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입당 행렬은, 교황께서 로마의 각 본당을 방문하시어 거행하는 순회미사에서, 회중이 따로 한곳에 모여 내적 준비를 갖춘 후 미사를 드릴 성당으로 이동하여 들어가는 관습에서 유래합니다. 입당 행렬 자체가 미사 준비의 성격을 지니며, 교우들은 입당 노래를 부르면서 이 행렬에 동참합니다. 입당 노래는 사실상 미사의 첫 번째 기도이며 시작기도입니다.
제단으로 나아가는 행렬을 교우들이 잘 볼 수 있도록 성당 입구에서 시작하여 신자석 사이를 지나 제대 앞까지 장중하게 행렬합니다. 제의방이 제단 옆에 있어서 매일 실행하기 어렵다면, 주일과 대축일만이라도 성당 입구에서 행렬을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입당 행렬 때 향과 십자가와 촛대를 들 수 있는데, ‘향복사, 십자가, 초복사, 시종(정복사), 복음집을 든 독서자, 사제’의 순으로 제대를 향해 나아갑니다.(총지침 120항)
[기도하는 교회] 입당성가는 어떤 곡을 불러야 하나요?
입당송은 입당행렬에 동반하는 노래인데, 그날 전례의 주제를 제시하여 공동체의 마음을 파스카 신비로 이끌어 주면서 입당행렬에 동참하게 합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 미사 47항)
원래 『로마 미사 성가집』(Graduale Romanum)에 나와 있는 곡을 노래했는데, 일선 본당에서는 라틴어로 된 그레고리오성가를 노래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더 쉽다고 하는 『단순 미사 성가집』(Graduale Simplex)이 나왔지만 어렵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모국어로 번역된 입당송이 모두 작곡되어 있지도 않은 상황에서, 입당송을 노래로 바치기를 원하는 교우들을 위해서는 차선책이 필요했으며, 영성체송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천주교회에서는 주교회의가 승인한 『가톨릭성가』에서 “거룩한 예식이나 전례 시기나 그날의 특성에 맞는 노래를” 선택하여 대신 부를 수 있도록 허용하였습니다.(미사 48항, 87항)
입당성가는 입당송을 대신하는 것이므로 그 명칭도 ‘시작성가’보다는 ‘입당성가’가 합당하며, 입당송 내용이 충실히담긴 곡이나 입당송이 제시하는 그날 전례의 주제에 가장 어울리는 곡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나 승인된 성가집에서 이런 곡을 발견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먼저 입당송 본문을 독창자가 노래하거나 교우들이 함께 낭송한 뒤에 (입당행렬을 시작하면서) 입당성가를 노래하는 것도 하나의 좋은 시도일 수 있습니다. 애초에 ‘입당성가’를 허용한 이유가 교우들이 입당송을 쉽게 노래하기 위함이고, 그에 따라 원래의 본문을 충실히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긴 것이므로, 입당성가의 부족함을 입당송으로 먼저 보충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교회] 미사 전후에 주례사제와 봉사자는 어떤 기도를 바치나요?
여러 가지 기도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먼저, 개두포, 장백의, 띠, 영대, 제의를 입을 때 바치는 각각의 기도가 있는데, ‘미사 전에 전례복을 입을 때 드리는 기도’에 나와 있습니다.
미사 전의 침묵을 유지하다가 행렬을 시작할 때 다음과 같은 계응을 바칠 수 있습니다. 주례사제가 성호를 그으며 “우리 도움은 주님 이름에 있으니”(Adiutorium nostrum in nomine Domini)라고 선창하면, 봉사자들은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분이시로다.”(qui fecit coelum et terram.)라고 응답합니다. 이 기도는 시편 124,8을 노래한 것입니다. 이어서 십자가에 절하고 행렬합니다.
미사가 끝나면 주례사제와 봉사자들은 제의방으로 돌아와 십자가에 절하고 행렬을 마무리하면서 다음과 같은 계응을 바칠 수 있습니다. 주례사제가 봉사자들을 향해 서서 “저희가 거행한 이 미사가”(Prosit)라고 선창하면 봉사자들은 “영원한 생명의 도움이 되게 하소서.”(in vitam aeternam.)라고 응답합니다. 또는 “Prosit. Deo gratias.”, “주님을 찬미합시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등의 계응도 좋습니다. 이후 성당 안에서는 미사 후의 침묵을 유지합니다.
한편 『로마 미사 경본』에는 미사 전후에 집전사제가 바치는 여러 기도문이 ‘미사 준비기도’(부록 VI, 1383~1387)와 ‘미사 후에 바치는 감사기도’(부록 VII, 1388~1394)라는 제목 아래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기도하는 교회] 미사를 드릴 때 ‘침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전례에서 일어나는 일은 초자연적인 구원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은총에 의탁합니다. 성령의 음성에 영혼의 귀를 기울이기 위해 먼저 인간의 소리를 멈추는데, 이것을 ‘거룩한 침묵’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소리 없이 빈 상태가 아니라 성령의 이끄심으로 가득한 거룩한 순간이며, 전례 거행의 바탕입니다.(성무일도 총지침 202항)
무엇보다도 미사 직전에는, 신자들이 침묵 속에 머무르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이때 신자들은 ‘개인기도’로 자신의 일상을 공동체 전례에 연결하며 성령께 귀 기울이는 내적자세를 갖춥니다. 이를 위해 ‘전례 거행에 앞서 성당이나 제기실, 제의실이나 그 주위에서 침묵을 지키는 것이 바람직’(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45항)합니다.
파견 예식으로 미사가 끝난 다음에도, 신자들이 침묵 속에서 ‘개인기도’를 바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이 침묵은 신자들이 개인기도를 드리면서, 공동체 기도에서 받은 은총을 개인 일상으로 연결하는 첫 순간입니다.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공동체 전례와 신자 개인 일상이 단절되어 ‘전례 따로 생활 따로’의 상태가 되기 쉽습니다.
본당에서 미사 전후로 바치는 여러 기도 때문에, 충분한 침묵이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함께 바치는 이런 기도는 말씀 전례의 마지막 순간 곧 성찬 전례 직전에 바치는 것이 알맞습니다. 이때 신자들은 선포된 말씀을 경청하여 마음에 모시고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온 세상 구원을 위해 대사제의 기도를 바치기 때문입니다. 여러 기도를 보편 지향 기도의 마무리 기도 앞에 삽입할 수 있고, 보편 지향 기도가 없더라도 성찬 전례 직전에 바치면 제격입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58. 미사 해설 – 성찬 전례 (22) 영성체 예식 – 주님의 기도 (1)
가톨릭 신자들에게 가장 기본이면서 많이 봉헌하는 기도, 바로 주님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모르시는 분들은 없으실 것입니다. 지난 편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주님의 기도는 주님께서 친히 알려주신 기도입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주님의 기도를 보물로 간주하고 있고, 특히 디다케(Didache)에서는 하루에 세 번 주님의 기도를 바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를 미사 중에 공식적으로 바치기 시작한 것은 4세기부터였습니다. 그리하여 세례식과 같은 중요한 전례 안에서 이 기도를 바치도록 하였습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주님의 기도를 “가장 완전한 기도”라고 불렀습니다. 실제로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올바르게 바랄 수 있는 것을 청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거룩한 청원을 순서대로 봉헌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 이 기도를 마음으로 봉헌한다면, 주님께 바랄 수 있는 가장 합당한 영적 자세를 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청해야 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줄 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정서까지도 형성시켜 준다.”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영성체를 하기에 앞서 우리가 이 기도를 봉헌해야 할까요? 가톨릭 교회 교리서 2270항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감사 기도와 영성체 사이에 바치는 주님의 기도는 한편으로는 성령 청원 기도에 담겨 있는 청원과 전구를 요약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영성체로 미리 맛보게 될 천국 잔칫집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다.” 곧, 영성체를 하기 전에 주님의 기도를 봉헌함으로써 거룩하고 합당한 영적 준비를 돕는 것입니다.
한때, 신자들이 손을 잡고 주님의 기도를 봉헌하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2015년 춘계 정기 총회에서는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습니다.
“전례적으로 주님의 기도 때에 손을 잡는 것이 권장 사항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에 정서적인 문제나 위생적인 문제로 손을 잡는 것에 대하여 불편을 호소하는 신자들이 늘고 있다. 그러므로 일선 사목자들이 친교를 이유로 미사 때마다 손을 잡기를 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본당의 날이나 큰 축제일에 예외적으로 할 수 있다.”
아울러, 주님의 기도를 할 때 몇몇 신자분께서 사제처럼 손을 벌리고 기도를 하는 경우들을 접하게 되는데, 로마 미사 예규 124항 “사제는 팔을 벌리고 교우들과 함께 기도한다.”는 내용에 따라 사제에게 요구되는 전례적 행동은 “팔벌림”이고, 신자들에게 요구되는 전례적 행동은 “서서 합장하는 것”임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도 주님의 기도에 대한 설명이 계속됩니다. [2023년 10월 1일(가해) 연중 제26주일 대전주보 4면, 윤진우 세례자요한 신부(사목국 차장)]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59. 미사 해설 – 성찬 전례 (23) 영성체 예식 – 주님의 기도 (2)
영성체 예식 때 봉헌하는 주님의 기도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 자체에서 자녀다운 신뢰와 믿음을 주님께 고백하고,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감사와 찬미, 흠숭을 올리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 호칭 안에는 이 미사를 참석하지 않고 있는 공동체원들을 기억하도록, 곧 아버지의 품 안에 머무는 모든 자녀가 분열과 대립을 넘어서 일치과 친교에로 나아가겠다는 다짐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곧, 우리의 신원을 재차 확인하고, 그 확인을 통해서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열어주신 그 은총을 기억하자는 의미입니다.
주님의 기도에는 모두 일곱 가지의 청원이 등장합니다. 첫 세 가지 청원은 하느님 아버지에 관한 것이고, 이후 네 가지 청원은 우리에 관한 것입니다.
◇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첫 청원은 우리를 통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자신을 거룩하게 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1,44).
하느님 아버지께서 거룩한 이들이기에 우리는 거룩한 이들입니다.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는 거룩한 이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는 행위는 거룩함을 전달하는 것이고, 나아가 아버지의 이름을 위해, 그리고 우리 가족을 위해, 우리가 가진 거룩함을 잘 보존하고 거룩한 행위를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미사에 참석한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남과 동시에 우리의 거룩함을 위해!
◇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루카 17,21).
이 세상에서 이미 시작된 하느님 나라는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기를 기도하며 이를 위해 함께 모여 찬미, 찬양하며 나아갑니다. 우리가 봉헌하는 이 미사도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미사를 통해 우리에게는 하느님 나라를 맛볼 수 있도록 열립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렇게 맛본 하느님 나라를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 공간에서도 기억하고 행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다음 편에서도 주님의 기도에 대한 설명이 계속됩니다. [2023년 10월 8일(가해) 연중 제27주일(군인 주일) 대전주보 4면, 윤진우 세례자요한 신부(사목국 차장)]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60. 미사 해설 – 성찬 전례 (24) 영성체 예식 – 주님의 기도 (3)
지난 편에 이어서 영성체 예식 때 봉헌하는 주님의 기도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1티모 2,4)”
아버지의 뜻은 모든 이가 서로 사랑하며 하느님의 사랑 안에 일치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뜻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청하는 것이 세 번째 청원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봉헌하는 미사 역시 이러한 목적을 지닙니다. 어느 한 사람이나 한 공동체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봉헌하는 제사가 아닌 아버지의 뜻이 바로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네 번째 청원은 자녀다운 믿음을 가지고 아버지께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청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핵심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부분은 “일용할 양식”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일용할 양식은 우리가 곧 모시게 될 “성체”입니다. 우리에게 성체는 생명의 빵이며, 구원의 빵입니다. 곧 우리가 이 사랑의 잔치에 참여한 이유도 이러한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단순히 우리의 재산을 늘리는 차원으로의 청원이 아닌 우리의 청원과 함께 생명의 빵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이 미사에서 하느님의 자녀들에게만 열려진 은총이기도 합니다.
◇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다섯 번째 청원은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해주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주님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용서받습니다. 그리고 이 용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러한 자비의 은총에 힘입어 우리는 잘못한 이웃을 하느님처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늘 자비이신 아버지의 품 안에 머무는 이들입니다. 늘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 은총을 입고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그렇기에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는 말씀처럼 우리가 받은 용서의 은총을 우리 역시 다른 이들에게 열어주는 것입니다.
◇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여섯 번째 청원과 일곱 번째 청원은 악과 유혹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주십사 청하는 것입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기도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도를 통해 늘 그 힘을 얻습니다. 나아가 악에 빠지지 않고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 또한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청원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주님께 올릴 수 있는 기도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아버지께 온전히 의탁할 때 자연스럽게 고백되어 질 수 있는 기도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어지는 사제의 기도와 신자들의 응답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2023년 10월 15일(가해) 연중 제28주일 대전주보 4면, 윤진우 세례자요한 신부(사목국 차장)]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61. 미사 해설 – 성찬 전례 (25) 영성체 예식 – 주님의 기도 (4)
125. 사제는 팔을 벌린 채 혼자서 계속하여 기도한다.
✚ 주님, 저희를 모든 악에서 구하시고
한평생 평화롭게 하소서.
주님의 자비로 저희를 언제나 죄에서 구원하시고
모든 시련에서 보호하시어 복된 희망을 품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게 하소서.
사제는 손을 모은다. 교우들은 아래의 환호로 기도를 끝맺는다.
◎ 주님께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있나이다.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요한 17,15).
평소 우리가 일상에서 봉헌하는 주님의 기도는 “아멘”이라고 응답하며 기도를 맺습니다. 그러나 미사 안에 봉헌되는 주님의 기도는 “아멘”이 생략됩니다. 그래서 몇몇 신자분께서는 아멘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멘”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주님의 기도를 마저 봉헌하고 아멘 대신에 응답 영광송으로 마칩니다.
주님의 기도 이후 사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다시 청합니다. <주님, 악에서 구하여주시고, 평화롭게 하소서. 죄에서 구원하시고, 시련에서 보호하시며, 희망을 품으며 주님을 기다리게 하소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적지 않은 시련과 혼란, 두려움을 안고 살아갑니다. 그래서인지 희망보단 절망을 바라보게 되고, 빛의 자녀임에도 불구하고 어둠 속에 머물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서 공감하는 교회는 사제의 후속기도를 통해 다시금 간구합니다. 사제의 후속기도를 묵상하면 아시겠지만, 주님의 기도 내용과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한편으로는 조금 더 구체적이면서도 직접적인 청원이 동반됩니다. 그래서 이 기도를 주님의 기도와 연결되어 있는 기도, 곧 ‘주님의 기도 부속기도’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의미를 의식한다면, 이 후속기도는 주님의 기도와 상관없는 기도가 아닌 주님의 기도를 구체화시키는 촉진제 역할의 기도입니다.
그리고 앞서 잠시 언급했듯이, 주님의 기도 후속기도 이후 신자들은 응답 영광송으로 주님의 기도를 맺습니다. 모든 기도에서 영광송으로 기도를 마친다는 점은 장엄한 예식이라는 의미와 동시에, 이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봉헌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전례력 돋보기] 천사들의 합창 - 9월 29일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올해 9월 29일은 한가위로 인해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의 축일을 지내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 대천사를 비롯한 모든 천사는 전례 안에서, 또 일상 생활 안에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느님을 찬미하며 하느님의 은혜로운 손길을 우리에게 전한다.
미사 때 “마음을 드높이”로 시작하는 감사송을 통해 우리는 마음을 저 높은 곳, 하느님의 옥좌와 어린양이 하늘의 생명체와 원로와 천사들로 둘러쌓여 있는 곳으로 향한다.(묵시 5장 참조) 감사송의 본문을 통해 우리가 그날 미사에서 감사를 드리는 내용이 밝혀지고, 그런 이유로 인해 그곳의 무수한 천사들과 함께 주님의 영광을 끝없이 노래한다.
“그러므로 모든 천사와 대천사와 케루빔과 세라핌도 주님을 끊임없이 찬송하며 소리 맞춰 노래하나이다.”(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감사송)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대림 감사송1 외)
감사송에 등장하는 하느님께 찬미와 찬양의 합창단을 이루는 천사와 대천사, 케루빔과 세라핌, 좌품, 주품 천사들은 다양한 품계의 천사들이다. 중세 신학에 의하면 천사는 9품의 등급이 있는데 가장 윗 등급은 ‘사랍(Seraph)’과 ‘커룹(Cherub)’이라고 한다. 사랍의 복수형태가 ‘세라핌’이며, 커룹의 무리는 ‘케루빔’이다. 사랍은 이사야서 6장에서 이사야의 입을 숯으로 정화하며 그를 예언자로 거듭나게 하는 천사이다. 커룹은 사랍보다 훨씬 더 일찍 등장한다. 바로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뒤 생명나무를 지키도록 하느님께서 명하신 천사가 바로 커룹들이다.(창세 3,24 참조) 또한 궤약의 궤를 금으로 만든 커룹의 날개가 덮었다고 하니, 이미 구약에서 커룹은 하느님의 현존과 떨어질 수 없는 존재였다.
사랍(세라핌)과 커룹(케루빔) 다음으로 좌품, 주품 천사들, 그리고 대천사들이 등장한다. 우리가 9월 29일에 축일로 경축하는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는 구약과 신약 전반에서 활약하며 하느님의 중요한 심부름꾼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이들이 중요한 천사라는 것은 수많은 천사 중에 이들만이 이름을 지녔다는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미카엘은 ‘누가 하느님과 같으냐?’라는 뜻으로 요한묵시록 12장에서 만국을 다스릴 아이가 태어나기만 하면 삼켜 버리려는 붉은 용과 전쟁을 벌인다. 당연히 출산하려는 여인은 성모님이고, 아이는 예수님이며 사탄의 세력에서 이들을 보호하는 이가 바로 성 미카엘 대천사이다. 따라서 미카엘은 주로 멋있는 칼을 들고 용맹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가브리엘 이름의 뜻은 ‘하느님의 권세’이며, 그 이름대로 하느님의 권능이 아니면 불가능할 놀라운 소식을 산골 소녀 마리아에게 전한다. 그는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 28)라고 인사하며 성령으로 인한 마리아의 잉태를 알렸고, 성모님의 겸손에 찬 응답을 그대로 하느님께 전했다.
라파엘의 뜻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치유’이다. 바로 구약의 토빗기에서 라파엘이 토빗의 두 눈에서 하얀 막을 벗겨 그가 하느님의 빛을 보게 해 주었고, 라구엘의 딸 사라에게 붙어 있는 악귀를 몰아내어 토빗의 아들 토비야와 혼인하게 해 주었다.(토빗 3,17 참조)
이런 대천사들의 활동을 찬찬히 살펴 보면 결정적인 순간들이 보인다. 그저 평탄한 인생 여정의 느긋한 장면 속에 대천사들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시련과 갈등, 아픔과 절망 속에서도 하느님께 의탁하고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신실한 사람들을 하느님은 천사들을 통해 극적으로 구해 내시는 것이다. 이러한 천사들의 활동은 우리들 인생 여정에도 커다란 위안이 된다.
대천사들의 존재와 활동을 그려보며 당장은 평탄하지 않은 우리네 삶 안에서도 하느님 아버지의 선하신 계획은 천사들을 통해 우리를 보호하시고 좋은 길로 이끄신다는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하면 좋겠다. 실제로 우리 삶 안의 크고 작은 어려운 순간들이 지나고 보면 더 큰 선을 위한 하느님의 섭리였음을 발견하는 일이 늘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그럴 때 하느님의 놀라운 돌보심에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도리이다. 토빗기의 라파엘 천사의 마지막 분부처럼 말이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는데, 그것은 내 호의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니 날마다 그분을 찬미하고 찬송하여라. … 이제 이 세상에서 주님을 찬미하고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자, 나는 나를 파견하신 분께 올라간다. 너희에게 일어난 모든 일을 기록해 두어라.”(토빗 12,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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