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숙(1827-1873)
유숙은 철종조애서 고종 초기에 활동한 대표적인 화원화가이다. 아들 유영표도 화원화가이다. 중인들의 시사모임인 벽오사 동인으로도 참여하였으나 적극적이지는 않았다고 한다. 화원화가로서는 여항화가와 비교적 교류가 많은 편이다.
어진 제작에 여러번 참여함으로 당대에 최고의 화가로 대접을 받았다. 유숙의 산수화를 김정희가 평한 것을 보면 ‘활기가 모자라서 형식에 매인 감을 준다.’ 유숙이 활동한 시기는 화원화가풍의 그림이 퇴조하고, 김정희의 남종문인화풍이 유행하던 시기라서 김정희가 그런 평을 하였으리라고 본다.
해파를 비롯한 중국의 다양한 화풍이 들어도던 시기라서 유숙은 이러한 시대의 미술 사조를 담아냈다고 본다.
벽오사에 참여하였을 때는 유숙이 아직 젊은 나이였다. 고사인물화, 화조화, 풍속화, 등을 잘 그렸고, 남종문인화풍의 그림도 그렸다. 화원화가로서 재능이 뛰어나서 인물화를 잘 그렸다.
장승업도 유숙에게 배웠다고 전해지고---, 장승업은 중국화풍의 그림을 그렸으며, 그의 그림에 문인화풍은 볼 수 없다. 유숙이 다양한 화풍의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조선말의 조선화단이 외국 화풍도 수용하면서, 미술사조가 아주 다양하였음을 말한다. 그 사조를 섭렵하여 이 그림도, 저 그림도 잘 그렸다는 뜻이다.
그는 19세기의 화원화가로서, 전통성을 지키면서도 근대회화를 이어주는 과도기적 역할을 한 화가이다.
첫댓글 유숙- 철종조에서 고종초기에 활동한 화가이다. 화원화가로서 여항화가와 비교적 교류가 많은 편이다.
어진 제작에 여러 번 참여 하였으므로 당대엔 최고의 화가로 대접받았다. 유숙의 산수화를 김정희가 '활기가 모자라서 형식에 매인 감을 준다"라고 평했다.유숙이 활동한 시기는 화원화가풍의 그림이 퇴조하고 김정희의 남종문인화풍이 유행하던 시기라서 그런 평을 했다고 본다.해파를 비롯한 중국의 다양한 화풍이 들어오던 시기라서 유숙은 이러한 시대의 미술사조를 담아냈다고 본다.벽오사에 참여했을때는유숙이 젊은 나이였다. 고사인물화, 화조화, 풍속화 등을 잘 그렸고, 남종문인화풍그림도 그렸다. 화원화가로서 재능이 뛰어나서 인물화를 잘 그렸다. 장승업도 유숙에게 배웠다고 전해지고...장승업은 중국화풍 그림을 잘 그렸으며, 그의 그림에 문인화풍은 볼 수 없다. 유숙이 다양한 화풍의 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조선말의 조선화단이 외국화 풍도 수용하면서 , 미술사조가 아주 다양하였음을 말한다.
그는 19세기 화원화가로서, 전통성을 지키면서도 근대 회화를 이어주는 과도기적 역할을 한 화가이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