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6월 구례군 사동면 절골마을 백경선생님댁에서
1983년 10월 백경선생님께서 새벽에 거문고 풍류를 하시는 모습
1983년 10월
1983년 10월 백경선생님과 함께 마당에서
2012년 12월 15일 백경선생님 유작음향자료 CD 출반
국악으로 맺어진 인연의 끈...
지난 31년 전
그러니까 한소리회(지금의 한소리국악원) 창립 다음 해인 1981년4월26일 한국일보에
전남 구례의 단소명인 백경 김무규옹(1908~1994)을 다룬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당시 나는 단소가락에 푹 빠져 있었고
우리 단체가 마련한 일반인을 위한 단소 무료강습에는
100여명이 넘는 강습생이 몰려 신바람 날 때이다.
그 내용을 여러 회원 및 강습생과 이야기를 나눈 끝에 주말을 잡아 구례로 찾아뵙기로 했다.
따라나선 이가 나를 포함하여 최인미(후일 거문고, 지정스님), 박용구(악기점직원 후일 소금 대금),
폴(영국인, 연세대 한국어학당소속) 네 사람이다.
주말을 맞아 일과 후 밤 완행 열차를 타고 밤새도록 장장 10시간 남짓 달렸고,
다음날 오전에 도착하여 구례읍내에서 아침 겸 점심으로 비빔밥을 먹었다.
동행한 폴이 매워서 핫핫하며 쩔쩔매었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식사 후 택시로 읍내를 벗어나니 멀리 절골마을이 보이면서 웅장한 기와집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마을을 도착하니 담장까지 기와로 덥힌 큰집으로 뒷산은 대나무가 무성했고
계곡물은 흘러 도랑을 이루어 마당을 지나 담장 수채 구멍으로 내려가 담장 밖 동내 빨래터로 이어졌다.
안채와 바깥채 기와지붕은 웬만한 산사의 대웅전에 비견 될 만큼 웅장했고,
바깥채와 이어진 누각은 손 뻗으면 닿는 거리에 노송이 여러 구루가 있는
그 고장 천석꾼의 대가집을 나타내고도 남음이 있었다.
반갑게 맞아주시는 백경선생님과 첫 만남은
당시의 먼 거리와 동행한 분들의 사정으로 후일을 기약하고 얼마 후 일어나야 했고
그 후 1983년까지 두 번의 방문을 더 가졌다.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누면서 선생님의 단소, 거문고가락을 들으며 풍류에 대한 말씀은 이어졌다.
새벽녘 잠결에 거문고 소리가 귓전을 울려 눈을 떠보니
백경선생님은 아랫 목에 곧곧히 앉아 무릅위에 거문고를 얹고 줄을 고르면서 풍류 가락을 타고 계셨다.
아침 후에 집안 마당 곳곳을 둘러보니 모과나무엔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얼마 후엔 읍내에 사는 아드님이 어린 손녀 손자들을 데리고 왔다.
이어서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우리는 근처의 화엄사로 발길을 돌려 구경하고 귀경길에 두어 곳을 더 둘러 본 기억이 난다.
그 후 선생님은
1985년 구례향제줄풍류의 단소가락으로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83호로 인정받으셨고,
구례향제줄풍류전수관 개관 등 많은 활동을 하신 후 1994년 8월 타계하셨다.
선생님과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30여년 후인 올해
선생님이 1979년9월18일 서울 공간사랑에서 연주한 유작 음향자료를
손자 김정승(대금, 국립국악원 정악단)에게 받아 구례문화원과 구례향제줄풍류보존회의 제작의뢰로
단소독주 CD음반을 내손으로 만들게 됨은
참으로 각별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2012.12.14. 진암 양정환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