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τῇ τρίτῃ ἡμέρᾳ ἀναστάντα ἀπò τῶν νεκρῶν,
tertia die resurrexit a mortuis,
The third day he rose again from the dead.
사흘만에 죽은 者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사흘만에 죽은 者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주님께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것은 성부와 성령께서 일으키신 것이기도 하고 주님 자신의 능력으로 스스로 일어나신 것이기도 하다. 주님께서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원리는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신비이기 때문에 이를 파헤치는 것은 도리어 우리 신앙을 위험에 빠뜨리게 한다. 다만 주님의 부활하심은 육신으로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장차 반드시 다시 살리실 것이라는 확실한 보증이 된다는 것을 믿고 고백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성도의 신앙은 주님의 죽으심에만 머물러서는 안되고 주님의 부활하심을 바라보아야 한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인성은 죽으시기 전 인성에 비해서는 분명 많은 부분이 새롭게 변화되셨으나 주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신 바 아직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받지 못하셨다고 하셨으므로 성육신 이전의 영광을 완전하게 회복하신 것은 아니셨다. 그러나 영광을 받지 못하신 인성으로도 물질 세계를 구성하는 3차원 시공간의 원리에 구속받지 않으시고 초월해 계셨다.
ἀνελθόντα εἰς τοὺς οὐρανούς, καθεζόμενον ἐν δεξιᾷ Θεοῦ Πατρὸς παντοδυνάμου,
ascendit ad caelos,sedet ad dexteram Dei Patris omnipotentis,
He ascended to heaven and is seated at the right hand of God the Father almighty.
하늘에 오르시어 全能하신 아버지 하나님 右便에 앉아 계시다가,
하늘에 오르사 全能하신 하나님 右便에 앉아 계시다가
주님의 인성은 하늘에 오르시고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심으로써 성육신 이전의 영광과 권세를 회복하셨다. 로마 카톨릭은 성찬 시에 나누는 떡이 하늘에 계신 주님의 실제 살로 변한다는 화체설을 주장하고, 루터교회는 성찬의 떡과 주님의 살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공재설을 주장하는데 이는 우상숭배적인 그릇된 견해이다. 한편 칼빈 선생을 비롯한 신앙개혁가들은 화체설과 공재설을 거부하고 성찬의 떡은 주님의 영적인 임재를 상징하는 것이라는 타당한 견해를 내었어도 그 근거로 주님의 인성이 하늘에 고정되어 계셔서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시공간에 임하실 수 없다고 내세운 것은 불찰이라 할 수 있다. 부활하셔서 하늘로 오르신 주님의 인성은 영원 전 하나님의 독생자로서의 인성을 회복하신 것이므로 태초에 창조하셨던 물질 세계의 원리와 체계에 구애받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밧모 섬에 유배 된 요한 사도에게 나타나셔서 당신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시라 하신 것은 당신의 인성께서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아게신 것처럼 성육신 전에도 그렇게 계셔오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요한 사도가 본 영광의 주님의 모습과 구약시대 선지자 에스겔과 다니엘이 본 영광의 하늘의 사람의 모습이 동일한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 땅의 제자들과 성도들을 버려두시고 혼자 하늘로 가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성령 하나님을 보혜사로 보내주시고 하늘의 새 예루살렘 성을 지으시기 위해서 오르신 것이었다.
ἐκεῖθεν ἐρχόμενον κρῖναι ζῶντας καὶ νεκρούς.
inde venturus est iudicare vivos et mortuos.
From there he will come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者와 죽은 者를 審判하러 오십니다.
저리로서 산 者와 죽은 者를 審判하러 오시리라
다시 오실 주님의 심판은 크게 세 종류로 이뤄진다. 첫째 심판은 산 자와 죽은 자를 분리하는 심판으로서 구름을 타고 이 땅에 오실 때 이 땅의 모든 성도들을 부활시키시고 변화시키시고 하늘로 들려올리심으로써 행하신다. 이 심판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시기로 선택하신 성도들을 미리 정하셔서 생명책에 기록해 놓으심에 따른 것이므로 대상은 절대불변이나, 생명책에 기록된 산 자들의 구원 방식은 모두 제각각이며 매우 다양하다. 둘째 심판은 부활 변화 승천시키신 산 자들에 대한 심판으로서, 성도 각자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어떤 죄들을 사함 받았는지와, 어떤 선행들을 행하였는지와, 그 선행들에 대해 어떤 상급이 주어지는지와, 새 예루살렘 성에서 어떤 지위를 가지게 되는지에 대한 판결을 받게 된다. 이 때 성도들은 자신들이 이 땅에서 얼마나 크고 심각한 죄들을 지었는지와 죄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언행들이 사실은 죄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에 대한 무안함과, 그러한 죄들이 전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써 용서를 받은 것에 대한 망극한 성은과, 자신이 선행이라 여겼던 것들이 사실은 선행이 아니었고 선행이라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 사실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선행이었음을 알게 된 놀라움과, 그런 미미하고 하잘 것 없는 선행을 가지고 감히 비교할 수 없는 하늘의 고귀한 상급을 선사하시는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게 될 것이다. 셋째 심판은 창세 전부터 구원에서 배제 된 죽은 자들에 대한 심판으로서 그들은 주님의 구원의 은총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오로지 자기들 각자의 악한 행위들에 따른 심판을 받게 된다. 가장 처량한 죽은 자들은 비천하게 살면서도 주님을 믿지 않은 자들이고, 가장 악랄한 죽은 자들은 자기의 탐욕을 위해 교회와 성도들을 악용하는 자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