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7. 23. 목요일
임은미(유니스)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나를 고소할 이는 더 이상 없다!" 요한계시록 12장
어제도 새벽에 일찍 일어났다. 전날 밤에는 아기를 돌보느라 늦게 집에 들어왔지만, 새벽예배에 가야 한다는 마음이 있어서 가능한 한 빨리 잠자리에 들었다. 피곤했지만 새벽을 깨워 주님께 나아갈 수 있음이 감사했다.
새벽예배를 드리러 운전하며 교회로 향할 때면 주님과 대화를 나누곤 한다.
주님이 때로는 먼저 나에게 질문하신다.
"너는 내가 그렇게도 좋니?"
그러면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그럼요."
그러면 주님이 또 물어보신다.
"너는 왜 내가 그렇게 좋니?"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주님이 저를 좋아하시잖아요."
그리고 다시 묻는다.
"주님은 저를 왜 그렇게 좋아하세요?"
운전하는 시간은 나에게 참 귀한 기도의 시간이다. 혼자 있는 공간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주여"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를 시작하며 나에게 다가올 모든 악한 공격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끊어 내고 선포한다. "예수의 이름으로 파쇄될지어다. 내게 감히 다가오지 말지어다." 믿음으로 선포하며 하루를 맡긴다.
기도하면 할수록 신기한 것이 있다. 기도를 많이 하면 기도 거리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아진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하나님께 맡겨야 할 것들이 더 많이 보인다.
그만큼 하나님과 더 깊이 대화하게 되는 것 같다.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내비게이션을 보며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내비게이션은 내가 길을 잘 가고 있을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괜히 계속 지시하지 않는다. 하지만 방향을 바꿔야 할 때는 분명한 음성으로 알려 준다.
그 모습을 보며 하나님도 그러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바른길을 걷고 있다면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이 아니라 신뢰하며 지켜보고 계시는 것일 수 있다.
반대로 방향을 수정해야 할 때는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돌이키게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침묵이 곧 하나님의 부재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내가 지금도 그분의 인도하심 가운데 잘 걸어가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오늘도 삶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통해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신다. 그래서 오늘도 묻고, 오늘도 듣고, 오늘도 대화한다.
주님과 이렇게 동행하며 살아가는 시간이 참으로 귀하다.
우리말성경 요한계시록 12장
10. 그때 나는 하늘에서 큰 음성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제 구원과 능력과 우리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확립됐으니 이는 우리 형제들을 고소하던 이,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으로 그들을 고소하던 이가 쫓겨났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12장은 하늘에서 벌어진 영적 전쟁을 보여 준다.
미가엘과 그의 천사들이 용과 싸우고, 결국 용은 하늘에서 쫓겨난다.
9절은 그 용을 "옛 뱀, 곧 마귀요 사탄"이라고 분명하게 밝힌다.
그리고 10절은 사탄이 어떤 존재인지를 한마디로 설명한다.
"우리 형제들을 고소하던 이"
'고소하다'라는 말은 헬라어 *카테고레오(katēgoreō)*로, 법정에서 상대의 죄를 들추어 정죄하고 기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어 성경은 사탄을 'the accuser', 즉 '고소하는 자'라고 번역한다.
사탄은 사람을 죄짓게 만드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죄를 지은 후에는 그 죄를 끊임없이 들춰내며 하나님 앞에서 정죄한다.
"너 같은 사람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너는 또 실패했잖아.", "너는 자격이 없어."라는 거짓말을 끊임없이 속삭인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놀라운 승리를 선포한다.
"고소하던 이가 쫓겨났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인해 사탄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을 정죄할 권세를 잃었다.
우리의 죗값은 이미 예수님께서 담당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고발하던 사탄의 자리는 사라졌고, 이제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의롭다 하신다.
그래서 믿는 자는 더 이상 정죄 아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은혜 아래 있는 존재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에도 참소자의 음성이 얼마나 자주 들려오는지 돌아보게 된다.
교회에서는 열심히 섬기다가도 집에서 부족한 모습을 보이면 "네가 교회에서는 그렇게 헌신하면서 집에서는 왜 그러냐"라는 마음이 우리에게 들 수 있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최선을 다했어도 "더 잘해 줄 수 있었는데", "내가 부모로서 부족했다"라는 죄책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사역하다가 실수하면 "역시 나는 안 되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마음을 짓누른다.
그런데 이런 생각의 결과를 보면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숨게 되고, 감사보다 후회가 커지고, 은혜보다 정죄가 마음을 지배한다.
이것이 바로 참소자에게 넘어갔다는 이야기가 된다.
하나님은 죄를 깨닫게 하셔서 회개하게 하시지만, 사탄은 죄를 이용해 나를 절망하게 만든다.
성령님은 회복으로 이끄시지만,
참소자는 포기로 이끈다.
그러므로 내 마음에 정죄와 죄책감이 밀려올 때마다 먼저 분별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음성인가?
참소자의 음성인가?
오늘 말씀은 이미 답을 준다. 고소하는 자는 쫓겨났다.
나는 더 이상 참소자의 말에 끌려다닐 이유가 없는 것이다.
넘어질 수는 있지만 정죄 받는 존재는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나의 의가 되었고, 하나님은 오늘도 나를 정죄하기보다 다시 일으켜 세우신다.
요즘 내가 듣는 "참소자"의 음성이 무엇인가?
내가 그 참소를 동의하는가?
그래서 나에게 일어나는 반응은 무엇인가?
감사를 잃게 만들고
기쁨을 잃게 만든다면
그것은 "참소자의 목소리"에 반응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어제는 열 받는 일이 있었지만
"참소의 영"에게 휘둘림 받지 않았습니다.
나는 나의 자리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참소의 영에게 휘둘림 받는 자의 자리에 있지 않습니다.
나는 그리스도 군사입니다.
그냥 군사도 아니고 저는 장군급입니다.
적진에 들어가서 적장의 목을 베고 와야 하는 자리가 저의 자리입니다.
그러니 저에게 얼마나 많은 어둠의 영들이 벌집 쑤시듯 저의 마음과 재정과 건강과 사역과 관계들을 공격하지 않을 리가 있겠습니까!
ㅎㅎㅎ
예수의 피!
예수의 이름!
예수로 옷을 입고
예수의 향기를 뿜으며
새 하루를 시작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는 새벽기도 가는 길에 사고가 날 뻔한 일이 있었지만, 곡예(?)를 하듯 잘 사고를 피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새벽예배를 마치고 "만남 사역"이 있습니다.
하늘나라 이야기로 하루를 풍성하게 해 주실 주님 감사드립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쁨을 넘어서 감동을 받으시면 참 좋겠습니다.
작정서 점수: 100점
💕 사랑하는 그대여 💕
2026. 7. 23.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출. 석. 부르고 있습니다.
대답하셨나요?
“사랑하는 나의 아들
사랑하는 나의 딸
너의 마음속에
작정한 것이 있느냐?
잘 지킬지니라.
그러나 작정한 것을
못 지켰을 때는 나의
은혜를 기억할지니라.
참소하는 영에게
휘둘림 받지 말고
나의 은혜를 기억할지니라.
네가 중요하게 잘 알아야
하는 것은 네가 은혜를
입었다는 것이다.
그 은혜 때문에 너의
많고 많은 모든 죄는 이미
사함을 받았다는 것이다.
너는 그래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새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너도 생각해 보렴.
새 피조물!
금방 새로 태어난 아이에게
무슨 과거가 있겠니?
그러니 과거를 가지고
계속 집요하게 너에게
다가오는 참소의 영을
너는 진리로 대적할지니라.
너는 새로운 피조물이라.
그리고 그 새로운 피조물은
네가 구원받은 그날
새로운 피조물뿐 아니라
어제까지, 바로 10분 전,
1초 전까지의 너의 모습,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기쁘시지 않은 그런
모습이라면 이전 것이
된 것이라.
네가 회개했으니까.
그러니 회개는 꼭
해야 하는 것이고,
네가 회개했으면
더 이상 참소의 영에게
절대로 휘둘림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너는 알아야 할지니라.
진리가 너를 자유케 하리라.”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축복합니다.
오늘도 그대의 최고의 날입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말은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대사여'를 줄여서 말하는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