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허 제도의 개선 필요성 ]
1486년 베네치아에서 최초로 특허 등록 제도가 도입된 이후 '법으로 지식재산권을 보호해 주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혁신을 창출한 사람에게 독점권을 통해 보상을 받도록 해주고
둘째, 그 기술을 공개함으로써 나머지 사람들이 해당 아이디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여 더 나은 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것입니다.
특허는 새로운 발명과 발견을 법으로 보호해 줌으로써 기술혁신을 촉진하는 긍정적 기능을 수행해 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특허가 오히려 기술 발전을 저해하고 인류의 삶을 개선하는 데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균형추가 지나치게 혁신을 이룬 사람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것이죠. 특허에 부여된 독점적 권한으로 인해 다른 사람이 특허에 포함되어 있는 지식을 이용하여 또 다른 지식을 만들어내거나 이를 상용화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황금쌀(Golden Rice)'입니다. '쌀'은 같은 면적에서 밀보다 더 많이 생산되고 영양도 매우 풍부한 음식이지만 비타민 A가 부족합니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은 일평생 쌀만 먹고 살다가 비타민 A가 부족하여 매년 200만명이 사망하고 50만명이 실명하고 있습니다.
2000년에 스위스와 독일의 연구팀이 몸에서 비타민 A로 전환되는 베타카로틴(β-Carotene)을 생합성할 수 있는 유전자 2개를 쌀에 이식했습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황금쌀'입니다. 당근을 주황색으로 보이게 하듯이 베타카로틴이 함유된 이 쌀은 노란색을 띠고 있어서 황금쌀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황금쌀을 상용화하려면 약 70개의 특허를 소유하고 있는 32개의 특허권자와 별도로 협상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황금쌀은 여전히 대량 생산되고 있지 않습니다. 많은 연관 지식이 특허의 보호를 받고 있으면 새로운 지식의 개발이나 상용화에 수반되는 비용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장하준 교수는 ‘맞물린 특허(interlocking patents)’,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특허 덤불(patent thicket)’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예술에서 바이오테크,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야에서 ‘특허 덤불’ 때문에 혁신이 지체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과학자가 중요한 기술적 진보를 이루고자 한다면 변호사 부대가 선발대로 나서서 ‘특허 덤불’을 헤쳐 나가면서 길을 터 주어야 하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학자들은 현재의 특허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특허 기간을 단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대부분의 특허는 20년을 보호받는데 특허 보호기간을 줄이면 공공의 영역에서 활용할 수 있는 지식이 더 많아지고 수백만 명의 삶을 개선하거나 생명을 살리는 데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특허의 또 다른 개선방안으로는 '포상제도'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특허를 통해 일정 기간 지적재산권을 보호해 주는 대신 일회성 보상을 제공하고 새로운 기술이 나오자마자 공공재산으로 만드는 방법입니다.
영국에서는 1714년에 2만 파운드의 상금을 내걸고 공개 모집을 통해 바다 위에서 경도를 측정할 수 있는 마린 크로노미터(marine chronometer)의 발명을 이끌어낸 적이 있습니다. 통조림 기술도 나폴레옹이 상금을 걸고 공모를 했기 때문에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요즘과 같은 급속한 기술혁신의 시대에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아무 가치도 없는 기술이 될 특허를 갖고 있기보다는 포상 제도를 통해 일회성 보상을 받는 것이 발명가들에게는 더 큰 유인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모든 제도와 마찬가지로 특허 제도 역시 그 제도로 인해 얻는 것이 잃는 것보다 더 많았기 때문에 도입되었습니다. 하지만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아졌다면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옳습니다.
특허 제도의 개선 필요성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더라도 이를 실현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뚫고 지나가야 할 ‘기득권 덤불’이 ‘특허 덤불’만큼이나 두터우니까요.
- 산업연구원 명예연구위원, (사)지역산업입지연구원 원장 홍진기
첫댓글 홍원장의 특허권에대한 글이군요!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