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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신혜령의 작은 도서관 원문보기 글쓴이: 신혜령
여러분, 안녕하시죠?
3월이 완전히 가기 전에 책을 추천하게 되어 기쁩니다. 이번 서평은 더욱 의미가 남다른데요.
처음으로 희망 서평 신청을 받아 쓴 감상문이기 때문이죠. 닉네임 회오리 씨가 방명록에 신청해주셨답니다.
도서명: 정약용의 목민심서 and 목민심서
저자: 정약용
펴낸이: 김영우 김은희(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and 일신서적출판사
* 이 책들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재활통신망 넓은마을 도서관의 5번 인문과 6번 역사 코너에서 각각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 소개글 서평
이번 감상문은 기록적인 서평이다. 왜냐, ‘작은 도서관 카페’에서 처음으로 ‘희망도서’ 신청을 받아 읽은 책이기 때문이다. 닉네임 ‘회오리’ 씨가 <방명록>을 통해 신청해 《목민심서》를 펼치게 되었다. 저자는 조선 후기 실학자 다산 정약용 선생이지만 고전인 만큼 펴낸이 및 해설이 다양하다. 그래서 어떤 《목민심서》를 고를까 하다가,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자료로 구비된 한국철학사상연구회 기획 《정약용의 목민심서》와 역사서로 분류되어 비교적 전문에 가까운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 일신서적출판사 《목민심서》 총 2권을 보기로 했다. 요컨대, 《정약용의 목민심서》는 주해집이고, 그냥 《목민심서》는 원전인 셈이다. 자고로 이런 고전은 참고서와 원문을 같이 두고 읽어야 하는 법!
《목민심서》, 18년간 유배지에서 집필한 책
《목민심서》에 관한 내용을 논하기 전에 책의 저자 다산 정약용 선생에 대한 것을 살펴보고 가야겠다. 이분, 아주 대단한 위인이라 그냥 지나쳐 넘길 수가 없다. 무엇보다 내가 중학교 국사 과제에서 신세를 진 인물이라서 말이다. ‘역사 속의 한 인물을 골라 그 인물의 관점에서 상소문 쓰기’가 숙제였었다. 당시 나는 실학파의 대명사 중 한 사람, 여남 박지원을 냅다 골랐는데, 그 상소문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의 이름값도 슬쩍 빌려왔었다. 정약용은 조선 후기 영조 때 태어나 정조의 등용을 받았고, 헌종 때 75세로 세상을 뜬 인물이다. 어릴 때부터 천재성을 보였는데 특히 시를 그렇게 잘 지었단다. 또 역술이나 수학 등에도 능했다고 한다. 수원화성의 설계 및 축조에 참여했고, 거중기를 제작해 토목공사를 도왔으며, 한강 배다리를 만드는 기지를 발휘하기도 했다. 그는 당시 맹자로부터 이어진 성리학 왕도와는 좀 다른 노선을 취했다. 성리학이 뭐냐 하면, 도덕적인 군자를 왕으로 뽑아야 잘 산다는 기틀 아래 인간의 윤리 의식을 최우선으로 강조하는 학문이다. 다른 거 다 떼고 대충 요약하면 이렇다는 거니까, 자세한 거 알고 싶으면 알아서 인터넷 뒤지자.
여하튼 성리학에서는 왕이든 관리든, 좌우간 높은 자리에 앉으려면 일단 청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다산 정약용은 도덕적인 특성에 더해 실행력도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요컨대 품행단정, 청념결백하면 뭐하냐는 뜻이다. 국정 운영하고 실행하는 능력이 말짱 꽝이면, 윤리관이고 뭐고 다 소용없다는 거다. 맞는 소리고 옳은 말씀이다. 백날 공약만 내세우다가 정작 당선이 된 후에는 정책 실행을 할까 말까 하는, 오늘의 인사들을 보면 다산 정약용 선생은 뭐라 하실지 참 궁금하다. 다산 선생은 학문은 현실의 부조리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며, 그렇지 못한 학문은 반푼짜리일 뿐이라고 주장했는데, 바로 이 점이 상업적 행위로 부국강병을 이루자는 이용후생과 농업 정책에 기반을 둔 경제치용, 근대적인 학문을 주로 연구한 실사구실로 대변되는 실학을 논할 때 다산 정약용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가 됐다.
“소위 사대부란 것들이 무엇이란 말이냐. 나라를 위한 세 가지 계책을 들었건만, 너는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한다면서 그래도 신임받는 신하라 하겠는가? 신임받는 신하라는 게 참으로 이렇단 말이냐.”
‘실학’ 하면 떠오르는 고전, 여남 박지원의 <허생전>이다. 당시 조선의 실상을 정나라하게 풍자한 이 고전으로 나는 실학에 푹 빠지게 되었더랬다. 허생이 실리를 차리는 계책, 즉 인재등용을 위한 임금의 삼고초려, 망명한 명나라 장졸들의 추대, 청나라와의 교류를 내놓았으나, 전부 고개를 가로저을 뿐인 관리의 모습에서 신임받는 신하 한 명 가지고는 어쩌지 못하는 중신들의 꼬장과 함께 예나 지금이나 높으신 놈들은 비실용적으로 허례허식만 찾으며 사는구나 하는 깨달음도 얻었다. 세월이 이렇게나 흘렀는데 왜 윗물은 안 바뀔까, 무슨 ‘윗물 비리 보존의 법칙’ 같은 게 있는 건가 온갖 상상도 했었다. 비록 매점매석 등 수단이 바르다 할 수 없으나 나름대로 재기를 갖춘 인재지만 벼슬길에 오르지 못한, 혹은 오르지 않은 허생원처럼 다산 정약용도 슬기를 갖췄으나 백성들을 위해 나설 기회가 적었다. 아니, 거의 없다시피 했다. 정조의 총애를 받아 홍문관 수찬, 경기도 암행어사, 병조 참의, 우부승지, 곡산 부사 등 관직에 오르기도 했으나, 정조 승하 후에는 외세를 끌어들여 천주교 박해를 막고 종교적 자유를 얻고자 했던 역모 사건 ‘황사영 백서’와 천주교 탄압 ‘신유박해’에 엮여서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정약용이 영세를 받은 건 물론 아니었다. 하지만 조선에서 최초로 세례를 받은 이승훈·이벽과 친인척 관계여서 말이다. 그 본인도 관심을 갖고 학문적 측면에서 천주교를 연구한 적도 있었다. 게다가 당시 그놈의 당파 정치에 입각해 노론 벽파가 득세한 상황이었기에 남인 시파에 속한 정약용의 입지는 더욱 좁을 수밖에 없었다. 영조와 정조 때 분당정치를 타파한다며 탕평책을 실행한다고 애썼지만, 뭐 탕평채는 맛있어도 탕평책은 사실상 이름만 탕평이지 속은 유명무실했으니..... 에라이!
그러나 정약용은 18년의 걸친 유배생활을 겪으면서도 백성들의 실상에 귀를 기울였고, 유배가 풀린 후에는 고향으로 내려가 후학 양성 및 저작 활동에 매진했다. 그리하여 《목민심서》를 비롯해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500여 권의 저술을 남겼다.
파릇한 새싹 사또 목민관을 위한 마음의 길라잡이 《목민심서》
《목민심서》는 백성을 기르는 데 성심을 다하고자 하는 목민관들을 위한 일종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겠다. 유배생활을 하며 백성들이 당하는 온갖 보지 못할 꼴을 실사로 목격한 정약용 선생이 문드러지는 속을 부여잡고 목민관의 자질은 이래야 한다 강변함과 동시에 그가 접한 고을의 부정·비리를 수록한 것이다. 책은 부임, 율기, 봉공, 애민, 육전, 진황, 해관 등 12편에, 각 편을 다시 6조로 나누어 총 72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만약 원본에 가까운 쪽을 보고 싶다면, 일신서적 출판사의 《목민심서》를 보길 권한다. 물론 한국철학사상연구회가 기획한 《정약용의 목민심서》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이쪽은 문체가 친숙해 청소년도 읽기 쉽고 핵심 내용은 대부분 들어 있다. 그럼 다산 정약용 선생이 《목민심서》에서 목민관의 첫 번째 덕목으로 꼽은 사항은 무엇일까?
“부임6조. 부탁하지 말기 , 인사하지 말기, 거절하기!”
수령은 한 지역의 입법·행정 및 사법·군사를 총괄하는 관리였다. 그리고 부임이란 고을 수령에 입명되는 첫단추를 말한다. 부임6조는 수령의 부임 과정에서부터 그 자질을 논하고 있는 대목인 셈이다. 물론 위의 발췌한 부분만 보면 좀 이상하게 보일 거다. 부탁하지 말고, 인사하지도 말고, 죄다 거절하라니? 마지막이야 뭐, 뇌물이나 청탁을 거부하라는 뜻이겠거니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앞에 두 가지는 의아하다. 부탁은 뭐고, 인사는 왜 하지 말라는 걸까? 고마운 사람에게 인사 안 하면 그 무슨 참된 인물인가? 싸가지 없다고 인성 논란에 빠지지 않을까?
“수령살이 낙이라 이르지 마소 / 수령살이 오히려 근심뿐이라 / 공판정은 소란하기 저자 같고 / 소송장은 산같이 쌓여 있거니 / 가난한 마얼에 가서 모진 세 지우고 / 옥에 넘친 죄인들 가엾이 보노라니 / 언제 한번 웃어 보지도 못하는데 / 어찌 마음 놓고 노닐 수 있으랴.”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는 위의 시를 통해 수령살이가 결코 녹녹하지 않음을 표현했다. 정확히는 관직의 부질없음을 나타낸 건데, 아무튼 일부 발췌한 내용만 보면 수령살이라는 게 참 3D 업종에 버금갈 만큼 극한 직업으로 묘사된다. 그런데도 조선시대 신하들은 수령에 부임되기를 바랐는데, 그 이유는 늙으신 부모 공양하기 위해서란다. 백성을 돌보기 위함도 아니요, 순전히 자기 개인사를 이유로 한 지역을 맡겠다고 하니, 이거야 원, 동기부터가 불순하기 짝이 없다. 이래가지고 고을이나 성심성의껏 다스리겠나. 웃긴 건 효를 강조했던 조선시대 때는 부모님 공양 운운하면서 부임을 요청하면 어지간한 일 아니고서는 ‘프리패스’였다는 사실이다. 맙소사! 제사보다 젯밥도 유분수지.
이런 풍조를 접한 정약용 선생은 그래서 부모 모시기를 이유로 목민관이 되길 부탁하는 녀석들은 죄다 싹수가 글렀다고 한 것이다. ‘부탁하지 말기’는 이런 뜻이다. 단, 백성을 돌보겠다는 신념 하에 스스로 자신을 추천하며 부탁하는 경우는 예외라고 한다. 근데 선거에 뛰어들며 지역을 위해 이 한몸 바치겠다고 외치다가 막상 당선이 되면 제 잇속 챙기기에 급급한 작자들이 판치는 오늘을 보면, 정치판이 곧 사기판이 된 것 같은데..... 이 난국을 보고 다산 정약용 선생은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까?
다음으로 ‘인사하지 말라’는 건, 자신을 목민관으로 뽑아준 윗분에게 감사하다고 고개 숙이지 말라는 뜻이다. 왜냐, 그 윗분은 나랏일에 필요하고 그의 자질이 적당하다는 판단 아래 부임을 추진한 것이기 때문이다. 목민관으로 뽑아주어 고맙다고 할 이유가 없다는 거다. 또 그런 식으로 인사치례를 닦다 보면 나중에 목민관으로 활동할 때 부임을 도와준 이에게 은연중 고개를 숙이게 될 것이고, 그것은 일처리에 부정적인 요소가 될 공산이 매우 높다. 자고로 일에는 사적인 감정이나 관계를 개입시켜서는 안 되는 법! 그리하여 ‘인사하지 말라’가 나왔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공천을 받았어도 당대표나 당원들의 눈치를 살필 이유는 없다는 뜻이겠지. 목민관, 즉 공무원이 눈치를 볼 대상은 딱 하나, 국민들뿐이니까. 문제는 이 이론적인 기본은 그저 이론일 뿐이라는 점이다.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는 거.
끝으로 ‘거절하기’는 다들 알 테니 생략하자. 나랏일을 하는 사람은 누가 사주는 생일상도 함부로 받으면 안 되는 게 옳은 처신일지니.....
그 외에도 율기6조에서는 목민관의 올바른 경제관념을 논하고, 사심을 버리고 나랏일에 최선을 다함을 이르는 ‘멸사봉공’에서 표제를 따온 봉공6조에서는 사사로운 마음 이전에 목민관의 준법정신을 강조한다.
가령 율기6조에서는 목민관이 꽤나 극한 직업이라는 걸 시사하는데, 왜냐하면 근검절약과 시간외 근무가 보통 수준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구멍난 양말을 꿰매어 신는 수준이 기본이고, 관공서 비품은 전부 백성 세금으로 장만한 거니 완전히 골동품 수준이 되기 전에는 함부로 버려서는 안 된다고 한다. 왜냐, 그것도 낭비기 때문이다. 근검절약은 비단 물품뿐 아니라 사람도 해당된다. 정약용은 특히 아전의 수를 줄이라고 권하는데, 인원을 감축하면 바빠질 테고, 그래야 백성들 수탈할 짬이 없기 때문이란다. 글쎄, 요즘은 민원이 나오면 ‘인력이 부족해서.....’란 마법의 주문을 읊던데..... 《목민심서》에서는 오히려 인원을 줄이라고 하니, 공무원들이 이 내용을 보면 뭐라고 할까? 공무원이 많아서 구청에 가면, 한가함에 자리만 지키는 공무원들이 많다던 ‘카더라 주장’을 곧잘 들어온지라 반신반의하다. 하지만 철밥통 특성 탓에 공무원 조직이 비대해진 것도 사실이다.
한편 봉공6조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나랏법을 잘 준수하라’로 요약이 가능하다. 최근 LH국가기업에서 단체로 부동산 및 토지 투기를 저질러서 뉴스에 뜬 적 있다. 사실 그랬다더라 듣기만 해서 그런가 보다 할 뿐이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어디 한두 번 비리와 배임을 저지르나 뭐. 하기사 다 함께 저지른 건 꽤나 드문 경우긴 하다. 공직 종사자들은 업무중 알게 된 정보를 사사롭게 이용하면 안 된다고 하던데..... 법전 운운하기 전에 윤리·도덕 의식이 부족한 거 아닌가 싶다.
“노전 마을 젊은 아낙 통곡 소리 길기도 하다 / 현문 향해 슬피 울다 하늘에 부르짖네 / 싸움터 나간 지아비가 못 돌아오는 일은 있어도 / 예부터 사내가 남근 자른다는 건 들어 본 일이 없다네 / 시아비 상복 막 벗고, 갓난애 배냇물도 마르지 않았는데 / 삼대가 다 군적에 올랐네 / 가서 호소하고 싶지만 관청 문지기는 호랑이처럼 서 있고 / 이정의 호통에 외양간 소만 없어졌네 / 칼 갈아 방에 드니 유혈이 낭자한데 / 자식 낳아 액운을 당했다 스스로 탄식하네 / 궁형이 어찌 죄 있어서만 그러하랴 / 아이 거세하는 것도 또한 슬픈 일일세 / 생하는 이치 하늘이 준 바이고 / 하늘의 도는 아들을 주고 땅의 도는 딸을 주지 / 짐승들의 새끼 없음도 슬프거늘 / 생민들의 자손 잇기야 더할 말 있으랴 / 부호들은 일 년 내내 풍악 울려 즐기지만 / 쌀 한 톨 비단 한 치 바치는 일 없구나 / 다 같은 한백성인데 후박이 웬말인가 / 여관에서 거듭거듭 시구편을 외노라 - 《목민심서》 <애절양> 발췌”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정약용의 목민심서》든 일신서적출판사의 《목민심서》든, 이 <애절양>이 가장 처참한 실상이다. 조선시대 후기, 백성에게 지우는 군포에 관한 폐단이 그렇게나 심했단다. 미친 관리들이 죽은 사람에게까지 세금을 먹이고, 집에서 기르는 개한테까지 사람 대접하며 군적에 올렸다고 한다. 일부러 누가 조사하지 않으면 쉬쉬하며 묻히던 시절이라 가능한 수작질이었다. 물론 관리들이 위나 아래나 싹 다 무능했던 탓이 크다. 오늘날에는 이렇게까지 무식한 비리가 없을지는 몰라도 수십억 비자금 포탈이라든가, 실효성 없이 개발만 하고 보는 낭비라든가, 그러면서 나중에 알고 보니 은근슬쩍 뒷주머니를 찼다더라 하는 게 밝혀지는 뉴스를 보면..... 너도 나도, 누구나 우리 모두 철밥통 공무원 시험을 치르자는 풍조가 문제인 것도 같다. 모든 직업이 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사명감이나 양심이 없는 근무는 애꿎은 민간인 피해만 유발시키기 마련이다.
“밲성이 목민자를 섬기고, 또 전송도 하고 환영도 하며, 고혈과 진수를 짜내어 목민자를 살찌우고 있으니, 백성이 과연 목민자를 위하여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건 아니다. 목민자가 백성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옛날에야 백성이 있었을 뿐 무슨 목민자가 있었던가. - 《정약용의 목민심서》 일부 발췌”
정약용이 저술한 《목민심서》를 보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저자 다산 정약용의 사상이었다. 아무리 후기라지만 조선시대 인물 치고 생각이 상당히 깨어 있어서 말이다. 위의 문장만 해도 그렇다. 목민자가 백성을 위해 있다, 옛날이야 백성만 있었지 목민자가 어디 있었겠냐는 대목을 보면, 사대부랍시고 허식만 차리는 양반과 같은 신분의 학자가 썼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저 문장에서 몇 보만 더 나아가면 거의 민주주의 수준 아닌가? 물론 정약용은 유학자였고, 《목민심서》에도 그런 면모가 드러나긴 한다. 이를테면 예전6조의 3번째와 5번째 항목에서 수령의 업무 제1순위는 백성을 지도편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못박은 점이나 위계질서와 신분의 차이를 엄격하게 하라는 충고, 또 나라의 위패를 모신 문묘의 제사는 정성껏 드려야 한다는 사항이 그렇다. 솔직히 이런 대목 아니었으면 다산 이 양반이 유학자였다는 걸 깜빡할 뻔했다. 그럼에도 다산의 사상은 오늘날에 적용해도 구구절절 옳은 소리라고 할 정도로 근대적이었다. 그가 《목민심서》에서 제시한 지침이 잘만 적용됐어도 조선은 조금 더 살기 좋아졌을 것이다. 뿐이랴, 갑오계혁이니 유신정변이니 하는 몸살을 겪지 않고서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근대화를 겪었을지 모를 노릇이다. 하지만 이렇게 바른 소리만 쓴 양서임에도 이 책은 세태에 적용되지 못했다. 좋은 책에 적힌 바른 말씀을 읽고 들어도 실행할 마음가짐이 된 인사들이 없었고, 설령 실행할 마음이 있다 해도 정세 환경이 영 안 따라줬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도 이 《목민심서》는 세태에 적용되지 못하긴 마찬가지 꼴이다. 이유는 뭐, 과거와 동일하다. 배울 만큼 배웠고 공무원 시험에 붙은 작자들이 죄다 이 책을 무시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지금 춘추는 망했습니다요. 아무리 착한 분이 와서 다스린다 해도 어쩔 수 없으니까 돌아가신 게지요. 관가 창고는 다 비었고, 성실한 자들은 다 도망했습니다. 지금 남은 건 다 아귀요, 갈마라서 돈을 보면 삼키고 곡식을 보면 마셔댑니다. 그러니 관가가 장차 어찌하겠습니까요?”
정약용이 늙은 교졸에게서 들은 한탄의 일부분이다. 춘천을 담당했던 수령이 어떤 꼴을 연출해놨는지 아주 막장이라 관리를 내려보내도 손을 때기 일쑤라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도 교졸과 같이 맞장구 치고 싶어졌다. 응, 이 나라 대체 어쩌겠니. 그때는 지역 하나만 그랬다지만 현재는 나라 전체가 막장이야. 지금도 그래. 정치에 나서는 건 착한 사람이 아니야. 그저 답은 이 나라를 뜨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근데, 자금이 없는 게 문제로고!
조만간 선거가 있다. 공약집이나 공보문을 교정했고, 여론조사 전화니, 나는 그 당의 동지도 아닌데 ‘***당 동지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문자 메시지가 곧잘 날아오는 거 보면 선거를 하긴 하는 모양이다. 보궐선거, 즉 관리가 불미스러운 이유로 파직당해 남은 임기 동안 새로 그 자리를 맡을 인물을 뽑는 거다. 사실 임기 1년 정도밖에 안 남았는데, 예산 아깝게 선출하기보다 부시장 직함이 인계받으면 안 되나 싶다. 가뜩이나 코로나19 때문에 돈 들어갈 때도 많고, 나라가 빛더미에 올라앉느니 마니 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선거는 치러진다고 하는데, 정권심판이니 적폐청산이니 뭐니 그놈의 당색은 여전한 것 같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 《목민심서》라고, 한번 읽어들 보셨는지?
이 고전의 감상평, 놀라울 정도로 근대적인 관리 지침서라는 거. 정치에 입문할 거라면 <군주론> 이전에 이것부터 먼저 읽어보라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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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신혜령의 작은 도서관 원문보기 글쓴이: 신혜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