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청자의 보금자리. 강진
여러분 국보인 천학매병을 본 적 있는가 부드러운 곡선미가 뛰어난데 구름 속을 노니는 학, 천마리를 상감기법으로 표현한 대한민국 최고의 명품이다.
이 작품에 가슴 벅찬 사연이 있다. 일본인 전문도굴꾼이 고려시대 권세가 최우의 무덤에서 도굴해 천원 주고 팔았는데. 돌고 돌아 조선총독부에서 1만원에 매입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간송 전형필 선생께 돌아왔다. 일본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고자 선생은 2만원을 주고 매입했다. 2만원이면 당시 한양의 기와집 20채 값으로 오늘날 싯가로 500억에 해당한다.
이 500억 짜리 명품의 고향이 바로 강진이다. 이곳 가마터 땅을 팠는데 학과 구름문양이 흡사한 파편을 무수히 발견했기 때문. 우리나라 국보와 보물 중 청자가 30여점 있는데 그중 80%가 강진에서 제작되었으니 청자의 산실로 보면 된다.
정밀 지표조사를 통해 강진군에서는 총 188개의 도요지 확인. 188개니까 전국에 남아있는 400여 개의 고려청자 가마터 중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도요지의 운영 시기는 9세기경부터 14세기까지 고려 전시기에 걸쳤으니 고려청자의 보금자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데 개성에서 가까운 동네도 많은데 왜 강진이 청자의 고장이 되었을까? 흙이 좋고 땔감이 풍부하기 때문. 거기다 바다를 끼고 있다. 고려청자는 깨지기 쉬워 배로 운반하는 것이 안전하고 대량으로 운반할 수 있겠지. 또 중국과 가까워 바다를 통해 중국으로 고려청자를 수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왜 고려청자 가마터가 문을 닫게 되었을까? 바로 왜구의 침입 때문입니다. 예나 금이나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이외에도 불완정한 사회분위기와 분청사기와 백자의 등장으로 고려청자의 수요가 없어지게 된다.
2007년 태안 죽도에서 침몰된 배를 발견하게 되는데요. 여기에 2만 2천여 점의 도자기가 무더기로 발견된다. 목간이라는 나무 조각을 발견했는데 요즘말로 치면 택배 주소다. 여기에 개성의 사는 000 이름이 적혀 있다.. 놀랍게도 목간에 ‘탐진’이라는 글씨를 발견하게 된다. 탐진은 강진의 옛지명이다.
세계가 고려청자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 형태와 문양이 고려인 특유의 상상력과 정신세계가 깃들여있기 때문이다. 불교와 도교의 이상향과 미의식을 담은 그릇이다.
청자에는 4가지 조건이 따라야 한다.
불과 물 그리고 장인정신 마지막으로 운송 여건이다.
강진 청자가 번성한 이유인데 그 상상력과 창조의 그릇은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매장에 가면 성모마리아상도 있고, 황소상, 심지어는 스타벅스의 청자티트레이도 청자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청자는 단절된 그릇이 아니라 미래 정신의 그릇이다. 강진이 그 역할을 지금 하고 있다.
내가 강진 청자를 사랑하는 이유다.
#강진군문화관광재단
#강진명예홍보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