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8번째 편지 - 운명의 실
지난주 제 인생에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일을 통해 '운명'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운명을 의인화하여 3명의 여신으로 상상하였습니다.
그들은 밤의 여신 니크스(Nyx)의 딸들로서 클로토(Clotho), 라케시스 (Lachesis), 아트로포스(Atropos)입니다. 3명이 한 인간의 운명에 각기 다른 역할로 관여합니다.
클로토는 '물레에서 실을 뽑는 여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실은 한 인간의 생명을 뜻합니다. 한 인간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역할을 합니다. 모든 인간의 운명은 그녀가 실을 뽑는 행위로부터 시작합니다.
라케시스는 '운명을 재는 여신'입니다. 그녀는 클로토가 물레에서 뽑아낸 생명의 실을 측정하여 각 개인의 운명과 삶의 길이를 결정합니다.
다음으로 아트로포스는 '실을 자르는 여신'입니다. 실을 자르는 행위는 생명을 거두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녀가 우리의 실을 자르면 우리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저는 이 3명의 여신 중 생명을 주고, 거두어 가는 두 여신보다 생명의 내용을 관장하는 라케시스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그녀가 하는 일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찾아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운명의 길이를 결정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라케시스는 클로토가 물레에서 뽑은 생명의 실을 일정한 길이로 재어, 삶의 길이를 결정합니다. 이는 그 사람이 얼마나 오래 살 것인지를 의미하며, 라케시스의 결정은 변경할 수 없는 절대적 운명으로 간주됩니다.
두 번째는 삶의 다양한 사건을 할당하는 역할을 합니다.
라케시스는 단순히 생명의 길이를 결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인생에서 겪을 중요한 사건들을 배치합니다. 이는 출생, 결혼, 질병, 성공, 실패 등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이 포함됩니다. 라케시스는 이러한 사건들이 언제 발생할지를 결정하여 그 사람의 인생 여정을 구성합니다.
세 번째는 운명의 실을 조정합니다.
라케시스는 운명의 실을 다루면서 때로는 그 실을 꼬거나 풀기도 하여, 사람들의 운명에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미리 정해진 운명의 틀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큰 틀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네 번째는 개인의 특징과 성격을 반영합니다.
라케시스가 정하는 운명은 단순한 물리적인 삶의 길이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성격, 능력,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반영합니다. 이는 각 개인이 어떤 삶을 살게 될지를 더 구체적으로 구성하는 요소입니다.
라케시스의 이런 역할은 운명의 불가피성과 절대성을 상징하며, 인간은 모두 그녀의 결정을 피할 수 없습니다. 라케시스는 운명의 실을 재는 행위를 통해 인간의 생명과 죽음 사이에 있는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저는 왜 이런 케케묵은 이야기를 꺼내 들여다보고 있을까요. 그리스 신화를 공부할 때는 그저 그리스 사람들의 재미난 발상으로만 여겨졌던 이야기가 이번 사건을 겪고 보니 진실로 처절하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라케시스가 저의 운명에 미리 준비하였던 사건을 지난주에 펼친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운명이 있을까요? 있다면 어떤 역할을 할까요? 우리는 그 운명을 맞서 싸울 수 있을까요? 늘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았습니다. 저는 하루하루를 오늘이라는 무대에서 운명과 맞서 권투 시합을 하는 것이라고까지 생각하였습니다. 너무나도 오만한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보면 영웅 아킬레우스가 적장을 죽이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의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고, 나를 낳으신 어머니는 여신이시다. 하지만 내 위에도 죽음과 강력한 운명이 걸려 있다." 강력한 아킬레우스도 운명에 도전하지 않고 겸손한 자세로 운명에 순응합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운명의 여신들이 결정하는 운명은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이 생각에 거역하고, 맞서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건을 겪으면서 저도 나약한 한 인간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운명과 싸우는 것은 어리석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는 마녀 사이렌을 물리치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이미 파도와 전쟁터에서 많은 것을 겪었고 많은 고생을 했소. 그러니 지난 고난들에 이번 고난이 추가될 테면 되라지요. 전우들이여. 생각하건대 이번 일도 언젠가는 우리에게 추억이 될 것이오." 그는 혹독한 운명 속에서도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저도 저 자신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이번 일도 언젠가는 추억이 될 것이야."
호메로스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우스>를 통해 우리들에게 인간의 운명은 정해져 있지만 그 혹독한 운명 앞에서도 우리 인간은 희망을 잃지 말고 최선을 다해 전진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는 그 가르침에 따라 희망을 품고 전진할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운명의 실은 어떤 모습인가요.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2024.6.10. 조근호 드림
<조근호의 월요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