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의 국왕, 헨리 2세는 엄청난 행운아이자 유능한 국왕이었다. 어머니인 마틸다로부터 잉글랜드 왕국에 대한 명분을 받았고 아버지인 앙주의 제프리로부터 앙주와 노르망디를 상속받았다. 이후 운 좋게도 갑작스러운 후계자의 죽음으로 회의에 빠진 '찬탈자' 스티븐이 헨리 2세에게 왕위를 물려주면서 왕위 역시 얻을 수 있었다. 또한 헨리 2세는 아키텐, 푸아투 등 남부 프랑스에서 가장 강한 세력을 가진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와 결혼하여 남부 프랑스까지 자신의 영역을 넓힐 수 있었다. 이는 엘레오노르의 전남편인 루이 7세가 얻을 수 있었던 행운이었기도 했다.
이후에도 헨리 2세는 컴벌랜드와 웨스트모어랜드를 스코틀랜드로부터 강탈했고 툴루즈를 공격해서 카오르와 퀘르시를 얻어냈으며 삼남 제프리를 브르타뉴의 공작으로 만들었고 심지어 아일랜드까지 정복하기에 이르렀다. 이 모든걸 그는 프랑스의 루이 7세, 플랑드르 백작, 스코틀랜드 국왕 등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얻어낸 성과였다. 후대 사람들은 헨리 2세의 그런 거대한 영역을 소위 '앙주 제국'이라고 부른다.
[ 앙주 제국 지도다. 보다시피 주황색이 헨리가 상속받았더나 정복한 영역, 보라색은 결혼으로 얻은 영역이다. ]
게다가 그는 이렇게 거대한 영역을 구축만 한 게 아니었다. 지속적으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제국의 주인이 자신임을 알리고 봉신에게 충성을 받아내며 경쟁자들을 굴복시켰다. 그는 봉건제 사회에서 어떻게 봉신을 다뤄야 하는 지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그에게 내부 정치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또한 헨리 2세는 자신이 순행을 떠날 때마다 왕실 행정력을 통해 지방을 다스린 건 물론이고 자신이 부재한 한 곳에선 주장관과 법관들이 행정과 사법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게 만들었다. 특히 지리적 특성 때문에 오랫동안 비워둬야 했던 잉글랜드 같은 경우에는 위임통치가 정말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만들었고 실제로 위임통치는 잘 돌아갔다.
하지만 그렇게나 영역 통치를 완벽하게 해낸 헨리 2세도 결점은 있었다. 바로 '가족 정치'를 잘 다뤄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에게는 아내 엘레오노르와 그 사이에서 낳은 헨리, 리처드, 제프리, 존이라는 4명의 아들과 3명의 딸이 있었다. 이들 모두(딸은 제외)는 권력에 관심이 있거나 야망이 꽤 큰 이들이었다. 하지만 헨리 2세는 이런 사실을 몰랐던 건지 가족들에게 생애 내내 권력을 나눠주길 거부했다. 가족을 싫어했던 건 아니었다. 기록에서 나오듯이 헨리 2세는 장남 헨리의 죽음에 대해 그가 반역자나 다름 없지만 그래도 그가 살아남아 날 더욱 괴롭히는 게 나을 거라고 말하기까지 했던 걸 보면 아들들에 대한 사랑은 다른 이들과 다를 게 없었다. 결국 그냥 헨리 2세의 복합적인 권력욕이 큰 원인이라 볼 수 있겠다.
헨리 2세는 원래라면 아내의 영지인 아키텐과 푸아투 공령을 마치 자신의 것처럼 다루며 엘레오노르에게서 정치적 권한을 계속해서 줄여갔다. 또한 아들들에게 분할상속을 약속하면서 생전에 권력을 나눠주진 않았다. 특히 장남에게는 공동왕위까지 주면서 왕위에 부합하는 권력을 주지 않았단 점은 청년 왕(장남 헨리의 별명) 헨리에게 큰 충격을 줬다. 왜냐면 그는 명색의 왕이기에 그에 준하는 기사단을 거느리곤 했는데 아버지가 준 권력이 없다보니 이를 유지할 자금이 언제나 부족했다. 리처드나 제프리는 불만 많은 어머니로부터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전해받았고 이는 곧 그들의 불만으로 발전했다. 존만이 아버지에게 순종한 것처럼 보였으나 실상 그는 그저 무언가 하기에 너무 어렸을 뿐이었다.
이러한 가족 문제는 결국 가족 내란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통치에 있어서 가족 내란만큼 영역을 뒤흔들 건 없었다. 가족이 반란을 일으킨다면 가장 강력한 명분으로 자신의 것들을 노리는 거니 말이다. 하지만 헨리 2세의 통치 후반부는 이런 가족 내전으로 더럽혀지고 말았다. 그리고 결국 그는 차남 리처드에게 패배했고 시농에서 비참하게 죽고 말았다.
[ 헨리 2세와 엘레오노르의 석관. 리처드 1세 역시 그의 부모가 매장된 퐁트브로 수도원에 매장되었다. ]
헨리 2세는 아들에게 내몰린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했을 때 누구보다 비참함을 강렬하게 느꼈고 자신의 통치가 결국 실패로 돌아갔다고 생각하며 죽었다. 하지만 의외로 헨리 2세의 통치는 성공적이었다. 비록 내전으로 영역 내 분란이 잦긴 했지만 헨리 2세의 뒤를 이은 사자심왕 리처드 1세는 앙주 제국을 고스란히 물려받았고 아버지처럼 좋은 통치를 보여줬다. 물론 리처드 1세는 불운했기에 어이 없는 죽음을 맞이했고 이후 왕위를 이어받은 막내 존은 실망스러운 통치를 보여주다 결국 아버지와 형이 만든 제국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 존 왕의 석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까지 프랑스에 묻혔으나 존은 잉글랜드의 우스터 대성당에 매장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족들이 묻힌 영지를 잃었기 때문이었다. ]
첫댓글 호부견자의 예 병신 존
"하필" 아들이 리처드, "하필" 아들이 존, "하필" 프랑스 왕이 필리프 오귀스트. 이 플랜태저넷 왕가와 카페 왕가의 새로운 세대들은 헨리의 앙주 제국이 지속되기엔 너무나도 위험하고, 야심많고, 능력있는 자들이었죠.
리처드 1세 까지는 괜찮았는데 존왕에서 말아먹었네요
존이 확실히 못하긴 했지만 그래도 리처드랑 아버지가 해먹은 걸 지때 포텐마냥 터지긴 했ㅅ..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