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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총사 2권
검궁인 저
차례
10장 수중전(水中戰)
11장 제왕오대신가(帝王五大神家)
12장 생(生)과 사(死)의 찻잔
13장 두 개의 얼굴
14장 사랑의 마법사(魔法師)
15장 난세(亂世)
16장 오색환락거(五色歡樂車), 노예시장(奴隸市場)의 소동17장 극락쾌활림(極樂快活林)
18장 대효웅(大梟雄)
10장 수중전(水中戰)
①
쏴아아-- 철썩--!
대해(大海)를 가르며 파도와 싸워본 사람이라면 바다의 무서움을 안다. 인간은 그 앞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도 알게 될 것이다.
콩알만한 빗방울이 암천으로부터 쏟아지기 시작했다. 바다는 춤을 추고 먹구름에 뒤덮인 하늘은 검은 바다와 동일한 색조를 이루며 혼연일체가 되었다.
쿠쿠쿵--! 우르르--
배는 작았으나 견고했다.
갑판은 단단한 오목(烏木)으로 짜여졌고 배 전체에는 철갑이 둘러져 있었다. 이런 배는 웬만한 풍랑이나 암초에도 끄덕도 하지 않는다.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갑자기 바다가 부풀어오르더니 산더미 같은 파도가 배를 마치 한 조각 가랑잎처럼 아득한 파도 위로 실었다가 시퍼런 수면 위로 내동댕이쳤다.
쿠쿵!
배는 물 속 깊이 가라앉았다가는 불쑥 퉁겨 오르듯 떠올랐다. 빙글빙글 마치 팽이처럼 맴돌기도 하다가 어떤 때는 벌렁 뒤집혀지기도 했다. 배는 특수하게 설계되어 뒤집혀졌다가는 곧 중심을 바로 잡았다.
선실(船室).
남녀가 부둥켜 안고 있었다.
초초는 안색이 해쓱해진 채 천우의 품에 안겨 있었다. 천우는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그의 자세는 마치 입적한 고승 같았으며 배가 아무리 요동을 쳐도 그는 바닥에 뿌리라도 내린 듯이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초초는 달랐다. 난생 처음 배를 타 본 그녀는 멀미에 시달릴 대로 시달려 제정신이 아니었다. 벌써 배속의 먹은 것은 토한 지도 오래였고 안색은 종잇장에다 눈동자는 풀려 있었다.
"무서워요......"
그녀는 천우의 품에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파고들었다.
천우는 담담히 중얼거렸다.
"걱정하지 마라, 초초. 이 배는 안전하니까."
이때 선실의 문이 열리며 중년인이 벽의 손잡이를 잡고 들어섰다.
고대기(高大器).
바로 남천신도의 뱃길을 담당하고 있는 흑암도의 중년인이었다. 그는 천우의 끄덕 없는 자세를 보더니 약간 안색이 변했다.
"헤헤헤... 조금만 참으십시오. 원래 삭월(朔月)과 망일(望日)에는 해류가 요동하고 일기가 불순한 법입니다......."천우는 담담히 말했다.
"며칠 째인가?"
"흑암도를 떠난 지 삼일이 되었습니다."
"그럼 오늘이 팔월 열 일곱째 날이군. 망일(望日)의 현상은 아닌 것 같군?"망일.
보름(十五日)을 말한다.
고대기의 얼굴에 약간 당황기가 어렸다.
"그렇습죠. 이 해로(海路)는 본래 험할뿐더러 일기의 변화가 극심합니다. 그래서 일반인과 보통 배로는 본도(本島)로 갈 수가 없읍죠......."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섬에 닿으려면 며칠이 걸리는가?"
"구일입니다."
"알겠네. 자네는 해로를 잃지 않도록 주의하게."
"알... 알겠습니다."
고대기는 즉시 방향타를 잡기 위해 사라졌다.
쿠쿵......!
배 옆구리를 파도가 때렸는지 굉음과 함께 배가 뒤집였다.
"악!"
초초는 비명을 지르며 천우의 목을 죽어라 붙잡고 매달렸다. 하나 천우는 거꾸로인 채 여전히 바닥에 붙어 있었다.
이윽고 배가 빙글 돌며 제자리로 돌아오자 초초는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지며 물었다. 그녀는 남장이었으나 워낙 시달려서 머리칼이 흘러내린 것이었다.
"공자님은... 수공(水功)을 익히셨나요?"
천우는 고개를 저었다.
"나도 배라고는 처음 타 본다."
"그럼......."
그녀의 얼굴에 두려움이 어렸다.
"고가는 필시 수작을 부릴 거예요. 이 무서운 바다에서라면 우리는 불리하잖아요?"천우는 씩 웃었다.
"걱정 마라. 수공을 익히지 않았다고 해서 모른다는 뜻은 아니니까.""......?"
"초초, 너는 삼백 년 전 무림을 어지럽혔던 십이비천마방(十二飛天魔幇)에 대해들은 적이 있느냐?"초초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들은... 무서운 마두들로서 연합하여 중원을 공격한 자들 아녜요?""그렇다. 그들 중 제 팔마(八魔)였던 해천악룡(海天惡龍)은 본래 동해(東海)에서 무적의 해적이었다."초초의 눈이 반짝 빛났다.
"그럼... 그의 수공(水功)을 안단 말인가요?"
"안다 뿐이냐? 십이비천마방이 멸망할 당시 그들의 본거지가 바로 야인산(野人山)이었다.""아......!"
초초의 얼굴에 탄성이 어렸다.
그렇다면 십이비천마방이 멸망하면서 간신히 목숨을 연명한 마두들이 마왕성의 후학들에게 그들의 비전절학들을 남겼을 가능성이 크다.
천우의 무공내력은 바로 멸절되었다고 전해지는 십이비천마방의 절세마공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었다.
삼일째 되는 날 그들은 광란의 해역(海域)에서 벗어났다.
바다는 다시 잔잔해졌다.
고대기는 크게 실망한 눈치였다. 초초도 체력을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천우는 선실에 누워 책을 읽을 정도로 태연했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삼 일 후면 본도에 당도하게 됩니다."
갑판에서 고대기는 돛폭을 조정하며 그렇게 말했으나 얼굴을 찡그리며 덧붙였다.
"이곳 해역은 일명 죽음의 해역이라고 불리웁죠. 그것은......."그는 두려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 일대에서 가끔 바다의 무법자로 불리우는 해구들이 출몰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잔혹무비하여 눈에 띄는 배란 배는 모두 약탈하고 불을 지릅니다."초초는 겁먹은 듯 물었다.
"그들이 그렇게 무서운가요?"
고대기의 얼굴에 기이한 빛이 스쳤다.
"일명 해마단(海馬團)이라 불리는 그들은 바다의 제왕입니다. 일단 그들에게 걸리면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그 말에 천우는 순간적으로 눈빛이 번쩍 빛났으나 곧 담담히 물었다.
"그들이 해도를 차단할 것이라고 보는가?"
"그건... 알 수 없습니다."
"본도에서 그들을 가만 둔단 말인가?"
"그건... 서로가 불가침인지라... 하나 그 협정은 이십 년 전부터 서로간에 내왕이 없었는지라 아직도 효력이 발생할지는 의문입니다."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만일 본도를 무시한다면 그 대가로 그들은 바다를 잃게 될 것이네.""......!"
팔일 째.
드디어 우려하던 사태가 벌어지고야 말았다.
쏴아아--!
석양 무렵 돌연 열 척의 괴선이 쏜살같이 나타나더니 천우가 탄 배를 포위해 버린 것이었다.
"해... 해마단입니다!"
갑판에서 고대기의 경악에 가까운 외침이 들려 왔다. 천우는 선실에서 나와 갑판으로 올라갔다. 과연 둥글게 포진한 열 척의 괴선이 보였다.
괴선의 선두에는 검은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는데 그 기폭에는 핏빛의 해마(海馬)가 그려져 있었다.
괴선은 모두 특수한 선박으로써 선수에는 뾰족한 철주가 마치 거대한 창처럼 달려 있었다. 그곳에 부딪치면 어떤 배라 해도 구멍이 뚫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사실이었다.
"어... 어떻게 하지요, 공자님?"
고대기는 벌벌 떨며 물었다.
천우는 담담히 말했다.
"본도의 표기를 걸게."
"그... 그것이 효력이 있을까요?"
고대기는 고개를 저으면서 시키는 대로 선수에 하나의 기를 꽂았다. 그것은 흰 바닥에 녹색의 나무가 그려진 것이었다. 그 나무는 전설의 신단수였다.
갑자기 고대기는 당황성을 발했다.
"소용없습니다...! 저들이 혈기를 내걸었습니다......!"과연 괴선에는 핏빛 삼각 소기가 꽂혔다. 그것은 바로 전투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괴선은 쏜살같이 천우가 타고 있는 목선을 향해 쏘아져 왔다. 그 기세로 곧장 충돌한다면 천우의 목선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 것이었다.
일촉즉발, 절대절명의 순간이었다.
촤아아--!
파도는 점점 거세졌다.
"이제... 그들은 수중으로부터 공격할 것입니다. 배 밑바닥에 구멍을 뚫은 후 불을 지를 것입니다."고대기의 말에 천우는 차갑게 말했다.
"저들의 우두머리가 탄 배는 어느 것인가?"
"저... 해마기(海馬旗)에 왕자(王字)가 그려 있는 배입니다."천우는 다시 냉랭하게 말했다.
"저 배를 향해 전 속력으로 질주하게."
"그... 그것은 자살 행위입니다."
"시키는 대로하게!"
"예... 예......!"
고대기는 허둥지둥 방향타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그의 돌아선 얼굴에 음흉한 미소가 서리는 것을 천우는 보지 못했다.
천우가 타고 있는 목선이 괴선박의 우두머리에게로 쏘아져 가는 형국은 마치 기름을 뒤집어 쓰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꼴이었다.
천우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띄우며 초초에게 말했다.
"초초, 너는 선실로 들어가 있어라."
"공자님은......?"
"훗훗... 동해악룡의 수중 공부를 시험해 보겠다."
"공자님......?"
초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천우는 이미 한 자루의 비도처럼 신형을 날리고 있었다.
슉!
그의 몸이 일장 가량 공중으로 솟았다가 곤두박질치듯 곧장 흑룡의 아가리 같은 바다 속으로 잠수해 버렸다.
수중.
바다 속에서는 호흡을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수공을 익히지 않으면 아무리 일류 고수일지라도 힘을 쓸 수가 없다. 운기조식을 할 수 없다면 제 아무리 고강한 내공진기를 가지고 있더라도 제대로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차가운 수중에 들어가자 천우는 몸놀림이 부자연스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하나 일단 진기를 한 바퀴 돌린 후 동해악룡의 독문 수공법(水功法)에 따라 전신의 모공(毛孔)을 열자 탁하던 진기가 거침없이 유통되었다.
이때 석양에 물든 수중 속으로 그는 검은 고기들이 자신을 향해 미끄러지듯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아니 그것은 고기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들은 전신에 꽉 조이는 물개가죽옷을 입고 있었으며 한 번씩 손을 휘저을 때마다 흡사 상어처럼 유연하게 전진했다.
'하나... 둘... 아홉......!'
천우는 몸을 서서히 구부렸다가 쭉 뻗었다. 막강한 반탄력으로 몸을 추진시키는 놀라운 탄신술(彈身術)이었다. 물 속에서도 이런 속도를 낼 수 있다는 것은 탄성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의 몸은 물 속임을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쾌속하게 쏘아져 갔다.
물 속의 경관은 아름다웠다.
붉고 파란 산호초가 석양을 받아 칠보색으로 화려하게 빛을 뿜고 있었고 이름 모를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떼지어 유영하고 있었다.
태양광선이 물 속에서 이러저리 산란하면서 만들어 놓는 무지개는 가히 선경의 무릉도원을 방불케했다. 크고 작은 물방울들이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며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정말 기막히군.'
천우는 감탄을 했다.
이때 돌연 수류가 그를 향해 쇄도해 왔다. 섬전같이 신쾌한 속도였다.
'하나!'
천우는 몸을 빙글 돌렸다.
한 검은 인영이 그를 향해 다가오며 수중의 갈고리처럼 생긴 무기를 휘둘렀다. 수중에서 쓰는 분수아미자였다.
천우는 아미자가 가슴에 닿을 정도까지 기다렸다가 전광석화처럼 낚아챘다. 그와 동시에 발로 그의 중완혈(中脘穴)을 걷어찼다.
'윽!'
그는 귀로는 들을 수 없었으나 분명 그가 비명을 질렀다고 느꼈다. 물개 가죽에 뚫린 구멍 속에서 눈자위는 허옇게 위로 뒤집혀지고 있었다. 그는 힘없이 아래로 사지를 비틀며 떨어졌다.
천우는 또 다른 공격이 시작됐음을 알았다.
그는 탈취한 아미자로 등뒤로 몸을 돌리지 않은 채 힘차게 그었다.
지이익!
무언가 닿는 느낌이 들었고 질긴 고기를 벤 듯한 감각을 받았다. 하나 그의 일초는 극히 짧은 순간에 이루어졌다. 그의 등뒤에선 한 괴인이 부러진 아미자를 떨구며 반쯤 목을 움켜쥔 채 시뻘건 핏물 속에서 사지를 버둥거리고 있었다.
'둘!'
천우는 머리 위에서 섬뜩한 수압이 가해지는 것을 느꼈다. 막중한 잠력이 그의 전신을 엄습해 들어오고 있었다. 수중에서 이렇게 고강한 무형강기를 낼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그는 손가락을 뻗었다.
수중에서 쓸 수 있는 파수지공(破水指功)이었다. 육상에서 시전하는 탄지공과 흡사하나 그 신쾌함에는 뒤지지만 적의 기선을 제압하는 데는 가장 효과적인 수법이다.
곧 검푸른 물 속으로 시뻘건 핏물이 확 번졌다. 또 한 명이 화개혈(華蓋穴)에 손가락 굵기의 구멍이 뚫린 채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천우의 등뒤에서 세 개의 아미자가 위중혈(委中穴)과 명문혈(命門穴), 풍문혈(風門穴)을 노리고 쏘아져 오고 있었다. 천우는 황급히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세 자루의 아미자가 그의 정강이와 허리, 어깨를 차례로 스치고 지나간 것은 간 일발의 차이였다.
천우의 팔다리가 거의 동시에 움직였고 그는 분명히 그들이 치명적인 타격을 받고 떨어진 것을 느꼈다.
'남은 것은 세 명.......'
그는 해동천룡의 천리어안술(千里魚眼術)로 주위를 살폈다. 하나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문득 아차 싶었다.
'배에 구멍을......!'
그는 즉각 자신이 타고 온 배를 향해 날아갔다. 흡사 물 위를 질주하듯 수면을 발로 차며 비룡등천의 수법으로 쇄도해 갔다.
아니나 다를까? 배 밑바닥에 검은 인영 세 명이 들러붙어 있었다. 배가 몇 차례 세차게 흔들렸다.
'늦었구나!'
그는 수중(手中)의 아미자를 힘껏 던졌다. 아미자는 빛살 같은 속도로 날아갔다. 아미자는 무서운 힘으로 날아가 한꺼번에 두 명의 목을 낚아챘다.
피가 바닷물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시야가 피로 흐려진 틈을 이용해 한 명이 빠르게 도주하고 있었다. 천우는 그를 향해 맹렬하게 장력을 날렸다.
콰르르......!
와선기(渦旋氣)라는 수중장공이었다.
바닷물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날아가 십 장 밖에서 도주하고 있는 한 인영의 등에 그대로 적중했다. 순간 그의 몸이 격렬하게 떨리더니 곧 시뻘건 혈무에 뒤덮였다. 바닷물은 죽은 시쳬들이 뿜어내는 선혈로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아홉... 모두 해치웠다.'
천우는 처음으로 경험한 수전(水戰)에서 이겼다. 그리고 그것은 해천악룡의 수공이 그만큼 고강하다는 말일 것이다.
그는 배에 타고 있는 초초의 안위가 걱정되어 즉각 물 위로 솟구쳐 올랐다.
"아악......!"
선상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천우는 그것이 초초의 비명임을 느꼈다. 배를 본 순간 그의 안색이 변했다.
어느 새 배는 불꽃에 휩싸여 있는 것이 아닌가?
해마단의 괴선들로부터 불화살이 집중되어 쏟아지고 있었다. 천우는 천마등공의 경신술로 해면을 박차고 솟구쳐 오른 후 수평으로 뻗으며 배를 향해 날아갔다.
불꽃에 휩싸인 갑판 위 초초는 고대기의 옆구리에 끼어 있었다. 그는 초초의 혈도를 짚은 후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흐흐... 계집애야, 소리 질러야 소용없다. 네 주인은 이미 물고기밥이 되어 있을 거다."그는 곧 자신의 말을 후회하며 몸을 부르르 떨어야 했다.
"고대기, 누가 물 고기밥이 되었다는 건가?"
돌연 허공에서 낮게 가라앉은 음성이 들려 온 것이었다.
"억! 사... 살았느냐?"
고대기의 안색이 흑빛이 되었다. 하나 곧 그는 음침하게 외쳤다.
"가까이 오지 마라. 그 전에 이 계집애의 숨통을 끊어 버리겠다!"어느 새 그는 시퍼런 비수로 초초의 인영혈(人迎穴)을 겨누고 있었다.
여전히 허공에서 천우의 음성이 들려 왔다.
"고대기, 너는 남천신도의 사람이 아니냐? 어찌 감히 배신을 한단 말이냐?""흥! 남천신도는 이미 바뀌었다. 늙은 도주는 이미 허수아비나 다름없다 네놈이 어떻게 남천신목가의 밀어(密語)를 알고 왔는지 모르나 지금은 옛날의 남천신도가 아니다!"그는 겁에 질린 듯 음성이 떨리고 있었고 초초의 목을 겨누고 있는 비수는 금방이라도 피를 보고 싶은 듯했다.
스스......!
그때 그의 등뒤에 인영이 어른거렸다. 천우가 그의 등뒤에 유령처럼 나타난 것이었다. 하나 그의 음성은 여전히 허공에서 울려 나오고 있었다.
"그럼 도에 반란이 일어났단 말이냐?"
"흐흥! 비록 늙은 원로들이 버티고 있지만 시간문제일 뿐이다."고대기의 얼굴에는 의기양양한 빛이 역력했다. 그의 표정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남천신도엔 이미 반란의 무리들이 남천신가의 가신들보다 더 큰 세력을 형성한 듯이 보였다.
천우는 그의 등 뒤에 선 채 물었다.
"해마단은 어떻게 된 거냐?"
"흐흐... 해마단은 본래 돈만 주면 무슨 일이든지 한다. 네놈을 수장시키기 위해 황금 사만 냥이 들었다면 만족하겠느냐?"천우는 지옥사자처럼 냉막하게 말했다.
"고작 그 정도라니 섭섭한 일이군. 고대기?"
"헉!"
고대기의 머리털이 곤두섰다. 그 음성은 바로 그의 뒤통수에서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그는 뒤통수 옥침혈이 뜨끔함과 동시에 의식을 잃고 말았다.
천우는 초초를 안았다.
배는 이미 불덩이가 되어 충천하는 화광 속에 반쯤 기울고 있었다. 그는 힐끗 전면을 보았다. 해마단의 우두머리가 타고 있는 괴선까지의 거리는 대략 잡아 사십여 장이었다. 도저히 한꺼번에 날아가기에는 불가능했다. 더구나 초초를 옆에 끼고서는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천우는 중얼거렸다.
"해마단이라고 그랬던가? 아직도 그들이 동해악룡을 기억하고 있는지는 모르나 시험해 볼만하다."무슨 뜻인가?
천우는 즉각 손가락을 입에 넣고는 휘파람을 불었다. 휘파람 소리는 높고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 기이한 음률로 높았다 낮았다 하는 변화에는 일정한 법도가 있는 것 같았다.
그러자 잠시 후에 마치 응답이라도 하듯 휘파람 소리가 하강해 왔다. 천우의 얼굴에 희색이 떠올랐다.
"삼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 효력이 있다니......!"
이때 파도를 가르며 거대한 한 척의 괴선이 접근해 왔다.
천우는 괴선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그는 불길을 뚫고 단숨에 십 장을 뛰어 넘어 갑판으로 떨어져 내렸다. 갑판에 내려선 후 주위를 둘러보았다. 갑판 위에는 기이한 복장을 입은 괴선들이 수십 명 도열해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물개 가죽옷을 걸쳤는데 가슴에는 해마의 문양을 새겨 놓고 있었다.
분수아미자나 그 밖의 수중에서 사용하는 병기를 멘 그들은 모두 기골이 장대하고 용맹하게 보였다. 이때 맨 앞에서 한 중년인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유독 검은 가죽으로 만든 전포(戰袍)를 걸쳤고 머리에는 투구를 쓰고 있었다. 또한 손에는 반월형의 도(刀)도 아니고 창도 아닌 기형의 병기를 세워 들고 있었다. 얼굴은 사각형이었고 눈빛이 예사롭지 않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앞으로 나서자마자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예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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