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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문경시산악회’와 함께, Mokulsha 동행
‘Mokulsha’
나를 감동의 도가니로 몰고 갔던, 클린트 이스트우드 제작 감독 주연의 2004년 미국영화 ‘밀리어 달러 베이비’( Million Dollar Baby)에 나오는 문장이다.
내 살아생전에 잊을 수 없는 문장 중의 하나다.
아일랜드 옛 토속어로, 영화에서의 우리말 자막 번역은 ‘모쿠슈라’로, ‘내게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뜻이라고 풀어주고 있었다.
13년 전으로 거슬러, 내가 31년 9개월을 몸 담았던 검찰을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떠나던 2005년 그해 봄에, 내 그 영화를 봤다.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당시 검찰내부의 온라인 소통창구인 e-pros에, 내 그 영화 감상문을 게시했었다.
다음은 그 감상문 전문이다.
Million Dollar Baby? 무슨 뜻일까요? 저는 최근 서울북부지검 정기사무감사를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때 그곳 총무과를 맡고 계시는 송경식 과장님으로부터 ‘가슴이 찡한 느낌을 받았다’는 말씀과 함께 영화 한편을 소개 받았습니다. 바로 최근 시중 개봉관에서 상영중인 밀리언달러 베이비였습니다. 저는 이 영화가 개봉되기 전 TV 광고가 뜨고 있을 때 그 영화의 제목만 가지고 전해오는 의미로는 ‘백만 불짜리 아기...’ 뭐 이런 정도로 생각해서 별 감동이 없겠다고 폄하하면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었는데, 평소 신뢰가 깊은 친구처럼 지내는 송과장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어? 그게 아닌 모양인데...’하는 의구심이 생겨, 뒤이어 있을 수원지검 감사를 앞둔 주말에 일부러 시간을 내어 고등학교 동기동창 친구들 몇과 어울려 관람을 하게 되었습니다.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 문 앞에서 잠시 그 영화 포스터를 보게 되었는데, 영화를 제작, 감독하고 출연까지 하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모건 프리먼은, 평소 못생긴 백인, 못생긴 흑인의 전형같이 느껴져서 잘 알고 있는 이들이었지만, 여자 주연을 맡은 힐러리 스웽크는 전혀 생소하였습니다. 얼핏 포스터에 비친 모습으로만 봐서는 다른 두 사람과 못생긴 전형인 점에서는 같은 부류로 이해될 정도였을 뿐입니다. 처음 영화가 시작될 때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등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등장하는 영화가 늘 그러했듯이 좀 무거운 분위기가 계속되어 간혹 졸리기까지 했는데, 영화가 계속되면서 가슴에 차오르는 감동을 감당하기가 자꾸 어려워져 종내에는 눈가에 눈물방울 몇 점의 흔적을 남겨 놓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이러합니다. 노쇠한 권투 트레이너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 扮)가 촉망받는 흑인 복서 윌리로부터 배신당한 후, 현역시절 너무 얻어터져서 한쪽 눈이 실명된 퇴물 흑인 복서 에디(모건 프리먼 扮)의 도움을 받아, 끈질긴 근성을 가진 31살짜리 노처녀 매기(힐러리 스웽크 扮)를 성공한 여자 복서로 키워가는 과정과, 뒤이어 느닷없이 다가온 좌절을 그리고 있습니다. 주연인 세 사람 모두가 현실에서도 마이너리티의 삶을 살았고, 영화 속에서도 마이너리티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40여년 전 허리우드 하류 배우에 머물고 있다가 그 시대로서는 파격적인,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줄거리를 담은 싸구려 서부영화들인 마카로니웨스턴의 시조인 ‘황야의 무법자’에서 철판을 가슴에 달고나와 상대의 총탄세례를 막아내는 총잡이로 등장해서 눈에 띄기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웃는 모습을 보지 못할 정도로 냉정한 연기만 해왔었습니다. 모건 프리먼은 늘 조금은 소외된 듯한 조연급만 맡아 왔었고, 힐러리 스웽크는 그 10여 년 전부터 이미 미국 영화계에 등장했음에도 영화광인 제가 처음 만나보게 될 정도로 무명이었습니다. 이들 세 사람의 마이너리티가 이렇게 감동스런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한순간 저로 하여금 숙연해지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한 집안의 맏인 매기가 가난한 집안 살림의 총대를 메기 위하여 권투를 시작하면서, 노쇠하지만 정성이 가득한 프랭키의 인품을 알아채고 자신의 트레이너가 되어줄 것을 간청한 끝에, 끝내 트레이너로 맞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나 프랭키가 본 매기는, 도전적 의지는 비길 데 없이 강하지만, 주위가 산만하여 늘 염려스러웠습니다. 그래서 프랭키는 매기에게 ‘공격하는 것 도 중요하지만 늘 자신을 먼저 보호해야 한다’라는 주문을 하게 됩니다. 매기도 처음에는 자신의 약점을 잘 알고 그 주문에 잘 따라, 연전연승하는 화려한 성공을 거듭 거듭하다가, 드디어 100만 불의 상금이 걸린 운명의 마지막 한 판인 챔피언 전에 도전하게 됩니다. 이 경기에서 ‘살인마’라는 닉네임이 붙어 있는 거친 상대를 거의 그로기상태로 몰고 가, 다 이겼다싶은 순간이 되었을 때였습니다. ‘늘 자신을 먼저 보호해야 한다’는 프랭키의 평소 주문을 얼핏 잊어버리고, 종료 공이 울려 무심코 가드를 내리고 뒤돌아서는 순간, 상대로부터 살의가 깃든 큰 어퍼컷 한대를 얻어맞고 쓰러지면서 자신의 코너에 막 올려 진 의자로 자빠지는 바람에 목이 꺾이고 그리고 전신마비가 되어 버립니다. 이를 스스로 극복해내려는 매기, 그리고 이제는 아버지같이 가까워진 프랭키의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매기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스토리 전개가 너무나 눈물겹습니다. 매기가 불의의 한방을 맞고 쓰러지는 순간의 슬로우 모션 화면에서 본 매기의 일그러진 얼굴모습에서 저의 모든 기대도 같이 무너짐을 느꼈습니다. 죽음이 임박해진 매기가 프랭키에게 그동안 늘 궁금했으나 묻지 않았던 질문을 하나 던집니다. 매기가 챔피언 전을 치르려고 링에 오를 때, 프랭키가 기념으로 매기의 등에 걸쳐주었던 실크가운의 등판에 옛 아일랜드 토속어로 씌어 진 닉네임 ‘Mokulsha’의 뜻이 무엇이냐는 질문이었습니다. 프랭키가 답을 하는데, ‘내게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뜻이었습니다. 뒤늦은 풀이었지만, 그렇게 답을 해주는 프랭키의 얼굴에 담긴 깊은 수심이 저에게도 그대로 다가왔습니다. ‘아! 밀리언달러 베이비는 바로 그런 뜻이었구나... 아! 맞다, 맞아.’ 그렇게 저 혼자 혼잣말처럼 그 뜻을 되뇌어봤습니다. 매기에게 불의의 한방을 날린 상대 선수의 형사처벌 문제에 대한 과감한 생략이 아쉬웠고, 전신마비인 딸 매기에게 그 재산을 양도해달라는 너무나 야비한 엄마의 모습은 안 봤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나는 과연 누구의 ‘밀리언달러 베이비’일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문득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고 했던 시인 김춘수님의 ‘꽃’이라는 시의 한 귀절이 생각나는 것은 저 혼자만의 느낌일까요... 이 영화는 금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했다고 합니다. 이 영화를 감상하고 난 뒤, 그 다음 주 곧바로 수원지방검찰청 정기사무감사에 들어갔는데 그곳 직원들에게 이 영화 자랑을 침이 마를 정도로 해댔습니다. 혹, 그 자리가 불편했던 직원들이 있다면, 오늘 이 글로써 사과드립니다. 그 이야기 자리에 동참했던 이현주 주임을 비롯한 몇몇으로부터 이 영화 관련 자료를 협찬 받았음을 밝혀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내 그 글에는 수두룩한 댓글들이 달렸었다.
그 중에서 특별히 정성을 담은 것으로 보이는 글 한 편을 뽑아봤다.
그 몇 년 전에,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공안과장 겸 총무과장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공안과 소속으로 나와 함께 했던 김승현 검찰수사관의 댓글로, 다음은 그 글 전문이다.
안 그래도 어제 오늘 길거리에 대강 피기 시작한 노란 개나리들을 보면서 "기 과장님께서 '봄맞이 문화물 추천'을 하실 때가 된 것 같은데..." 생각했었는데... 역시 '밀리언 달러 베이비' 군요. 얼마 전 오스카상도 몇 개 받은 화제작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삶에 정성을 다하는 마이너리티들의 얘기라서 '낙점'된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영화평론가를 방불케 하는 상세한 설명과 분석 덕분에 영화를 채 보기도 전에 이미 그 감동을 다 경험한 듯한 착각도 들지만, 그래도 70대의 나이에도 여전히 매력적인 클리트 이스트우드를 안 볼 수는 없겠지요. 모건 프리먼도...//
‘모쿠슈라’(Mokulsha)라는 그 문장은 그렇게 내 가슴에 귀하게 담겼다.
그리고 그 몇 해 뒤, 큰며느리를 맞을 때의 일이었다.
그동안 이래저래 폭삭 망해버린 우리 집안을, 이제 새롭게 일구어낼 존재가 바로 그 큰며느리라고 생각을 했었다.
내 바람이 또 그랬었다.
그런 생각과 바람을 잇고 이어간 끝에 떠오른 문장이 바로 그 문장이었다.
“이제부터 내 네게 별명 하나 붙인다. ‘모쿠슈라’라는 별명이다. 영화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 나오는 말인데, ‘내게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의미라고 하더라. 네가 우리 집안을 굳건히 세우는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믿고 붙여주는 별명이다. 누가 뭐라고 하든, 너는 내게 그런 존재다.”
내 그렇게 설명하면서, 큰며느리에게 ‘모쿠슈라’(Mokulsha)라는 별명을 지어준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 ‘밀리어 달러 베이비’의 감동에서 비롯된 인연이었다.
2018년 8월 2일 목요일인 바로 엊그제의 일이다.
최근 들어, 내 적극 참여하고 있는 우리들 ‘재경문경시산악회’ BAND에, 내 글 한 편을 게시했다.
‘My Life-slim life, 걱정 말아요 그대’라는 제목의 글이었다.
그 글의 초입은, 내 그동안 15년을 살면서, 두 아들 대학에 군대까지 보내고, 맏이 장가보내고, 내 사랑하는 손녀까지 얻어서 잠깐이나마 한 지붕아래 한 솥밥 먹으며 살아온, 너무나 정든 서초동 월드메르디앙 아파트에서, 나와 아내의 만년 삶을 위해 마련한 우리들 텃밭이 있는 내 고향땅 문경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려고 한창 이사준비를 하는데도, 집안 누구도 도움의 손길을 보태주지 않는 것이 하도 섭섭해서, 그래도 만만한 맏이를 지목해서, 그 맏이에게 내 그 섭섭함의 온통을 덮어씌우는 내용으로, 200자 원고지 10장 분량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는데, 바로 그 메시지 전문을 인용하는 것으로 채워 넣었다.
그 장문의 메시지를 인용하면서, 내 혼자 생각에, 그 길고 긴 메시지를 제대로 읽어줄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나 하는 생각이었다.
특히 그 메시지 중에 거의 맨 끝부분에 나오는 이 문장을 제대로 읽어줄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참 궁금했었다.
바로 이 문장이었다.
‘허뻐 잔소리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 중에서도, 우리 고향땅 문경지역의 특별한 사투리인 ‘허뻐’라는 그 두 자가 핵심이었다.
우리 아버지께서 살아생전에, 그것도 40대 50대 패기가 있으실 때, 취기가 깊어지시면 간혹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하시던 말이었다.
딱히 그 뜻을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그때 아버지 말씀의 앞뒤 분위기로 봐서,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는 표준말 ‘감히’라는 말로 풀 수 있을 것 같았고, 내 그리 이해하면서 지금껏 왔다.
그 말을 맏이에게 그 카카오톡 메시지를 띄워 보내면서 써먹은 것이다.
내 감정의 표티를 그 말에 상징적으로 담은 것이다.
바로 그 두 자, 아마 스쳐 지나치고 말겠지 했다.
그러면서도 긴가민가하며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문경여자고등학교 18회로 재경동창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영경 회원이 바로 그 얼굴의 주인공이었다.
어찌하나 두고 보자하고, 마음속으로 딱 짚어놓고 김 회원의 동태를 살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날로 김 회원이 댓글을 붙였고, 그 댓글의 맨 처음이 바로 그 ‘허뻐’라는 두 자였기 때문이다.
다음은 그 댓글이다.
‘'허뻐' 라는 부사를 알아들으니 진정 문경의 아들입니다.. 이삿일로 경황이 없으실 텐데, 밴드에도 열심이시니 진정 에너자이저 이십니다.. 폭염에 건강도 잘 챙기셨음 좋겠습니다.’
그렇게 내 마음을 정확하게 읽어주는 김 회원이 참 고마웠다.
김 회원뿐만이 아니다.
우리 ‘재경문경시산악회’의 온라인 BAND에서 어울리는 회원들 모두가 하나 같이 정성스럽기 짝이 없다.
건성 댓글은 하나도 없다.
언젠가 내가 카페지기인 우리들 Daum카페 ‘아침이슬 그리고 햇비’에 회원으로 가입해서는 다른 회원들 글에는 댓글 하나 안 달고, 오로지 자기 글만 게시하다가 어느 날 슬그머니 그 이름 석 자를 빼서 스스로 탈퇴한 회원 하나가 문득 떠올랐다.
“그걸 ‘모쿠슈라’라고 읽으면 안 되지, ‘모쿨스하’라고 읽어야 하는 거야.”
영화 ‘밀리언달러 베이비’에서의 아일랜드 토속어 ‘Mokulsha’를 ‘모쿠슈라’라고 우리말로 읽는 나를 보고, 그리 읽는 것은 잘못된 것이고, ‘모쿨스하’라고 읽어야 한다고 바로잡아주기도 했던 회원이다.
까칠한 음성이 내 심기를 건드렸다.
“미리 넘겨짚어서 나를 가르치려고 하지 말고, 우선 영화부터 먼저 보시게. 그러고 나서 내게 다시 이야기해주시게.”
나 역시 그렇게 까칠하게 응대했었다.
검찰수사관 동료이기도 했던 그 회원, 끝내 그에 대한 답이 없었고, 그 이후 어느 날 우리 카페에서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우리 ‘재경문경시산악회’ BAND에서 어울리는 사람들은, 그렇게 까칠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들 열린 마음에 정성을 다해 어울린다.
그래서 내 그들과의 어울림이 너무 편하고 좋다.
일흔 나이의 내게 뒤늦게 다가온 인연들이긴 하지만, 그 모두가 내게 있어 소중한 존재들이다.
곧 Mokulsha 동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