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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이 쥔 "카드"
번호 : 1796 글쓴이 : KWEASSA
조회 : 412 스크랩 : 0 날짜 : 2006.09.13 19:58
리플글을 달고 있다가, 이혁수님도 같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을 보고 리플이 끊길 위험도 있겠다.. (-.-;;), 게다가 이미 한 글에 리플이 100개 가까워지니 읽는 사람들 머리 아프겠다.. 하는 생각도 들어서 따로 정리를 해봅니다.
본문을 올리기 전에 양해를 구하자면, 일전에 말했듯 저도 정사는 개별적인 열전 및 대략의 내용을 접했을 뿐이지 처음부터 세세하게 연구해가며 공부한 적은 없기 때문에 앞으로 제가 올릴 내용의 상당부분이 아주 개인적인 (그러나 제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합리적인) 추론에 바탕을 두고 있을 뿐이라는 점을 먼저 밝혀두고 싶습니다. 즉, 옳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고, 그냥 "그럴듯한 가설" 중 하나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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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제갈량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결과론"을 배제하고 당시 촉의 입장에서 그들이 손에 쥔 카드를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옆에서 바둑을 훈수두고 있노라면 항상 자신이 생각하는 포석이 제일 훌륭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마찬가지로 고스톱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항상 필승의 수가 훤히 보이게 마련이죠. 3수, 4수 앞까지 내다보면서 누가 언제 설사를 날리고 효자뻑을 때릴지 까지 대충 통박을 굴려보면 나오거든요.
하지만, 막상 직접 게임을 뛰어보면 옆에서 구경할 때의 "결과론적"과는 전혀 달리 순간순간의 현실에 의해 때로는 엄청난 실수도 나오고, 때로는 불가피한 선택도 나올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나중에 승부가 모두 끝나고, 상대가 어떤 패를 쥐고 있었느냐를 알게 될 때 비로서 "아아, 저 부분에서 내가 틀렸구나"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지만.. 직접 경기를 뛰는 순간에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리는 만무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결과론을 배제"하는 것입니다.
결과는 이렇습니다.
제갈량은 5차례의 대위전을 벌여 4차례의 정벌전과 한 차례의 수비전을 치뤘습니다. 북벌전에서 모조리 실패함으로써 촉의 국력은 더욱 피폐해졌고, 제갈량의 전사(...라기 보다는 진중에서 죽은 것이지만 사실 일종의 '전사'라고 볼 수도 있죠) 로 인해 생긴 국치의 공백은 명신들이 나머지 "촉4상"직을 이어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촉의 정치적인 타락을 불러왔죠. 따라서, 그의 북벌전은 분명히 실패작이고 무리수였음은 "결과적"으로 사실입니다.
그러나, 결과를 떠나 그 과정을 살펴보면 그것이 단순히 아집도 아니고 무모한 집념도 아니라 나름대로 합리성을 띄고 있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즉, 결과적으로는 실패로 끝날 운명이었을지언정, 당시 이 빅게임에서 제갈량이 쥐고 있던 패로는 그런 식의 승부를 벌일 수 밖에 없었다고 나름대로 납득할만한 근거는 있다는 것입니다.
1) 첫째 카드: 전략적 조건의 차이
위의 글에 이혁수님도 제 의견을 지지하는 리플글로 지적한 바 있지만, 경제적/사회적인 국력의 차이는 군사력의 차이로 드러나고, 그러한 차이는 근본적으로 줄어들지 않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애초에 촉의 미미한 국력으로 압도적인 위에 대해 시종 공세를 편 것은 물론 불합리한 전략입니다. 하지만, 순전히 전략론적으로만 따진다면 아예 안되는 게임이 확실한만큼 애초에 항복하거나 아예 종전을 이끌어 영구적인 중국분할을 꾀할 수 밖에 없잖습니까.
그러나, 실상은 그 어느 것도 택할 수 없습니다.
앞서 지적된 바 있는 것 처럼 삼국의 분열은 근본적으로 '내전'에 속하는 것이고, 결국 어느 한 국가로 통일되는 것 만이 천하의 싸움을 끝내는 것이라고 당시인들은 누구나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국 대륙이 항구적으로 3세력으로 나뉘어 있을 수는 없는 이상 결국에는 삼국은 서로 적대적일 수 밖에 없고, 또 상대에게 무조건적인 항복을 하는 것도 한 국가를 맡은 입장에서는 가능한 선택이 아니죠. 그렇다면 촉은, 삼국정립을 이룬 한 나라로써, 최종적인 승리라는 목표를 위해서는 불리한 여건 속에서도 어쨌든 싸울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제갈량의 북벌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론을 대략하자면 "선내치후공세"로 압축이 되는데, 그것이 과연 생각만큼 합리적인 것일까요?
앞서 지적한 것 처럼 위, 촉, 오 각국의 국력의 차이는 장구한 역사를 통해 자리잡은 차이에 기인하는 만큼 애초부터 "극복불가능"에 속하는 것입니다. 100년이 걸려 내치를 다진다고 해봤자 촉은 촉이지 위의 규모를 갖출 수는 없고, 그 100년 동안 촉이 발전하는 만큼 위도 발전합니다. "내가 발전하는 만큼 상대도 발전하는 것"이죠. 군사력의 우위를 결정하게 되는 중요한 요소인 촉과 위의 경제력의 상대차는 결코 좁혀지지 않습니다. 초반의 차이가 크면 클 수록 오히려 시간이 감에 따라 그 차이가 벌어질 망정 좁혀지는 일은 있을 수가 없으니까요. 장기간의 평화가 이어지고 아무리 내치를 다진다고 해봤자 산중에 둘러싸인 작은 거점이 대륙의 모든 주요 경제적 거점과 평원을 장악한 국가를 능가할리는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선내치후공세의 치명적인 허점입니다. 애초에 시간을 들여 내치를 다지는 목적은 자국의 국력을 돈독히 함으로써 상대와의 격차를 줄이기 위함이지, 그 결과가 오히려 피아의 격차를 늘리는 것이라면 시간을 끄는 것은 택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닙니다.
삼국정립의 시대 이전의 공손찬과 원소의 대립에서 자기폐쇄적인 방어일변도의 전략이 얼마나 큰 악수인지는 이미 드러난 사실입니다. 원소에게 중요한 거점들을 상실한 공손찬으로써는 항복을 할 것이 아니라 항전을 할 것인 이상 최대한 단시간내에 상실한 지역들을 회복했어야 했습니다. 이미 대세가 기울었다는 말로 공손찬의 선택을 어느정도 비호해줄 수는 있다고 해도 결국 물러나 지키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 만큼은 확실해지죠. 결국 지키기만 하다가 눈덩이 처럼 불어나는 원소의 세력을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질식사하듯 뭉개졌으니까요.
반면, 불안한 대치관계에 있던 원소와 조조의 대립은 결국 한 순간에 조조가 일련의 전술적 승리를 통해 원소의 전략적 조건을 모조리 와해시키는 굉장한 역전승으로 끝납니다. 조조는 사방이 적으로 둘러쌓인 상황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 교전의 시기를 최대한 늦추고 방비를 철저히 하고픈 유혹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것입니다. 원소와의 대결을 외교를 통해 더 늦추고, 차라리 보다 약한 적들을 먼저 정벌함으로써 계속 자기의 세를 불리고자 하는 생각은 누구의 뇌리에나 스치겠죠.
그러나, 좁혀지지 않은 전략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결국 조조는 과감한 승부에 나섰고 전략적으로 불리한 상태에 놓인 자가 유리한 자를 제압하는 하나의 정석을 보여줍니다. 그 승리는 훗날 위국의 근본을 이루는 초석을 놓게 되었죠.
제갈량이 쥔 패도 이와 유사합니다. 시간을 끌어 내가 조금 강해진다고 해봤자 상대는 더더욱 강해질 뿐입니다. 그렇다면, 승부를 차일피일 미루며 방비를 하기 보다는 차라리, 최대한 가까운 시일 내에 승부를 벌여야 하는 것은 자명합니다.
2) 두번째 카드: "대전략"과의 접점
이전의 리플글 홍수 속에 (--;;;;) 제가 하나의 가설을 내던진 적이 있었죠. 촉의 근본적인 "대전략"은 400년전 한고조가 패업을 이루기 위해 대초전을 발동할 때 사용했던 전략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 말입니다.
어차피 글 쓰게 되었으니 좀더 자세한 설명을 곁들인다면, 연의는 물론이거니와 정사에서도 유비는 한고조의 풍모를 띄고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이러한 평판이 정사에까지 남은 이상은 분명 당시 세인들 사이에도 유포되어 있었던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수많은 정사상의 사건에서 묘사되는 유비의 모습 - 특별한 능력이 없는 단순한 건달을 연상시키지만 이상하게 사람을 매혹시키고 잘 부리는 재주 - 에서도 어느정도 한고조와 겹치는 부분이 있습니다.
더욱이, 무슨 조화에서인지 유비가 걸어온 도주에 도주를 더한 끝없는 여정이 결국 그를 형주의 주인, 그리고 최종적으로 촉의 주인으로 만든 사건은 당시의 세인들에게는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똑같이 수천년 전의 일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400년 전의 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정도로 당시인들도 한고조의 얘기는 누구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그들이 살던 나라 자체가 한고조가 세운 전한의 정통을 이었다고 자부하는 (후)"漢" 이었고, 단기간에 와해된 진(秦)과는 달리 중국 대륙에 지속적인 왕조를 창출함으로써 후대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모범으로써 강력한 힘을 발휘하였던 것을 생각한다면 "한고조를 닮았다" 내지는 "한고조를 따른다"는 사실은 당시에는 세인들을 단숨에 휘어잡을 만큼 매력적인 조건이었을 것입니다.
생각을 해보세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한나라가 너무나 어수선한 시국입니다. 그런데, 사방천지를 돌아다니면서 패배와 패배를 거듭하는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살아남은 영웅에 대한 소문이 들려옵니다. 더 강한 군벌들이 많았는데도 그들은 다 멸망한 반면 그 한 사람은 천하를 쥔 조조라는 거대한 존재에 감히 대적을 한다고 하죠. 그런데 그의 풍모가 한고조를 닮았다는 소리가 나오고, 더욱이 400년전 한고조가 그러했던 것 처럼 멀리 촉 땅에 자리를 잡았다고 하니 언젠가 한고조의 패업의 역사가 재현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은 정치에 대해 문외한인 평범한 농부라고 해도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감상입니다. 조조가 제패한 지역에 사는 사람으로써 그 통치에 별 불만없이 잘 살아가는 사람조차도 그런 얘기를 들으면 아마 그런 상상을하게 될겁니다. 기막히게 드라마틱하니까요. 유비가 오랜세월을 통해 문학작품으로 다듬어진 지금의 모습을 띄기 이전에도 이미 당시 사람들에게는 엄청나게 매혹적인 인물이었음은 굳이 상상하기 어렵지가 않습니다.
즉, 그는 최종적으로 입촉을 통해 의식했든 의식하지 않았든 촉이 취할 행보를 정해놓게 되었습니다. 한고조를 닮은 그가 촉에 들어갔고, "한의 중심" - 즉, "한중"의 왕위에 올랐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효과를 지닌 대외홍보이자 전략적 선언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사람이라면 유비가 촉에 들어가 한중왕에 올랐다는 사실을 듣기만해도 딱 "한고조 유방"이 자동적으로 생각날테니까요.
더욱이, 한고조가 취한 전략은 당대의 명장 한신이 지휘한 걸작품이었습니다.
*1단계: 과거 진의 관중영토를 분할한 삼진을 순식간에 장악함으로써 중원진입의 교두보를 다져놓는 것
*2단계: 한신이 직접 지휘하는 별동대가 북동의 화북을 제압하는 것
*3단계: 그동안에 치밀한 지연전과 외교전으로 동남의 항우를 묶어두어 결국 해하의 전투로 완성되는 결정적인 고립을 이끌어내는 것
이것으로 미미한 한의 세력이 강대한 초를 제압하고 "부드러움은 능히 굳셈을 제압한다"는 고사를 남기며 최종적인 승리를 거두게된 필승의 시나리오입니다.
촉의 입장에서는 선례가 된 이 전략 자체가 완성도가 높음은 물론이요, 그 전략을 기본방침으로 굳힘으로써 "한"과 "한고조"의 대의를 재현한다는 엄청난 대의명분과 홍보효과를 겸하게 되었으니 일석이조였을테죠. 그러나 문제는, 당시의 주적은 초/오가 아니라 화북과 중원에 자리잡은 조조의 세력이었고, 그가 구축한 체제의 강인함은 항우의 불안정한 패권체제와 비교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고조를 도왔던 항우의 실책도, 인재의 이탈도, 제후들의 호응도 촉에게는 없었죠.
결국, 유방의 생애 내에 마무리할 수 있었던 초한쟁패와는 달리 옛 초보다 훨씬 강대한 위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으리라고 누구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명석한 재상이라면 당연히 내다보았을 문제죠.
이것이 제갈량이 쥔 두 번째 패입니다.
발동을 위한 기본조건이 갖춰질 수만 있다면 굉장히 합리적이고 웅대한 전략. 더욱이 대의명분과 홍보효과를 겸한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하는 전략. 그러나, 현실적인 차이로 인해 그 조건들을 그대로 재현하기는 어려운 전략.
촉의 밑바탕에 깔린 천하통일을 위한 이 대전략을 사용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조건이 바로 제1단계까지 마무리해두는 것이었습니다. 그 1단계까지 제갈량이 마무리해두고자 한 것은 필연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한중과 중원 사이에 놓인 옛 진의 영토인 관중은 강을 인접한 비옥한 토지와 사방의 통제를 수월하게 해주는 계곡, 험지 및 관문이 실로 교묘하게 배치된 그야말로 "요새화된 옥토"였기 때문입니다. 전란을 피해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촉의 협소한 몇몇 도시에 비해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경제력과 인구를 갖추고 있었고, 촉이 위의 거점인 중원/화북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히 거쳐야 하는 한중 앞의 또하나의 관문이었으며, 다른 영토와는 달리 일단 장악해두면 어느정도 장기간의 방비를 하기에 유리한 최고의 교두보였기 때문이죠. 더구나, 장안은 전한의 수도 - 그 대의명분적 가치는 헤아릴 수 없이 큽니다. 특히, 한고조의 풍모를 갖고 있으며, 한고조 처럼 촉에 근거를 두고 한중을 통해 중원으로 나오고자 하는 유비가 그 지역을 차지한다면 그 파급효과는 정신적인 효과만 해도 기하급수적일지도 모르니까요.
다만, 한고조 시절의 삼진과는 달리 삼국시대의 관중은 잘 방비되어 있었습니다. 한고조와 같은 기습전으로 장악을 하는 것이 불가능한 이상은 천하통일을 위한 싸움에 있어서 장안까지의 첫 고비를 넘는 것이야말로 촉의 지상과제가 될 것이라고 제갈량은 예측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스스로의 재능을 명철하게 인식하고 있는 책임감 강한 명재상이라면 누구라고 해도 자기가 죽기 전에 반드시 이뤄놓아야 할 천하쟁패의 제1단계라고 내다보았으리라 생각함은 결코 무리가 아니죠.
3) 세번째 카드: 형주의 상실
그런 제갈량의 조급함을 더욱 부채질했을 것이 바로 형주의 상실입니다.
관우의 멸망과 출사표의 사이에는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 놓여있습니다만, 기실 형주의 존재야말로 촉이 당시 갖고 있었던 이론적인 전략과 현실의 격차를 결정적으로 메꿔줄 비장의 카드였습니다. 위가 내부적으로 강대하고, 관중지방의 방비가 단단하다는 현실의 차이를 상쇄시켜주는 것은 북형주에 놓인 두 번째 교두보입니다. 한고조의 시대와는 달리 한중으로부터 뿐만이 아니라 북형주에서 허창 방면으로 진격할 수 있는 두번 째 길이 열려있는 만큼, 적절한 준비가 갖춰진 순간 관우가 이끄는 형주군은 강을 건너 번성과 허창방면으로 진격하고, 촉군은 본래의 전략적 목표인 관중을 향해 진격을 했겠죠. 이러한 기본전략은 유비가 형주에 있었을 때 입촉을 준비할 무렵부터 이미 당시의 장수들 사이에 모두 공유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저는 추측합니다.
문제는 관우의 번성공략이 성급했다는 것. 정확한 경위는 모르겠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촉군이 준비를 갖추기 이전에 관우가 미리 번성공략에 나섰습니다. 제 추측으로는 아마 촉으로 파견된 제장들이 세운 것 못지 않은 공을 세우기 위해 본격적인 대위정벌 신호가 떨어지기 이전에 관우가 공격에 나섰을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어쨌든 그것은 실패로 돌아가고 관우는 멸망하며 결정적으로 형주를 잃게 됩니다.
연의에서 엄청나게 과장되었다고는 하지만, 후일 촉이 어느정도 대병력을 이끌고 이릉으로 진격할 수 있었던 이유도 애초에 그 촉군이 오정벌을 위해 모은 군대가 아니라 대위결전을 위해 촉에서 준비해두고 있던 병력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관우의 성급한 번성 공략이 없었더라면, 몇년이 지난 후에 동시패션 신호가 떨어지고 나서 애초 계획대로 한중에서 관중으로 진격하기로 예정된 병력이었다는거죠. 또, 이릉전투는 단순히 관우의 복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형주의 상실로 인해 대혼란에 빠진 촉의 수뇌진 사이에서 의견이 갈린 결과라고 저는 추측합니다. 관우의 원수갚의 의도도 있으나, 그에 못지 않게 상실된 북형주 지방을 최대한 빨리 수복하여 이탈해버린 기본전략을 다시 본궤도에 올리는 것이 유비를 비롯한 주전파들의 의도였고, 신중한 제갈량을 비롯한 화평파는 일단 상황의 추이를 지켜본 후에 다시 오와의 협력을 통해 북형주를 되찾겠다고 생각을 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형주와 형주방면군은 상실되었고, 대위전을 위해 준비해둔 촉군은 대오전에 투입되었다가 대패를 당합니다. 이것이 본래는 유비 생전에 이루이지기로 계획되어 있었던 북벌전이 유비의 사후로 늦춰진 계기가 된 것은 물론이구요.
결과적으로 유비 사후, 어느정도 군비를 복원하게 된 후에 제갈량은 초조해졌을 것이 분명합니다. 대위전을 위해 준비해둔 촉군이 이릉에서 궤멸적인 타격을 입은 후에 다시 군대를 재건하기까지 걸린 기간 동안 위와 오의 형주분할체제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기정사실이 되었으니 기본전략에 결정적인 수정이 가해지게 된 것이죠.
따라서, 군의 재건을 위해 허비한 시간을 메꾸고, 틀어져버린 기본전략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자기 생애에 전략1단계까지를 완수해두어야 한다고 제갈량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형주와 한중에서 출격하는 두 갈래 군대를 보내는 것이 불가능해진 이상 관중공략은 몇 배로 어려워진 것이고, 그렇지 않아도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있고, 더 이상 국력이 벌어지기 이전에 지금 당장 완수해두지 않으면 촉은 그야말로 절망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말라죽을 것이라고 내다봤기 때문이죠.
따라서, 이 세 번째 카드는 제갈량이 앞의 두 카드를 함꼐 쥔 채 섣부른 승부에 나서게 만든 결정적 카드입니다.
위의 세 카드의 끗수를 합해보면 나오는 결론은 북벌밖에 없습니다. 구체적인 목표는 관중의 점령. 지금 이루지 않고 시간을 더 끈다면 앞으로 영영 기회가 없을 것이니까요. 그리고,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무리한 북벌이 원인이 된 사실도 있으나 어쨌든 촉의 국력은 지지부진한 반면 위는 정치적인 혼란에도 불구하고 단지 정권의 교체만 있었을 뿐이지 내부적으로는 더욱 강력해졌으니까요.
이와 같은 가설이 사실이라고 믿는다면 강유의 북벌시도도 또한 설명이 됩니다. 분수와 능력도 모르고 싸이코짓을 한 강유라기 보다는 제갈량과 가까웠던 만큼 촉의 기본전략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에 내정을 소홀히 하고 국력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을 감수해서라도 이루고자 한 목표였죠. 이미 제갈량은 죽고 삼국의 정립은 확정되었으며 애초에 단 한번 존재했던 유비입촉후의 결정적인 기회마져도 놓친지 오래입니다. 이제와서 내치를 잘 해봤자 어차피 멸망은 시간문제인만큼, 그 절망적인 상황을 되돌려놓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걸고 그야말로 대도박에 나서는 것 외에는 해답이 없었으니까요.
불행한 것은 강유의 재능이 그것을 실현할 만큼 뛰어나지 못했다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그것이 촉의 멸망을 앞당기게 되었다는 아이러니입니다. 그러나, 그 상황에서 제갈량과 강유가 취한 북벌의 취지, 그 기본전략은 더할나위 없이 올바른 것이었습니다. 그것 외의 대안은 몇십년을 더 끈다고 해도 멸망이나 항복 밖에는 없었으니까요.
... 뭐, 제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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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짱 맞는 말씀이십니다. 100년을 국력을 다져도 장안을 차지하지 못하는이상 촉은 촉이고 위는 위일 뿐이지요. 그걸알기에 제갈량과 강유가 그렇게 북벌을 성공시키려 노력을했구요. 오정벌전도 최소10만은 동원했을겁니다. 오에도 여몽 노숙 감녕 주태 능통 정봉같은 명장들과 20만을 웃도는 군대가 있었으니까요. 10만정도의 군대가 이릉에서 패퇴했으니...촉에게는 별가망이 없었던거지요 그걸로 농서지방과 장안을 떨궜으면 형주를 잃은것에대해 복구가 됐을지도 모르나... 06.09.13 20:29
답글 sipahi 스타에 빗대서 정리를 하자면.. 1. 테란이 밀릴대로 밀려서, 우주방어모드를 계획 2. 우주방어모드 완성을 위해 앞마당 멀티를 먹음과 동시에, 미네랄멀티 형주에서 벌쳐가 달려주는 전략을 시도 3. 컨트롤 미스로 벌쳐가 미리 녹아버림 4. 미네랄 멀티 날아감 5. 주력이 미네랄 멀티 되찾으려고 갔다가 캐발림 6. 다시 쥐어짜내서 끝까지 앞마당을 먹으려 했으나, 결국 발림 7. gg 06.09.13 22:13
답글 김세빈 오 이해하기완벽한 비유 같은데요 ㅎㅎㅎㅎ 06.09.14 02:10
RuneWind 위를 저그, 오를 플토로 보면 촉 주력은 스톰에 발린게 확실합니다아~~~ 06.09.14 18:58
엘리시아 비유한번 적절하십니다~ 06.09.16 01:49
흑월회주 하긴 그 상황에서는 장안을 함락 시켜서 여세를 몰아치는 방법말고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제갈량은 남만 정벌 전 5로 침공때 조운이 조진의 위군을 물리치고 양평관에서 나와 장안으로 진격할때 왜 군대를 돌리게 했을까 그것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되내요 그때 조비와 유엽이 오나라에 신경쓰고 있을때고 방비도 허술했을때 인데 말입니다 물론 남만에게 옹개 주포가 반란을 일으켰다고는 하나 비위 였던가요 남만의 반란은 장수 한명만 보내도 충분히 막을수 있다고 했는데도 장안을 치지않고 남만으로 내려간건 좀 ... 나름 주변은 안정시킨다고 하는 목적이였겠지만 그때 만큼 촉이 장안을 점령할수 있던 기회도 없었는듯.. 06.09.13 23:01
답글 흑월회주 하나 더 아까운건 맹달이 다시 위에서 배반하고 촉으로 넘어올때 제갈량의 말을 무시하고 방심하다가 사마의한태 발린것도 아깝군요 쩝... 06.09.13 23:02
답글 KWEASSA 간결하게 스타에 빗대신 시파히님의 재치는.. 천재적입니다. --;;; 제가 따라갈 수가 없군요. 06.09.13 23:11
답글 Black Raven 대부분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일단 위나라와 촉나라의 차이를 내정으로 좁힌다는분들.. 말도안된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경제력의 성장은 제곱으로 보기때문이져 보통 촉과 위의 차이를 1:6 이나 1:7 심할때는 1:9 까지도 보는데 제곱 시켜보네여 어떻게 되나 ㅡㅡ; 촉이 2가 되면 위나라는 15는 되겟죠 또 촉이 4가 되면 위나라는 40을 넘기겟죠 그냥 답이 업는거져 이건뭐 -ㄱ...... 06.09.14 01:15
답글 Black Raven 즉 북벌은 분명 옳은선택은 아니지만 제갈량에게는 조그마한 성공의 가능성이 보엿기에 선택할걸껍니다.. 내정을 하면 위를 이길확률은 거의 0%라고 볼수잇겟죠.. 하지만 북벌을 하면 성공확률을 10%라고 해봅시다.. 저라면 당연히 북벌을 선택합니다.. 촉에게 나쁜건.. 촉에 천재가 업엇고 -_-; 위나라가 바보도 아니엿으며... 두나라의 차이점이 크고.. 형주를 잃엇고 오나라와 협동이 제대로 안됫다는점 06.09.14 01:16
답글 Black Raven 만약 관우가 완으로 진격 유비가 장안 오나라가 합비와 수춘으로 4방향 공격이 들어갓다면 그 강대한 위나라도 충분히 위협을 느끼고 목숨을 건 전쟁으로 나서겟죠 -_-; 다만 제가 알기로 관우의 번성과 양양공격은 유비의 지시아래 공격한걸로 알고잇는데.. 이게관우의 독단이엿나여 ????? kweassa님 답변점 -ㅁ-; 06.09.14 01:17
답글 KWEASSA 정사 관우전에는 "건안 24년에 유비가 한중왕이 되자, 관우는 전장군에 임명되고 절과 월을 받았다. 이 해, 관우는 병사들을 인솔하여 번성에서 조인을 공격했다"라고 애매하게 기술되어 있을 뿐입니다. 전장군에 임명된 후에 구체적인 공략명령을 받아 군사를 일으킨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려있는데 저는 관우의 독자행동이라는 설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군비를 갖추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견제명령 정도는 내렸을지도 모르겠네요. 06.09.14 12:15
Black Raven 한 가설이 잇는게 제갈량이 촉의 2인자인 관우를 제거하기위해 형주를 도와주지않앗다고 하는데.. 뭐 이건 노코멘트.. 각자의 의견 저는 아니라고봄.. -_-; 글고 이릉전투 물론 유비의 복수심도 한몫햇지만 가장 중요한건 형주를 되찾는거엿겟죠 명분은 관우의 죽음 하지만 원하는건 형주.. 마치 미국이 이라크를 핵무기를 명문삼아 쳐들어가도 석유를 원한것처럼 06.09.14 01:19
답글 Black Raven 유비가 이릉에서 진것은 삼국지 최고의 명장중하나인 육손한테 ㅈㅈ.... 뭐 제갈량 조운 마초 위연 등등 중요장수들이 다 빠져잇긴햇어도 ; 이 한패 승부가 크긴컷져 06.09.14 01:19
답글 Black Raven 참 조진은 제갈량이 랑 싸운적 한번도 업어여~ 조진이 딱한번 촉을 쳐들어갓을때도 기후땜시 후퇴 그후 병사 -_-;;; 제갈량에게 맨날 발리는 조진을 허구... 그런 바보가 대사마까지 올랏겟습니까.. ㄷㄷ 06.09.14 01:20
답글 Black Raven 글고 맹달이 사마의한테 발린것도 허구로 알고잇는데 잘 기억이안나는군요 -_-; 남만은 글쎄여.. 그냥 후방을 깨끗히 정리하고 홀가분하게 갈려던게 아닐찌.. 하지만 제갈량사후 남만은 다시 반란일으키는 장억 마충횽님 ㅅㄱ 06.09.14 01:21
답글 김세빈 남만 정벌은 일단 위나라랑 대박으로 붙기전에 세력 확장 및 후방 정리가 아닐까요? 제갈량 사후 남만이 다시 반란을 일으키지만 위나라가 촉을 공략할 때 유선에게 "남만으로 퉈서 훗날을 기약합세"라는 의견이 나온 것만 봐도 나름대로 잘 정리가 된 걸로 아는데... 06.09.14 02:13
답글 유문기 남만정벌은 후방을 안정시키는 목적과 말의 생산지를 차지하려는 목적으로 행해졌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 당시 말 생산지로 유명하다고 <중국중세사>에서 보았던 기억이 있네요. 06.09.14 09:55
답글 이혁수 오~ 브라보~ 너무 멋진 글입니다. 음 그리고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유비가 이릉에서 오토벌에 동원한 군사가 70만이라고 하지요. 부풀려진 감은 있지만 최소한 그때까지 촉은 삼국 중 가장 공세적이었고 군사적으로는 오와 만만치 않았습니다. 한번에 다 까먹었지만....... 06.09.14 10:01
답글 Black Raven 이혁수님 촉의 총인구수가 90만인데 70만이라뇨 -_- ㄷㄷ... 보통 5만으로 보고 최대 8만 아무리 많이 잡아도 10만 못넘겻을듯... 글고 남만지형이 말생산지는 좀 아닌것 같은디; 06.09.14 14:34
답글 이혁수 정사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연의에서는 70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 06.09.14 14:43
답글 막강용이 멋집니다. 06.09.14 18:48
답글 securitad 차라리 유비가 입촉 이후에 약속대로 오나라에게 형주를 돌려주는 대신, 오와의 굳건한 동맹관계를 유지한 채 서로의 양방향에서 위를 압박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약속대로 형주를 오나라에게 돌려줬다면 이릉전투같은 의미없는 소모전 따윈 안했을지도 모르죠. 차라리 그 강대한 군사력을 돌려 장안공략전에서 사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오와의 효과적인 공조체계 하에서 더욱 다양한 전략적 선택이 가능했을지도 모릅니다. 06.09.15 10:03
답글 사탕찌개 정말 멋진 글입니다. 정말 중국인들이 '출사표를 읽고 울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유까지 간접적으로 느껴지는... 06.09.16 10:33
답글 바바리안캐벌리 유비의 군사가 4만이고 육손의 군사가5만으로 알고있습니다. 실제로는 오히려 오군이 더많았다고 알고있습니다만..? 06.09.19 01:02
답글 막강용이 어디서 알아오신거죠..? 06.09.23 12:13 최신목록 | 목록 | 윗글 | 아랫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