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의 삼각지대
워커장군이 12월 23일 사망하는 바람에 그자리를 리지웨이 장군이 붙인 철의 삼각지대(Iron Triangle)에는 불모고지가 있으며 주인이 24번이나 바뀌었단다.
유엔군이 북상을 했을적에 서쪽은 8군이 맡고 장진호부근은 10군단이 맡았는데 중간에는 허술한곳으로 중공군이 들어와서 전선은 쪼개지고 사기는 저하되었단다.
중공군은 낮에는 초목으로 위장을 한 후 움직이지를 않으니 정찰기가 아무리 찾아도 발견을 못했으므로 5-7만으로 추산했던는데 실재의 중공군은 25만이었단다.
내가 보관하는 1950년 미국에서 발행한 라이프잡지 8월치에는 유엔군의 엄호아래 남녀노소의 피란민들이 낙동강을 건너는 장면의 사진이 있는데 올려볼 예정이다.
피난민은 경부선 철도를 따라서 이동을 하면 남쪽으로 향하는 가장 빠른 길이 되는데 두 번째여인은 뱃속에 아이를 가진 것 같다.
쌀은 준비를 했지만 냄비와 이불을 준비하지 않은것을 보면 조금 멍청한 사람들 같다.(가난해서 금속 냄비가 없는 사람들이었을까?)
그 당시 9살이었던 나는 피란길에 행여 가족들과 생이별이 있더라도 옷 두벌과 물만 있으면 살수가 있는 백설기떡을 말린 후 등에 짊어지고 집을 나섰다.
외할머님의 제부는 담배쌈지의 끈 끝에 엽전을 매달아서 쌈지를 묶은 후 꼭 끼우면 저절로 풀리는 법이 없어서 편의상 사용을 하셨는데 피란을 가는 도중에 아군은 인민군이 사용하는 암호표시라고 의심하여 숱한 매를 맞으셨다.
***엽전을 사용하는 담배쌈지를 본분은 과연 몇사람이나 생존해 있을까?***
'다같이'를 '다가치'라고 기록했는데 미국에 온 문맹이 쓴것일까?
아니라면 문맹이 읽기 편하도록 쓴것일가? 의문으로 남는다.
'이 사람은 유엔군이다'가 아니고 '이것을 지참한 자는 유엔군이다' 가 된다.
'다가치 원조하자'가 아니고 '우리들은 그들의 원조자가 되자'가 원뜻이다.
교통의 요충지인 아랫쪽으로는 철원과 금화가 있고 위쪽으로는 평강이 있어서 삼각형이 되는데 미군들은 삼각형되지고기의 "Pork Chop Hill(삼겹살 고지)"이라고 불렀는데 휴전이 있기전에 조금이라도 땅을 더 빼앗으려고 치열하게 겨루게 되는데 이북이 원하는것은 38선의 원대복귀이고 유엔군의 이쓔는 현재의 전선을 기준으로 하자는 제안이 팽팽히 맞서는 바람에 휴전이 지연이 되었단다.
휴전후 내가 이곳 철원에서 육군 15사단 DMZ에서 군용차정비병으로 3년간 근무를 했는데 그 기술로 미국을 왔으며 덕분에 이 사진들은 내가 직접 담아 독자들을 도운다.
그당시 나의 IQ(지능지수:Intelligence quotient)에서 134점을 받았고 능력시험(ability test)에서 129점을 받으니 나는 적을 마주하는 가장 중요한 요충지 최전방에서 근무를 하게 된다.
서울을 내준 1951년 1월의 1.4후퇴는 추운겨울의 민둥산이 있어서 은폐물이 없는 평택오산 대전 쪽 야산으로 으로 중공군을 유인한 뒤에 밤에만 이동을 하는 그들을 갑자기 항공기가 나타나서 야광탄을 공중에 띄운 후 전투기의 기총소사로 쏜다는 작전이었다는설이 있긴 한데 중공군으로 참전을 했다가 노인이 된 사람의 말에 의하면 3만5천명이 죽었다니 설득력이 강한가 약한가?.
위 지도상의 장진호(Chosin Reservoir)는 '조신'이라고 불렀는데 일본발음으로서 해방이 되었을지라도 유엔군의 지도에는 일어로 되어 있었나보다.
한국전쟁당시의 서울은 '경성'으로 일어로'게이죠'이었고 인천은'진센'이었다.
중공군의 출현으로 후퇴를 할때는 흥남부두를 이용했다.
휴전직전 핵을 쓸것이라는 헛소문이 나도는 바람에 UN군이 조금덕을 보았단다.
한국이 작아도 거대한 국가들사이에 끼어있어서 그들의 힘겨루기를 하는 전장에 화약고이었던 셈이고 군인과 민간인을 합쳐서 300만명의 사상자를 내넜다는데 1953년 냉전으로 바뀐후 69년이 된 지금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 된 국가가되며 아직도 전쟁은 끝이 나지 않은 상태이다.
안내원의 이야기로 워싱턴DC(District of Columbia 48개주에서 알래스카와 하와이는 주로 승격이 되었지만 워싱턴은 아직 안된 상태이어서 매번 특별지구의 약자인 DC를 붙힌다)에 있는 안내원의 이야기로 '미국기계역사박물관'은 2년반동안 문을 닫았다가 다시 문을 연지는 2년 7개월이 되었단다.
이곳에는 3층 천정에 매달아서 20m길이의 지구의 자전을 보여주는 홑흔들이, 뉴욕의 브루클린 브릿지를 연결하는 수천가닥의 철사뭉치를 자른것, 콘크리트기둥의 강도를 실험하는기계. 1938년의 TV, 축음기, 여러가지의 총기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기에 안내원에게 물으니 창고속에 보관 중이라고 했는데 박물관의 장소가 소잡하기 때문이다.
위의 사물들은 박물관에 이전에는 없던 것 들이다.
***태극기의 8괘는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글을 써더라도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닌 3,4,5,6이 위에서 아래로 표시되는것 같다.***
첫댓글 다시 한번 한국 전쟁 역사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