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특파원 칼럼
[특파원 리포트] 처절한 중국의 대학입시
조선일보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입력 2023.06.09. 03:00
https://www.chosun.com/opinion/correspondent_column/2023/06/09/VDO5EHQWMVAXBINYHLKRWLO5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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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중국 대학 입학시험인 ‘가오카오(高考)’ 첫날인 7일, 랴오닝성 톄링시의 한 시험장 앞에는 치파오와 보라색 속옷, 나이키 운동화를 갖춰 입은 캐나다 남성이 등장했다. 치파오는 ‘치카이더성(旗開得勝·시작하자마자 승리)’, 보라색 엉덩이[紫腚·쯔딩]는 ‘즈딩넝싱’(指定能行·반드시 성공), 나이키 로고는 ‘만점’, 캐나다인의 가(加)는 ‘가점’을 의미하고 상징한다. 올해 가오카오에 역대 최다인 1291만명이 응시해 살인적인 입시 경쟁이 벌어지자 ‘인간 부적’까지 등장한 것이다. 올해 가오카오 응시생들의 4년제 대학 합격률은 40% 미만이고, 명문대 진학률은 4.6%에 불과하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식을 명문대에 보내기 위한 중국 부모들의 노력이 처절하다.
중국의 이 같은 대입 시험장 풍경은 우리에게 낯설면서 익숙한 풍경이다. ‘초등생 의대 입시반’이 생긴 나라 아닌가. 중국에서는 ‘명문대 간판’, 한국에선 ‘의대생’을 위해 치킨게임에 돌입한 상황이다.
예전에는 비슷했을지 몰라도, 지금 한국과 중국은 대입 구조가 크게 다르다. 한국은 학생이 부족한데, 중국은 대학이 부족하다. 한국은 사교육이 자유로운데, 중국은 국가에서 사교육을 금지시켰다. 한국은 수시 모집 비율이 78%로 높지만, 중국은 한 번의 시험이 당락을 결정한다.
교육 시스템이 크게 다른데 왜 두 나라 학생들은 모두 극한의 입시 고통을 겪고 있을까. 사회 계층 이동이 어려워지면서 유일한 신분 상승 수단이 된 대학 입시에 승부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명문대에 들어가야 안정된 직장을 얻거나 대도시에 정착할 수 있고, 한국에선 의대생이 되어야 그나마 안전하다는 인식이 팽배해졌다.
중국에서는 훙얼다이(혁명가 후손), 푸얼다이(부유층 후손), 관얼다이(고위 관료 후손) 등이 좋은 일자리와 높은 지위를 손쉽게 차지한다. 남은 자리는 평범한 가정 출신 명문대생의 경쟁이다. 한국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경제성장 속도가 느려지고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청년들의 진로 선택지가 좁아진 것도 문제다. 중국에서는 10년 전만 해도 대학 수위가 경영 수업을 도강하며 창업의 꿈을 꿨지만, 지금은 명문대생들이 스스로를 청나라 말기 도태한 지식인인 쿵이지(孔乙己)에 빗대고 있다. 한국 역시 부모 세대는 산업화를 경험하며 열심히 노력하면 집 한 채는 마련한다는 꿈을 꿨지만, 자식 세대는 그 하나뿐인 부모의 집에 의존해 남은 삶을 버텨야 하는 게 아닐까 자조하고 있다.
나라가 정체되어 계층 이동 사다리가 짧아지거나 끊어지면 꿈을 가진 청년들이 결국 드러눕는다. 중국에서는 ‘탕핑(躺平·드러누워 포기한다)족’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는 괜찮다고 말할 수 있나. 위정자들은 더 긴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