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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류시인(女流詩人) 피춘자(疲春雌)-36
그랬다. 피춘자 시인은 달라졌다. 여자의 변신은 이해할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지만, 그녀를 변신하게 한 그 계기가 엄청난 충격이고 감동이었다. 아니. 어쩌면 잠재하고 있었던 사랑이 형체를 만나 합체하여 살아 숨 쉬며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리라. 피춘자 시인은 이해하기 쉽지가 않았다. 이 나이에 이렇게 자지러질듯한 충격과 엄청난 감동으로 자신의 가슴속을 꽉 채우는 사랑이 있게 될 줄이야. 그 사랑이 함께하며 폭발할 줄이야. 이건 사랑이 아니고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인간의 존재가치였다. 춘자는 자판 두드리기를 잠시 멈추고 고개를 들어 거실 창가로 비춰 보이는 하늘을 보았다.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가 내 속에 사랑이 되어 들어와 있는 동안 그는 나에게 너무도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나 또한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그의 마음속에 담길 내 마음과 내 사랑을 천천히 발견하기에 충분한 이야기를 해 주었어. 우리는 아직 충분한 시간이 있어. 사랑은 땀과 노력과 이해와 희생과 기다림과 포용과 눈물을 먹고 산다고 하잖은가. 이제는 진정한 사랑시를 쓸 수가 있어. 내 마음이 다 담겨있는 살아있는 사랑시를.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좋을 나만의 사랑시를 쓸 수 있는 거야. 나는 지금까지 사랑에 대하여 들어만 왔지 그 실체를 알 수가 없었어. 드라마나 소설 잡지에서 보고 듣고 한 그들의 사랑은 허랑(Fake love)이었어. 그런 게 사랑은 아니었어. 사랑은 둘이서 하는 것이었어. 사랑은 한마음이 되어서 느끼는 것이었어. 산전수전을 보고 겪은 이 나이에 둘이서 하나가 되었다는 것.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거야. 피춘자는 그 기적을 체험한 여인이 되었던 거야. 아~ 피춘자. 멋지다. 그런데 그 기적은 갑자기 나타난 기적이 아니었어. 물과 기름같이 주변을 겉돌다 껍질을 벗고 서로의 사랑에 대한 진실을 알고 섞어 느끼고 만끽하며 체험한 거야. 그 사람도 나도 부정해서는 안 되는 영원까지 함께할 사랑이 그 사람과 내 가슴에 심어진 거야. 나는 이 사랑을 다지고 다져 다이아몬드 사랑으로 만들 거야. 아~ 피춘자. 사랑한다 피춘자. 너 정말 너무 멋지다. 알렉스. 여보. 고마워요. 사랑해요. 당신을 영원히 사랑해요.
춘자는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담았다 마른 목구멍으로 넘겼다. 단맛이었다. 알렉스의 혀가 입속에 가득했을 때도 이런 단맛을 느꼈었다. 피춘자 시인은 이제부터 무엇을 해야 할지. 할 일들이 갑자기 너무 많아진 것 같았다. 그러나 딱히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떠오르지는 않았다. 20대 소녀같이 가슴과 마음이 두근거리고 설레었다. 그가 돌아오면 같이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전에는 알지 못했던 새로운 행복이 가슴에 가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랑은 이렇게 사람을 젊게 활기차게 온통 희망적이게 만드는 것이다. 오후의 하늘은 푸르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실은 밖 앗아 하늘은 푸르지 않았다. 토요일의 오후는 흐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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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는 동마장 버스 터미널에서 양양까지 가는 우등 고속버스를 탔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피춘자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하였다. 하늘까지 뛸 것 같은 사랑의 벅찬 감동을 가슴속에 추스르느라 애먹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죽음을 불사하고 권진혁을 만나야 하고 그로 인하여 발생한 피춘자의 문제를 깨끗하게 한 후 돌아오리라는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그의 피춘자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었다. 그를 제거해야 피춘자가 여류시인으로 연기자로 낭송가로 아름다운 한 중년 여인으로 살 수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 문제를 완결할 사람은 오직 자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 그 여야 하고. 누구도 대신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버스가 강원도로 접어들어도 꼼작 않고 차창 밖을 보며 권진혁에 대한 정리와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무서운 사랑의 힘이 이미 나이가 충분히 된 그의 몸과 마음속에 잠재하여 폭발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알렉스는 양양에 도착하여 한 모텔에 방을 정하고 샤워를 한 후 택시를 타고 밤바다를 구경하며 늦은 저녁을 할 수 있는 해변 식당으로 갔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차기는커녕 시원하였다. 향수의 부근에서 즐길 마음의 여유는 없었다. 잡고기를 넣어 끓인 해물탕은 실로 오랜만에 먹어본 동해바다의 향수였다. 생각 같아서는 유리병에 몽땅 집어넣어 떠날 때 가지고 가고 싶었다. 그는 좋은 기분으로 방파제를 걸으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막 불을 붙이려는데 포구 좌측 끝 쪽의 식당에서 음악이 시작되었다. 짐작으로는 객지에서 온 사람들이 회식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는 그쪽으로 발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혹시나 해서이다.
그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어두운 밖에서는 불 환하게 켜진 식당 안쪽이 잘 보였다. 젊은 여성 3명과 4명의 남성들이 둘러앉아 화기애애하게 술을 마시며 흘러나오는 음악에 취하고 있었다. 알렉스는 그곳에서 권진혁을 보았다. 그들 팀이었다. 출발하기 전에 컴퓨터를 통하여 그의 모습을 익혀두었기에 금방 알 수가 있었다.
알렉스는 늦게까지 기다렸다가 그들이 투숙한 호텔로 돌아가자 따라가 그들이 묵고 있는 호텔을 확인하였다. 그때 이미 새벽 2시가 되었다. 그들은 근 3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다행히 그들이 묵고 있는 호텔은 알렉스의 모텔과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었다. 알렉스는 그들이 월요일 오후에 떠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일요일 오후가 만나서 이야기할 가장 좋은 기회라 생각하였다. 그는 권진혁과 싸우거나 말다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럴 사안도 아니었고 그렇게 서로 감정을 상하게 할 이유도 없다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가 다시는 피춘자의 근처나 주변에 있지 않도록 할 방법은 가지고 있었다. 어떻든 분명한 것은 이번 여행 중에 그 문제를 크린 하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이러한 문제로 그를 만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권진혁이 그를 만나야 하는 이유가 충분하였다. 그와 딜을 하기 위한 물건은 충분하였다. 남은 것은 그가 절실히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와 이연 교수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다 말하지 않아도 딜을 위한 물건을 잡도록 하기에 충분하다 생각하였다. 알렉스는 칼자루를 쥐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 것이 오랫동안 살아온 거친 삶의 결과 중 하나이었다. 알렉스는 그들이 투숙한 호텔의 룸을 카운터에서 쉽게 알아내었다. 역시 일요일 오후가 좋았다. 그것도 저녁식사를 하면서.
피춘자 시인은 알렉스가 떠난 그다음 날의 오후부터 스케줄이 잡히기 시작했다. 주로 조수연이 매니저같이 연락하였다. 피춘자 시인도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하고 좋았다.
"선생님. 오늘 오후에 충청 시민 티브이에서 '독자와의 대화'시간이 잡혔어요. 1시간 대담인데 참가하셔야 해요."
"응. 그래요. 20분 전에 도착할게요. 그곳에서 만나요."
"예. 선생님. 제가 예상 질문들을 준비했어요. 들어가시기 전에 잠깐 읽어 보시면 될 것 같아요."
"고마워요. 조수연 작가."
"에구. 고맙긴요. 제가 좋아서 하는 건데요. 선생님이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별일은 없으시지요? 제가 도울 뭐... 혹 있으면 언제든지 하명해 주세요. 선생님."
피춘자 시인은 참으로 조수연 작가에 대하여 고맙고 감사함을 느꼈다. 알렉스가 돌아오면 어떻게 보답을 해야 할지 의논해서 꼭 보답하리라 다짐했다. 조수연의 말에 따르면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작은 혹은 조금 큰 방송과 여성 잡지 인터뷰들이 계획되어 있다 하였다. 휴대폰은 조수연이 새로운 것 하나를 주었다. 그녀와 연락용이었다. 금전적 관계도 필요한 정보를 다 주었으며 월 말에 한 번씩 정산해 준다고 하였다. 언제까지 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그렇게 도와주겠다고 하였으니 춘자로서는 너무도 고마웠다. 피춘자는 얼마 전부터 찾아온 행운 같은 바쁜 인기는 싫지는 않았지만, 뭔가 가슴 한구석에 불안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굳이 알아내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급속한 변화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었다. 누구든 이런 환경과 상황에 처하면 느낄 그런 불안이라 치부하며 다음 주에 알렉스가 돌아오면 차분히 물어보고 지도를 받아야지 하는 다짐으로 그 밤을 보냈다.
알렉스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천삼분과 정지훈과의 관계를 권진혁이 알고 있다. 그는 언젠가 그들의 관계를 이용할 것이다. 피춘자와 정지훈과의 관계가 특별히 문제없는 것으로 밝혀지자 그는 천삼분을 이용하여 피춘자를 끌어들일 계획이다. 그는 가장 활용가치가 높은 피춘자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 목적 달성을 위한 활용 타깃은 천삼분이다. 그와 이연 교수와의 관계에 대한 위험을 스스로 방치한 채 새로운 악의적 모험을 즐기려 한다. 그것이 그의 천성인가? 여성 호감적 얼굴과 신체조건 그리고 그 나이에도 활발하게 하는 사회사업들은 누구든 그를 만난 중년 여성들이면 그를 좋아할 수밖에 없는 남자였다. 이연 교수 또한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불만투성이인 남편을 둔 채 그대로의 관계가 그녀에게는 좋았다. 사실 피춘자 시인도 처음 그를 만나자 바로 호숫가 식당까지 그의 차를 타고 따라가지 않았던가. 이런 것들이 그의 대 여성적 매력이었다.
냉온 융 협수(How to win against each other. 중용과 같은 의미이다. 난류와 한류가 합치는 곳에 물고기가 종류도 다양하고 많이 살고 있듯이 반과 정이 융합하여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거나 원만한 서로의 기분 좋은 윈-윈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뜻한다.)의 의미에 대하여 알렉스는 생각했다. 피춘자 시인이 이제부터 다양한 사회생활을 받아들이기 위하여는 냉온 융 협수 같은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하고 웬만한 정과 반을 다 포용하여야 할 것이다. 알렉스는 권진혁의 관계도 가능하면 역전시켜 그의 피춘자에 대한 반 감정을 성애적이 아닌 인간적 호감으로 바꾸어 뭔가라도 도움이 되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생각했다.
"누구? 피춘자 시인에 대하여 의논하고 싶다고? 당신 누구요? 어디서 전화하는 거요?"
권진혁은 놀랐지만 곧 피춘자 시인에 관한 의논이란 말을 듣자 고 자세가 되었다.
"당신, 누구야? 그리고 어디서 전화하는 거야? 나 지금 지방이고 바쁘니 나중에 다시 연락해 주쇼.”
그는 다시 물었다. 뭔가에 미련이 있었다.
"이연 교수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는 잠시 놀라서 생각하는듯하였다.
"잠깐, 당신이 어떻게 이연 교수를 아시오? 지금 어디요. 그곳이?"
"지금 양양에 있습니다."
"나도 양양이요. 양양 어디요?"
"내일 오전 중에 다시 전화하겠습니다. 불행한 사태가 발생되지 않길 바랍니다."
"어이- 잠깐!"
그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으며 알렉스는 전화를 끊었다.
그는 예상대로 끌려오고 있었다. 이제 그를 만나는 일만 남았다. 알렉스는 그를 만나 서로 윈-윈 할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생각했다. 피춘자 시인에게 알려준 냉온 융 협수(Win each other)라는 말이 생각났다. 전화위복(The anger turned into a blessing.)도 생각났다. 알렉스는 모텔 뒤 주차장으로 가서 멀리 동해바다가 보이는 곳에 자리 잡아 앉아 마음 놓고 담배를 꺼내 피웠다.
"나준석 피디님?"
"예. 맞아요. 피춘자 시인님. 별일 없으시지요?"
"예. 저는 별일 없이 잘 지내고 있어요. 두 분 함께 계세요?"
"예. 선생님. 저예요. 반가워요."
조수연 작가가 옆에 있다 전화를 받았다. 그저께에 만났는데도 연인같이 보고 싶어 하였다.
"잘 되었어요. 월요일이라서 바쁘시겠지만, 저녁식사 약속 없으시면 저와 같이해요. 플리즈~"
"ㅎㅎㅎ 옛썰. 좋아요. 그렇게 해요. 선생님이 사주세요."
"어머. 기뻐라. 그렇게 말하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어요. 셋이서 같이 저녁시간을 즐겁게 보내요. 그럼 잠시 후 만나요."
춘자는 기분이 좋았다. 자식들과의 만남과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알렉스에 대한 걱정도 장래에 대한 불안한 것들도 다 잊고 만난다는 설렘과 기대로 색다른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춘자는 이런 작은 일에도 기뻐하고 행복을 느끼는 감성이 여린 여자였다.
첫댓글 여류시인 피춘자 좋은소설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잘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