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광 들어간다는 걸 네가 뜯어말렸죠”
배우 김승우, 김해곤을 말하다
“승우가 뒷수발 다 해줬지.
그래서 내가 세상물정 모르는 천치가 된 거라니까.”
얼핏 어울리지 않는 듯한 조합이지만 김해곤과 김승우는
서로를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꼽는 데 주저함이 없다.
<장군의 아들> 오디션을 통과했던 시절. 김해곤의 몸이
지금보다 날렵했고, 김승우의 몸이 지금보다 육중했던
그때. 처음 만난 순간부터
‘형제 같은 핏줄 땡김’을
느꼈다던 두 사람은 그래서, 동료 혹은 선후배라면 끊어졌을지도
모르는 그들의 관계를 징하게도 오래 이어갔다.
연일 이어지는 <예스터데이>의 바쁜 촬영일정에도 불구하고 김해곤에 관련된 기사라는 말에 인터뷰에 흔쾌히 응한 김승우는 수면으로 올라온 김해곤의 성장을 마치 자신의 일인 양 즐거워했고,
그 달뜬 마음은 휴대폰 넘어 들려오는 그의 격앙된 목소리를 통해
충분히 느껴졌다.
얼굴 맞대고 낯간지러운 칭찬을 하라면 할 리 만무한 이들이지만,
김해곤이 “승우에게 진 빚이 많다”더라 전했더니 “그거 순∼
오바예요. 오바. 내가 해곤이 형 덕에 살았죠”라며 두 사람은 한
다리 건너의 기자 앞에선 서로에 대한 칭찬의 수사를 찾는 데 분주했다.
해곤이 형은 처음 볼 때부터 왠지 친형 같은 느낌을 받아선지 제가 많이 따랐어요. 형도 나를 친동생처럼 아꼈구요. <장군의 아들> 끝나고 박상면, 신현준은 다 떴지만 우리 둘에겐 여전히 추운
시절의 연속이었어요. 참, 이런 일도 있었다. 어렸을 때 얘긴데요. 내가 스물세넷 정도 되었고 형은 스물다섯, 여섯살 되던 때였던 것 같아요.
우리 같은 동네 살았는데 나도 뭐 별볼일 없고, 형은 형대로 막막했던 시절이라 같이 포장마차에서 술도 참 많이 먹었죠. 그러던
하루는 해곤이 형이 새벽에 갑자기 찾아와서 “승우야, 술 먹자”
그래서 ‘왜 그런가? 뭔 일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별말 물어보지도 않고 술만 먹었죠.
좀 취한 상태에서 형이 대뜸 “승우야, 나 탄광 들어갈란다” 그러는데 나도 모르게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결혼하기 전에 가장 의지하고 따랐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런 소리는 청천벽력
같은 선언이었죠. 울고불고 뜯어말려서 결국엔 탄광에 안 갔어요.
(웃음) 그것말고도, 고비고비마다 형 앞에서 참 많이 울었어요.
다 어릴 때 이야기죠.
배우로서 해곤이 형은 단순히 영화의 감초 역할 이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라이방>에서 그런 게 보인 거고…. 우리랑 자주
어울리는 박중훈 선배도 “김해곤은 연기나 발성이 특이해서 발전
가능성이 있는 배우”라고 늘 말하곤 하니까요. 요즘 충무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해곤이 형을 제일 많이 찾는다면서요? 늘 시나리오를 쓰면 제일 먼저 저에게 들고 와서 봐달라곤 했는데….
‘김해곤표’ 시나리오의 장점이라면 배우 출신이라 그런지, 대사가 감칠맛이 나고 입에 착착 달라붙어요. 그리고 살아 있죠. 영진공 시나리오 당선작인 <보고싶은 얼굴>은 정말 ‘대삿발’이 죽여요. 그 시나리오 처음 보고 ‘이 사람 드디어 뭔 일을 저지르나’
했는데 이렇게 급속도로 일이 진행될지는 저도 몰랐어요.
열 마디 중에 아홉 마디는 욕이고, 물론 우리 둘 다 순진한 나이가 지나긴 했지만, 해곤이 형은 언제 봐도 참 순수한 사람이에요.
너무 극단적인 예일는지 몰라도, 해곤이 형이 살인을 했다 해도,
적어도 저는 ‘저 사람이 오죽하면 그랬을까’ 하고 형 편을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만큼 믿음을 주는 사람이에요.
다만 이치에 밝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거라, 그게 걱정이죠. 이제
나이도 마흔이 가까워 가는데 돈도 좀 모으고 술도 줄이고 여유로운 생활 좀 했으면 좋겠어요. 요즘요? 좋은 정도가 아니라, 너무너무 좋아요. 옛날에는 돈 낸다고 하면 뭔 돈이 있냐고 말렸는데
요즘은 식당 가서 밥값 낸다 그래도 가만 놔둔다니까요. 얼마나
대견한데요.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