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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死卽生(사즉생)
노무현 전대통령은 머나먼 길을 떠났다.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길로 갔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살아서 평가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죽은 후에 대한 평가가 진정일 수 있기 때문이다. 노 전대통령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이제 역사의 몫이 됐다.이승에서 힘들었던 그의 삶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가 시작된 셈이다. 그는 항상 사회적 약자를 위해 강자들과 거침없이 싸웠다. 마치 힘 센 골리앗과의 싸움이었다.
그의 삶은 승부사 기질로 가득 찼다. 상황 자체가 그렇게 만들어 질때는 그는 중심에 서서 물러 서지 않았다. 한마디로 그의 삶은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 그 자체였다. 이 말은 춘추전국시대 무패신화를 이룬 오기장군이 지은 오자병법(吳子兵法)에 나온다. 필사즉생 행생즉사(必死卽生 幸生卽死) 즉 죽기를 각오하면 살 수 있고 살기를 각오하면 죽는다는 뜻이다. 이 말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병사들을 독려하면서 사용, 승전을 이끌면서 후세에 더 유명한 문구가 되었다.
노 전대통령의 죽음에 대해 평가가 엇갈려 있다. 보수 수구 세력들과 달리 진보 세력들은 억장이 무너진 느낌으로 슬퍼하고 있다. 가난한 자들은 그의 죽음을 더 애도하고 있다. 그의 삶의 궤적(軌跡)이 힘 없는 사람편에 서서 싸워왔기 때문이다. 그는 그 자신이 죽는줄 알면서도 어려움을 마다하지 않았다. 편하고 쉬운 길은 그의 선택이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 땅도 울고 하늘도 울고 있는지 모른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간 에스더 결단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꺼져가던 이스라엘 민족을 죽음의 위기에서 건진 것처럼 지금 그의 죽음이 모두를 고난의 터널에서 빠져 나가게 하고 있다. 예수의 십자가는 자기를 죽임으로 사람을 살리는 사즉생(死卽生)의 전형이었다. 이순신장군의 사즉생과 같은 결단의 각오가 우리 민족을 살렸고 위대한 신앙의 여성 에스더의 사즉생으로 이스라엘 민족이 살았으며 예수의 사즉생으로 인류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할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의 삶과 죽음은 생자필멸 회자정리(生者必滅 會者定離)라고 했다. 어떻게 죽느냐가 더 중요할 수 있다.노 전대통령은 산자들에게 많은 교훈을 남겼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고 반문한 것처럼 말이다.
출처:전북일보 글 백성일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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