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은 할 생각하지 않고, 숟가락 들고 설치는 군상들이 많으면 문제가 있다. 생산하는 동력을 끌어내야 국가의 부가 늘어나지, 소비를 권장하는 개인이나 국가 기구가 늘어나면 그 국민 빈곤하고, 부채만 늘어난다.
중앙일보 박신홍 정치에디터(2021.05.29.), 〈관종의 시대〉. 2030세대가 사회에 도전하고, 동기가 활성화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이 동기 폭발을 사회적 생산으로 가져갈 때 그 사회는 건전한 사회가 된다. 제도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도구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KDI 등 국가기구는 동기를 제도화시켜, 생산적 조직으로 갖고 가도록 한다.
“2년 전 지상파 예능 프로에 출연한 인기 힙합 프로듀서에게 사회자가 대뜸 ‘관종 아니냐.’고 물었다. ‘음악 작업할 때 옷을 특이하게 입는 것 즐긴다. 자랑하는 것도 좋아해서 직업 영상을 SNS에 많이 올린다.’는 설명에 대한 질문이었다. 그러자 그는 당연하다는 듯 곧바로 ‘관종 맞다. 뮤지선을 모두 관종이다.’고 답했다. 그 당당함에 순간 당황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만 해도 ‘나는 관심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떳떳이 밝히는 건 너무나 낮선 장면이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4050 기성세대에게 관종은 입에 올리기엔 왠지 쑥스러움을 동반하는 단어였다.”
관종이 나쁠 것이 없다. 관종이 사회적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때, 즉 서로의 동기가 경쟁을 할 때 공정성이라는 것을 만나게 된다. 실제 공정성이란 말은 퍽 추상적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평등이라는 말을 쓴다. 그 평등이란 말보다, 공정성이라는 말이 덜 사회주의적 냄새가 난다. 그런지 요즘 평등이란 말을 쓰지 않고, 공정성이라는 말을 쓴다. 그게 큰 화근이 될 줄이야...
중앙일보 배대영 근현대사연구소장(05.29), 〈‘공정한 경쟁’이 성공하려면..〉. “국민의 힘 대표 경선에 전례 없는 관심이 쏠렸다. 세대교체가 예상 밖 이슈로 떠오르며 경선을 뜨겁게 달궜다. 초선 의원인 김웅, 김은혜도 선전했지만, 무엇보다 관심의 초점은 이른바 ‘이준석 돌풍’으로 모인다. 예비 경선을 1위로 통과했다...진중권은 이준석이 경쟁을 내세운 점도 비판했다. 경쟁을 도입하면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할당제와 가산점 제도를 없앨 수 있다는 발상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는 것이다. 두 사람의 주장은 서로 만날 수 없는 것일까? 필자는 접점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묘수는 ‘공정한 경쟁’에 들어 있다. 경쟁에는 좀 더 융통성을 부여하고, 공정에 좀 더 방법을 찍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주장하는 ‘적극적 공정’의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한국 사회에 부족한 ‘형식적 공정’이라도 제대로 구현해 보려는 노력은 필요해 보인다...공정의 다른 말은 겸손이다. 겸손한 마음이어야 자기와 다른 목소리를 포용할 수 있고, 그런 넓은 포용력이 진정한 공정의 바탕이 된다.”
배 소장은 공정경쟁을 치르도록 한다. 그리고 정치에서는 관용도 중요하다. 사실은 헌법정신도 입법, 사법, 행정이 견제와 균형을 취하도록 한다. 관용 정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물론 관용정신은 정치인의 수준에 따라 엉뚱한 ‘내로남불’ 정신이 들어갈 수 있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내 관용, 네 관용하면 싸움밖에 나오지 않는다.
물론 공정은 주로 사회주의적 냄새를 풍기는 것이고, 관용은 퍽 기독교적 냄새가 난다. 공정을 꽉 잡아주는 것은 사실(facts)이다. 이준석 후보의 사고는 과거에 자신의 사고를 이야기한 내용을 모으면 정확하게 정치인 이준석의 생각이 투영이 된다. 같은 맥락에서 자신의 노력은 임금으로 계산이 된다. 완전히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 세계 시장을 상대로 하면 노동의 량과 질은 판명이 난다.
한편 마르크스는 임금을 자본가가 착취함으로써, 자본주의 사회구조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그 위에 법, 이데올로기, 정치제도를 올리니 문제가 된 것이다. 마르크스는 우익 이론가들이 사용하는 사실(facts)의 근거를 비판을 하지만, 그것을 가정하고 논리를 폈다. 마르크스는 현실의 객관성을 확보하려고 노력을 했다.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말도 설득력을 얻어간다. 사실 KDI 같은 연구기관은 그 사실을 근거로 경제 현상을 설명하고, GDP를 산정하고, 국가 발전의 초석으로 삼는다. 그렇다면 실물경제에 밝은 사람이 KDI 원장에 취임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실물 경제에 별로 관심이 없는 소득주도성장론자가 KDI 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청와대는 생산과 성장에는 관심이 없이, 국가 해체에만 관심을 갖고 있다. 매일경제신문 사설(05.29), 〈KDI 원장에 소주성 설계자, 국가 싱크탱크가 정권 대변기구인가〉. “문재인정부의 첫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소득주도성장(소주성) 정책을 설계·집행한 홍장표 부경대 교수가 한국개발연구원(KDI) 신임 원장 자리를 꿰찼다. 참담하게 실패한 소주성 정책 입안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자리라는 그 많은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에도 문정부가 밀어붙인 것이다. 지독하게 자기 사람만 챙겨 쓰는 돌려 막기식 코드 인사라는 거센 논란과 비판 따위는 개의치 않겠다는 태도다. 준다고 자리를 덥석 받은 홍 원장도 경제가 잘 돌아가면 임금이 오르게 게 상식인데, 그는 정반대로 임금을 올리면 경제가 달 돌아간다는 소주성 시험을 주도했다. 마차가 말을 끄는 격인 소주성 성적표는 처참했다. 고용 참사에다 소득 격차도 사상최대로 벌어져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공정성의 잣대로 대면 지방대 홀대에서, 균형적 시각으로 맞을 수 있고, 지금까지 주류에서 소외된 사람이 임명된 것은 공정성에 나쁠 것이 없다. 그러나 사실(facts)에 근거한다면, 그는 성장이 아니라, 국가 부채만 늘인 장본인이다. 더 큰 문제는 사실에는 강제성(coercive)이 있다. 법은 사람들의 머리에서 나와 객관성을 확보했고, 그것이 사물(things)로 간주됨으로써, 나를 강압한다. 한 마디로 사실 원리를 말하면서, 책임을 지지 않은 것이다. 법을 어기면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하고, 자신의 한 정책에 책임을 지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즉 이 정부에서 좋아하는 ‘국정농단’이 생기는 것이다.
국정농단이 어디 한 두 곳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늘 그런 사람들이 관리로 임명된다. 사회주의 관점에서 공정성은 피하갈 수 있지만, 주류 언론에서 다루는 사실(facts)에는 피해갈 수 없다.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는 자기가 한 일의 사실에 전혀 책임질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 이런 사람이 법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집행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조선일보 김은정·표태준 기자(05.27), 〈‘수사 중..영업비밀..보고 안 받아’ 궤변과 모르쇠 일관한 김오수〉, 김형원 기자, 〈2조 사기 라임·옵티머스 변호해놓고...金 변호사로 일하며 국민 애환 경험‘〉 전리품 얻고, 책임의식 없는 사람이 검찰총장이 된다고 한다. 그 사람뿐인가?
조선일보 서민의 기생충학과 교수(05.22), 〈촛불, 방역, 반도체까지..‘숟가락 얹기’의 제왕이 나타냈다.〉 정확한 강철 ‘사실’(facts) 중시 사회경제학에서 공정성(fairness)으로 바뀌면서 일어난 난맥상이다. 이념, 코드 좋아하는 사회주의자들이 공정성이라는 말을 엄격하게 쓰지 않고, 확대 해석하고, 국민들은 공인함으로써 역사의 난맥상을 경험하게 되었다. 결국 KDI까지 숟가락 들고 설치는 꼴이 되었다 공정성의 전도사 홍장표 원장...2030세대는 아니, 우리의 동기와 공정성은 어디에 간 것인가를 질문한다.
“그 후 4년간, 문통이 이끄는 민주당은 지리멸렬했다. 정상적으로 대선이 치러졌다면 정권 교체를 장담할 수 없던 시절, 갑자기 대통령의 국정 농단 사태가 터진다. (그들이 말한 공정성의 잣대로). 시민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가 대통령 하야와 처벌을 외쳤고, 이재명 당시 성남 시장 등 정치권도 ‘박근혜 퇴진 후 반드시 구속해야 한다.’고 화답했다. 이 와중에 문통이 한 말은 가히 충격적이다. ‘대통령이 명예롭게 퇴진할 수 있도록 협력하겠습니다. 퇴진 후에도 대통령이 명예가 지켜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촛불 혁명의 관심을 기이하게도 탄핵 국면에서 별다른 역할을 한 적이 없는 문통에게 돌아갔고, 결국 그는 2017년 5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다. 전직 대통령이 국민에게 의해 쫓겨난 상황, 적당히만 해도 ‘성공한 대통령’이라 칭송받을 유리한 상황에서 문통은 지독히도 일을 못했다. 정치는 물론이고 경제와 외교 등 모든 곳에 삐걱됐지만, 문통이 그래도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던 비결은 그가 선보인 숟가락 얹기 신공 덕이었다.”
첫댓글 문재앙이 높은 지지율 유지했던 비결은 더 미친당과 여론조작의 결과라고
저는 단언코 말할수있습니다
정치 저능아 문재앙은 여론조작의 명수입니다
쓸모 있는 천지님.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