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언 지코 블랙의 꿈을 위하여
- 제 9 화 -
혹독한 시련
꿈같은 우승과 함께 우리에겐 내년 UEFA 컵의 출전권을 획득했다.
신문에선 그 사건을 대서특필했고 우리는 또 한번 영웅이 된 것만 같았다.
하긴 80여년만에 2부리그 팀이 스페인컵을 제패했으니 ...
하지만 우린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리그 2위 바야돌리드의 추격은 거셌고 우린 그들을 뿌리치고 2부리그 챔피언 자리에 오르기 위해 한시도 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경기에서도 승리하며 끝까지 진득하게도 쫓아왔던 바야돌리드를 제치고 2부리그 왕좌에도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36경기 26득점으로 또다시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다.
노랭이 녀석도 19골로 5위에 오르는 좋은 모습을 보였다.
이만하면 1부리그에서도 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우린 또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휴가...
하지만 이번엔 경로당과의 휴가는 없었고 난 집에서 TV만 열심히 봤다.
그 해에는 지구촌 최대의 축제
2006 독일월드컵이 열렸던 해이므로....

우리 팀은 4명의 월드컵 대표 선수를 배출했다.
쌍피(아르헨티나), 똥개(포르투갈), 코쟁이(체코) 그리고...
37세의 악셀영감(스페인)...
그들은 꿈의 무대에서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펼쳐보였다.
특히 늙다리 국가대표 악셀 영감의 투혼은 빛났고 스페인 팀을 4강까지 끌어올렸다.
쌍피 또한 도움 2개를 올리며 맹활약했다.
물론 룩셈부르크 출신의 난 집에서 이빨(이스라엘) 녀석과 함께
그들의 활약을 지켜보며 응원했다.
특히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경기가 열렸을 땐 우린 진심으로 똥개 녀석의 나라인
포르투갈이 지기를 바랬다.

하지만 최후의 승자는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였고 이탈리아가 우승하던
그날 밤엔 터미네이터 녀석이 하도 시끄럽게 전화질을 해서 전화선을 뽑기도 했다.
그렇게 축제는 끝났고 우린 다시 모였다.
그런데 스페인으로 돌아온 악셀영감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 나 은퇴한다.. "
영감탱이... 우리 은퇴할 때 같이 은퇴할거라고 해놓고.....
당연히 우린 다시 생각해볼 것을 요청했지만 그에겐 다른 뜻이 있었다.
" 하하핫... 드디어 결혼한다...
이 자식들아.. 난 37살이라고...!! 귀여운 애기녀석도 보고 싶단 말이다...!!!
그리고 더는 내 허니를 기다리게 할 순 없다...
내 염원이던 월드컵 무대에도 서봤고...
나같은 영감재이가 계속 뛰어봤자 이번에 새로 들어온 녀석들 길만 막는 꼴이야.
이해해주라 알았지? "
우린 어쩔수없이 그의 간곡한(?) 부탁에 그의 은퇴와 함께할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주기로 했다.
그들의 결혼식은 카스티요 델 로메랄 경기장에서 이루어졌지만 경로당에선 2차를
원했고 쌍피의 집에서 2차 결혼식을 열었다.

그와의 즐거웠던 일들과 멋진 추억들을 떠올리며 우린
더 이상 그의 플레이를 볼 수 없다는 아쉬운 마음과 함께 진심어린 축하를 보냈다.
축하해요 악셀영감...!
악셀 영감의 결혼과 함께한 은퇴 이후 우리 팀엔 자그마한 변화가 생겼다.
'조루' 라 불리는 짐바브웨 출신의 수비수 조로가 똥개의 자리로 이동했으며 기존의 악셀 영감의 자리엔 싸가지 녀석이 옮겨갔다.

그로 인해 똥개는 측면 미드필더로써 프리메라 리가에서 활약하게 되었다.
월드컵이 끝난 후의 시즌 준비는 바빴으며 우리 팀은 새로운 선수의 영입보다는 기존의 팀의 조직력을 극대화 시키기 위한 훈련에 매진했고 프리-시즌 경기에서 드러난 우리의 모습은 프리메라 리가의 강호들을 긴장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내가 그리고 그리던 꿈의 무대...
프리메라 리가의 무대에 난 첫발을 디디게 되었다.
축구를 하고싶어 집을 나와 벨기에와 스페인을 거친 어연 11년만의 일이었다.
하지만 그 무대가 자신의 꿈이었던건 나뿐만이 아니었기에 우리 팀 선수들의 사기는 언제나 최고조였으며 그 모습은 경기에 그대로 반영이 되었다.
우리 팀은 개막전인 세비야 전에서 4:1로 대승했으며 이후벌어진 2경기에서도 연승하며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특히 나는 3경기에서 무려 7골을 터뜨리며 언론으로부터 " Lion(Ryan) King " 사자왕 이라는
별명을 듣게 되었고 수용인원이 45000명으로 증축된 카스티요 델 로메랄 경기장에는 구름같은 관중들이 운집했다.
하지만 나의 그 기쁨과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했다.
너무 성공의 속도가 빨랐던 것일까...
리그 4차전인 비야레알 전에서 하늘의 시샘이 날 멈추었다.
그렇다.
날 멈춘 것은 부상이었다.
당시 문전에서 수비수들을 따돌리고 단독찬스를 앞에둔 나에게 비야레알의 소린 선수가 날 막기위해 다급하게 태클을 했는데 그만 나의 발목을 걷어차고 만 것이었다.
당시 나는 발목이 아프다는 것 외에는 그 어떠한 생각도 들지 않았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소린 선수는 날 매우 걱정했다고 한다.
그 당시 난 아무래도 발목이 뒤틀린 것 같았고 난 그 날의 그 경기장에서 즉시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그리고 하루 뒤 나온 정밀 검사 결과.
나의 발목은 부러졌으며 완치와 함께 재활훈련을 통해 경기에 복귀하기 위해선 무려 8개월의 기간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설명...
그의 말은 날 침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난 곧바로 수술에 들어갔고 기나긴 병원에서의 생활도 시작되었다.
나의 부상은 스페인 언론에서도 " 사자왕의 부러진 발목 " 이라는 등의 제목으로 크게 다루어졌고 소린 선수는 경기 후 시간이 날 때마다 내가 입원했던 병원에 찾아와서 사과했고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분명히 악의를 가진 태클은 아니었고 그의 진심어린 사과를 알았기에 난 그에게 말했다.
괜찮다고.. 난 경기장에 최고의 모습으로 꼭 다시 돌아올테니까 걱정말고 경기를 하라고..
그 말을 들은 소린 선수는 내게 매우 감사해했고 그 이후에도 매주 날 찾아왔다.
내가 병원에 있던 기간 중 날 가장 많이 찾아준 사람이 아버지도 어머니도 경로당도 아닌 소린이었단걸 보면 그의 진심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내가 빠진 카스티요 팀은 이후 나의 자리에 '턱대감' 바라만을 투입해서 리그를 이어갔고 초반 그는 잘 적응하지 못했으나 최고까진 아니더라도 충분히 팀에게 공헌을 했다.
경로당 녀석들이 항상 내가 없어서 우리 팀 망했다며 위로아닌 위로를 해댔지만 우리 팀은 분명 잘나갔다.
똥개 녀석은 어느새 언론으로부터 세계 최고의 윙백으로 추앙받고 있었고 벤텀도 새로운 스타 선수로써 입지를 굳혀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조직력이 뛰어났던 우린 선수층이 얇아 크게 높은 순위에는 못오를 거란 짐작과는 달리 리그 4위 안을 유지하며 돌풍을 이어갔다.
비록 스페인 컵에서 레알 마드리드에게 8강전에서 침몰했고 UEFA컵에서도 8강전에서도 잉글랜드의 토튼햄을 만나 패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 난 퇴원도 했고 재활훈련에 전념했기에 7개월여만에 그라운드에 다시 설 수 있다는 의사의 확실한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난 리그 막바지에 셀타 비고와의 경기에서 교체투입되어 복귀전을 치렀다.
하지만 내가 알지 못한게 있었다.
나의 지난 8개월동안의 부상이 몸만의 부상이 아닌 정신적인 부상도 있었다는 사실을...
난 복귀전 이후에도 자주 경기에 출장했지만 득점은 없었고 공이 내게 오는게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공을 잡으면 응당 해야될 돌파와 몸싸움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행여나 발목을 잘못 디디면 부상이 재발할까 선뜻 겁부터 났고 난 소극적인 플레이만을 일삼기 시작했다.

물론 나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강력한 몸싸움에 이은 돌파따위는 더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그로 인해 난 내 자릴 메꾸었던 바라만에게조차 주전경쟁에서 밀리기 시작했고
시즌이 완전이 끝났을 땐 나의 위치는 완전한 후보 선수였다.
그렇게 기쁨에 들떴던 나의 빅리그에서의 첫 시즌은 가혹하고도
혹독한 시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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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밌으셨으면 댓글 하나 달아주시는 센스? ㅋㅋ
1~8화는 제아디 클릭 후 작성글보기 하면 되요 ㅋㅋ
첫댓글 위닝,심즈,FM..게임 번갈아가시면서 만드기 힘드셨겠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조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1편부터 너무 재밌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굿
재밋네염~ 다음 편도빨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