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재 님의 '시골 영감 上京記'에 부쳐

[권오신]

승재(이우동) 님이 올린 재미있는 글 '시골영감 上京記', 

눈을 비벼가며 읽는데 행간이 너무 좁아 그만 포기하려다 내용이 궁금하여 여기에 다시 수정해 놓고 읽었다. 그러는 중에 기왕에 수정하였으니 다른 친구들이 읽는데 도움이 되지는 않을까 생각이 들어 용기를 내어 여기에 올린다. 

건방떤다고 작자가 나무라지는 않을 지 걱정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맘이 좁은 친구는 아니라고 알고 있어 애써 큰맘 먹어본다. 

 

다시 읽어 보니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누구에게나 있음직한 일상사를 이렇게 글로 나타내는 작자의 근면함과 더불어 글솜씨의 유연함에 다시 한번 감동하고 감탄하였다. 늦게 배운 도둑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컴퓨터를 배운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과감하게 웹에 도전하는 그 용기에도 찬사를 보낸다. 

전번에 올린 '기다림'을 읽고 느낀 감동이 계속 이어져 자못 인상깊다.

(들리는 노래 / 친구여(조용필)

권 오 신

 

(원문)                                               시골 영감 上京 記

 

 오래전부터 늘 마음의 빚을 지고 있던 친구에게서 청첩장이 날아왔다. 그 친구는 바로 안동사범 13회 동기생인 김 효 중(金孝中)이란다.

 이 친구와 나는 특별한 인연으로 인생을 엮어 왔단다. 1970년대 초 안강에서 교직생활을 할 때 내처와 같은 학교에서 근무를 했고 그 당시 그는 총각선생님이라 매식(買食)을 하기 역겹다고 잠시 우리 집 에서 식사도 같이 하고.........

 그 후 내 처가 대구로 전근이 되어 나와 같이 한방에서 하숙생활을 했단다.

중학교 졸업 당시 사범학교 입학하기를 거부하다가 선친께 꾸지람만 들었던 내가 졸업하고도 교직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아 늘 고민을 하다가 군입대 후 제대하여 다시는 복직을 하지 않기로 결심을 했었는데 나도 모르게 선친께서 복직서류를 교육위원회에 제출하여 안강으로 발령을 받게 되었단다.

 교직생활이 싫던 나에게 처와 떨어져서 생활하기란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기회는 이때다 하고 나는 용기를 내어 무작정 사표를 쓰고 대구로 내려왔단다. 그때 혼자 남게 된 친구는 나를 보고

 “나도 교직생활 정말 하기 싫으니 자네가 자리를 잡거던 나도 구제 좀 해주게.” 했다. 그 후 나는 취직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동분서주 하다가 선친의 죽마고우가 중앙정보부에 고위직으로 근무하는 사실을 알고 그분을 찾아가서 정보부에 근무하고 싶다는 얘기를 했더니 그분 이야기가 여기는 안 된다고 하시며, 너는 교육계에서 근무했으니 그에 상응한 직장을 알아보자고 하시더니...........

 그 후 '도서출판 啓蒙社'에서 근무 하게 되었다. 처음 몇 달은 업무 파악하고 전국에 산재한 지사 방문도 하며 정신없이 지나갔다.

 이 곳 또한 하숙생활은 안강 이나 별다름이 없었다. 주말만 되면 대구행, 일요일은 서울행, 한 달에 네 번씩 고속버스에 몸을 맡기고 생활한 지 어언 10개월이 지나갔다. 월급 받아서 하숙비, 담배 값, 술값, 대구 교통비 쓰고 나니 가정에 보탤 여력이 없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아내가 하는 말이 혼자 호구지책 해결하러 서울에 가서 있을 바엔 차라리 집으로 내려와 아기라도 보아주면 도움이 되겠다고 했다. 그때서야 나도 깨닫게 되었다. 아하!........... 직장을 대구에서 구해야 되겠다고.

 나는 회사에 출근하여 사장님 면담을 신청했다. 가정적인 여건상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더 이상 할 수 없다고 말씀드리고 또 한 번 용기를 내어 사표를 제출했다. 사장님은 첫술에 배부를 수 있느냐 하시며 좀 더 기다려 보라고 하셨다.

 그때 내 머리 속에 섬광처럼 스쳐가는 무언가를 느꼈다. 무엇인가 생각해보니 친구와 헤어질 때 마지막 남긴 말 이었다. '나도 구제 좀 해주게.'

 나는 사장님께 말씀 드렸다.

 “사장님! 제 후임은 제가 추천할 테니 그렇게 아십시요”

라고. 사장님께선

 “어허! 그만 두는 사람이 인사까지 관여 하겠다고?”

하시었다. 나는 자신 있게 사장님께 말씀드렸다.

 “그 친구는 저의 중, 고등 학교 동기동창인데 인물은 저보다 미남이고, 글씨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리고, 야구도 잘 하고, 노래는 가수 뺨칠 정도이며, 성격도 좋고, 양반도 빠지지 않는다.”

고 정신없이 말하고 있는데 사장님께서 내말을 가로 막으시며 말씀 하셨다.

 “그렇게 자신있게 추천할 수 있다면 한번 불러 보게.”

하시었다. 나는 친구에게 연락을 해서 면접을 보이고 일주일을 나와 같이 근무를 하던 중 어느 날 사장님께서

 “이군! 자네는 이제 그만 내려가게.”

하셨다..............

 나는 서울 생활을 10개월로 마감(磨勘)하고 하구하여 오늘날까지 지내고 그 친구는 그날부터 오늘까지 서울생활을 계속하고 있단다.

 ‘95년 초 큰놈 장가들던 날, 예식장에 혜성과 같이 나타난 미남의 신사. 바로 그 친구였다. 서울에서 대구까지 특별한 사이가 아니면 오기 힘든 일이 아닌가?

 과연 우리 사이는 특별한 사이였나 보다. 그날 이후 너의 자식 놈 언제 장가드는지 두고 보자 하고 손꼽아 기다리던 날. 눈 깜짝할 사이 12년이란 세월이 흘렀나 보다. 청첩장을 개봉하던 손에 전율을 느끼면서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처럼 어께에 힘주면서 상경해야지 하고 미소를 머금었다.

 늦깎이로 배운 컴퓨터로 더듬거리며 키보드를 눌러 힘들게 K T X열차표 왕복 예매를 하고 결재까지 끝냈을 때 짜릿한 희열감을 느꼈다.

 초등학교 때 소풍가던 날이 기다려지던 느낌을 또 한번 맛보았다.

 일기예보에 잔칫날 비온다고 하여 걱정을 하였는데 우산 준비를 하지 않은 채 열차에 몸을 실었다. 서울역에 도착하여 택시를 탔다. 호텔에 도착하니 1시간 20분이나 시간이 여유가 있었다.

 택시 문을 열면서 12시 예식 손님이시냐고 묻는 호텔직원에게 그렇다고 하니까 2층으로 안내를 했다. 계단을 올라가는데 2층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 친구 내외가 벌써 혼주석에 서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지라 반갑게 악수를 하고 방명록에 서명한 후 식장 안에 들어가 혼자 쉬고 있었다.

 30여분이상 시간이 흘렀을 때 축하객들이 한두 사람씩 입장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가 오늘 이글을 쓰게 된 가장중요 한 이벤트라고나 할까? 이제나 저제나 낯익은 얼굴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던 중 드디어 저 출입문 쪽 에서 두 남녀가 나타났다. 앞에는 조순혜 동문, 뒤에는 이주락 동문이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몇 걸음 앞으로 나가 우선 앞에서 오는 조순혜 동문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했다. 반갑게 악수를 나눈 후 뒤따르는 이 주락 동문에게 손을 내 밀고 악수를 하는 찰나! 조순혜 동문 왈

 “전에 한번 보았지?”

한다. 순간 나는 속으로 아차! 내가 실수를 했구나, 이 분이 조순혜 동문의 부군 이로구나고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속으로 세상에 정말 닮은 사람도 있구나? 이 사람이 어째 우리 동문 이주락 친구와 이렇게 닮을 수가 있나 싶었다. 순간 우리는 썰렁하게 악수를 나눈 후 나는 내가 앉았던 자리에 앉고 조순혜 동문 부군은 다른 테이블에 가서 자리를 하고 앉았다. 시간이 흐르자 이제 안면 있는 동기생들이 자리를 메우기 시작했다. 졸업은 같이 못 했지만 우리들의 모임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한일상 친구, 조달청에서 제대한 이준탁 친구, 철도청 출신 장윤수 친구, 동명이인인 김효중(重) 친구, 알차게 사업을 경영하고 있는 구본현 친구, 서울 동문회장인 김기욱 친구, 김시약 친구, 서정유 친구, 김수길 친구 등이 자리를 같이했고, 여자 동문들은 황옥자 동문, 이영희 동문, 조충희 동문, 박심설 동문 등이 자리를 같이 했다. 내 옆에 누가 앉았는지 지금 기억은 희미하지만 맥주를 한잔 하면서 입을 열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조순혜 동문 부군이 우리 동기생 이주락 친구와 꼭 닮았더라.”

고 했더니 옆에 어느 친구가

“무슨 소리야! 조순혜 동문 부군과 이주락 동문이 닮았다니 자네 눈이 이상하네.”

하였다. 나는 즉시 그 친구를 향해

“내 눈이 이상한지 자네 눈이 이상한지 저기 보람.”

하고 조순혜 부군쪽으로 손가락질을 하니 모든 친구들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한바탕 폭소가 터져 나오고 모두들 나를 쳐다보며

“저 친구는 우리 친구 이주락이야.”

한다. 나는 여우에게 홀린 듯 한동안 멍 해 있었다.

 몇 순배 맥주잔이 돌고 있을 때 조순혜 동문이 헐레벌떡 내게 다가와 내 팔을 끌고 간다. 이 주락 동문이 있는 테이블 쪽으로.

 “내가 아까 말실수를 해서 촌극이 벌어졌네. 미안 하이.”

하고............ 웃을 수 도 울 수 도 없는 순간 이었다.

한바탕 해프닝이 벌어지고 난후.......... 시간이 흘러 예식시작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또 발생하였다. 주례가 도착하지 않았다. 좌우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SBS 개그맨이라고 소개받은 사회자가 차가 밀려 주례가 도착하지 않아 10분 후에 예식을 시작하겠다는 멘트가 방송되고 있었다.

 김기욱 동문이 Handy Phone으로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체한 후 주례가 도착하여 정중히 사과를 한다. 주례는 성균관대학교에 근무 하고 있는 김시업 동문이었다. 아마도 졸업 후 처음 보는 순간이었다. 오랜 세월 학문을 갈고 닦는 교수생활로 까까머리 앳된 청소년이 노숙한 신사가 되어있었다. 명주례사로 축하객들의 우렁찬 박수를 받은 주례가 사진 촬영을 마치고 우리쪽으로 왔다. 모두들 정겹게 인사를 나누고 식사를 하였다.

 그럭저럭 시간이 흘러 한 두 사람씩 일어서기 시작한다.

 김시업 동문이 나보고 몇 시 차냐고 묻는다. 4시차라고 하니까 자기가 서울역까지 전송하겠다고 한다. 우리는 남산을 돌아오다 시간이 여유가 있어 하얏트호텔에 들러 커피를 들며 옛 학창시절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잠시 후 우리는 서울역에 도착하여 아쉬운 작별을 하고 나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진한 커피 냄새와 오랜만에 느껴보는 진한 우정이 가슴을 찡하게 한다.

 서울의 친구들! 모두 모두 파이팅!..........

  특히 이주락 친구야! 우리 아는 척 하고 지내자.

 

 

 붓을 놓으면서......

 

 시도 아닌 것이, 수필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소설이라고 할 수도 없고. 이걸 글이라고 썼느냐 하시겠지요? 원래 문장력이 없는지라 생각나는 대로 썼을 뿐입니다. 대구에서도 친구들 자식 놈 혼사 때는 많은 동문들이 모이곤 합니다만 서울의 풍경은 처음인지라 뭔가 찡하게 오는 느낌을 표현해보고 싶었을 뿐입니다.

 여자 동문들이 여럿이 참석하신 모습, 대구에서도 보고 싶습니다.

마무리가 매 끄럽게 풀리지 않아 고생 좀 했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신 동문들께 감사드립니다.

내내 건강하세요.

 

이우동이가 김효중이의 잔치에 다녀오면서......

[무궁(霧宮)]

영감님! 글 솜씨가 녹슬지 않았구먼. 지나온 과거(아무나 사표를 내나) 생활 잘 읽었고, 대구영감(시골??) 상경기를 보니 앗차하는 순간 약간 둔해지거나 나사 풀린듯한 행동을 이젠 정상적인 행동(?) 으로 알고 웃고 넘깁시다요.

[정헌]

이주락동문을 그렇게나 못 알아보다니.... 글 잘 읽었고 서울 소식도 잘 듣고 반가우이...

[탁현]

승재님의 의지, 녹쓸지 않은 글 솜씨, 높이 우러러 보겠네. 더욱 정진하시게.

[송하]

꾸밈없는 이야기에 진하게 베어있는 잔잔한 감동... 자넨 역시 멋 쟁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