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천을 걷는다.
살기 위해서.
걷는 것과 사는 것이 무슨 상관관계가 있냐며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내가 내 발로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살아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하는 표현이다.
많은 사람이 건강을 위해 온천천을 걷는다.
그 사람들을 보면 건강한 삶을 위한 나름의 노력을 하면서 살고 있고 나 또한 비슷한 생각 때문에 거의 매일 걷는다.
걸을 때 기분이 좋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내가 가고 싶은 곳까지 멍한 상태로 무작정 걷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앞에서 누군가 아는 사람이 걸어와도 잘 알아보지 못하고 지날칠 때도 있지만 그 사람이 오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따위는 안 한다.
세상사는 늘 그랬다.
내 생각과 일치하여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과 세상 사람들은 나에 대한 특별한 관심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답게 인사라도 하면 좋겠지만 인사를 나누지 않아 불편한 것 또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주위에 완전한 짙은 어둠이 스며들면 습관적으로 하늘을 바라본다.
그리고 내 기억 속에 존재하는 나의 별을 찾기 위해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샅샅이 수색하지만 내 별은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없다.
앞쪽에서 오는 어떤 여성분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하늘을 보고 별을 찾아본 적이 있느냐 하였더니 가던 발길을 멈추고 하늘을 쳐다보며 하는 말 한 번도 없다며 의아해한다.
이처럼 사람들은 별에 관심이 없다.
우리네가 알고 있던 그 수많은 별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 별이 궁금해졌다.
우주 공간에서 폭발하여 산산조각으로 사라졌을까?
아니면 인간들이 살아가는 형태가 싫어 빛을 발하지 않고 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존재하지만, 인간이 만들어 낸 수많은 공해로 인하여 하늘의 별을 스스로 찾을 수 없는 환경이거나 너무 밝게 불을 밝혀서 별빛을 볼 수 없는 환경이 조성되었는지 정말 오리무중 속에 별은 자취를 감추었다.
몇 해 전만 해도 어릴 적 보았던 은하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하늘엔 셀 수 있을 만큼의 별들은 존재했지만, 지금은 아무리 찾아도 다섯을 넘지 못하는 별들만 외롭게 빛날 뿐 내가 좋아 선점했다고 자랑하던 그 별은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별이 없는 하늘은 무섭다.
거저 검은빛 죽음을 상징하듯 인간을 내려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면 어떤 모습일까가 궁금해하다 밤하늘을 그린 어느 도시학교의 그림에서 온통 검은색으로 칠해진 하늘을 그린 그림이 실제로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상상하는 순간 슬프다.
별이 존재하지 않는 하늘만 보았으니 충분히 가능한 표현일수도 있을 거다.
우린 수많은 별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보면 자랐고 밤새 쏟아지는 별똥별을 보면서 소원을 빌어보는 그 찬란한 하늘의 장관을 기억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우리가 만들어 낸 공해와 너무 밝은 도시의 불빛 때문에 하나의 별도 발견하지 못해 책에서 읽어 상상하던 밤하늘 빛나는 별을 발견할 수 없는 상실감에 얼마나 실망할까에 생각이 멈추니 마음이 괜히 아프다.
먼저 태어난 어른의 잘못으로 인해 동심에 생채기를 내고 있으니 말이다.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길을 걷다가 한참을 멈춰 하늘을 바라보며 두리번거리며 늘 별을 찾는 버릇이다.
꼭 만나야 하는 은인처럼 온천천을 걷다 보면 하늘을 쳐다보고 내 기억에 존재하는 그 아름다운 별을 만나고 싶은 욕망 때문에 한참을 멈추는 습관이 생겼다.
고개를 젖히고 한참을 헤매지만 결국 별은 흔적 없이 사라졌고 내일 찾아봐야겠다며 실망스러운 마음을 스스로 위로하는 습관 속에 헛헛한 웃음을 남기고 되돌아온다.
여행을 가고 싶다.
잘 발달한 대도시가 아니고 발전하여 화려한 불빛이 난무하는 부유한 인간들이 득실대는 곳이 아닌 전깃불도 존재하지 않아 오직 칠흑 같은 어둠만이 남아 있는 못살고 부의 흔적들이 없는 그런 곳으로 여행을 가보고 싶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 기억 속에 오롯이 존재하는 그 수많은 별을 찾고 싶기 때문이다.
그 별을 발견하면 그냥 기뻐 날뛰며 반갑다고 고래고래 소리 질러 보고 싶은 강한 충동에 대한 욕망 때문이다.
사람들은 현실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야 뭔가 모르게 행복한 느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을 환하게 밝히고 생활에 지장을 주는 어둠을 싫어하지만 사실 난 모두의 생각과는 배치되는 칠흑 같은 어둠을 좋아한다.
불빛은 안보이는 것을 상상할 여유를 앗아가서 싫다.
내 머릿속에 나름의 것들을 상상하고 설계하고 만드는 것은 인간이 밝힌 불빛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먼 우주에서 몇백 년 전에 빛났던 불빛이 이제 도착하여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 내는 신비가 더 그립기 때문이다.
화려한 의상보다 완전 알몸 상태일 때 몸이 훨씬 가볍듯이 환한 불빛보다는 마음의 무게를 앗아가는 것은 어둠이기 때문이다.
상상하는 것을 좋아한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살기 때문이지만 보이지 않는 즉 감춰진 부분을 상상하는 즐거움은 특별한 느낌으로 늘 와닿기 때문이다.
언젠가 부산항에 떠 있는 배에서 불을 밝힌 육지를 바라본 적이 있다.
불빛은 그림자를 만든다.
그러니 그 그림자 속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확연하게 보이지 않을 때 궁금하게 되고 상상함으로써 그 빛의 그늘짐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음에 감탄한 적이 있다.
완전히 드러난 것은 보이는 것이 전부지만 감춰진 마음처럼 볼 수 없는 부분이 신비감을 만들고 상상함으로써 새로운 생각들을 길러내는 것이 아닐까 한다.
잠을 잘 자려면 불빛이 사라져야 한다.
빛은 인간의 뇌파를 혼란스럽게 하지만 어둠은 안온함으로 편히 쉴 수 있는 여유로움을 선물한다는 사실을 우린 알면서도 밤새 불을 밝히고 우리가 밝힌 빛의 공포 속에서 고통받으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사는 인간들이 대단하다는 느낌이 있다.
내 주위에 모든 불빛이 사라지면 어쩌면 어딘가 숨은 내별을 찾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기곤 한다.
깜깜한 하늘에서 찾을 수 있는 작은 빛은 내가 간절히 찾고자 하는 별빛이다.
몇백 년 전 어느 작은 행성이 빛을 발한 작은 빛이 아름다운 것은 어둠이 존재하기 때문이듯이 온 밤을 밝히는 불필요한 불빛은 그저 인간의 사악함 때문에 존재하는 나쁜 불빛이라는 생각이 요즘 들어 자주 든다.
범죄예방의 목적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굳이 가로등을 긴 밤 동안 밝혀 어둠을 내칠 필요는 없을 텐데 말이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다.
어둠이 세상을 바꾸는데 이바지하지 밝은 대낮은 누구나 전부를 드러내 새로운 상상을 할 수 없다는 얘기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경기도 가평에 수영장 있는 빌라에서 하룻밤 잔적이 있다.
그때 내가 어린 시절 보았던 수많은 별을 똑똑히 보았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별들은 숨은 것이 아니고 인간이 스스로 안 보이게 환경을 보이지 않는 검은 색감으로 도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하얀 눈이 산천을 하얗게 덮은 날 밤하늘에 총총히 빛나는 내 별을 만날 꿈을 설계해 본다.
세상이 순수한 감정을 존재할 수 없게 만들어도 나만이 고요하게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은 아직도 변함없이 내 뇌리에서 밝게 그리고 아름답게 빛나는 내 별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부옇게 엉클어버린 환경의 뒤편에 숨어 언제나 만남을 기대하며 총총히 빛을 발하는 내 별을 위해 기도를 해본다.
이 세상과 하직하는 그 순간까지 영롱한 그 별빛의 순수함을 기억하는 인간으로 살게 해달라고.
이 작은 소망이 나의 전부임에 감사하고 사는지 모를 일이다.
길을 걷다가 무심하게 바라다본 하늘에 내 별이 반짝거리고 반겨주는 그런 밤과 어둠을 그리워하며 산다는 것은 슬픔이다.
반드시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내 별이 없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만히 슬픈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