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만한 희망의 구름
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영국의 풍운아 토마스 코크레인 (Thomas Cochrane) 경은 전쟁을 통해서 얻은 명성으로 하원 의원이 되겠다고 작은 지역구에 출마했는데, 이런 곳에서는 유권자의 수가 불과 수십 명이었으므로, 뇌물을 주고 표를 사는 경우가 아주 흔했습니다. 심지어 1표당 5기니(guinea, 현재 가치로 5기니는 약 135만원 정도)라는 공정가(?)가 매겨져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코크레인은 단 한푼의 뇌물도 제공하지 않았으므로 당연히 낙선했습니다. 그런데 낙선하고 나서, 코크레인은 자기에게 표를 준 몇 안되는 사람들에게 공정가의 2배인 무려 10기니의 사례금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1년 뒤 같은 지역구에 코크레인이 또 출마했는데, 이번에는 사람들이 사후에 10기니를 받을 것을 기대하고 너도나도 코크레인에게 투표를 하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차기에 코크레인이 하원 의원에 당선되었습니다. 약속한 바가 아니므로 당연히 코크레인은 표를 준 유권자에게 한 푼도 줄 필요가 없었습니다.
놀랍게도 썩소(유쾌하지 않은 미소)를 짓게 하는 이 이야기는 실화이며 영국의 의회제도가 정착하기 전에 있었던 무수히 많았던 부패한 선거의 일례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남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누군가에게 웃음거리가 될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개신교회가 그러하겠지만 한국감리교회는 의회제도가 발달한 교단이며 민주주의의 원리를 교단의 의회조직과 교단의 선거법에 받아들이면서 민주적인 절차에 따른 의결구조와 민주적인 선거방식에 의한 지도자(감독)를 선출했습니다. 그런데 한국감리교회의 문제의 정점은 바로 그 무늬만 좋은 민주적 절차에 의한 감독선거의 타락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30년 근간에 금권선거가 만연하였으며 급기야는 일명 감리교사태라 불리우는 교단장 직무대행체제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대행체제를 끝내고 안정국면에 들어섰다고 보는 생각들도 있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여전히 돈 선거가 아니면 감독(감독회장포함)선거를 꿈꾸는 게 어려운 현실이며, 돈을 뿌리는 후보자가 있고, 또 자신의 권리인 표를 돈으로 바꾸는 유권자가 있는 한 언제라도 제2의 감리교 사태는 다시 재발 될 수 있습니다. 그게 아니라하더라도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고 구원의 등대가 되어야할 복음적 교단이 사회의 지탄과 멸시의 집단으로 전락하는 일에서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교단의 자정을 외쳐오면서도 어김없이 2년이 지나면 또 다시 맘모니즘에 물든 감독선거의 악습에 몸을 맡겨 왔습니다. 그 이유는 이 악순환 되는 물신숭배와 죄악의 고리를 끊고 성직자의 집단적 윤리를 바로 세울 어떤 계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 감리교단의 흐름을 바꾸어 놓을 결정적 계기와 새로운 선거 모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 최근 희망의 불씨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차기 모 연회 감독 후보자 중에 한 사람이 돈을 쓰지 않는 감독선거를 천명하고 실천하고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 놀랍고도 즐거운 소식은 마치 이스라엘에 3년 반 기근을 멈추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던 엘리야가 7번째 기도 후에 먼 하늘에서 손바닥만한 구름을 보고 기도를 멈추었던 성경의 기사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제 마음 속에 ‘바로 저것이다. 저 작은 구름이 큰 비구름을 몰고 올 것이다.’ 라는 생각이 번개처럼 떠올랐습니다.
우리 중에 누군가가 돈쓰지 않는 공명선거를 외치며, 선거문화풍토를 바로잡는 일에 도전하는 목사가 있다는 소식만으로도 그것은 청량제와 같이 속이 후련한 소식이었습니다.
돈을 안 써서 떨어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정함과 정의를 위한 도전이라면 그 자체로서 아름답지 않은가?’ ’이 작은 움직임이 새로운 출발점이 되어준다면 앞으로 제2, 제 3의 신선한 도전들이 이어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여러 가지 희망의 꿈을 꾸어봅니다. 새로운 물꼬가 터지고 작은 흐름이 큰 흐름을 바꾸는 그런 꿈이 이제는 막연한 희망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희망의 사건으로 다가오는 듯합니다.
종종 타교단의 목사들을 만나면 개신교 가운데 최초로 교회세습방지법을 만든 감리교를 칭찬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 감리교단이 좋은 일에 앞장 선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데, 교단장 선거문제에 대해서도 좋을 소식을 전해주는 선구적인 교단이 된다면 더더욱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이것은 어떤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문제가 아니라 유권자들의 윤리적 선택이며 선을 향한 유권자들의 의식과 의지의 전환으로만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 연회의 소식은 한국감리교회의 명예와 영성을 회복하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선거풍토를 뒤집고 감리교회가 거듭나서 새롭게 출발하는 신호탄이 되어질 것이며 나아가서는 타 교단에 대해서도 그 파급효과가 쓰나미처럼 밀려가리라고 생각합니다.
한때, 한국감리교회가 나아가서는 개신교회 전체가 이제 회복할 수 없이 부패하여 자정의 능력을 상실했다고 회의론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너나없이 우리 모두가 썩었고 우리는 그 흐름 위에 얹혀 무력하게 떠내려가고 있다는 절망적인 생각입니다.
하지만 믿고 있는 바는 그 더러움의 흐름이 전체적인 흐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안 고쳐질 것 같은 타락과 죄악의 자화상이 전체적인 흐름인양 절망했던 것은 사탄의 속임에 불과합니다. 실제로는 목회자적 양심과 하나님의 정의를 선택하고 우리 자신과 교단을 변화시켜나가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그 믿음을 지켜야하고 그 뜻을 모아야 합니다.
올 9월에 감독회장과 연회 감독 선거가 있습니다. 여기에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기를 기대해봅니다. 여야를 뒤집는 선거혁명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뒤집는 선거혁명이 일어나고 그 물결이 에스겔의 환상처럼 재단의 맑은 물이 흘러 바다로 흘러가듯이 감리교회에 거룩한 의식의 혁명이 이루어지기를 꿈꾸어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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