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보이스처럼 현대미술 전반에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작가도 드물다.그가 생전에 남긴 많은 행위와 진지한 연설들은 그의 광적인 기질과 함께 현대미술의 지워지지 않는 신화가 되었다.1986년 그가 사망한 이후로 미술사가들과 그의 예술세계에 깊이 매료되어 있던 "보이스 추종자"들은 보이스를 다시 발견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1991년 바젤에서 보이스의 예술세계를 주목하는 회의가 있었고, 이후 1995년 보이스 심포지움과 함께 다양한 분야에서 그의 예술세계를 분석하고 있다.같은해에 있었던 보이스의 파리 퐁피두쎈터 전을 지켜 본 필자에게는 특히 이 시간이 새롭게 다가온다.보이스의 퐁피두 입성도 이러한 학계의 노력을 바탕으로 이루어 졌으리라.
Offset poster for dialogue at the New School during Joseph Beuys` ' first visit to the United States 1974 - Courtesy Ronald Feldman Fine Arts, New York
독일의 미술가로 나치 공군에서 부조종사로 복무중 러시아의 크리메 상공에서 격추되어 그 지역의 타타르 원주민이 그를 구해준다. 이때 펠트 천과 기름덩어리를 사용해 그를 구했다는 사실이 일종의 징크스같이 그를 떠나지 않아 그 재료는 후에도 계속해서 그의 작품에 종종 사용된다. 1946년말까지 전쟁포로로 소련에 억류되어 있었던 보이스는 1947년 뒤셀도르프 미술 아카데미에 학생으로 등록, 요제프 엔젤링과 에발트 바타레에게서 조각강의를 들었다. 1950년대에 보이스는 다듬어지지 않은 나무 조각이나 불에 탄 재료들을 사용함으로써 거칠음을 강조하는 작품을 발표한다.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에 이르면서 구리, 나무, 펠트천, 기름덩어리, 뼈, 꿀 등이 주조를 이루는 그의 회화 언어를 정착시키게 된다. 보이스에게 있어서 물질화된 설치 조각, 오브제, 드로잉, 멀티플등은 그 자체가 완성된 하나의 예술품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사상과 철학들을 풀어내기 위해 도구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요셉 보이즈의 작품_ 7천개의 오크통 전단지_ Flyer for Beuys's 7,000 Oaks at Documenta 7 (1982)
그의 작품에서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던 특정의 매체들인 펠트천이라든가 지방 덩어리, 구리, 짐승의 피 등은 그에게 삶과 죽음, 생명의 순환 및 , 따뜻함, 상처의 치유, 변화를 지속하는 형태, 에너지의 흐름 등 그의 예술적 사고를 형성하는 기본 개념들을 상징하기 위한 모티브의 역할을 하였으며 그는 이러한 매체들을 하나의 화두처럼 자신의 예술 문맥 속에 던져놓고 언제나 거기에서부터 개념의 발전과 소통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방식을 취하였다. 즉 보이스가 궁극적으로 추구했던 것은 박제화된 미술작품의 존재가 아니라 어떤 물질적 작품의 설정을 계기로 유발되는 보다 깊은 사고의 발전과 그 의미에 대한 관객과의 소통이었다. 그리고 보이스는 이것이 형성하는 사회구성원들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유기적인 흐름을 통한 조화로운 총체적 사회에의 도달 과정이 궁극적으로 진정한 예술품이 되는 이상적 세계를 꿈꾸었던 것이다.
흑판
그는 예술이 정치나 사회, 경제, 학문 등과같은 여러 분야를 끌어들여 인류의 미래를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때문에 그는 작품에서 인간성 상실과 환경문제, 전쟁 같은 인류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을 많이 다뤘다. <흑판>은 그 중 하나로, 그가 사람들 앞에서 정치에 관한 강의를 할때 사용했던 것인데, 그것을 그대로 보존해작품으로 전시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여러 가지 재료를 사용한 설치작업과 행위를했는데, 드로잉을 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의정치적 활동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했을정도로 특별히 드로잉 작업을 중요시 했다. 이 작품에는 그런 드로잉들과 정치에 관한낱말들이 교육의 보조장치인 칠판에 적혀있어서 그의 ‘교육자로서의 예술가’의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이렇듯 보이스의 자연과학, 신화, 세계의 철학 등에 관한 관심은 조그만 스케치에서 이러한 드로잉에까지에 은유적이며 섬세한 그래픽의 형태로 나타났으며, 사회정치적인 면에 대한 그의 폭넓은 고찰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함께 출품된 두편의 사진작품은 나는 간다 와 우리가 혁명이다 로 낡은 건물에서 현실세계로 힘차게 걸어나오는 모습과 세상을 등지고 시골마을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하는가_ 1965
얼굴에 꿀과 금박을 온통 뒤집어쓴 보이스는 양쪽 발에 각기 펠트와 강철 밑창을 댄 구두를 신고 죽은 토끼를 품에 안고 있습니다. 그는 3시간 동안 죽은 토끼에게 웅얼거리면서 그림을 설명합니다. 이때 관객은 공연장 밖에서 유리창을 통해 이 광경을 바라 봅니다. 이 기괴한 퍼포먼스에 대한 보이스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말, 백조, 토끼 같은 동물들은 하나의 존재 단계에서 다른 존재 단계로 자유롭게 이동한다. 그들은 영혼의 육화, 혹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는) 다른 영역에 접근해 있는 영적인 존재의 현세적 형태를 나타낸다." 얼굴에 금박을 온통 칠함으로써 보이스는 일종의 영매 혹은 주술사(shaman)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하지도 못하고 알아 듣지도 못할 죽은 토끼와의 대화, 즉 주문을 읊음으로써 그는 탐욕과 폭력의 악순환을 거듭하는 차가운 세계에 따뜻함을 가져다 주는 존재가 되는 겁니다.
미국이 탐내는 유일한 작가로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대규모 전시를 열기도 한 독일 작가 요셉 보이스는 1963년 독일의 화랑에서 백남준의 ‘음악전람회-전자 텔레비전’ 장에 모자를 쓰고 나타나 전시장에 놓여 있던 피아노를 도끼로 부수기 시작했다.
그가 아시아의 한 무명 예술가의 전시장에 등장한 것은 화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요셉 보이스는 사상과 철학이 통하는 동 시대의 예술가로서 백남준과 함께 퍼포먼스를 열면서 백남준이 예술가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는1960년대에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술가다!"라는 주장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당시 뒤셀도르프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그가 예술교육의 필요성을 부인하고 있었으니, 이런 주장은 용납할 수 없고 무책임한 선동자의 표본으로 여겨졌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1965년 작 얼굴에 금가루 칠을 하고 3시간 동안 죽은 토끼의 시체를 팔에 꼭 껴안은 채 예술의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하려했던 행위이다.
게다가 항상 입고 다니던 조끼와 중절모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더욱 그를 강조해 주었다.
플럭서스 그룹에 가담해 기름덩이를 전시하기도 했던 그는 자신의 작품이 현기증 나는 가격에 팔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술시장을 신랄하게 비난하곤 했다.
기름덩어리 의자
그랜드 피아노를 위한 동질적 침투
그는 "작품을 위해서 벌어지고 있는 것은 그저 하나의 서류나 삶의 행위의 흔적에 지나지 않으며 그 흔적들은 창작 과정을 재구성한다는 유일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유에서 마치 창작적 영감을 끌어올리기라도하듯 주술사나 무당같은 종교적 태도를 취하게 된 것이다.
1982년 카셀의 도큐멘타전에서 "7000 그루의 떡갈나무" 행동을 벌이고 있는 요셉 보이스 현무암 돌덩이들을 산더미만큼 쏟아 놓고는 7천 그루의 떡갈나무가 심어지는 것에 따라 조금씩 이 돌을 치우겠다고 했다. 지구의 사막화를 막기위한 상징적인 투쟁이라 할 이 행동은 환경보호와 예술의 결합과 광물계와 식물계의 융합을 보여주는 것으로, 분리되고 파괴된 것들을 재건하기위해 개입해야 사람은 바로 예술가라는 그의 신념을 잘 구현한 것이다.
그의 작품세계는 자서전으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갖가지 개인적 상징들로 가득하다. 2차대전 때 독일 공군조종사로 참전했던 그는 비행기 사고로 러시아 크리미아 반도 근처에 불시착한다. 사경을 헤매던 그를 구조한 타타르인 유목민들은 화상과 골절로 만신창이가 된 그의 온 몸에 버터를 바르고 펠트 천으로 체온을 유지시켜주었다. 그들은 우유와 치즈를 먹여가며 8일만에 그를 살려낸다.
보이스의 이 기적적인 생존은 뒷날 신화화되었고 예술작업의 지속적인 모티브가 된다.
죽음과 회생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지방 덩어리’와 ‘펠트 천’을 비롯해 구리, 짐승의 피 등은 그에게 삶과 죽음, 생명의 순환, 상처의 치유, 에너지의 흐름을 상징하는 기본개념이 됐다. 보이스가 추구했던 것은 박제화된 미술작품이 아니라 어떤 물질적 작품 들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연상되는 깊은 사유를 관객과 소통하는 것이었다.
구리로 만든 "덤 박스"(Dumb Box)1982년 여성의 성과 생산, 인간과 환경 뜻하는 강력한 상징적 모티브다. 자연과 관련된 여러 의미들을 내포한다.
일곱개 펠트천 기둥으로 만들어진 ‘플라이트 엘레멘트’(Plight Element,1985년) 펠트천은 보이스가 비행기 추락으로 사경을 헤맬 때 원주민들이 체온을 유지시켜 주기 위해 몸을 싸 맨 소재로 요셉 보이스에게는 치유를 뜻하는 강력한 상징적 모티브이다
"코요테 : 나는 미국을 좋아하고 미국도 나를 좋아한다" 뉴욕의 화랑에서 가졌던 퍼포먼스로 3일 동안이나 코요테라는 미국산 늑대 한마리와 담소하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2차 대전 중 펠트 담요 한장으로 추위를 막으며 목숨을 부지했던 그는 이 펠트지 담요야말로 에너지의 촉매 작용을 한다고 확신했으며, 코요테 늑대는 미국 인디언들이 숭배의 대상으로 여기던 동물이었지만 미국인들에 의해 멸종되었다. 수도사의 외투와 같이 펠트천 담요를 둘러 쓰고 몸을 보호하며, 지팡이 하나만 손에 든 채 그는우선 짐승을 염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이 둘간의 공존이 시작되었고, 코요테는 천성적 사나움을 버리고 요셉 보이스에게 기대어 잠을 자기도 하였다. 잠들기 전 늑대는 일부러 바닥에 깔아놓았던 자본주의의 상징인 경제 신문 "월 스트리트 저널"지에 오줌을 싸 놓기도 했다. 이 퍼포먼스는 자연과 문명을 상충시킨다는 의미를 갖는다.
*요셉 보이스 어록*
우리가 캔버스와 그림 틀을 사야겠다는 생각을 머리에 떠 올리는 순간부터 우리의 오류는 시작된다. 우리 인간에게는 모두 잠재적인 창작능력이 존재하고 있다. 나의 유일한 목표는 우리가 가지고 있으면서도 잘 개발되지 않은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 생각에 조각품의 생성에 필수적인 조건은 먼저 내적인 형태가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보이스 [Beuys, Joseph, 1921.5.12~1986.1.23]
펠트와 기름덩어리를 모티프로 전위적인 조형작품과 퍼포먼스를 발표한 20세기 독일 태생 미국 화가.
국적
독일
활동분야
미술
출생지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 크레펠트
주요수상
빌헬름 렘브루크상(1986)
주요작품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할 것인가》(1965) 《흔적》(1974) 《꿀을 주세요》(1979) 《카프리 배터리》(1985) 《집합체가 놓인 책상》(1958∼1985)
주요업적
펠트와 기름덩어리을 모티프로 작품을 발표한 전위예술가
1921년 5월 12일 독일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주(Nordrhein-Westfalen) 크레펠트(Krefeld)에서 태어났다. 1940년 클레브(Kleve)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세에 제2차 세계대전 나치스 공군의 부조종사로 복무하였다.
1943년 그가 탄 비행기가 러시아에서 격추되었는데 이때 타타르족(族)에 의해 구출되어 생명을 건졌다. 샤머니즘의 풍습을 지닌 타타르족은 펠트 담요와 비계 덩어리로 그를 구했다고 한다. 그는 그후 이 실존적 경험을 살려 펠트와 기름 덩어리를 작품의 소재로 사용하였다.
1946년 말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난 그는 1947년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The Dusseldorf Art Academy)에 입학하여 요제프 엔젤링(Josef Enseling)과 에발트 마타레(Ewald Matare)의 조각강의를 들었다.
1950년에는 나무조각과 불에 탄 재료를 사용하여 작품을 발표하였고 1960년대에 구리·나무·펠트천·기름덩어리·뼈·꿀·밀랍 등을 소재로 작품을 발표했다. 1961년 뒤셀도르프 예술 아카데미의 교수로 임명된 후 직접민주주의를 주창하는 운동에 적극 개입했다.
1962년부터 조지 마키우나스·백남준 등과 전위예술 단체인 플럭서스(Fluxus)에서 활동했고 1963년 이후 다양한 행위예술을 발표했다. 1960년 말부터는 조각의 개념을 정치 영역에 확대하여 '사회적 조각'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세웠다.
1972년 보통선거를 통한 직접민주주의 구현 운동으로 교수직을 박탈당하자 해직 무효소송을 제기하여 1978년 4월 승소했다. 1979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하였고 1982년 7,000그루의 나무를 심는 일종의 행위예술을 개최하였다. 1986년 1월 23일 뒤셀도르프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
가장 유명한 작품은 《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할 것인가 How to Explain Pictures to a Dead Hare》(1965)이다. 머리에 꿀과 금박을 뒤집어쓴 채 한 발에는 펠트를, 다른 발에는 쇠로 창을 댄 신발을 신고 죽은 토끼를 안고 약 2시간 동안 미술관의 그림을 토끼에게 설명한 퍼포먼스이다.
그는 고정된 예술 개념을 거부하고 자유를 지향하였다. "모든 사람은 예술가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는데, 이 말은 누구든 모든 직업에서 잠재적 창조자로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모든 삶의 형태를 예술 작업의 일부로 생각하였다. 행동적인 그의 예술관은 개념미술·행위예술·환경예술을 비롯하여 독일 신표현주의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두이스부르크시(市)가 수여하는 빌헬름 렘브루크상(1986)을 받았고 대부분의 작품은 다름슈타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한국 국립 현대미술관에도 4점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주요 작품으로 《흔적》(1974), 《꿀을 주세요》(1979), 《카프리 배터리》(1985), 《집합체가 놓인 책상》(1958∼1985) 등이 있다.
담요·펠트·지방(脂肪)·철·나무 등을 이용한 조각을 제작하였으며, 64년 《마르셀 뒤샹의 침묵은 과대평가되어 있다》를 발표하였다. 보이스는 생전의 뒤샹이 침묵으로 예술을 절대화시켰다고 생각하고 이에 맞서 예술을 다시 한번 인간의 활동 일반화와 같은 새로운 맥락에서 받아들이려 하였으며, 그의 사회적 활동도 그 일환으로 생각된다. 카리스마적 매력을 지닌 그는 독일 현대미술에 절대적 영향력을 지녔으며 중견 이상의 작가는 많건 적건 그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젊은 작가 사이에 <보이스 신화>를 상대화하는 보이스 비판도 강화되고 있다.
.독일 출신의 현대미술 거장 요셉 보이스 '97 광주비엔날레' 한국경제 1997-03-24
."플럭서스 1962~1994"요셉 보이스,존 케이지,백남준 등이 기록사진 드로잉 오브제 등 한국경제 2001.01.04 60년대초 독일에서 태동한 플럭서스 그룹은 반전위 예술운동으로 현대미술의 개념정립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돌 무더기를 전시장에 설치한 작품 (독일작가 요셉 보이스)[제 49회] 베니스 비엔날레 개막 한국일보 2001.06.10
.종이에 추상적 형상을 담은 보이스의 석판화 5점 [미술]백남준-요셉보이스-존 케이지 합동전시회 동아일보 2001-06-19 석판화는 종이에 추상적 형상을 담은 것으로 80년대에 만든 것들이다.한국경제 2001-06-24
.1960년대 요셉 보이스(Joseph Beuys)로부터 시작한 독일의 포스트모더니즘의 활동은 그 당시 미국에 문화적 주도권을 다시 독일로 가져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오마이뉴스 2003-06-17
.[전시]한국국제아트페어 요셉 보이스 동아일보 2003-06-24
.문화일보 2003-06-30 장르를 넘나들 며 플럭서스운동을 주도했던 요셉 보이스 이후 사회적 이슈를 담 은 독일미술의 개념적 작업이 국내 젊은 미술가들에게 강하게 영 향을 끼쳤다는 것. 80년대이후 미국 미술의 국제적 위상 약세도 상대적으로 독일 미술이 부상하는 변수가 됐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연합뉴스 2003-10-07 '9회서울판화미술제2003' 개최 아트페어 요셉 보이스
.연합뉴스 2003-10-09 <요셉 보이스-샤먼과 수사슴의 신화>
「JOSEPH BEUYS-THE SHAMAN AND THE STAG」전의 주제는 '샤먼과 수사슴'이다. 샤먼은 그들 나름의 몽환 상태에서 영적(靈的)세계를 방문했고 많은 경우 영적인 조수(助手)로 동물들을 데리고 다녔다. 보이스의 작품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동물은 남성을 의미하는 수사슴과 여성을 의미하는 산토끼이다.
'3 Throwing Crosses with 2 Stopwatches'는 양쪽 팔을 없앤 십자가에 샤머니즘 또는 토템신앙을 상기시키는 원시적인 형상의 이미지가 걸려있는 것을 묘사한 작품.
구리와 펠트로 만든 'Dumb Box'는 산토끼의 무덤임을 전제로 하고있는 작품이다. 비어있는 박스는 침묵하고 있는 오브제로서 다시 소리에 관한 감각을 끌어내도록 한다. 여성의 성과 생산, 인간과 환경, 자연과 관련된 여러 의미를 내포한다.
나무로 만든 사다리를 중심으로 납으로 된 두개의 구(球)를 양쪽에 배치시키고 이를 철사로 연결한 'Scala Napoletana'에서 사다리는 인생을 의미한다.
경제적 어려움, 잦은 자연 재해로 인해 길러진 나폴리 주민들의 강한 성향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불안정한 상황 속에서도 균형을 잡고있는 모습을 드러낸다
.동아일보 2003-10-09 1963년 3월 독일 부퍼탈 파르나스 화랑. 백남준의 ‘음악전람회-전자 텔레비전’ 장에 갑자기 모자를 쓴 남자가 나타나 전시장에 놓여 있던 피아노를 도끼로 부수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당시 독일 화단에서 주목받고 있던 작가 요셉 보이스.
.한국경제 2003-10-12 "숫사슴을 위한 기념물","스칼라 나폴리타나"등 설치작 14점과 드로잉 40여점 (삼성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조지마추나스를 위한 숫사슴 기념물")"죽은 토끼에게 어떻게 그림을 설명할 것인가"는 머리에 꿀과 금박을 뒤집어 쓴 채 한발에는 펠트를,다른 발에는 쇠로 창을 댄 신발을 신고 죽은 토끼를 안고 두시간 동안 미술관의 그림을 토끼에게 설명한 퍼포먼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