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시 데이와 피터 모린의 환대의 집을 모델로 삼아서
오이 하나 2,000원, 애호박 하나 2,500, 배추 하나 6,500원, 부추 한단 2,980원, 무 한 개 3,000원.... 큰 일입니다. 시장에 갔다가 살아갈까 망설입니다. 가난한 사람의 심정은 애가 탑니다. 그래도 조금 지나면 좋아지겠지요.
민들레국수집은 도로시 데이와 피터 모린의 "환대의 집"을 흉내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제대로 흉내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찾아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착한 분들인데 제가 속이 밴댕이 속이라서 잘 삐집니다.
거리에서 노숙하는 우리 손님들이 찾아오면 내놓는 건 한 그릇의 밥이 아니라 "사람대접"입니다. 아니 그렇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문을 연지 만14년 5개월입니다. 세월이 빨리 흐르는 것 같습니다.
민들레국수집 근처에는 민들레 꿈 공부방과 어린이 도서관인 민들레 책들레과 민들레 꿈 어린이 밥집도 있고, 민들레희망센터도 근처에 있습니다. 진료소와 옷가게도 있어서 노숙하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려고 애를 씁니다. 요즘은 우리 손님들에게 아메리카노 커피도 대접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교도소의 형제들 찾아보는 일도 계속 하고 있습니다.
2014년에는 필리핀 마닐라의 가난한 마을에 민들레국수집을 열고 아이들을 돌보다가 어쩔 수 없이 2017년 1월말에 문을 닫고 겨우 "필리핀 민들레국수집 스콜라쉽"만 남겨두고 철수했습니다. 아이들의 꿈을 장학금으로 계속 지원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난감한 일이 생겨버렸습니다. 분명 좋은 의도로 했을지라도 생각하지만 ...일이 꼬여 버렸습니다. 그래서 다른 방법을 찾게 되었습니다. GMA 카비테는 마닐라 근교입니다. 참 가난한 마을입니다. 그곳에 작은 민들레국수집 장학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마닐라 나보타스의 가난한 마을에도 아이들을 위한 장학모임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6월에 방문해서 세 곳에 장학금을 2017년 11월분까지 나누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 아이들에게 장학금만 나눠주는 무언가 모자랍니다. 배가 고픈데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어떻거든 밥은 먹어야 하는데...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예수살이 산위의 마을에 계시는 박기호 신부님이 암브로시오 형제가 좋은 일에 써달라고 맡겨둔 돈의 일부를 종자돈으로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선 가장 급한 카비테에서 아이들 급식으로 시작하려고 장소를 물색하고 확보했습니다. 이제 간단한 작은 공사를 하고 비품을 준비하면 오는 12월에는 문을 열 수 있습니다. 카비테의 무상급식이 잘 되면 곧이어 나보타스에도 시작해야겠다고 했더니 세상에! 나보타스 민들레 봉사자인 벌린 자매가 급식이랑 아이들 명단을 어느새 작성해 놓았답니다. 얼마나 한 그릇 밥이 절실하면....
저는 1976년에 천주교 수도원에 들어가서 25년을 살다가 환속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늦게 가정을 꾸렸습니다. 그래서 호칭이 곤란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누군가 '수사'라고 부르면 정색을 하고 '아닙니다. 저는 환속한 사람이라서 수사라고 부르시면 안 됩니다'라고 설명을 해야 합니다. 저는 사장도 아니고 그래서 '국수집 주인장'으로 불러 달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대표라고도 하고요. 아무래도 주인장 나부랭이가 더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어떤 신부는 제가 수사라고 불린다며 부당하다 인천주보에 글을 싣기까지 했지요. 저는 절대로 수사가 아닙니다.
저는 25년간 살던 수도원을 나와서 처음에는 출소자 형제들은 위한 "겨자씨의 집"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민들레국수집'을 열게 되었습니다. 동인천역 앞에서 무료급식을 하는데 길게 줄 세워 놓고 또 긴 시간 설교하고 그런 다음에 밥을 나눠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라면 배고픈 사람들을 어떻게 대접하실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밥보다 우선이 사람대접일 것 같아서 조그만 민들레국수집을 열었습니다.
왜 민들레라고 이름지었나 하면요. 이름이 예뻐서입니다. 개나리, 채송화, 나팔꽃, 민들레... 민들레국수집. 이름이 참 예쁩니다.
민들레국수집 간판은 흰색 바탕에 노란 글씨... 보일 듯 말 듯 합니다. 간판이란 모름지기 잘 보이고 눈에 확 띄게 만드는 법인데. 자본주의 세상과는 다른 세상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이익이 아니라 나누는 것. 나누고 섬기는 세상과는 다른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일등이 선착순의 기준입니다. 그런데 민들레국수집은 세상과 다르게 꼴찌가 선착순의 기준입니다. 예수님이 천국은 꼴찌부터 들어간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식당은 좁고 손님은 터무니없이 많습니다. 줄을 서면 언제 밥 한 그릇 먹을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순서를 바꿨습니다. 제일 배고픈 분이 먼저 먹는 것입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서로 배려하고 고마워 하고 남을 먼저 생각합니다. 어느새 줄이 없어집니다. 모두가 배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 몇 가지 터무니없는 원칙이 민들레국수집에 있습니다. 그것은 도로시 데이의 "환대의 집"을 흉내낸 것입니다. 정부지원을 받지 않는다.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프로그램 공모를 하지 않는다. 조직을 만들지 않는다. 부자들이 생색을 내면서 주면 안 받는다는 것입니다.
건물을 소유하지 않고 임대를 하거나 무상임대를 해서 민들레국수집을 운영하고 또 겨자씨의 집과 민들레의 집과 민들레 꿈 공부방과 민들레희망지원센터를 운영했습니다. 건물주의 욕심이 끝이 없었습니다. 계속 월세를 올려달라는 것을 견디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슬픔인 것 같습니다. 무상 임대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인현동에 있었던 민들레희망지원센터와 필리핀 민들레국수집은 무상임대였습니다. 고맙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어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일도 생겼습니다. 사실 필리핀 민들레국수집은 억울한 면도 있습니다. 인천교구와 상관이 없는 일인데도 가재는 게 편이라 포기하는 것이 제일 합당한 방법이었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이 소유권 문제로 교구와 다투는 건 꼴사나운 일이지요. 그리고 덕분에 다른 곳에서 다른 방법으로 다시 하면 되니까 새옹지마입니다.
우리 노숙 손님들이 세탁과 샤워를 하고, 낮잠도 좀 잘 수 있는, 휴게실 겸 인터넷과 책도 볼 수 있는 문화공간이 있는 허름한 2층 단독 주택 하나를 2015년에 겨우 마련했습니다. 금융기관에 대출도 받았습니다. 참으로 선의의 많은 분들이 도와주셔서 "민들레희망센터"를 다시 열었습니다. 그런데 등기를 누구 명의로 했는지 시비를 거는 사람도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식당을 열고 지금까지 숱한 고비가 있었습니다. 수사생활을 그만두고 환속한 것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 봤습니다. 후회하기 보다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환속했기에 터무니없는 의심의 눈초리를 받았고요. 무시와 천대. 사람 취급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가장 좋고 확실한 길은 가난이기 때문입니다.
수도원에 있을 때도 전국의 교도소를 찾아다니면서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장기수 형제들을 도와 왔습니다. 지금도 매달 한번 이상 경북 청송에 있는 경북북부 교도소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틈이 나면 전국에 흩어져 있는 우리 가족과 인연이 있는 장기수 형제들을 만나러 다닙니다. 그리고 오갈데 없는 출소한 장기수였던 형제들과도 겨자씨의 집에서 몇 명이 함께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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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에게 밥만 준다고 모든게 해결되느냐, 스스로 자립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말씀들을 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밥은 당연히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합니다. 그리고 혼자서 잘 살려면 지금처럼 노숙하는 사람들이 계속 생기고 일등만 살 수 있는 헬조선, 지옥이 되어버립니다. 나보다 더 중요한 남이 있다는 것을 체험해야 노숙하는 분들은 스스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살려면 이웃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사람이 희망이다"라는 말을 하지요. 민들레국수집 14년을 꾸려오면서 "사람이 희망"이라는 것을 더욱 절실히 느끼게 되었습니다. 물론 행복한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노숙하시는 분에게 얻어 맞기도 하고 멱살을 잡히기도 하고, 터무니 없는 말도 많이 들었지요. 심지어는 제가 청송교도소 출신의 조직 폭력배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또 출소자들도 다시 교도소로 들어가는 일이 허다하지요. 머리 검은 짐승은 도와주면 안 된다는 말을 듣기도 하고 또 지칠만도 합니다만 재미있기도 합니다. 가슴 뿌듯한 일도 많습니다. 하루하루가 기적입니다.
민들레국수집 벽에는 이런 글이 적힌 액자가 걸려있습니다. "소유로부터의 자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는 기쁨.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투신" 예수살이 운동의 모토입니다. 또한 민들레국수집의 모토이기도 합니다.
오래된 인천
화수동 골목길
민들레국수집
가난한 이들의 조그만 오아시스.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
아름답게 봉사해 주시는 모든 분들... 가난한 이웃을 위해 즐겁게 봉사해주시는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추석도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빈인들의 얼어붙은 마음과 몸을 녹여 주시는 분!
서영남대표님과 부인이신 베로니카님께 이자리를 빌어
감사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명절에도 민들레 국수집 참 값지게 보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