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은 소모임 지식나누기<온라인 스터디방>에 있는 글입니다.
현재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전시중인 베르나르 브네展을 보실분들께 참고가 되시면 좋겠네요,,^^
蛇足) 시대순으로 가다가 갑자기 다다이즘 이후인 개념미술 부분이 나와서 당황 스럽지만
마침 프랑스의 세계적 개념미술의 거장인 베르나르 브네의 서울 시립미술관 전시가 있어서 끼어 넣기를 합니다.
제가 건방지게 한마디로 개념 미술을 정의한다면(후훗~) 마음을 그리는 미술활동 전반이라고 하고 싶습니다.(이게 모야,ㅋㅋ)
한번 읽어 보시고 전시를 보시면 조금 마음의 평화를 얻으실듯 하여 밤잠 설치며 글 올립니다..
마르셀 뒤샹 Henri Robert Marcel Duchamp 1887년 7월 28일 ~ 1968년 10월 2일
백남준 1932년 7월 20일 ~ 2006년 1월 29일
프란시스 피카비아 Francis Picabia, 1879.1.22~1953.11.30
피에로 만초니 Piero Manzoni 1933-1963
칠도 메이레스 Cildo Meireles1948
한스 하케 Hans Haacke1936
애나 맨디에타 Ana Mendieta 1948-1985
조셉 코수스 Joseph Kosuth 1945
Bernar Venet(1941~) - conceptual Art [槪念美術]
마음을 그리다.
Bernar Venet
베르나르 브네 / 프랑스 출신 / 1941년생
우리에겐 생소한 이름이지만 그는 이미 1990년대 부터 국내에 소개된 작가입니다.(토탈, 현대등)
몇년전에는 과천 국립현대 미술관에서 그의 대규모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었죠.
그리고 이미 서울 도심에 떡하니 그의 38미터 짜리 대형 작품이 설치 되어 있기도 합니다.(중구 동국제강 빌딩 20톤)
서울대 미술관앞에도 그의 작품이 있었습니다.
그의 작품세계는 다양 합니다.
한마디로 올라운드 플레이어라고 할수 있을 정도입니다.
회화를 시작으로 조각, 설치, 퍼포먼스, 이벤트, 사진, 영상물과 저서까지.
다양한 그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하나의 맥은 바로 conceptual Art입니다.
우리나라말로는 다소 어색하게 해석되는 개념미술 [槪念美術]
아마도 일본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한국의 비평가나 평론가들에 의해 도입된듯한
이용어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좋은 대체 용어가 떠오르지 않으니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긴 합니다.
결론은 그의 생경하고 이상한 작품들을 감상하는데
최소한 개념미술이라는것에 대한 약간의 개념은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결론 입니다.
그림을 감상하는데 있어서 작품에 대한 정보를 미리 습득하고 학구적으로 본다는것에 대해 저도 상당한
반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무턱대고 싫다고 외면하는것은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방법이 아니겠죠.
약간의 정보라도 알고나서 호, 불호를 따져 선택하는것이 최소한의 예의이자 살아가는 방편이기도 할 겁니다.
conceptual Art [槪念美術]
그의 작품의 토양이라고 할수있는 개념미술은
한마디로 완성된 완제품 상태의 작품 보다는 그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이나 아이디어
자체만으로도 예술이라고 믿는 태도의 작업 형태 입니다.
전통적인 미술의 개념에 반하는 반미술적 태도인 개념미술은
역시 그 원류를 다다에서 찿을수 있습니다.(현대 미술의 대부분이 다다이즘의 DNA를 공유 하듯)
마르셀 뒤샹 "그림을 만드는 것은 관람자다."
1960년대 네오다다이즘과 백남준선생이 활동했던 플럭스(flux)운동
그리고 뒤를 이은 미니멀 아트(minimal art)에 이어져 나온것이 바로 개념미술인데
이러한 운동가들의 영혼에는 바로 뒤샹의 강력한 영적 지배력이 존재하고 있었다고 볼수 있을 겁니다.
개념미술과 연관해 생각해 보게 만드는 작품들
1.프란시스 피카비아는 커다란 캔버스에 사람들에게 낙서를 해달라고 부탁하고 50여명의 낙서가 적힌
공중 화장실의 벽같은 캔버스를 전시했습니다. 이작품은 피카비아가 제작한것일까요?
2. 피에로 만초니는 밀폐된 캔에 "예술가의 똥, 30그램, 신선하게 보존됨, 1961년 5월 생산되고 저장"이라는 라벨을 붙이고
같은 무게의 금과 같은 가격으로 판매했습니다.
3. 버클리 음대 대학원생이었던 라 몬테 영은 "현을 위한 트리오"라는 위의 악보를 제작했는데 당황한 교수가 연주해볼것을 주문했습니다.
이곡은 이후 미니멀 음악의 시초가 되기도 하였으며 기존의 12음계법을 완전히 파괴한 반전통적인 방법이었으며 존 케이지가 만들었던
4분 33초와 함께 중요한 음악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개념미술은 일부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부분도 건드립니다.
자본주의와 소비주의를 나타내는 칠도 메이레스의 "코카콜라 프로젝트". 베트남전과 관련된 작품인 한스 하케의 "투표함"
페미니즘을 나타내는 남자친구의 콧수염을 자신의 얼굴에 붙인 애나 맨디에타의 "얼굴에 털 옮겨 심기"등
즉 우리가 좋아하는(현재 까지도) 회화의 낭만성과 재현성을 완전히 포기하는것이 그들의 목표중 하나였는데
그들은 이미 창조자의 역할을 포기하는 연출자나 제조자의 길로 들어섰다는것이 맞는 표현 일겁니다.
그들은 연출자나 제조자의 길을 택하면서도
결국 "손재주"를 지니 장인의 길마저 포기하고 손보다는 "마음"을 주장하는 험난한 길을 택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마음"을 표현 하는 미술가들이 개념미술가라고 할수 있을 겁니다.
conceptual Art [槪念美術]의 영역
그럼 도대체 개념미술의 영역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일까요?
특히나 구분짓고 단락짓기 좋아하는 우리들은 도대체 애매 모호한 개념미술에대한
기준점을 찿으려고 노력해 볼만 합니다.
무엇이 개념미술이고 어떤것이 아닌지를 구분하려하는 노력은 안타깝게도 현대 미술에 있어서 의미가 없다고 할수 있습니다.
조셉 코수스
'형태'에서 '개념'으로의 전환이 '모던 아트'의 시작이자, '개념 미술'의 시작이다."
대부분의 현대의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 세계에 있어서 한발을 개념미술속에 담그고 있습니다.
그만큼 개념미술의 그릇은 넓고도 깊어서 굳이 분류하고 구분하는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 입니다.
작가의 마음이 그림에 담겨있고(안담겨 있는 작품들도 있지만)
작품의 의도와 과정이 내포되어 있고(과정이나 의도가 없는 작품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
감상자들에게 스스로 작품의 해석과 의미부여를 원하는 작품(요즘 대부분 현대 미술작품들은그러하지요)
이라면 그 작품은 개념 미술작품이기도 합니다.
로렌스 와이너(미술가) "작품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관람자에게 달려 있다."
베르나르 브네는 미술의 목적을
‘미(美)가 아닌 지식을 담는 것’, ‘미술의 역사를 바꾸는 것’
으로 설정함으로써 기존의 미술사조와 담론을 뛰어넘는 지적이면서도 급진적인 작품 활동을 벌여왔습니다.
베르나르 브네의 작품들은 파리의 에펠탑과 라데팡스, 스트라스부르의 보르도와 베를린의 우라니아 광장등
세계 주요 공공장소에 설치되어 장관을 연출해 왔으며, 현재 프랑스퐁피두센터, 미국 뉴욕현대미술관 등 세계적인 미술관 60여 곳에
그의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프랑스의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 사람인 베르나르 브네(Bernar Venet, 1941)는 현재 파리, 뉴욕
그리고 르 뮈(Le Muy)에 근거지를 두고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지요.
1960년대부터 브네는 프랑스 미술의 전통에 싫증을 느끼면서
미국 형식주의와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작품에 매료되었습니다.
특히 그의 철구조물 조각은 유명합니다.
유려한 곡선과 날카로운 직선의 조화 뿐만 아니라
철근 자체의 물성을 뛰어넘는 그의 계획적 의도 와 반전통적 저항의식이 강력하게 느껴 집니다.
그 후 ‘단의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형식적 급진주의에 대한 탐색을 확실히 제시했습니다.
1989년부터 그는 ‘비결정적인 선’을 통해 철 조각들의 전통적인 규범에 도전하고 역동적인 현대 조각의 비전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베르나르 브네는 20세기 조각의 특징인 전시 받침대를 버리고,
벽과 바닥을 작품의 요소로 활용함으로써 기존의 틀에 짜여진 구조와 질서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운 조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 작품에서 분명히 나타나는 근원적인 것들 중 어느 한 가지도 부정할 수 없다.
재료는 나의 의도를 앞선다.
나의 조각은 그들이 제작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금속의 거부에 대한 내 자신과 철 사이의 투쟁과 대처의 이야기이다.
이것은 바로 “누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질서를 결정하느냐는 질문 그 자체인 것이다.
나는 원자의 질량이 가지는 에너지와, 원자간 끌어당기는 관계들 - 단일성, 상이성, 동일성 등-을 지키고자 한다."
(작가노트 중에서)
타르회화, 석탄더미 와 같은 1961년 무렵의 초기 작업들은 ‘자아와의 거리두기’,
즉 작품제작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아의 존재를 제거해 나아가는 일종의 금욕주의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러던 중 작가적 한계에 부딪힌 그는 1971년부터 1976년 동안 작품 활동을 전면 중단하기에 이릅니다.
1976년 약 5년간의 공백을 깨고 다시 나타난 브네는 이전에 비해 상당히 자유로워진 작업들을 보여주는데
적어도 예술가의 정서적 개입이나 미적 ‘쾌락’에 대해서는 조금 더 너그러워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 같은 특징은 여전히 기학과 수학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기호들이 객관적인 확실성을 지시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추상화된 형태의 기호들을 통해 칸트가 말했던 ‘수학적 숭고미’에 까지 나아간다는 지점에서 결정적인
차이를 보여줍니다.
현대미술은 어렵다.
특히 베르나르 브네와 같은 개념주의의 미술들.
수학 기호와 공식이 나열되고 타르와 철제 빔이 난무하는 작품들에게서
우리는 이질감과 막연함을 느낄수도 있습니다.
한가지 다행인것은
뒤샹이후의 대부분의 미술가들이
자신이 질러 놓은 작품들의 해석과 존재성을
감상자들에게 밀쳐 버린것입니다.
마르셀 뒤샹 의 "그림을 만드는 것은 관람자다."라는 말은
조금 비겁하게 들리기도 하지만(사실은 비평가들이 그들의 작품을 만들어 낸것이나 다름없지만)
그나마 위안이 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의 작품들을 평하는 많은 글들이 오히려 우리의 눈을 가리게되는 경우도 있을수 있습니다.
지금제가 쓰고있는 글도 또한 여러분의 눈을 가리게 되는 장애물이 될수도 있을 겁니다.
수많은 이즘과 어려운 비평 용어들이 눈과 귀를 현혹시키는 이러한 현상은 결코 바람직 하지 않습니다.
중요한것은 작품앞에 섰을때 우리들이 느끼는 감정일겁니다.
지나친 의미 부여도
과도한 애정이나 관심도
또는 숭고미나 감동 또는 교훈을 찿으려는 의도등은
지금의 미술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니까 말이지요.
지금의 우리 세계가 그런것 들과는 거리가 너무 멀지 않습니까.
그저 조용히 작품앞에 서서
그의 수학 공식들을 바라 보면서
지켜보는 것이죠.
그의 마음과 그의 마음을 지켜보는 나의 마음을...
(아랫글은 2007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했었던 베르나르 브네의 자료글입니다,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클릭해서 보세요)
첫댓글 조각만봤었는데 ,이번 전시에는 페인팅만 40점 온다죠, 무료라니 좋고
무료는 다좋아~~사실 그는 조각이 더 유명하긴 한데,,그 무겁고 거대한 강철빔을 운반하고 설치하려면 얼마나 힘들까,,비용도 많이 들거구..토탈미술관이나 동국제강 사옥에서 보면되지,,머,,암튼 기대되는 전시라는,,
과천국립현대미술관, 서울대학교미술관, 한남동 단국대자리
ㅋ,,박하 ^^
윗글 <고흐의 꽃병에 물이 없는 이유>를 보고 나서 여기 두리번거리니 한결 내 마음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강철의 물성에 묻다..난독증 같은 해갈을 꿈꾸다...
잘 읽었습니다..전시 볼때 많은 도움이 될꺼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