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 설교의 목적은 천국과 구원에 관해서 알려주는 것. 바리새인의 의보다 낫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은 구원이 임하려면 예수님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고 그것이 본질이다. 본질을 떠난 예수 없음이 변질, 진정한 변화는 예수 있음의 결과다.
십계명은 6계명부터 설명이 없다(출20, 신5). 미완성으로 주시고 완성 시키시는 예수님이 풀어 주신다.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은 크리스천은 신부이고 신랑은 예수님이라는 배경을 두고 설명하시는 것이다. 구원의 관점에서 간음하지 말라는 것은 신랑 되신 예수님을 버리면 안 된다는 말씀이다.
신앙생활이 단순한 윤리적인 간음의 문제가 아니라 신랑 되신 예수님과 결혼하는 것. 신부가 정결해야지 부정하면 안 된다. 우리가 천국 간다는 것은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만나러 간다는 것. 우리는 끝까지 정결한 신부로 서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신부의 의가 초점이 아니다. 우리가 그렇게 정결하거나 깨끗한 신부가 아니다. 초점이 신랑의 은혜에 있다. 그것 때문에 이 결혼이 가능하고 구원을 받는 것이다.
우리는 죄인이다. 그래서 은혜의 공급처가 필요하다. 그 은혜가 압도적인 신랑에게서 오는 것이다. 우리가 고멜이다. 고멜이 무슨 의가 있나? 나는 더러운 고멜인데 신랑의 압도적인 은혜로 이 결혼이 가능하고 구원받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신랑의 은혜에 대한 묵상이 별로 없다. 신랑의 은혜를 붙들지 않고도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세대 주의’와 ‘영지주의’가 있었다. 시대적 상황이 좋지 않은데, 예수를 잘 믿으면 해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세대 주의. 예수님을 믿어서 가난에서 벗어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독재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시대의 과제를 예수님으로 풀겠다는 것. 예수님은 수단일 뿐이지 목적이 되지 못한다.
영지주의(Gnosticism) 특징이 기도로 안 되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도만 하고 묵상을 안 한다. 성경을 대충 읽고 자기 원하는 대로 해석한다. 말씀이 무엇인지 모르고 덮어 놓고 믿는다. 둘 다 예수님 없음이다. 예수님의 이름만 있다. 실제로 예수님이 나의 주인 되시고, 예수님의 은혜로부터 내가 존재한다는 의식이 없다. 그걸 성경에서 음행이라 한다.
계시록이 말하는 바벨론이 세상인데, 세상의 죄악의 특징이 음행과 사치. 음행이란 도덕적인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없는 만족. 세상은 언제나 하나님 없는 만족을 추구한다. 만족할 수 없으니까. 양으로 늘린다. 허구한 날 물질적인 수집으로 사는 사람은 만족이 없다. 예수님으로 꽉 채워진 사람은 절대 그렇게 할 수 없다. 예수님에 대한 만족이 있으면 절대 그런 짓 안 한다.
호세아서가 그래서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설명해 주시기 위해서 고멜에게 가서 자식들을 낳으라고 보냈다.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호1:2) 음란이 하나님 없는 만족이다. 아이 셋을 낳았는데 이스르엘은 엉뚱한 데서 심겨졌다는 뜻이고, 로루하마는 사랑받지 못할 사람이며, 로암미는 나의 백성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 같으면 갖다 버리고 끝내면 되는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은 그게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호세아 3장에 넘어가니,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신다. “내가 은 열 다섯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저를 사고”(호3:2) 이게 은 30이다. 호세아서를 읽으면 십자가의 사랑이 무엇인지 14장까지 다 나와 있다. “백합화같이 피고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히고 가지가 퍼지며 감람나무 같이 아름다울 것이다”(호14:5-6) 다 좋다는 뜻이다. 이것은 고멜의 의로 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의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장차 오실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로 변화시키시겠다는 말씀이다(호14:9).
인간에겐 의가 없다. 제자들이 우리 힘으로 안 되니까 ‘믿음을 더하소서’하고 구한다. 그때 예수님이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눅17:6) 전적인 신뢰다. 나병 환자 열 사람이 나온다. 나병 환자에게는 자기 의가 없다. "불쌍히 여겨 주세요" 오직 주밖에 없다는 고백이다. 전적인 신뢰다. 그때 예수님이 가라 하시니 이해 납득 공감이 되지 않아도 순종한다. 그런데 그중 한 사람만이 돌아와 주님께 영광을 돌린다. 예수님이 삶의 우선이 된 것이다. 그때 엄청난 변화가 삶에서 일어난다. 오늘 간음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고멜은 의가 없는 사람이다. 고멜인 우리는 신랑의 은혜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이혼 증서를 써 주는 이야기(31,32)는 설명이 19장에 나온다. 이혼 증서는 너희들의 완악함 때문에 여자들을 보호해 주기 위한 편법이지 본질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신랑의 은혜를 붙들지 않으면 괴물이 되어 율법에 있다고 문서 들고나와 나쁜 짓을 할 것이다. 정의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정의보다 더 큰 것이 은혜인데 내 안에 없다. 신랑의 은혜를 받아서 흘러넘치게 만드는 신부가 돼야 한다.
"팀 켈러의 결혼을 말하다" 부제가 '현대인의 뒤틀린 실타래를 풀다' 고멜 같은 자기 의가 의인 줄 알고 난리를 치면 결혼이 깨지게 된다는 이야기다. 결혼에는 예수님이 들어가야 한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도서 4:12) 결혼이란 중심에 예수님이 계시는 것. 은혜를 중심으로 살면 끊어지지 않는다. 책에 나 중심적인 결혼이 있고 너 중심적인 결혼이 있다. 예수님이 중심이 되면 악함을 깨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 신랑의 은혜를 붙을 때만 뒤틀린 실타래를 풀 수 있다.
잘 모를 때는 내가 풀려고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 예수님이 풀어 주신다. 우리에게도 풀리지 않는 문제들이 있다. 핵심은 우리의 신랑 되신 예수님의 은혜가 엄청나다. 내게 초점을 두면 더러워서 역겹다. 고멜같은 신부도 압도적인 신랑의 은혜를 통해서 아름답게 변화될 수 있다. 말이 안 되는 영광이 임한다. 우리 교회도 신랑 되신 예수님 때문에 꽃이 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