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⑪
가이사랴 빌립보(갈릴리)
“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마가복음 8:27) 이스라엘에 다녀온 사람들은 그 땅을 물이 없고 척박한 땅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스라엘 구석구석을 살펴봤다면 그런 말을 쉽게 하지 못할 것이다. 갈릴리 북쪽은 물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물의 천국이다.
성지답사 일정을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기념교회보다는 이스라엘 땅 이곳 저곳을 돌아보면서 다양한 성지의 땅을 보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둘째는 성경 사건의 현장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스라엘의 여러 지역 가운데 반드시 방문하는 곳이 갈릴리 최북단 지역이다.
처음 답사팀과 이곳을 찾을 때만 해도 갈릴리 북쪽에서 한국 순례자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요즘은 어찌 된 일인지 여행사에서 이곳 방문을 성지순례의 중요한 메리트로 부각시켜 상품을 판매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의 순례 기간이 늘어나지 않고 이곳을 방문한다는 것은 소위 말하는 ‘칙착’(차에서 내려 사진 찍고 다시 차에 올라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방법)으로 일정을 진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차를 타고 이동하는 거리가 3시간은 족히 넘을 텐데 그동안 갈릴리 북쪽 지역을 볼 수는 있기 때문이다. 갈릴리 북쪽 지역을 돌아보는 것이 이스라엘 땅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느낄 기회가 된다.
이스라엘에 다녀온 순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그 땅은 물이 없고 토질이 척박한 땅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스라엘 곳곳에 펼쳐진 비옥한 평야와 갈릴리 북쪽을 돌아봤다면 그런 말을 쉽게 하지 못할 것이다. 갈릴리 북쪽은 물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곳이다. 갈릴리 호수를 채우는 물의 근원지(헬몬산, 단, 바니아스, 이온)가 모두 갈릴리 북쪽에 있다. 3~4월에 이 지역은 눈 덮인 헬몬산(2814m)을 병풍 삼아 산기슭에 꽃과 숲, 나무와 물 그리고 훌라 평원에 있는 과일나무들이 꽃을 피워내면 이스라엘에서 가장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내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을 답사하기 위해서 우리는 성경, 지도, 매뉴얼, 그리고 약간의 음식을 가방에 준비해서 평일보다 1시간쯤 일찍 호텔을 나선다. 우리가 먼저 통과하는 곳은 골란고원, 성경에서 ‘바산의 골란’으로 불렸던 곳이다(신4:43, 수20:8). 6일 전쟁 당시(1967) 시리아로부터 이스라엘이 빼앗아 점령하고 있는 갈릴리 호수 동북쪽 지역을 말한다. 쿠네투라에서 잠시 멈춰 차에서 내린다. 시리아와 이스라엘 사이에 임시 국경선이 있고 유인평화유지군의 막사가 내려다보인다.
북서쪽으로 눈 앞에 펼쳐진 평원을 따라가면 다메섹이 멀지 않다. 이 평원이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기 위해서 살기등등했던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던 길이였다. 사울이 변하여 바울이 된 곳이다. 지금은 국경선이 가로막혀 이 길을 더 이상 통과할 수 없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방향을 북쪽으로 바꾸어 헬몬산을 정면에 두고 달려간다. 우리가 달리는 골란고원은 풀들이 피어나고 꽃들이 만발한 초원인데 헬몬산은 하얀 눈에 덮여 대조된 풍경이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두루족이 사는 조그만 마을을 통과하게 된다. 이스라엘, 레바논, 시리아 국경 주변에 두루 걸쳐 사는 아주 작은 부족이다. 창밖을 보면 엉덩이에 마치 커다란 자루를 하나 매단 것처럼 특이한 복장을 한 남자들을 볼 수 있다. 이들은 메시아가 남자의 몸을 통해서 이 땅에 온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메시아를 땅에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서 남자들은 특별한 바지를 입고 다니는 것이다.
바니아스 폭포
두루족 마을을 지나며 버스는 서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그리고 갑자기 급경사 길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1000m 이상 급한 내리막길을 통과해야 헬몬산 기슭에 있는 바니아스에 이른다. 바니아스에 가까이 오면 헬몬산 계곡에 흐르는 물줄기가 창밖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에서부터 물 천지가 시작된다. 바니아스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도 물이다. 바위산 절벽 밑에서 솟아난 물들이 커다란 시내를 이루어 거대한 바니아스 폭포를 만드는데 참으로 놀라울 뿐이다. 이스라엘 하면 ‘척박한 땅’ 이라는 잘못된 공식이 이 폭포 앞에서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다.
바니아스에서 물이 흐르는 시내를 가로 지나면 곧장 70m 길이의 병풍과 같은 절벽이 펼쳐진다. 커다란 동굴, 바위를 파서 만든 암굴, 그리고 신전들을 세웠던 잔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이곳이 주전 3세기경부터 ‘판신’을 섬겼던 장소이다. 헬라 사람들은 그곳에 판(Pan)을 위한 사당을 세우고 파네아스(Paneas)라고 불렀다. 아랍 사람들이 ‘P’ 발음을 못하기 때문에 ‘P’를 ‘B’로 발음하면서 현재는 바니아스(Banias)로 불리고 있다. ‘판신’은 목양의 신, 숲과 물과 자연을 주관하는 신, 풍요를 주는 신이었다.
바니아스의 동굴. 판신을 섬기던 곳이다.
이 지역은 주전 20년경 로마의 황제 옥타비아누스가 헤롯 대왕에게 준 땅이었다. 그리고 주전 19년에 헤롯 대왕은 동굴 앞에 옥타비아누스를 위한 신전을 건립했다. 주전 2년경에는 헤롯 대왕의 아들 빌립(Philip)이 바니아스에 커다란 도시를 건축하고 자신이 통치하던 빌립보 지역의 수도로 삼았으며 로마 황제와 자신의 이름을 합쳐 도시 이름을 가이사랴 빌립보(Caesarea Philippi)라 불렀다.
이곳은 성경 사건의 현장을 찾아다니는 우리에게 아주 특별한 장소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과 떠난 마지막 여행지가 가이샤라 빌립보였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마지막으로 이곳에 들른 시기는 유월절 이전이었으니 헬몬산에 눈이 덮이고 들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했던 시기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주님이 제자들과 꽃구경을 나선 것은 아닐 테고,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꼭 해야 할 일이 있었으리라!
판신을 섬기느라 온통 떠들썩한 도시를 빠져 나와 꽃들로 가득한 들판 한적한 곳을 지나시며 주님이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제자들의 답변을 묵묵히 듣던 주님께서 제자들을 향해서 다시 물으신다. 그러면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갈릴리 북쪽까지 찾아온 이유가 이 질문 앞에 우리를 세우기 위해서였다.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나기 전에 우리가 모두 이 질문의 바른 의미를 깨달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