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6.28. 오전 9시 주일예배 설교문
신앙고백 (3)
찬송 36 주 예수 이름 높이어
대표기도 유수남 권사 (549)
성경 말씀 마가복음 15:1~5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산다는 것
찬송 315 돌아와 돌아와
광고 정기 소독실시, 미용봉사(이옥녀 박문식 집사님 자부께 감사)
노인 인권 지킴이 방문
가족 방문 김규태 권사 딸 아내, 황막례 권사 서울 딸, 유순례 성도 딸부부
유수남 권사 딸(김명순 권사), 김정수 권사 딸(떡 3박스) 김귀례 권사 셋째 딸, 막내아들
찬송 317 어서 돌아 오오
축도 아프니까 그만하세요. 주님도 아프잖아요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그 시절 주어졌던
그 많은 기회와 빛나던 시간들을
소중한 줄 모르고 흘려보냈다
모진 세월 살아오며
얻은 것은 상처뿐이요
잃은 것은 청춘이라 하지만
남아 있는 삶의 자락에서
이제야 비로소 깨닫는다
산다는 것은
그 자체가 축복이자 기적이라는 것을
비록 화려하지 않을지라도
남은 날들을 향기롭게
그리고 감사하며 살아가리라 / 산다는 것, 박경리
1절입니다.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공회로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니
2절,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 말이 옳도다 You have said so 하시매
3절, 대제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소하는지라
4절, 빌라도가 또 물어 가로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저희가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로 고소하는가 보라 하되
5절,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기이히 여기더라
살다 보면 하고 싶은 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기만 해도 안타깝기만 한 김정수 권사님 모시고 이비인후과에 갔습니다.
서울 사는 보호자 부탁으로 장애 진단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풍채가 너무 크니 좁은 통로를 겨우 지나 청력 검사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간호사께서 물었습니다.
목사님, 이 할머니 혹시 치매세요?
지난번 검사 때와는 좀 다릅니다.
그리고 진료비 계산하려 간호사께 갔습니다.
카운터에 앉아 있는 간호사께 카드를 제시하고 무료해서 웃자고 질문했습니다.
선생님, 내 나이가 몇 살인지 맞추면 맛있는 아이스크림 사주겠습니다.
딸 같은 간호사께서 물끄러미 목사님 얼굴을 바라보더니
사십 대 중반 아니에요??
며칠 전에 미용실 가서 머리를 짧게 다듬었더니
사십 대까지 내려갔습니다.
그래서 오는 길에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한 아름 샀습니다.
우리 김정수 권사님도 목사님 차 뒤 자리에서 시원하게 쪽쪽 드시고
함께 따라간 박영숙 집사님도 맛나게 쪽쪽 드시고
요양원에 누워 계시는 우리 권사님, 선생님들까지 모두 드셨습니다.
인생 별거겠습니까?
이렇게 구실 삼아 웃고, 구실 삼아 시원하게 먹고사는 것입니다.
1절입니다.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공회로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니
2절,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 말이 옳도다 You have said so 하시매
빌라도가 누구입니까?
기원 26년에 취임해서 10년간
유대와 사마리아를 다스리는 로마 5대 총독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윤석열 김건희처럼
뇌물을 좋아했고,
난폭했고,
무례했고,
유대와 사마리아인들을 재판도 하지 않고 처형했습니다.
아주 잔인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최후는
지금 우리 국민이 지켜보듯이 감옥에 간 윤석열 꼴 아니겠습니까?
결국, 가롯 유다처럼 자살했거나 로마 황제에 의해 처형되었다고 합니다.
그럼,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이사야 53장 7절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이렇게 조롱 the mockery과 수치 the shame를 당해봤습니까?
그렇지만 우리 예수님은 묵묵합니다.
그리고 나는 누구입니까?
Who am I?
살아오면서 오만방자하지는 않았습니까?
항상 남의 탓만 하지는 않았습니까?
입만 껌뻑하면 남의 흉만 보고
두세 사람 모이기만 해도 속닥속닥 거리며 살지는 않았습니까?
그리고 쾌락만 좇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쾌락의 끝은 공허 그리고 어두운 죽음입니다.
이런 나는 누구입니까?
Who am I?
3절입니다.
대제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소하는지라
4절, 빌라도가 또 물어 가로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저희가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로 고소하는가 보라 하되
5절,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기이히 여기더라가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준비가 된 예수님은
구차하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꼴값하는 대제사장들, 지금의 목사님들,
그리고 잔인한 빌라도 앞에서 말조차 섞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이렇듯 두 얼굴을 가지고 사는 인간들 앞에서는 침묵이 답입니다.
이사야 53장 7절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목사님도 이렇게 살고 싶습니다.
그냥 묵묵히 살고 싶습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속닥속닥 어찌 오해가 없겠습니까?
그리고 어찌 조롱, 수치가 없겠습니까?
그렇지만 예수님처럼 침묵할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항상 죽음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키르케고르가 말하기를 진정한 사랑은 죽은 자를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은 더 이상 바라지 않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수난과 고난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구원은
이런 조롱과 수치 그리고 능욕과 수난을 당할 때 깨달음입니다.
2절입니다.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 말이 옳도다
You have said so 하시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모두 제 잘난 맛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 모두가 얼마나 똑똑합니까?
그래서 우리 모두는 유대인의 왕입니다.
목사님들만 모이는 노회만 가도
모든 목사님들이 얼마나 똑똑합니까?
국회의원들은 어떻습니까?
아수라장입니다.
대제사장, 빌라도 못지않습니다.
우리 요양원 권사님 집사님 선생님들도 모두 똑똑합니다.
그러니 목사님만 종입니다.
그래서 항상 고독한 목사님은
우리 권사님 집사님 선생님들을 섬기는 종으로서 사는 것이
목사님의 사명입니다.
고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 실오라기 하나 없이 홀로 서는 것입니다.
이럴 때는 아수라 백작 같은 두 얼굴이 사라집니다.
아수라 백작은 누구입니까?
두 얼굴입니다.
두 얼굴, 이중성의 상징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
상황에 따라 태도·감정이 달라지는 사람
사회적 역할과 개인적 욕망이 충돌하는 사람
선과 악, 남성과 여성, 인간과 비인간 등 경계에 선 존재입니다.
2절입니다.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 말이 옳도다
You have said so 하시매
빌라도 네가 생각하는 유대인의 왕이겠느냐?
그것은 네 말이다.
You have said so.
목사님이 1년여 3팀의 일원으로 함께 일했습니다.
그리고 여니 때는 우리 권사님들 모시고 병원 등을 다녔습니다.
그러니 어디 쉴 날이 있겠습니까?
목사님도 피곤해서 기가 다 빠져버렸습니다.
곁에서 그 말을 들은 우리 전 권사님께서 목사님을 격려한다고
목사님은 아직도 쌩쌩하십니다.
그래서 목사님 마음속으로 말하기를
You have said so
그것은 네 말이다.
우리들이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생각하면
항상 그것은 옳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목사님이 아무리 잘할지라도
내가 좋으면 좋고 내가 싫으면 싫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누구나 부족합니다.
나뭇잎은 떨어질 때 가장 아름다운 색을 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산다는 것은
그래서 우리가 나이가 든다는 것은
홍시가 익어가는 것처럼
매일 더 조금씩 익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나이 속에
나의 삶이 홍시처럼 익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 남은 여생
묵묵히 겸손하게 살아도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