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퇴임임원 회보, SAMSUNG Forever
2021년 가을, 110호 (14~17페이지)
풍수기행 ⑲
국립서울현충원의 풍수지리
글ㆍ사진 김정인 회원
국립서울현충원
6ㆍ25전쟁 후인 1955년, 43만여 평의 영역에 9만여 평의 국군묘지가 조성되었다. 1965년에는 국가유공자 묘역으로 승격되어 국가원수, 독립유공자, 국가유공자를 안장할 수 있는 국립서울 현충원이 되었다. 이곳을 수차례 답사하고 문헌을 찾아보며 대한민국 최고의 명당, 서울현충원을 풍수적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조선시대 14명의 왕을 배출한 동작릉
국립서울현충원은 이미 470여 년 전에 조선의 11대 왕인 중종의 후궁 창빈안씨 묘, 동작릉이 있던 곳에 위치해 있어 일대가 잘 보존되었다. 동작릉은 중종의 후궁 창빈안씨(1499~1549)의 묘이다.
1552년 그녀의 손자이자 덕흥대원군의 아들인 하성군이 태어났다. 1567년 13대 왕 명종(1534~1567)이 후손 없이 죽자 16살의 하성군이 왕위에 올랐으니 그가 14대 왕 선조(1552~1608)이다. 선조는 후궁의 몸에서 태어나 서자가 왕위에 오른 첫 번째 사례로, 선조가 왕위에 오르자 선조의 할머니가 모셔진 창빈안씨 묘가 주목을 받게 되었다.
조선 시대 14명의 왕을 배출한 창빈안씨 묘, 동작릉
풍수적 입지와 지리적 조건이 양호
창빈안씨 묘인 동작릉을 풍수지리적으로 살펴보면, 한남정맥이 북쪽으로 올라와 관악산을 일으키고 다시 서달산으로 솟았으며, 좌우로 날개를 펴고 좌청룡 우백호가 감싸주는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 왕국이 518년간 계속되면서 부계로는 태조 이성계의 자손이요, 모계로는 창빈안씨 이래 제14대 선조부터 27대 순종에 이르기까지 343년간 14명의 왕이 모두 창빈안씨 후손에서 나왔다,
국립서울현충원의 조성경위를 보면, 6·25전쟁으로 국군 희생자가 발생하자 이들을 위한 국군 묘지가 필요하게 되었고, 우이동, 부평, 시흥, 안양, 용산, 성동구 한강 주변 등을 답사한 끝에 1955년 9월 동작동으로 최종후보지가 결정되었다. 동작동 일대는 동작릉이 있어 잘 보존되었고, 국유지이며, 풍수적 입지, 거리적 조건이 가장 양호하였다, 1965년에는 국가유공자까지 모실 수 있는 국가유공자묘역으로 승격되었고, 이승만 대통령을 시작으로 4명의 대통령과 국가유공자가 이곳에 모셔졌다.
영구 음수형의 이승만 대통령 묘
이승만 초대 대통령(1875~1965)이 하와이에서 서거했는데, 생전에 고국에 묻히기를 희망하여 한국으로 운구되었고, 국가유공자 묘역인 국립 서울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서달산 우측 3차 백호봉(113m)에서 장군봉(76m)을 지나 창빈안씨 묘 100여m 아래에 위치해 있다. 형국론으로 보면 목마른 거북이가 물을 바라보고 내려가는 영구 음수형의 풍수적 명당에 해당한다.
영구음수형의 이승만 대통령 묘
장군대좌형의 박정희 대통령 묘
1970년 육영수 여사가 갑자기 서거하자 서울현충원의 가장 윗부분인 서달산 우측 1차 백호봉 공작봉(159m) 아래 장군봉이 보이는 곳에 모셔졌다, 이곳은 지창용 선생이 소점하였는데, 묘역 바로 상부에 혈장이 있지만 국이 좁아 부득이 그 아래에 묘지를 조성하였다. 당시 공작이 알을 품고 있는 공작 포란형의 명당으로 보고 묘를 썼는데, 너무 낮은 곳이라 물의 침범이 염려되었다,
풍수적으로 좋지 않다고 하여 이장을 권유하자 박정희 대통령(1917~1979)은 이곳이 명당이 아닐지라도 이곳을 떠나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호국영령을 어떻게 볼 것이냐고 일축하며 그 자리를 지켰고, 1979년 본인도 이곳에 영면하였다. 그 후 몇 차례 배수 공사를 하였으며, 공작봉을 배산으로 장군봉을 바라보며 주위의 산이 환포하니 공작포란형으로 보기 보다는 장군대좌형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장군대좌형의 박정희 대통령 묘
창빈안씨 묘와 인접한 김대중 대통령 묘
김대중 대통령(1924~2009)은 서울현충원이 만장이 되어 대전현충원으로 가야 하지만, 서울현충원에 묻히기를 원하였다. 그래서 공작봉 기슭에서 한강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국가유공자 제1묘역 하단에서 자리를 찾았다. 박정희 대통령 묘와 350m, 이승만 대통령 묘와 100m, 창빈안씨 묘 바로 우측이다.
자리가 협소하여 출입구는 옆으로 돌렸고, 올림픽공원 백제박물관 터파기 공사에서 나온 생토를 25톤 트럭으로 50대분을 가져와서 평탄 작업을 하였다. 이곳은 황영웅 교수가 소점 하였으며, 동작릉에서 보면 물은 우에서 좌로 도수하고 좌측의 창빈안씨 묘역 끝자락이 좌에서 우로 거수하니 자리는 좁지만, 생기는 응결될 수 있는 곳이라고 본 것 같다.
창빈안씨 묘와 인접한 김대중 대통령 묘
봉황포란형의 명당, 김영삼 대통령 묘
김영삼 대통령(1927~2015)의 묘는 서달산 좌측 1차 청룡봉(176m)에서 출발하여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는 지장사를 지나 2차 청룡봉(239m)이 우측에 3장군 묘역을 품에 안은 회룡고조형의 자리이다.
입수룡은 양맥으로 강하게 입수하며, 장군봉이 안산이 되고 관악산 제1봉이 조산이 되는 남향판의 양명한 곳이다, 묘역 공사 시 이곳에서 둥근 알돌이 20여 개가 나왔는데, 청룡에서 5개, 백호에서 12개, 혈처에서 천광 중 3개가 나왔다. 동작동은 봉황이 날개를 편 봉황의 형국인데, 김영삼 대통령 묘역에서 봉황 알에 해당하는 알돌이 나온 것이다.
물형론적 풍수 이론에서는 산의 형상에 따라 반드시 관련 모양의 사물이 함께 있어야 한다. 스님 형상에서는 사리가, 용의 형상에서는 여의주가, 봉황형에서는 봉황 알이 함께 나와야 한다. 김영삼 대통령 묘역에서 알돌이 나왔으니 풍수 고전서에서 말하는 봉황포란형이라 할 수 있다. 알은 땅속에 다시 묻어야 그 기운이 발동한다고 한다.
봉황포란형의 김영삼 대통령 묘
봉황의 품에 안겨 있는 대통령 묘역들
서울현충원은 공작이 알을 품은 듯한데, 서달산이 주산이 되고 반포 섬이 안산이 되며 한강 물을 조수하며 좌청룡 우백호로 둥글게 환포한다. 공작봉 아래 청룡과 백호의 양 날개는 봉황의 날개와 같다. 박정희 대통령은 묘역은 봉황의 머리에 해당하고, 김영삼 대통령 묘역은 좌측 날개, 우측 날개에는 김대중 대통령 묘가 위치하며, 이승만 대통령 묘역은 봉황의 가슴에 해당한다, 모두 봉황의 품 안에 있다.
대통령의 묘들은 봉황의 품 안에 안겨 있는 형국이다.
서울 현충원은 4명의 대통령과 355명의 장군, 수만 명의 국가유공자와 병사들이 잠들어 있는국가유공자 묘역이다, 창빈안씨 묘와 초대 이승만 대통령 묘가 중앙에 있고, 나라를 중흥시킨 박정희 대통령이 가장 위쪽에,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 좌우에 위치하며, 박 대통령 묘와 김영삼 대통령 묘, 김대중 대통령 묘는 신자진(申子辰) 삼합(三合)을 이룬다, 그리고 병사들 묘는 4명의 대통령과 장군, 국가유공자들의 호위를 받으며 대명당 지역에 자리 잡았다. 주월 사령관을 지낸 채명신 장군은 대전현충원의 장군 묘역에 갈 수 있었지만 월남 전쟁터에서 생사고락을 함께한 병사들과 함께 하겠다 하여 서울현충원의 병사 묘역의 1평에 묻혔다. 이후서울현충원의 장군 묘역 중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곳이 되었고, 참배객도 가장 많은 곳이 되었다.
생사고락을 함께한 병사 묘에 묻힌 채명신 장군 묘
철따라 피는 꽃이 아름다운 힐링 공간
서울현충원은 동작역이 있어 접근이 쉽고, 철 따라 피는 꽃이 아름다워 국가유공자를 참배하며 산책하는 힐링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제 서울 현충원은 만장이 되어 더는 대통령과 국가유공자를 모시기 어렵다고 하지만 이곳을 정비하여 후대 대통령을 더 많이 모셔 그들의 업적을 기리고 평가받을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나라를 빛낸 대통령이 이곳에 와야 서울 현충원이 더욱 빛나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이 외롭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