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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녀석
이 범 선
녀석은 일주일에도 몇 번씩 우리 서점엘 들른다. 들른다고 해서 뭐 제법 손님처럼 서점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거지처럼 출입문을 막고 서서 안을 기웃거리느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녀석은 쇼윈도 앞에 서서 이것지것 그 안의 책들을 들여다볼 뿐이다.
내가 처음 녀석에게 호기심을 품기 시작한 건 점원인 미스 김에 의해서 였다. 늦봄 안개비가 내리던 오후였다.
“저 거지 참 이상해요.”
진열대 위의 책을 정 리하고 있던 미스 김이 쇼윈도 밖을 가리켰다. 거기 쇼윈도 밖에 한 사나이가 잔뜩 허리를 구부려 두 손으로 무릎을 누른 자세로 서서 열심히 쇼윈도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디…… 거지니?”
“거지예요.”
나는 좀 더 자세히 그 사나이의 행색을 살펴보았다. 세수도 안한 듯 지저분한 얼굴이 어찌 보면 삼십쯤 나 보이고 또 어찌 보면 사십쯤으로도 보이는 녀석은 예수님의 초상화처럼 머리를 길게 좌우 어깨로 늘이었고 그 입은 옷이 과연 남루했다. 그건 어디서 구한 것인지 40년쯤 전, 그러니까 해방 전에 일인들이 입던 카키색 국민복―요즈음 중학생들의 교복처럼 목에서부터 죽 내리 단추를 채우게 된―저고리에 너덜너덜한 꺼멍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그를 거지라고 단정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니다.”
“거지예요.”
나는 그가 쇼윈도에서 떨어져 물러설까 조심하며 마치 새를 잡으려 다가가는 포수처럼 아닌 체 슬금슬금 앞으로 나가보았다.
과연 미스 김의 말이 옳았다. 그는 정상인이 아니었다. 미련이나 남은 듯 시선은 여전히 쇼윈도 안에 둔 채 슬며시 허리를 펴며 바로 선 녀석의 양복 가슴엔 괴상한 훈장이 가득히 달려 있었던 것이다. 각색 맥주병 마개, 그걸 도대체 어떻게 양복 가슴에 그렇게 줄줄이 단 것일까. 나는 돌아섰다.
“거지가 아니라 미친 녀석이군.”
“그게 그거죠 뭐.”
“다르지. 구걸을 해야 거지지.”
미스 김은 머리를 한번 갸우뚱해 보였다.
사실 녀석은 한 번도 우리 서점에서 구걸을 한 일이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이면 두서너 번 서점 앞에 나타나지만 그때마다 쇼윈도 속의 책들을 한참씩 들여다볼 뿐 출입문 안에 들어선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역시 선생님 말씀이 맞네요.”
미스 김도 이제 녀석을 거지 대열에서 빼어 좀 달리 보게 되었다. 그러니까 녀석은 어쩌다 나사가 하나 빠지면서 약간 이상해졌을 뿐이었다. 불황으로 손님이 거의 없는 서점 안에 거미처럼 종일 웅크리고 앉아 있는 우리는 어쩌다 녀석이 밖에 나타나면 그걸 흥밋거리로 삼았다.
“미쳐도 참 묘하게 미쳤어요. 저 가슴의 맥주병 마개 재미있잖아요.”
미스 김이 생글거렸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쉬는 날은 더욱 손님이 없다. 장사도 장사지만 손님이 안 들어오면 우선 심심해서 죽을 지경이다. 그런데 점심때쯤 또 녀석이 어슬렁 나타났다. 역시 유리에 이마를 대다시피 구부리고 안의 책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나는 심심하던 참에 슬쩍 문밖으로 나서서 녀석의 옆으¨로 가보았다. 그는 나를 느끼자 쇼윈도에서 한 걸음 물러서며 야릇한 웃음을 입가에 띠었다.
“무슨 책을 찾고 있소?”
“그냥. ˙……색시 고와.”
녀석은 또 한번 야릇한 웃음을 흘렸다. 그건 참 묘한 웃음이었다. 그의 심정과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그저 그렇게 얼굴 가죽을한번 움직여 보이는 것이라는 그런 웃음, 그러니까 상대를 오히려 바보 취급하고 있는 듯한 그런 웃음이었다.
나는 녀석이 곱다고 하는 색시가 누군가를 살펴보았다. 그달 여성지 표지에 빨강 모자를 쓴 여자가 김치 하며 웃고 있었다. 나도 웃고 말았다. 그런데 그렇게 내가 웃으며 돌아보았을 때는 벌써 녀석은 저만치 사람들 틈에 끼어 휘청휘청 걸어가고 있었다.
그 며칠 뒤였다. 그날은 서점의 정기휴업 날이어서 셔터를 내린 채 나는 옆집인 약방 주인과 문 앞에서 잡담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녀석이 흔들흔들 나타났다.
“아이고, 어서 오십쇼. 무슨 약을 드릴까요?”
약방 주인도 나와 마찬가지로 녀석을 재미있는 친구로 보고 있는 모양으로 그렇게 농을 걸었다.
“담배 하나 줘.”
녀석은 아무한테나 반말이었다.
“담배? 주지, 자 두고 피워.”
약방 주인은 담뱃갑에서 담배를 세 개비 집어내어 녀석에게 내밀었다.
“하나면 돼.”
녀석은 약방 주인이 내민 세 개비 가운데서 하나만 집었다. 꼭 원숭이의 손처럼 잔등은 때가 새까만데 손바닥은 또 유난히 희다. 나는 라이터를 켜서 들이대어주었다. 녀석은 담배에 불을 당기며 퀭하니 큰 눈으로 나를 힐끔 한번 쳐다보았다. 그것이 광인특유의 눈빛인가 어쩐지 섬뜩했다. 그렇게 담배에 불을 당기더니 그 모든 것이―약방 주인이 담배를 주는 거나 내가 지체 없이 라이터를 켜서 들이대는 거나,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는 그런 태도로 녀석은 쓱 돌아서 흔들흔들 걸어가버렸다.
“참 재미 있는 친구죠?”
약방 주인이 빙그레 웃었다.
“나는 근자에야 발견했는데 참 묘한 친구더군요.”
“저러고 다니는 지가 벌써 오래죠. 이 동대문 일대에선 백작 거지로 통해요.”
“그거 아주 멋진 칭호군요.”
“방금도 보셨지만 담배도 아무리 갑째로 다 주며 넣어두라 해도 안 그래요. 꼭 한 개비만 집죠. 그 대신 필요할 때는 아주 당당하게, 나 담배 하나 줘 그럽니다. 마치 하인더러 명령하듯이. 하하하. 그런데 묘한 건 그러는 그가 도무지 밉지 않단 말입니다.”
“그거 참…… 어디 자기 집이 있는가요?”
“알 수 없죠. 입고 다니는 옷이 여느 거지처럼 그렇게 더럽지는 않은 것으로 보아서 어디 집이 있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저리 되기 전엔 뭘 하던 친굴까요.”
“그게 또 구구해요. 어떤 재벌의 서자라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의 말로는 어느 목사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고시 공부를 하다가 저렇게 돌아버렸다고도 하고, 실연을 하고 저리 됐다고도 하고, 그거 뭐 믿을 수 있나요. 각자 나름대로 상상해보는 거겠주. 어쨌든 재미있어요. 미쳤대서 누구한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거지들처럼 치근거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더군요. 어찌 보면 우리들 정신 온전한 사람들을 싹 무시해버리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소리 없는 웃음이 그렇죠? 아저씨가 어린 조카애들 재롱을 바라보며 웃는 것 같은 그런 기분 이상한 웃움이죠. 하하하.”
약방 주인은 큰 소리로 웃었다.
그런데 그날 나는, 며칠에 한 번씩 보던 그를 하루에 두 번 만났다.
저녁 무렵에 목욕을 갔다 돌아오니까 우리 서점 닫힌 셔터 앞에 녀석이 앉아 있었다. 아주 편하게, 셔터에 등을 기대고 두 다리를 주욱 앞으로 뻗친 자세루 앉아서 무언가 먹고 있었다. 나는 셔터 한옆에 달린 조그마한 출입문 자물통을 열며 그의 사타구니께를 들여다보았다. 호콩이었다. 신문지 쪼가리에 한 줌만치 싼 호콩을 녀석은 한 알 한 알 아주 음미하며 씹고 있었다. 그의 발끝께를 걸어 지나가는 행인들이 한 번씩 녀석의 꼴을 내려다보았지만 녀석은 그따위 시선에는 전혀 무관심이었다.
나는 안에 수건과 비누를 들여다 놓고 다시 셔터 밖으로 나왔다.
“오늘은 두 번이나 만났다.”
알은체를 해주었다. 녀석은 그 소리에 나를 힐끔 한번 쳐다보더니 곧 호콩 복지로 눈을 떨구었다. 이제 거의 다 먹었다. 나는 녀석 옆에 쭈그렸다.
“하나 먹어.”
녀석은 나를 향해 호콩 봉지를 불쑥 내어밀었다. 나눈 당황했다. 그러나
“고마워 .”
하며 얼른 호콩을 한 알 집었다. 녀석은 씩 하니 웃었다. 그런데 그 웃음은 예의 그 기분 나쁜 웃음이 아니었다. 어째서라고 꼭 그 구별을 말로 할 수는 없었지만 그건 분명히 좀 다른 웃음이었다.
나는 호콩의 속껍질을 비벼 벗겨서 입에 넣고 오래오래 씹으며 무언가 그에게 말을 걸어주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건 뭐야?”
나는 녀석의 가슴에 주르르 달린 맥주병 마개를 가리켰다.
“이거? 훈장.”
우리가 생각했던 대로였다. 나는 웃음을 참았다.
“무슨 공을 세웠는데 훈장이 그리 많아?”
“그저 달았지.”
“훈장이 어디 제 손으로 그저 다는 건가, 공로에 따라 달아주는 거지.”
“안 그래. 훈장은 제가 그저 다는 거야.”
“거긴 백작이라면서? 그래 훈장이 많구먼.”
“백작? 아니야. 난 장군이야.”
“장군보다야 백작이 멋지지.”
“아니, 장군이 더 좋은 거야. 장군은 총이 있어.”
그러면서 녀석은 자기 양복저고리 어깨를 그 새까만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거기 양복저고리 어깨에는 담뱃불로라도 태웠는가 손톱만큼씩 한 구멍이 세 개 나란히 뚫려 있었다.
“그게 뭐지?”
“별.”
“별! 오호, 그러니까 별이 셋이라. 중장이구먼. 허허허.”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대장 해볼까 해.”
녀석은 웃지도 않고 마지막 호콩을 집어 입 안에 넣고 말았다.
“대장 해볼까라니, 자기가 하고 싶으면 중장도 되고 대장도 되고 하나 어디?”
“그럼, 그러는 거야.”
녀석은 자기도 재미있다는 듯이 그 예수님처럼 긴 머리카락을 흔들며 피식피식 웃었다. 가슴 한복판에 매단 커다란 자물통이 흔들거렸다.
“이건 뭔가. 무궁화 대훈장쯤 되나?”
“아니. 자물통.”
“글쎄 그런데……그걸 왜 가슴에 달았나 말이지.¨
“잠갔지.”
“글쎄 잠갔는데, 그걸 어째서 여기 가슴에 달았나 말야.”
“꼭 잠가야지.”
영 말이 잘 안 통했다. 역시 녀석은 돌았다. 그런 녀석과 정색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싱거운 생각이 들어 나는 슬며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녀석도 따라 일어서며 그 새까만 손가락으로 느닷없이 내 가슴을 쿡 찔렀다. 움찔 놀랐다.
“꼭 잠가!”
녀석은 방금 전 말을 한 번 되풀이하고 휙 돌아서 저쪽 동대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나는 한참이나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이상하게 상체를 좌우로 기우뚱거리며 인도 한복판을 걷는 녀석은 유유했고, 행인들 편에서 움찔움찔 녀석을 비켰다.
그날 이후 나는 녀석이 좋아졌다. 녀석이 쇼윈도 밖에 와 서면 나는 일부러 마주 나가서
“담배 줄까.”
하며 담뱃갑을 내밀곤 했다. 그러면 녀석은 아무 말도 없이 무표정으로 담배를 한 개비 끄집어내어서는 입에 물고 나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나는 꼼짝없이 라이터를 켜서 녀석의 담배에 불을 대어줄 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는 그렇게 담배에 불을 당긴 녀석이 쓰다 달다 표정도 없이 뻐끔뻐끔 담배를 빨아 연기를 날리며 쇼윈도 앞에 턱하니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양복 호주머니에서 구겨진 신문을 한 장 꺼내어 손바닥으로 몇 번 쓸어 펴서 읽기 시작했다. 아주 의젓한 자세로,
그런데 얼핏 보니까 그 큰 활자의 제목이나 사진이 일주일쯤 전 신문이었다. 그결 녀석은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나는 슬며시 장난기가 생겼다.
“뭐 재미 있는 기사라도 실 렸나?”
“그저.”
녀석은 신문에서 눈도 안 떼고 시큰둥한 대답이었다.
“그건 일주일 전 신문 아냐.”
“마찬가지지 뭘!”
녀석은 두 팔을 벌려 천천히 신문을 뒤집었다. 나는 녀석의 그 때투성이 주먹으로 면상을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렇게 여름이 되었다. 녀석은 여전히 사흘에 한 번쯤 서점에 나타났다. 녀석의 그 즐비한 훈장과 가슴을 잠갔노라는 자물통이 무겁게 달린 옷이 무척 더워 보였다. 사람들은 모두 남방셔츠 차림인데 녀석은 그대로 그 겨울 양복에다 단추까지 끼우고 다녔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녀석은 더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저 백작 거지가 여기 안 나타나는 날은 어딜 돌아다닐까요?”
미스 김이 궁금해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녀석의 행동반경이 꽤나 넓다는 것을 알았다.
토요일 오후였다. 나는 볼일이 있어 종로까지 나갔다. 쨍쨍 내려쪼이는 햇볕에 거리의 사람들은 모두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나는 화신 앞에서 신신백화점 쪽으로 건너는 횡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일인지 맞은편 신신백화점 앞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 서 있었다. 사고가 난 모양이었다. 신호가 열렸다. 사람들은 빠른 걸음으로 차도를 건넜다. 그렇게 길을 건너선 사람들은 모여 선 사람들 등 뒤로 다가갔다. 나도 그들 틈에 끼어서 앞사람 어깨 너머로 안을 넘겨다보았다. 잘 보이진 않았다.
“무슨 일이죠?”
옆의 중년 부인이 앞에 서 있는 중년 신사에게 물었다.
“글쎄요. 나도 잘 모르겠습니다. 모두들 모이셨기에 뭔가 하고…….”
그 중년 신사는 발뒤꿈치를 쳐들고 안을 살폈다.
“별로 보이는 게 없는데.”
사람들은 점점 더 모여들었다. 나중에는 백화점 앞 통로가 꽉 막혀버렸다. 그러자 호루라기 소리가 휙휙 몇 번 들렸다. 교통순경이 달려왔다.
“무슨 일입니까. 좀들 비켜요. 비켜서세요!”
순경이 사람들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갔다.
“뭡니까?”
“글쎄요. 우리도 잘 모르겠소.”
“자, 좀 비켜요. ……아니, 이게 ˙뭐야. 일어서. 여기가 어디라고 쭈그리고 앉아서 이 소동이야. 빨리 일어서.”
순경이 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둘러선 사람들 한가운데서 꺼먼 사람이 하남 쑥 일어섰다.
나는 깜짝 놀랐다. 방금 일어선 자는 바로 백작 거지 그 녀석이었던 것이다.
“뭐야!”
순경이 녀석의 멱살을 틀어잡았다. 그러고는
“비켜요 비켜.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고 녀석을 사람들 밖으로 끌어내었다. 녀석은 별로 반항도 하지 않았다. 그 긴 머리카락이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있었다.
“여기서 뷜 하고 있는 거야?”
순경이 소리를 질렀다. 둘러섰던 사람들은 한 걸음씩 물러서긴 했지만 좀처럼 흩어져가진 않았다. 지금까지 자기들이 모여 섰던 이유를 알고 싶었던 것이다.
“뭘 했나 말야?”
순경이 녀석의 멱살을 흔들었다.
“개미 봤지.”
녀석은 멱살을 틀어잡혀서 턱을 잔뜩 치켜든 채 말했다.
“뭐라구. 개밀 봐?”
“개미 봤지.”
“빌어먹을……”
순경은 쥐고 있던 녀석의 멱살을 콱 밀어내고 자기의 손을 털털 떨었다.
“괜히 날보고 야단이야.”
녀석은 가슴에 주르르 달린 훈장을 한번 쓸어보며 투덜거렸고, 순경은 거기 신호대 쇠기둥 뿌리를 구듯발로 슬쩍 밀어보았다.
과연 쇠기둥 뿌리 옆 보도블록 틈에 집을 판 개미 떼가 꼬물꼬물 줄을 지어 기어다니고 있었다.
“자자. 아무것도 아닙니다. 다들 가십시오.”
이번에는 순경이 행인들을 밀어내었다.
“원 별…… 미친 녀석 다 있네.”
누군가가 투덜거리며 돌아섰다.
“병신! 병신!”
녀석은 슬며시 돌아서서 그 상체를 기우뚱기우뚱 좌우로 흔드는 걸음걸이로 천천히 걸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미스 김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서울 사람들 꼼짝없이 다 병신이 됐네요. 호호호. 그 백작 참 재미있어요. 며칠 전 시장 골목을 나오다가도 그랬어요.”
“거기서도 또 쭈그리고 개미 봤나?”
“아니구요. 그 좁은 시장 골목으로 자가용차가 한 대 들어왔지 뭐예요.”
“그래서?”
시장 보는 아낙네들이 꽉 들어찼으니 차는 좀처럼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장사꾼 아주머니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내뱉었다. 다리가 칵 부러졌나, 이 좁은 델, 아마 앉은뱅이인 모양이지. 그래도 차는 조금씩조금씩 밀고 나갔다. 그런데 거기 바로 녀석이 있었다. 뒤에서 자동차 빵 하고 경적을 울리자 녀석은 후닥닥 놀라는 시늉을 하며 차를 향해 돌아섰다. 그러고는 길을 비키는 것이 아니라 두 손을 합장하듯 앞에서 모으고 굽실굽실 자꾸만 절을 하던 것이다. 차는 더욱 빵빵거렸다. 녀석은 점점 더 허리를 깊이 굽히며 굽실굽실 절을 했다.
“비키지 못해!”
운전수가 창으로 며리를 내밀고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녀석은 껑충 뛰어 한옆으로 비켜섰다. 차가 천천히 녀석 코앞으로 지나갔다. 녀석은 차 속의 뚱뚱보 여인을 향해 또 깊이 절을 했다. 그런데 정작 우습기는, 그 뚱뚱보 여자가 밖의 녀석의 절을 받아 고개를 꺼떡하자 녀석은 돌변하여 허리를 뒤로 젖히며 헤헤헤헤 했던 것이다.
그러자 시장 안 장사치들이 일제히 와하하 큰 소리로들 웃어대었다.
어쨌든 녀석은 그런 엉뚱한 짓을 곧잘 하고 다녔다.
그런데 언젠가 수도관이 터져 물이 쏟아져 흐르는 대로 한가운데서 홀랑 벗고 목욕을 하는 소동을 벌인 후로 여름이 다 지나도록 통 나타나질 않았다.
“어디 바닷가에라도 갔나 보죠?”
미스 김도 궁금한 눈치였다.
그렇게 여름이 가고 가을바람이 아침저녁으로 제법 신선하던 어느 날 아침 이었다. 7시 무렵 가게 셔터를 올리노라니까 옆집 약방 주인이 흥분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가 죽었대요.”
“그라뇨?”
“아, 그 백작 말예요.”
“예? 백작이 죽어요!”
“지금 가볼려고…….”
약방 주인은 저만치 동대문 쪽을 가리키며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나도 그의 뒤를 따랐다.
동대문에는 새벽인데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서 있었다.
나와 약방 주인은 사람들 뒤로 다가갔다. 과연 죽어 있었다.
동대문 바깥쪽 응성(瓮城) 벽에 시꺼먼 물체가 축 늘어져 있었다.
시민들은 큰길 건너 이쪽에 몰려서서들 웅성거렸고, 순경들과 방범대원들이 옹성 밑에서 그 물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건 참 묘한 죽음이었다.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그 성벽에 목을 달아맸으며, 또 어째서 하필 동대문 성벽을 죽음의 장소로 택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밑에서는 어떻게 시체를 끌어내릴 수 없으니까 방범대원 두 사람이 성문으로 올라가 옹성 쪽으로 돌아 나왔다. 긴 나일론 끈을 옹성 위 총구멍으로 넣어 돌려서 매고 그 한끝에 목을 매고 출렁 성벽 밖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그거 참 많이도 연구해서 묘하게도 죽었네.”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가을 새벽 햇빛이 동대문을 점점 밝게 비추기 시작하였다. 성루 처마 끝의 단청 이 선명하게 떠오르고 ‘흥인지문(興仁之門)’ 이란 현판이 드러나면서 비로소 늘어진 시체도 뚜렷이 보였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이 영화 속의 귀신처럼 얼굴을 덮었고, 유난히 길게 늘어진 두 팔 가운데 가슴에는 예의 그 훈장들이 아침 햇살에 반짝거렸다. 그건 참 괴기한 광경이었다.
위에서 끈을 끊어버린 것일까. 시체가 주르르 밑으로 흘러내려 언젠가 우리 서점 셔터에서처럼 성벽에 등을 기대고 두 다리는 앞으로 주욱 뻗은 자세로 앉아버렸다. 가슴의 그 자물통이 시계추처럼 몇 번 흔들거렸다.
이쪽 길 맞은쪽에 모여 섰던 사람들이 또 한차례 술렁거렸다. 순경이 거적을 들고 오더니 시체 위에 덮고 슬쩍 밀어 눕혔다.
“그거 참 알 수 없는 일인데요.”
약방 주인이 돌아서며 말했다.
“뭐가요?”
나도 따라 걸으며 물었다. '
“미친 사람이 자살을 하는가?”
“글쎄요.”
“미친 사람이 자살을 할 리가 없어요.”
“그럼 뭡니까, 자살이 아니라 누가 죽였다고 생각하나요?”
“아니죠. 죽였다는 게 아니고…….”
“그럼?”
약방 주인은 대답 대신 담뱃갑을 꺼내어 내게부터 권하고 자기도 물었다. 우리는 그렇게 담배 연기를 흘리면서 가게 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약방 주인은 아무래도 무언가 석연치 않은 눈치였다. 가게에 거의 다 왔을 때였다.
“선생!”
약방 주인이 멈칫 걸음을 멈추었다.
“……”
나는 움찔하여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쩌면 녀석은 미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요?”
“설마……”
우리는 서로 마주 보고 웃었다. 나는 서점 문을 밀고 들어섰다. 쥐고 있던 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꼈다. 그러던 나는 문득, 녀석의 가슴 한복판을 언제나 꽉 잠그고 있던 커다란 자물통을 생각했다.
-끝-
2016년 6월 10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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