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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종기 모여 있는 기와집들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삼청동 골목 끝자락에 자리 잡은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의 집을 찾았다. 전통 한옥과 모던함을 믹스 매치해 독특함이 묻어나는 그의 개성 있는 공간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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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길 옆에 있는 유료 주차장에 차를 대고 그길로 쭉 걸어 올라오시면 돼요.” 촬영할 집을 찾아가기 위해 그의 설명대로 차를 놓고 한두 사람 겨우 지나갈 만한 삼청동의 좁은 골목길을 쭉 오르다 보니 그 끝에 기왓장 돌담이 눈에 띄는 한복 디자이너 김영석(43)의 집이 보인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골목길을 지나 기왓장을 얹은 돌담, 뒷마당의 우물과 수동 펌프가 있는 마당 안에 들어서니 반갑다며 정신없이 꼬리를 흔드는 일곱 마리 개가 손님을 반긴다.
한복 만들 듯 정성스레 꾸민 집
“어릴 적부터 골동품, 도자기 등의 앤티크 소품들을 모으는 것이 취미였어요. 여러 가지 수집품 중에서 오래돼 닳고 너덜너덜해진 노리개, 뒤꽂이 등 우리나라 전통 장식품에 더 애착이 가더라고요. 조금만 고치면 정말 멋있겠구나 싶어 바느질하고 천을 덧대 새것처럼 변신시켰죠. 그걸 보는 재미에 며칠씩 밤을 새우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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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전통 장식품을 새것으로 탄생시키는 재미에 푹 빠져 본격적으로 바느질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그는 점차 한복이 가진 우아한 멋에 이끌려 한복 디자이너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벌써 13년째 만들고 있다는 그의 한복은 심플한 디자인과 몇 가지 색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하고 현대적인 색감으로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단아하면서도 세련된 멋으로 주목받았던 아나운서 노현정의 한복도 그의 작품.
그는 6개월 전 작업실과 살림집이 함께 있던 부암동 집에서 이곳 삼청동으로 이사했다. 작업실을 없애고 자신을 위한 편안한 휴식 공간을 마련해 자유로운 삶을 만끽하고 있다. 지은 지 50년 정도 된 적산가옥을 골조만 남기고 뜯어낸 뒤 자신의 취향에 맞게 고쳐 새롭게 재탄생했다. 공들여 공사한 끝에 완성한 이곳은 전체를 모던하게 바꾸고 한국의 전통 가구와 여러 해 동안 모아온 동양 각국의 앤티크 소품들을 적절히 매치해 편안하면서도 감각적인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공간으로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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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으로 이사한 계기 중 하나는 그의 식구인 일곱 마리의 애견들 때문. 강아지들이 뛰놀기 좋은 작은 마당 3개로 이루어져 있어 서울에서 보기 힘든 정겨운 시골 풍경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앞마당은 사철나무와 각종 화초, 작은 돌탑과 석조 조형물 등 한국적인 소품들로 아기자기하게 꾸몄다. 물 항아리와 장독대, 수동 펌프를 놓아 향수를 자극하는 뒷마당은 우물까지 직접 만들 정도로 열성을 다해 꾸민 곳으로 그가 가장 애착을 갖고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별채 뜰에는 길을 따라 깔아놓은 디딤돌과 한장 한장 기와를 쌓아 만든 담장, 제주도에서 구해온 동자상 등을 놓아 자연스러운 운치를 더했다.
이곳은 원래 있던 집의 틀을 그대로 살린 ㄱ자형 집에 별채를 앉힌 ㄷ자형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현관을 지나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서면 한옥의 대청마루처럼 정갈한 느낌을 주는 데코타일을 깐 널따란 마루가 한눈에 들어온다. 전등을 숨긴 천장, 화이트 컬러로 통일한 모던한 벽과 맞닿은 마루는 여느 집과 달리 거실도 없고 소파도 들이지 않았다. 이 공간이 손님 접대 역할을 하는 곳으로 앞마당을 마주하도록 찻상을 놓고, 꽃수가 놓인 색색의 방석을 빙 둘러 깐 뒤 향이 좋은 차 한 잔을 올려 낸다. 손님들은 마치 옛날 툇마루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인지 이 곳을 특히 좋아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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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란 마루 안쪽의 접이식 문을 열면 여자 손님을 위한 사랑방이, 대문 입구 별채에는 남자 손님을 위한 사랑방이 따로 구분돼 있다. ‘사랑방’이라 부르는 이유는 옛집처럼 이불장을 대신하는 고가구와 이불채가 그 위에 쌓여 있어 예스런 시골집의 정취가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랑방은 침대와 책상 대신 보료와 앉은뱅이 책상, 경대를 놓고 지방에서 구입한 골동품들로 아기자기하게 꾸며 전통적인 멋을 더했다.
숨은 매력이 가득한 공간
그가 꾸민 주방 역시 여느 집과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식탁 대신 기다란 아일랜드 조리대를 중간에 놓고, 그릇 수납을 위해 그릇장 대신 한쪽 벽에 붙박이장을 만들었다. 붙박이장의 문은 중국에서 구해 온 앤티크 문을 달아 개성을 더한 것이 특징. 주방 한 쪽 벽에 놓인 제주도 골동품인 찬장에는 앤티크 컬렉터인 그가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모은 알록달록한 앤티크 그릇들이 즐비해 있어 찬장뿐만 아니라 장식장 역할까지 톡톡히 한다.
그의 집에는 여느 집과 다른 특별한 멋이 숨겨져 있다. 산뜻한 노란색이 눈에 띄는 게스트 화장실 옆 작은 공간이 그중 하나로 흰 조약돌이 깔린 바닥 위에 긴 벤치가 놓여 있고, 천창 사이로 겨울 햇살이 쏟아진다. 새장 속에서 새가 지저귀고, 크고 작은 푸른 식물들이 숨쉬는 이곳은 책을 읽거나 족욕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인 공간이라고. 게스트 화장실 맞은편, 겉으로는 잘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허름한 계단은 다락방과 통하는 길이다. 다락방에는 일제 강점기 때의 경대, 한국 민화, 서재 도구 등의 앤티크 소품들을 전시해 놓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집의 가장 큰 매력은 창을 크게 내 바깥 풍경을 집안에서도 훤히 볼 수 있다는 것. 특히 앞마당이 훤히 보이는 현관 쪽 큰 창과 뒷마당과 연결된 주방 쪽 통 창은 사시사철 계절의 변화를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집안의 보석 같은 장소라고. 천편일률적인 아파트와 달리 옛날 집의 다락방처럼 숨겨진 공간을 활용하는 재미와 가족 같은 일곱 마리의 애견들이 뛰놀 수 있는 작은 마당을 가꾸는 매력에 요즘 푹 빠져 지낸다는 그는 이것이 바로 이집에 사는 이유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