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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로 이탈 밝혀져… 비행착각 가능성
“조종사 두 명 모두 실수 확률 낮아”
엔진 결함 등 기체 이상징후 없어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 장일현기자]
지난 7일 밤 경북 포항 앞바다에 추락한 최신예 전투기 F-15K의 교신내용과 항적(航跡) 조사 결과 사고기 조종사들이 당초 예정 위치에서 크게 벗어나 바다를 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조종사들은 추락 직전 동료 전투기와의 마지막 교신에서 평상시와 같은 차분한 목소리로 ‘임무 중지’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무 중지는 여러 단계 훈련 중 한 단계가 끝나고 다음 단계로 이동할 때나 훈련이 완전히 끝났을 때 등의 상황에서 조종사들이 옆 전투기에 보내는 말이다.
군 당국은 일단 비행 착각 등 조종사 과실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지만 정확한 추락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기체 결함 징후가 없었다는 ‘사실’만 파악됐을 뿐 모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는 미스터리의 연속인 상황이다. 바다에 충돌하면서 산산이 부서진 기체 잔해를 수거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려 가까운 시일 내 조사 결과 발표는 어려울 전망이다.
◆엔진 등 기체 결함 가능성 전혀 없나?
군 소식통은 8일 “사고 원인이 기체 결함과 조종사 과실 중 어느 쪽이라고 단정하기 힘들다”며 “그러나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 추락 당시 엔진 이상 등 특별한 기체 결함 징후를 보이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문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그간 F-15 추락사고에서 기체 결함이 원인이 됐던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올 1월 일본 오키나와 가데나기지 인근 상공에서 F-15가 공대공(空對空) 임무 도중 오른쪽 엔진 결함으로 추락했다. F-15K는 F-15 중 처음으로 미국 GE(제너럴일렉트릭)사 엔진을 장착했다. 그전까지는 미국의 F-15는 P&W(프랫 앤드 휘트니)사 엔진을 장착해왔다. 때문에 종전 기체와 다른 GE 엔진이 F-15K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상존해 왔다.
하지만 엔진 이상의 경우 조종사들이 감지, 어떤 행태로든 반응을 보이고 이는 함께 훈련 중이던 F-15K 조종사나 대구 제2중앙방공통제소(MCRC)와의 교신에 나타났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교신내용에는 이런 부분이 나타나 있지 않다고 군 관계자들은 전했다.
◆엔진 외에 다른 결함 가능성 없나?
일각에선 F-15K의 다른 결함 가능성을 제기한다. 작년 8월 F-15K가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시험 평가하는 과정에서 지시등의 오작동으로 비상 착륙하는 일이 발생했다. 최근엔 F-15K의 날개 부분에 이상이 발견돼 2주 정도 훈련이 중단됐다는 보도도 나왔다. 공군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시등 오작동은 시험운용 과정에서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며 날개 이상설(說)도 정비사가 항공기 정비 과정에서 실수로 날개에 흠집을 낸 것이 와전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비행 착각 등 조종사 과실 가능성 없나?
항적 조사 결과 사고기가 예정 코스를 벗어나는데도 조종사들이 교신 마지막 순간까지 차분히 대화를 나눴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비행 착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 바다에서 비행훈련을 하다가 바다를 하늘로 착각하는 비행 착각을 일으켜 추락하는 사고가 종종 있다. 지난해 7월 서·남해에서 잇따라 발생한 F-4 및 F-5 추락사고도 조종사들의 비행 착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F-15K는 조종사들의 비행 착각을 막기 위한 일종의 ‘안전 장치’들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이번 사고가 비행 착각에 의한 것이라면 왜 이런 장치들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느냐는 새로운 의문이 제기된다. 한 전문가는 “F-15K가 비행 착각에 의해 추락하려면 두 명의 조종사 모두 실수를 해야 하는데 이는 확률적으로 높지 않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