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1일, 세계 3위 암호화폐 거래소 FTX가 파산 신청을 했다. FTX는 한때 한화 약 42조 정도의 기업으로 가치를 평가받던 대형 거래소이다. 파산 신청에는 130여 개 계열사가 포함됐고, 법원에 신고한 부채 규모는 66조 원에 이른다. 채무자는 10만 명을 웃돌며 입출금 중단으로 투자자들의 투자금 회수는 불투명해졌다. 이는 암호화폐 업체 중 역대 최대 규모일 뿐 아니라 올해 가장 큰 규모의 파산 신청이다. 테라-루나 사태로 큰 진통을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불신이 더욱 크고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거래소는 어떠한 구조로 되어 있기에 세계 3위 거래소가 단 열흘 사이에 파산하게 된 걸까?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
블록체인 기술은 분산 원장 기술(Distributed Ledger Technology)의 일종이다. 분산 원장 기술은 장부를 여러 공간에 분산시켜 저장하고 중앙화된 데이터 저장소나 관리 기구 없이 참가자들이 공동으로 데이터를 기록 및 관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참여자라면 누구나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고 한번 저장되면 수정이나 삭제할 수 없기에 기록이 투명하게 남는 것이 주요한 특징이다. 블록체인은 이러한 분산 원장을 블록이라는 단위로 데이터를 생성하고 체인 형태로 연결하는 형태로 구현한 기술이다. 체인 형태를 사용한 이유는 암호학 기술을 이용하면 과거의 기록에 대한 위변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블록체인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블록체인 장부상에서 데이터의 소유권이 보장될 수 있다는 것이다.
블록체인 장부상에 데이터를 기록하기 위해선 유효한 서명(signature)이 필요하다. 서명은 한 쌍의 키(개인 키와 공개 키)로 생성된다. 개인 키와 공개 키를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우편함과 같은 방식이다. 우체부는 주소(공개 키)를 사용해 위치를 확인하고 우편함 안에 편지(디지털 자산)를 집어넣는다. 이때 우편함에서 내용물을 회수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우편함의 키(개인 키)를 소지하고 있는 사람이다. 개인 키를 소지한 사람만이 블록체인 주소에 전송된 물건에 접근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블록체인 장부상에서 디지털 자산을 안전하게 전송할 수 있고 쉽게 소유권을 증명할 수 있다. 암호화폐는 이러한 디지털 자산을 가리킨다.
블록체인은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한 것일까
최초의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는 비트코인이다. 비트코인은 그 뿌리를 사이퍼펑크 운동에 두고 있다. 사이퍼펑크는 암호를 뜻하는 사이퍼(cipher)와 기존 권위와 조직에 대한 저항을 의미하는 펑크(punk)라는 단어를 결합하여 만든 단어이다. 1980년대부터 인터넷과 통신이 확산하면서 인터넷상에서의 다국적 기업과 정부 권력의 탄압과 통제 기술이 발달하기 시작한다. 사이퍼펑크는 암호화 기술을 사용하여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감시와 검열로부터 지키려고 했던 활동가 집단이다. 암호학이 발전하기 이전에는 개인의 정보를 암호화하더라도 대량의 컴퓨팅 자원을 이용하면 개인의 암호화된 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암호학의 발전으로 개인의 정보뿐 아니라 금융 거래 정보와 같이 개인 간의 소통 또한 프라이버시를 지키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사이퍼펑크는 경제의 자유주의를 이끌어 왔다. 경제의 자유주의는 법정 화폐를 발행할 권리를 국가만 독점하고 법정 화폐만 사용하도록 강제하는 체제에 문제가 있다는 시각을 반영한 운동이다. 법정 화폐는 중앙은행이 화폐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리라는 신뢰를 기반으로 하지만 역사적으로 그러한 신뢰가 무너진 경우가 많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는 그러한 예 중 하나다. 중앙은행들은 법정 화폐를 발행하여 은행의 부도를 막는 데 사용하였고 이것은 개인이 가진 화폐의 가치 하락을 초래하였다. 미국처럼 화폐를 독점적으로 발행할 권리를 국가를 등에 업은 금융 자본이 갖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은 독자적인 화폐 네트워크에 대한 생각으로 확산되었다. 국가가 간섭하지 못하는 독자적인 네트워크에서 화폐를 발행하는 권리를 가진다면 법정 화폐보다 개인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과 함께, 어떻게 하면 국가가 간섭할 수 없는 경제 화폐 체제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비트코인 논문은 탄생하게 된다. 비트코인과 같이 중앙화된 신뢰 기관 없이도 신뢰할 수 있는 전자 장부 회계 시스템을 통하여 전자 화폐 시스템을 만들면, 앞서 얘기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러한 전자 화폐 시스템을 비트코인 네트워크라 부른다. 회계적으로 인식된 거래에 대한 금액 크기를 장부상에 항목별로 기록하는 것을 계정 과목이라고 한다. 비트코인 네트워크는 장부 내부에서만 정의된 단일 계정 과목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비트코인이다.
암호화폐는 크게 자체 블록체인을 가지고 있는 암호화폐와 그렇지 않은 암호화폐로 나눌 수가 있다. 전자의 경우 코인, 후자를 토큰이라 부르기도 한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이 대표적으로 자체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소유한 암호화폐이다. 토큰의 경우 광범위하게 만들어질 수 있다. 이더리움을 예로 들면, 자체적으로 계정 과목을 스마트 컨트랙트를 이용하여 추가할 수 있고 각각의 계정 과목은 토큰이 될 수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 종류
법정 화폐와 암호화폐를 교환하거나 암호화폐 간 교환을 할 수 있는 곳이 암호화폐 거래소이다. 암호화폐 거래소는 크게 중앙화 거래소(Centralized Exchange)와 탈중앙화 거래소(Decentralized Exchange)로 나눌 수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중개자를 통해 거래가 일어나는 거래소를 중앙화 거래소라 한다. 이번에 파산 신청을 한 FTX를 비롯하여 코인베이스, 바이낸스, 업비트, 빗썸 등이 모두 대표적인 중앙화 거래소이다. 중앙화 거래소는 고객의 자산을 거래소에 수탁하기 때문에 고객이 직접 개인 키를 관리하지 않는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블록체인 장부상에서 보장되는 소유권은 개인 키의 소유를 통하여 발생하는데 개인 키를 관리하지 않는다는 것은 중앙화 거래소에서 암호화폐를 매수하여도 블록체인 장부상에서 소유권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거래 내용은 거래소 내부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되기에 누구도 들여다볼 수 없다.
반면에 중개자 없이 개인 간 금융거래 방식으로 운영되는 암호화폐 거래소를 탈중앙화 거래소라 한다. 탈중앙화 거래소의 경우 사용자가 직접 개인 키를 관리하고 통제하기에 블록체인 장부상에서의 온전한 소유가 가능하다. 또한 자산을 중앙화된 주체가 관리하지 않기 때문에 보안이 더 좋다고 볼 수 있다. 암호화폐를 사용하기 위해선 블록체인 장부상의 소유권이 있어야 하기에 탈중앙화 거래소를 이용하여야만 한다.
탈중앙화와 디지털 자산의 소유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의 주요한 특징임에도 불구하고 중앙화 거래소가 더 많이 이용됐다. 그 이유는 개인이 직접 개인 키를 관리하는 데에는 번거로움이 따르고 보안의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하기 때문이다. 암호화폐에 관심을 가지는 대부분의 사람은 암호화폐의 사용은 염두에 두지 않고 투자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기 때문에 개인 키를 직접 관리하지 않아도 되며, 사용자가 이용하기 좋은 중앙화 거래소가 더 편리할 수 있다.
FTX의 파산
암호화폐 거래소 FTX의 파산은 지난 11월 2일 유명 가상 자산 미디어 ‘코인데스크’의 한 보도로부터 시작되었다. 보도에는 FTX의 창업자 샘 뱅크먼프리드(Sam Bankman-Fried)가 설립한 암호화폐 트레이딩 회사 앨러미다 리서치(Alameda Research)의 재무제표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총자산 140억 달러 중 58억 달러가 FTX 거래소 토큰인 FTT 토큰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내용이었다. FTT 토큰은 FTX 거래소에서 발행한 토큰으로, 보유한 양에 비례하여 거래 수수료를 할인해주는 등의 유틸리티 성격을 가진 토큰이다. 해당 보도 직후 세계 1위 거래소 바이낸스 CEO인 자오창펑(Changpeng Zhao)은 FTX의 초기 투자로 얻은 FTT를 전량 매도하겠다는 트윗을 올렸고, FTT 토큰에 대한 공포가 확산하면서 가격이 급락하기 시작했다. 앨러미다 리서치는 FTT 토큰을 담보로 현금을 대출받아 사업을 확장해 왔기에, 담보 가치 하락 시 위기에 빠질 수 있는 상황이었고, 앨러미다 리서치의 유동성 문제가 FTX 거래소로 번질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확산하였다. 이러한 불안감은 FTX 거래소에서 대규모의 투자금을 인출하는 사태로 이어졌고 현금이 바닥나 파산 신청으로 이어졌다. FTX 거래소와 앨러미다 리서치의 투명하지 않은 관계, 자체 토큰의 발행 권한 독점, 해당 토큰을 이용하여 무리하게 자금을 운용한 점 등이 복합적으로 리스크와 피해를 키웠다.
참고 링크
1) 공병훈, “[오피니언] 사이퍼펑크(Cypherpunk)와 블록체인의 기원”, 「뉴스페이퍼」, 2019. 02. 03.
2) Satoshi Nakamoto, “Bitcoin open source implementation of P2P currency”, 「P2P foundation」, 2009. 2. 11.
3) 김민승, “Alameda Research / FTX 유동성 사태 현황 보고서”, 「Korbit」, 2022. 1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