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공연을 끝낸 후 송년회도 마치고 늦게까지 뒤풀이를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빌린 렌트카에 몸을 싣고 인천으로 향했습니다.
인천은 아시다시피 빵공장이 주최했지요. 장소는 영화공간 주안 소극장이었습니다.
빵공장 이미혜 본부장님과 맴버들은 늘 몽당연필 '소풍'에 함께 해주시고 항상 몽당연필이 하는 일에
관심과 애정을 듬뿍 주는 분들이라 '조선학교' 또한 아주 잘 알지요.
그래서인지 인천엘 가면 마음이 푸근해 진답니다.
빵공장에서도 조선학교에 보낼 엽서(고교무상화재판 응원), 캘린더, 잡지 등을 나누어 드렸습니다.
빵공장에서는 특별히 티켓도 인쇄해서 나누어주셨어요.
공연장은 관객석이 자동으로 접히는 공간이어서 이 공연의 특성 상 많은 분들이 자리에 앉으실 수 있도록 바닥지를 깔았습니다.
뒤에는 권기자, 그 왼쪽에 열심히 무언가를 준비하는 황유자, 그리고 빵공장에서 저희를 돌보아주셨던 장수경 집행위원장입니다. ^^
콘솔박스 앞에서 열심히 준비하는 유자씨와 준비된 공연장을 보면서 무언가 생각에 빠진 기자씨입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준비 전의 시간들마다 이 분들이 아이들 엄마인가 싶을 정도로 유쾌하고 장난스럽던
두 사람인데 공연장에 도착해서 준비에 들어가면 3-4시간 동안 굉장히 진지해져 버립니다. 프로는 확실히 다르죠. ^^
이제 공연이 시작됩니다.
아래 첫번째 사진은 연극을 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관객과 함께 신나게 한판 춤을 추는 시간이지요.
인천 공연 때는 왠 마스크를 쓴 여인네가 김기강씨와 함께 정말 신명나게 춤을 췄는데, 알고 보았더니
이 여인네가 몽당연필 이음의 이정은씨였습니다. ㅋㅋㅋ 역쉬 몽당. ㅋㅋ
인천에서도 다음을 기약하며 멋지게 기념사진. ^^ 청소년들도 많아서 참 좋았습니다.
뒤풀이 시간입니다. 천영기회원님과 김기홍회원님이 잠깐 보이네요. ^^ 인천에서는 몽당연필의 활동을 눈여겨 보신 관객분들이 회원가입도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 날 인천을 떠나기 직전, 천영기 회원님의 제안에 따라 인천의 한 박물관에 들러 소녀상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바닥에서부터 점점 일어서는 소녀상. 두 손을 꼭 쥐고 입에는 미소까지 짓고 있는 모습이 새롭습니다. 작가님과 극단돌이 기념으로 사진. 인천은 이 소녀상을 설치했다고 합니다. 언젠가 일본 땅 한 복판에 소녀상이 세워지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박물관에서 나와 점심을 김치찌게로 해결하고
곧바로 여섯시간을 달려서 해남으로 이동했습니다. 땅끝 해남.
그곳에서는 해남 희망교육연대가 저희들을 따뜻이 맞아주었지요.
해남의 박승규 목사님입니다. 일본에서 자바첵을 보시고 한국에 전하고 싶어
몽당연필에 의뢰를 한 시점이 마침 몽당연필에서도 준비 중이었던 터라 아주 좋은 만남이 되었답니다.
해남의 중심가에 있는 공원에도 역시 소녀상이 있었습니다. 할머니들이 한분 두분 돌아가시는 요즘인데
하루빨리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래 봅니다.
해남읍에는 공원이 참 아름답고 오래되었고 이렇게 거대한 나무들도 곳곳에 있었습니다. 장난꾸러기 김기강은
자연을 사랑합니다. 오키나와 핼기착륙장 반대 투쟁을 열심히 하고 있는 기강씨가 만든 노래들도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지를 질문하는 노래들이 많아요.
이번 해남 공연장은
가톨릭 성당의 회관이었습니다.
원래 공연장이 아닌터라 이곳을 공연장 처럼 꾸미는 것이 첫번째 임무.
일본에서 이들과 함께 건너 온 바닥재를 깔고 조명을 설치하고 음향을 테스트해보고
여러가지 바쁜 시간을 보냅니다. 이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면 비로소 배우 기강씨는 그전에는 볼 수 없었던
진지한 눈빛으로 돌변합니다. ^^
불행하게도 이날 아침부터 황유자씨가 감기에 시달렸습니다. 해남의 생협 이명숙씨께서 친히 한의원에 데리고 가서
감기약을 사주고 그걸 먹고 차 안에서 한시간 정도 취침을 해서야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힘내라 황유자~!
역시 전라도 해남. 잘 웃고 반응 좋고 함께 놀기 좋아하고.^^
자바첵으로 가득했던 성당 안이었습니다. 무뚝무뚝한 신부님께서는 조선학교 아이들에게 써달라고 금일봉을 하사해주시기도했습니다. ^^ 감사합니다.
아래는 음향 등 궂은 일을 도맡아서 해주시고도 그날 연극을 못 보게 되었다며 아쉬워했던
해남 산림조합 활동가 형님. 결국 회의가 끝나고 연극의 반이라도 함께 해 주셨지만 못내 아쉬워요.
해남의 밤이 깊어갑니다.
여기가 어딘지요? 바로 해남에서 1시간 가까이 달려 도착한 팽목항입니다.
쓸쓸했습니다. 사람들의 관심만큼이나 이제는 이 항구도 쓸쓸합니다. 미수습자 9명의 가족들이 지키고 있지만
방문객들이 예전만 못했습니다.
처음으로 분향소에 방문한 극단돌은 들어서자마자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눈물을 흘립니다.
소개해 줬던 김성훈씨(미수습자 가족)도 당황할 만큼.
아이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들여다 보면 눈물이 흐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우기 아이들 엄마이기도 한 극단돌의 맴버들의 마음이야 더 할나위가 없지요. 일본에서 많은 차별 속에 사는 우리학교 아이들, 일본학교에서 자신을 숨기면서 살아가는 동포 아이들, 그리고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아이들. 제발 아이들이 행복한 사회는 언제쯤 가능한 것일까요?
팽목항에서 만난 은하엄마입니다. 아직 세월호에는 9명의 시신이 구조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나도 유가족이 되고 싶다'는 은하엄마.
일본에서 방문 온 극단돌 친구들의 연극을 어제 보고, 오늘 이렇게 한 자리에 마주앉아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많은 말들을 해 주셨지만 모든 말들이 '빨이 아이들을 만지고 싶어'였습니다.
은하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시한번 눈물범벅이 된 마음과 얼굴을 하고 성훈씨가 차려준 밥을 함께 먹었습니다.
이 미수습 가족들은 대부분 심한 위장병이나 불면증, 알코올 중독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벌써 3년이 다 되어가도록 밤이 되어도 잠들 수 없어 생긴 병이라고 합니다.
하루 빨리 은하엄마를 비롯한 미수습 가족들이 '유가족'이 되고, 세월호의 진실이 빨이 인양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추운 날이었습니다. 바람도 심했습니다.
아픈 마음을 안고 팽목항을 나섰습니다. 내일 있을 부산 공연을 위해서...